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 - 인도차이나 남부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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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비야의 인도차이나와 남부아시아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순전히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읽게 되었던 책. 다 읽은 후엔, 베트남도 베트남이지만, 인도의 겐지즈 강가 '바라나시'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부터 중국 신장지방의 카슈가르에 이르는, 세계에서 제일 험하고도 경치가 멋지다는 '꿈길'. 그 두 곳을 죽기 전까지, 만사가 다 귀찮을 정도로 몸이 운신하기 힘들어지기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꼭 가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중국견문록> 이후 한비야의 책은 이 책이 두 번째 읽는 것이다. 덜하고, 더하고를 비교할 수 없이, 둘 다 재밌었다. 아니 사실은, 누가 쓴 것이든, 어느 지역을 다녀온 것이든, 이 세상에 쓰여진 모든 여행기는 다 나름으로 깨가 쏟아지게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부분은 한비야의 책을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니까, 그의 책의 특색에 대해 몇자를 더해야 겠지.

그는 주로 모든 위험과 고생스러움을 무릅쓰고, 굳이 산간 오지 마을로 찾아가 민박하며, 민박집의 집안일도 돕고, 풍속도 익히며 지내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 지역이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난민촌일지언정, 어디든 땡기는 곳은 찾아들기를 서슴치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의 생생한 논픽션을 듣는 맛에 손에 땀을 쥔다. 그러나 한비야가 탈레반의 공격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주거하는 경계 삼엄한 난민촌에 잠입한 부분에서는 너무 무리한다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한비야 본인의 목숨은 물론 혹, 연루된 가족들의 목숨에도 위험이 따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참상을 목도한 경험들을 통해서, 한비야가 남은 일평생 바쳐 난민을 위한 국제 기구에서 일하려 하는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를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미안마 북부 지방 산간 마을에서 즐겁고도 고된 식모 생활(?)을 했던 이야기, 아이 셋을 데리고 보트 탈출을 열세번이나 했던 라이 따이한의 당당한 어머니, 베트남 딥 아줌마와의 멋진 만남, 만하루를 꼬박 걸어서 찾아간 라오스의 산간 마을에서 만난 넉넉하고 순박한 사람들과 함께한 이야기, 방글라데시의 오지 마을에서 여자들이 쇠똥을 긁던 손, 제대로 씻지 않고 밀가루 반죽해 만든 호떡 같이 생긴 짜대타를 맛있게 먹은 한비야. 정말 이런 다채롭고도 푸근한 경험들이라니...아흐~~~너무 부럽다.

그러나 종횡무진 과격 만빵의 팔팔한 한비야도 그 다혈질로 인해, 굳이 겪지 않아도 좋았을 일들도 몇 차례 겪게 되는데(이것 또한 여행기를 읽는 맛이지 않은가..), 캄보디아에서 비행기가 아닌 뱃길로 태국에 밀입국하려다가(한비야는 남이 하지 말라는 건 꼭 하고 싶어하는 성미가 있다^^.) 실패하고(이 일 때문에 보트를 몰던 뱃꾼이 태국 경찰들에게 맞아 죽을 뻔함.), 다시 비행기를 타고 태국에 가려다가 그것 마저도 잘 되지 않던 차에, 통 아저씨라는 유순한 입국 심사 책임자(비야님이 만나본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체로 잘 웃고, 순한 기질을 소유했다고 한다.)를 만나는 행운으로 간신히 비행기를 타게 된 한비야.(통아저씨에게 통사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더라면 어쩔뻔 했나...그래 봤자, 일정에 조금 차질이 오는 정도였겠지만..)

불과 8~9년 전만해도 인도차이나와 남부아시아로의 해외 여행이 당국의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모로 어려웠고, 자유 여행이 가능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례로, 베트남의 경우에는 한국 기업들의 공장들이 많고, 그 때문에 예전보다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베트남 현지에 가 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바라 본 한국인들의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들었다. 현지인들을 너무 얕보고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도 인도차이나로의 여행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그럴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호시탐탐 멀리 나가볼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니까.) 그들에게 정감가고 풋풋한 한국인의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라도, 해외에 나가서는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작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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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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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비평계와 세간에서 이 책을 향해 숱하게 쏠리고 쏟아져 내렸던 찬사와 호평을 잘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내 식으로 굳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하자면, 이렇다. 스물 한살의 프랑스 작가가 써내린 소설치고 퍽 훌륭한, 18세기 말을 배경으로한 베트남 여행기이네. 라고.

이 소설의 행간 어느 부분도 도발적이고, 문제적이라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부분이 없다. 그저 담담하고, 아릿하며, 고독하고 무상하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평정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길에 꺼내 놓고, 행간 사이를 음미하며 읽으면 전율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던 당시는 절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졸면서 띄엄띄엄 읽었기 때문인 즉, 감동은 반감하고 말았던 거 같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다 죽었다. 베트남에서 온 어린 왕자는 멀고도 낯선 이국 땅 프랑스에서 외롭게 죽었고,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여러달에 걸친 뱃길로 미지의 세계, 베트남에 도착한 선장과 선교사 수녀들도 우여곡절 끝에 모두 죽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숲속에서 살해당하거나 부상으로 죽었고, 선교사와 수녀 몇은, 프랑스에서 어린 아들을 외롭게 죽도록 한 데 대해 상심한 왕의 폭정으로 살해당하거나, 풍토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물론 이 모든 죽음이 참혹하고 슬픈 것이긴 하지만, 이 소설의 초점은 그 참혹한 슬픔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죽음과 가까워지고 죽어 잊혀지는 것이 생의 의미라는 것을 미학적으로 보여 준다고나 할까.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프랑스 선교사와 수녀들은 프랑스어를 가르치거나 베트남말을 배우는 등 논밭을 함께 경작하는 등 프랑스에서 지니고있던 모든 것을 잊고 이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 원주민과 더불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살고 있었던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 일행은 다른 지역에 선교를 할 목적으로 일부 선교사와 수녀 몇을 처음 정착한 마을에 두고,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고된 여행길에서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만이 살아남게 된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베트남에 왔지만, 이들의 일행은 모두 죽었으며 이 둘만이 고립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두 사람은 구체적인 생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들이 항상 나누던 기도와 복음과 말씀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7년이 지난 후, 이 둘은 한 날 같은 시간에 병으로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사족을 좀 달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베트남의 지역색도 아울러 맛볼 수 있기를 바랬다. 푸른 벼와 연잎에 찐밥, 코끼리를 타고 밭을 경작하고, 어린 아이들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 순박한 원주민, 풍토병.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말이다. 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 제목이 보여 주듯...... 알 듯 말 듯 모호하고 정적인 느낌으로 베트남의 풍광 묘사를 메우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체가 이것이 이 소설의 미학이라고 하니, 뭐 그런 줄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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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
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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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그런 날이 있다. 국내 작가의 멜로(?) 소설이 읽고 싶어지는 즈음. 은희경이나 배수아가 쓰는 풍의 소설이라면 더더욱 OK. 젊은 날의 삶에 8할의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기'. 그것이 잘 되지 않고 삐걱일 때, 목마른 사람이 냉수 찾듯이 이런 류의 소설을 읽는다. 연애하는 건 정말 힘든 것이라는 걸, 강하게 동의해 줄 수 있는 소설 말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상 시간은 대략 15년을 오락가락한다.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진 듯 건조하고 고독한 한 남자와 같은 이름(미란)을 가진,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두 여자가 나온다. 그리고 이 주인공 남자는 두 여자 미란 사이를 방황한다. 첫 번째 미란은 제주도에서 만난 첫사랑이자, 비련의 개인사를 간직한 여인이고, 두 번째의 미란은 현실의 아내가 되었다. 두 여인 모두, 행복한 생을 꾸린다고 할 수 없지만 현실의 미란 편이, 열대의 말레이시아에 도피 중이며, 병에 걸린 첫사랑 미란보다야 그나마 행복하지 싶다. 그럼 왜 두 미란은 행복하지 않은가. 먼저 현실의 미란은 주인공 남자의 공허한 마음을 간파한 때문이고, 첫사랑 미란의 삶에 불행은 스스로 타고난 운명의 덫 때문인데, 첫사랑 미란의 불행한 운명의 그림자는 주인공 남자의 일상의 무의식에까지 그늘을 드리운 것이다.

이름이 같은 두 여자 사이에 한 남자의 갈등이라니....어디서 많이 본 듯한 멜로적 구조물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자칫 상투적인 설정에 지극히 현실다운 옷을 입혔다. 시종일관, '다음엔 뭔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하며 조리는 마음으로 읽어내리게 하였으니...... 윤대녕의 전작들에서 보여지던 모호한 듯, 그러나 어느 순간 목덜미를 잡아끄는 듯한 매력은 이 소설에서 확실히 덜해졌고, 대체로 서술이 신변잡기적으로 변했다. 이를 애석하게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글줄에서 현실감이 많이 느껴지고, 속독이 가능해졌다는, 즉 빠르게 읽힌다는 점에서 <미란>을 통한 이 작가의 또다른 시도( 작가는 이번 작품에 “과감하게 멜로 구조를 도입했다”고 했다.) 가 성공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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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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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을 단 한권도 읽은 적이 없는 나는,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몇 편 본 이후로 그의 팬이 되기로 작정을 했었다. <미저리>나 <스탠바이미>, <캐리>,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클레이본>.

초등 6년 때,중학교 입학을 위한 반편성 배치 고사가 같은 게 끝나면 학교에선 으레 단체 영화 관람 같은 게 있었다. 그때 본 스티븐 스필버그의 <구니스>. 거기선 아이들이 보물을 찾으러 부모님 몰래 집을 나선다. 험난한 모험에서, 집으로 돌아와 안락한 집, 따뜻한 부모의 품에 안길 때, 그 장면이 너무나 포근하게 느껴져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 내가 꿈꾸는 가족들의 이상향인 양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조금 머리가 커지고 나서 스티븐 킹의 <스탠바이미>를 봤을 때, 미국에는 그렇게 따뜻한 중산층 가정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고,(이 영화에서의 소년들은 모험 도중에 집에 돌아왔다가 부모님께 엄청나게 혼이 나고, 그 다음날 그렇게 다시 짐을 꾸려 또 모험을 떠난다.) 내 취향이 서민층을 그린 영화에 깊게 감응한다는 걸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건 그냥 비교하기 좋은 한 예일 뿐이고, 스티븐 킹의 원작 영화들 기저에 깔린 골자는 단 하나 '간절하게 원하는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지며, 착한 사람이 나중엔 승리한다'는 것이다. 마치 그 원형이 우리 나라 전래 동화에서 따온 것들만 같아서, 친근하게도 여겨지는 참이다.

그러던 중에 최근,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제목에 '스티븐 킹 창작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스티븐 킹'까진 좋은데, 창작론...이라니, 나는 '*** 창작론'이라는 제목의 책들에는 애시당초 신용을 갖기가 힘들었다. 글쓰기 관련 책을 잘 읽어낸다고 해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난이도의 무공이 한 권의 책으로 전수될 수 있다는 것은 무협 관련 예술물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게다가 내가 지금 이 책을 읽게 되면, 스티븐 킹이 활자로 펴낸 것은 처음(늘 영화만 보다가) 접하게 되는 건데, 혹 내용의 실망스러움으로 인해, 애써 쌓아온 신뢰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앞섰다. 그런데 결론만 말하면 이 책은 나의 노파심이 진짜 노파심이었다는 것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그의 아내를 매우 신뢰하고 사랑하는 모습이었다. 작가들은 대체로 글을 쓰면서 가상의 독자를 상정해 놓고, 그 독자가 흥미를 끌만한 글이 되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경향이 있다고 실토하는데, 스티븐 킹에게 있어 가상의 독자는 바로 그의 아내이다. 익히듣기로 '위대한 예술가는 일부일처제에 약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스티븐은 달랐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라 위대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에 그런 건가?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예비 작가들의 한결 같은 고민이지만 그 어떤 책에서도 잘 다뤄주지 않는 내용인, '글을 투고하고, 저작권 대리인을 선정하는 방법에 관한 것'에 대해서 이 책이 실정에 맞는(우리 실정엔 잘 안 맞을 수도~) 조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제 막 작가의 길에 들어선 초심자 작가들이 애를 먹곤 하는 부분이라고 알고 있다. 혼자 방안에서 글만 잘 쓴다고 위대한 작가가 되는 건 아니기에, 작가가 되려면 일련의 이러한 작품 외적인 문제에도 돌파구를 만들어 둬야 하는 것이다.

스티븐 킹이 오늘날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은 재능의 몫이 컷겠지만 그보단, 세탁 파트 타임직과 고등학교 영어 교사 생활과 소설 쓰기를 병행하는 등의 경제적인 이유로 겪었던 젊은 날의 고생스러움이 오늘날의 위대한 이야기꾼인 그를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맨 마지막 인생론에서, 스티븐에게 창작의 행위는 막연히 '고통스럽기만 한 것'도, '돈을 얻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창작은 그에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이 되어 주는 무엇이었다'고, 그리고 글쓰기란 궁극적으로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 준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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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나는 천사를 믿지 않지만
조병준 지음 / 박가서장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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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센티 남짓 얇은 두께에 펼지면 정사각이 되는 싸이즈의 이 책을 가방안에 넣고, 이곳저곳을 오가는 동안 짬짬히 꺼내어 한참 읽곤하던 그 당시, 나는 그때 오랜만에 동기 모임 자리에서 만났던 친구 한 명에게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러이러한 책이 있는데 참 괜찮은 것 같애.' 나의 이런 말에 되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책이 자기와는 왠지 맞질 않고, 게다가 인도 같은 데서 고행하고 돌아와 깨달음을 얻은 양 구는 책들은 딱 질색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딱 꼬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과 같은 류의 책을 자기에게 권하는 줄로 이해했던 거 같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를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지만..)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이 책이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구하는 책? 그러나 이 책은 '봉사'보다는 '친구'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이 책에는 인도 켈커타의 마더 테레사 집에서 자비를 들여 고된 봉사 활동을 하는 인종도 국적도 살아온 삶의 모습도 다른, 그러나 서로 닮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막상 다 읽고 난 다음 나를 압도하는 느낌은, '세상 곳곳에 같은 정서를 두고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만든 조병준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그리고 조병준은, '세상은 험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보면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나즈막히 따뜻한 목소리로 읊조리고 있다. 사실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보단, 그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배려가 물씬 뭍어나는 어조에 먼저 마음이 푸근해짐을 전해 주는 책이다.

그렇담 내 친구들은?.. 주말이면 가까운 벗들과 약속을 잡거나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모임을 갖고는 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나이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단순히) 요즘 들어 부쩍, 주말이면 집에 콕 박혀 구들장 지는 걸 더더욱 좋아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뭘 바래니??'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그리고는 이 책에도 나오는 사랑과 우정을 재미있게 비교한 미셀 투르니에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본다.

'우정은 상호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우정을 갖고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우정을 가질 수 없다. 우정은 서로 주고 받든가 아니면 서로 주고 받지 못하든가 그 둘 중에 하나다. 반면에 사랑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는 또하나의 차이가 있다. 존경심이 없는 우정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정은 경멸에 의해 깨진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렇지만 사랑은....하고 말하기를 힘들어 하고 있는 미셀 투르니에를 본다. 미셀 못지 않게 나또한 사랑 도 벅차고 우정도 벅차다? 개인적으로 <박가서장>의 책들을 좋아했다. 그 중에 내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던 책은 단연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라는 책이다. 나중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간략하게 나마 서평 형식으로 이 곳에 기록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조병준의 이 책을 비롯 <너무~ 너무~>또한 절판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책이 되버린 것이다. 박가서장 관계자님... '이 두 책을 앞으로 다시는 펴낼 생각이 없는 것인가요?... 저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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