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비평계와 세간에서 이 책을 향해 숱하게 쏠리고 쏟아져 내렸던 찬사와 호평을 잘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내 식으로 굳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하자면, 이렇다. 스물 한살의 프랑스 작가가 써내린 소설치고 퍽 훌륭한, 18세기 말을 배경으로한 베트남 여행기이네. 라고.

이 소설의 행간 어느 부분도 도발적이고, 문제적이라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부분이 없다. 그저 담담하고, 아릿하며, 고독하고 무상하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평정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길에 꺼내 놓고, 행간 사이를 음미하며 읽으면 전율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책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던 당시는 절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졸면서 띄엄띄엄 읽었기 때문인 즉, 감동은 반감하고 말았던 거 같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다 죽었다. 베트남에서 온 어린 왕자는 멀고도 낯선 이국 땅 프랑스에서 외롭게 죽었고,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여러달에 걸친 뱃길로 미지의 세계, 베트남에 도착한 선장과 선교사 수녀들도 우여곡절 끝에 모두 죽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숲속에서 살해당하거나 부상으로 죽었고, 선교사와 수녀 몇은, 프랑스에서 어린 아들을 외롭게 죽도록 한 데 대해 상심한 왕의 폭정으로 살해당하거나, 풍토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물론 이 모든 죽음이 참혹하고 슬픈 것이긴 하지만, 이 소설의 초점은 그 참혹한 슬픔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다. 죽음과 가까워지고 죽어 잊혀지는 것이 생의 의미라는 것을 미학적으로 보여 준다고나 할까.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프랑스 선교사와 수녀들은 프랑스어를 가르치거나 베트남말을 배우는 등 논밭을 함께 경작하는 등 프랑스에서 지니고있던 모든 것을 잊고 이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 원주민과 더불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살고 있었던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 일행은 다른 지역에 선교를 할 목적으로 일부 선교사와 수녀 몇을 처음 정착한 마을에 두고,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고된 여행길에서 도미니크 신부와 까트린느 수녀만이 살아남게 된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베트남에 왔지만, 이들의 일행은 모두 죽었으며 이 둘만이 고립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두 사람은 구체적인 생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들이 항상 나누던 기도와 복음과 말씀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이었다. 7년이 지난 후, 이 둘은 한 날 같은 시간에 병으로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사족을 좀 달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베트남의 지역색도 아울러 맛볼 수 있기를 바랬다. 푸른 벼와 연잎에 찐밥, 코끼리를 타고 밭을 경작하고, 어린 아이들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 순박한 원주민, 풍토병. 그것 이상의 무언가를 말이다. 하지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 제목이 보여 주듯...... 알 듯 말 듯 모호하고 정적인 느낌으로 베트남의 풍광 묘사를 메우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체가 이것이 이 소설의 미학이라고 하니, 뭐 그런 줄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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