동생이 둘째를 낳았습니다. 2년전에 첫째를 낳을 때 수술을 했던 터라, 이번에도 수술을 했습니다. 첫째 때 수술하고 나서 몸이 빨리 회복되지 않아서 수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가까운 이들중에 수혈을 해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혈액원의 피를 받았더니, 나중에 부작용이 생겨서 조금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제 피를 받아야겠다고 벌써 한 달전부터 예약을 했더군요. 간이 나빠지면 수혈을 받는 사람도 안좋다고, 간을 잘 관리하라는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술도 마시지 말라고 하고, 잠도 일찍 자라고 하네요. 일주일에 3일 이상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그 3번중에 2번 이상은 새벽 2~3시까지 마시는 사람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니! 뭐 내가 좋아서 마시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과 약속을 굳이 거절하지 못해서 마시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말이죠. 게다가 밤에 일찍 자라는 것도 그래요. 술을 안마시는 날은 아내가 일을 하거나, 약속을 잡아서 나가는 날이 많아요. 그런 날엔 제가 6살짜리와 6개월짜리 두 딸을 돌봐야해요. 뭐 첫째 녀석이야 혼자서 뭐든 척척 잘 하니까 별로 돌볼건 없고, 잠자기 전에 씻기는 것만 좀 신경쓰면 되죠. 둘째는 유난히 엄마손을 많이 탑니다. 엄마가 없으면 둘째를 돌보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둘째를 업거나 안고, 집안 일도 시작합니다. 일단 첫째아이 밥을 먹여야 하죠. 둘째는 분유를 타서 먹이구요. 그다음엔 설겆이도 하고, 널어놓은 빨래가 있으면 개어놓고, 하루동안 사용한 아기 손수건은 비누칠해서 빨아놓죠. 그런데 아기가 엄마를 심하게 찾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저 아기를 달랠 방법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거죠.
참 이상하죠. 아기랑 보내는 시간이 적은 편도 아닌데, 유난히 둘째는 아빠랑만 지내는 시간을 못견딥니다. 아니 엄마가 없는 시간을 못견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첫째는 그렇지 않았어요. 첫째때는 제가 육아휴직을 받았어요. 엄마가 버는게 훨 나은 때였기에, 엄마는 일하고, 아빠는 집에서 아이랑 지냈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아빠랑 잘 지냈어요. 1년에 한번씩 엄마가 약 2주간 해외출장을 가도, 아이는 아빠랑 별일없이 잘 지냈죠. 아빠가 복직한 후에도 아빠 사무실에서 놀기도 하고, 아빠랑 같이 회의도 가고, 토론회도 가고, 촛불집회도 가고 제가 일하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땐 그런 일들이 다 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일터가 바뀌고 나서부터는 아이랑 함께 다니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아이가 태어나도 육아휴직은 커녕 출산휴가도 맘놓고 쓰기 어렵더군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눈치가 많이 보여서 자주 할 수 없는 일이더라구요. 사장님이 없는 일터에서, 사장님이 있는 일터로 옮기고 나서는 모든 일들에 사장님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더라구요. 물론 우리 사장님은 참 좋은 분이셔서 제가 아이때문에 출퇴근시간에 변동이 생기거나, 아예 못나오는 경우가 생겨도 다 이해해주십니다. 딱한번 첫째가 눈병이 걸려서 어린이집도 보낼 수 없고, 엄마도 일때문에 돌볼수 없어서, 제가 데리고 출근한 날이 있었는데, 그때도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아이에게 참 잘 대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전 일터에서처럼 자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더라구요.
암튼 첫째는 아기때부터 아빠랑 참 잘 지냈습니다만, 둘째는 엄마가 없으면 무척 불안해합니다. 눈에 안보이면 자꾸 두리번거리며 찾고, 찾다가 지치면 울죠. 계속 울어요.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계속 웁니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봐도 소용이 없어요. 제 스스로 지칠때까지 울어야해요. 울다가 지치면 잠이 듭니다. 일단 잠이 들긴 했지만, 아기는 한동안 계속 훌쩍입니다. 간혹 훌쩍이다가 다시 깨서 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계속 안고 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안고 재워야하죠. 그런 날엔 집안일은 하나도 못하고 시간이 다 가버립니다. 그사이 첫째녀석은 아기 울음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한쪽 구석에서 놀고 있죠. 녀석을 잘 달래서 씻기고 재워야 합니다. 그럭저럭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면 11시가 가깝거나, 11시를 넘기거나 그렇습니다. 엄마가 돌아왔다면,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밀린 집안일을 해치웁니다.
아이 엄마까지 모두 잠들면 대개 12시를 훌쩍 넘깁니다. 저도 함께 잠드는 날도 있고, 오늘처럼 잠들지 않고 컴퓨터를 켜는 날도 있습니다. 낮엔 일터에서 일을하고, 저녁엔 술을 마시거나, 육아와 가사노동을 해야하죠. 결과적으로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일 수 있는 시간은 밤시간 밖에 없습니다. 12시를 넘어야 저에게는 자유시간이 주어집니다. 뭐 별로 잘 하는 건 없지만, 욕심은 많은 편이어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읽고 싶은 혹은 읽어야 할 책들도 산더미처럼 쌓여있구요. 자주 돌보지 못하는 블로그도 한번씩 가봐야하고, 낮에 보지 못한 뉴스검색도 한번 해보기도 하고, 가끔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는 중에 아기가 종종 깨서 울어요. 그럼 잠든 엄마와 첫째가 깨지않고 얼른 달려가서 달랩니다. 한참을 안고 달래야 다시 잠들기도 하고, 아예 깨버려서 엄마가 젖을 물려야 다시 잠들기도 하지요.
이렇게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일도 많은데, 어떻게 매일 일찍 잠들 수 있나요?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은 밤시간 밖에 없는데, 최대한 밤시간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니 술도 좀 마셔줘야 하고, 밤엔 책도 좀 읽어야하지 않겠어요. 동생에겐 그 긴 얘길 다 전할 수 없어서 딱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시끄럽다! 가시나야!' 동생이 뭔가 더 쫑알거리기에, 이번엔 좀 더 쎄게 말했죠. '아, 됐다니까! 내 알아서하니까 니는 그리 알아라!'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받기 전부터 술약속이 참 많았습니다. 어째 이번 가을은 거절하기 어려운 술자리가 자꾸만 생기더군요. 일주일에 두세번 거절하기 힘든 술을 마시고나면, 주말에는 또 나를 위한 술을 가볍게 한 잔해야 스트레스도 좀 풀리는 법이죠. 그러니 며칠씩 연달아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종종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잡글을 끄적이거나 했죠.
마침내 동생의 수술날짜가 다가왔습니다. 평일이었기에, 사장님께 미리 휴가를 받았습니다. 먼 길을 왔다갔다 해야하고, 수혈을 해주고나면 당일은 쉬어야할테니 3일 휴가를 받았습니다.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3일씩이나 휴가를 받는 것도 참 눈치보이는 일이었지만, 동생을 위해서 어쩔수없었죠.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전화해서, 이번에는 수혈을 안받아도 괜찮으니, 안와도 된다는 거예요. 그래도 한 며칠동안 금주를 선언하고 술약속을 모두 거절했고, 밤에 일찍 잠들려고 노력했는데, 갑자기 수혈을 안해도 된다니 좀 허탈하더군요. 일단 아기도 보고 싶고, 아기 물건들도 전해줘야하고, 어머니 생신도 있으니 한번은 내려가야 했습니다. 수혈이 필요없다니, 굳이 휴가를 내서 평일에 갈 필요는 없고,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월요일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아직 어린 아기때문에 최대한 여행시간을 줄이느라 KTX를 탔습니다. 이번에 새로 대구에서 경주와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2구간을 개통했다고, 요금을 제법 올렸더군요. 2시간 18분에 간다는 말은 실제로는 거짓말이었습니다. 2시간 18분짜리는 하루에 2대 밖에 운행을 안한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2시간 35분이더군요. 기존 경전철구간(그동안은 대구에서 부산까지 경부선 철로 옆으로 경전철을 깔아서 KTX를 운행했습니다.)을 이용할 때도 2시간 45분이었습니다. 역시 그때도 실제로 2시간 45분짜리는 하루에 몇 대 되지 않았고, 대부분 2시간 55분이거나 3시간이 넘기도 했습니다만, 코레일 주장대로라면 겨우 10분 빨라진 건데, 요금을 그렇게 많이 올리다니 참 황당하더군요.
게다가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 모두 7분씩 연착이 되었습니다. 그럼 실제로는 예전 노선을 이용할때와 같은 시간이 걸린거죠. 하나도 빨라지지 않았단 얘깁니다. 또 경부고속철도 2단계구간(대구~경주~울산~부산)구간은 산이 많죠. 그래서 노선을 확정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노선을 확정한 후에는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쳤고(지율스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싸웠죠!) 공사기간도 오래걸렸습니다. 산이 많은 곳을 고속철도가 지나가려니 자연히 터널이 많더라구요. 지나가면 다가오고, 또 지나가면 다가오는 터널들, 아내는 터널에 오래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더군요. 저는 예전에 비해 유난히 차체가 심하게 떨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는 단 3분 빨라진 노선. 그 노선을 위해 파괴된 산과 들, 사라져버린 멸종위기종들 그리고 국민들의 혈세 수십조원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겨우 3분을 빨리가자고 희생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들이 아닌가요? 노태우가 계획하고, 노무현이 착공하고, 이명박이 완공하기까지 고속철도가 완성되기를 바랬던 사람들은 이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지 어떨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고 자렵니다. 토요일 부산으로 가는 중에 열차가 급정거를 했습니다. 울산역에서 정차하기 전이었죠. 터널을 빠른속도로 통과하던 열차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면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병이 스르르 미끄러져 움직였습니다. 물을 마시다가 잠시 내려놓았던 터라, 뚜껑은 제 손에 쥐어 있었지요. 물병이 미끄러지는 걸 보면서도 저는 잡지 못했습니다. 제 몸도 같은 방향으로, 그리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결국 물병은 아래에 있던 가방으로 떨어지고, 마침 열려있던 가방에 물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건 급정거를 했는데도, 아무런 사과방송이 없더군요. 승무원에게 좀 따지고 싶었지만, 마침 승무원도 지나가지 않더라구요. 잠시 후에 울산역에 도착해서 안내방송을 할 때도 급정거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7분 연착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사과는 안하더라구요. 최종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했을 때도 똑같이 7분 연착했다는 말만하고 사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음악과 함께 녹음한 목소리가 나오더군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나 빠르고 정확한 KTX'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방금 스스로 7분 연착했다고 말해놓고, 연이어 정확한 KTX라고 말하다니 참 우스웠습니다. 그건 서울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구요. 정말 우습더라구요. 저 방송을 녹음한 성우는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알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