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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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노동이 끝난 다음에 찾아오는 여가의 시간 때문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 노동이 끝난 다음에 반드시 짧으나마 여가의 시간이 찾아와 줌에도 불구하고....... 왜 일까...
최근 나는 내가 추구하는 방식대로, 내게 주어진 일을 소신껏 하고 있지 못하다. 끊임없이 그리고 철저히 누군가(?)의 부림을 받고, 그 사람의 지시에 가장 근접하게 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것을 어렴풋이 자각하는 순간부터, 일이 너무나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책은 위와 같은 여타의 상황에서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는 욕망의 부추김으로 읽게 된 책이다.

예전에 심혜진과 여러 패널들이 스타급 인사를 초대해 인터뷰를 하는 <파워 인터뷰>란 티비 프로를 기억한다. 한번은 김창완 초대되어 인터뷰를 했었는데, 패널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며 보내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김창완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특별히 하는 일없이 빈둥댄다는 대답을 했다. 참으로 우문명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사회는 강박적으로 사람들에게 목표 달성을 위해 항상 진행형이길 요구하고, 노동의 미덕을 소리 높여 외친다. 노동을 유달리 찬양하고 신성시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로 감독이거나 관리자인 경우가 많다. 러셀도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하루 4시간 노동이 보편화될 수 있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하루 4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으로 식구들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다분히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는 내용으로 비춰진다.

이 책은 1935년에 쓰여진 책이며, 게으름을 주제로한 부분은 이 책에서 앞의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그 밖에 지은이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이유들과, 교육을 바라보는 입장, 여성과 아동 복지에 대한 내용이 후반에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책의 제목을 '러셀의 바라본 사회, 그 사회의 각 현안들에 대한 견해 모음집' 쯤으로 붙여졌어야 정확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붙은 제목이라면 판매 부수가 확실히 딸렸겠지. 이 보단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제목이 더 호소력이 있긴하다. 그리고 게으름을 시종일관 찬양하는 내용보다야 읽을 거리도 많고, 논란의 여지를 불러일으키는 코멘트도 많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 보다는 훨씬 재밌게 읽었지, 싶기도 하다.

게으름을 진가를 제일 먼저 주장한 사람은 러셀 말고도, 같은 시기에 체코의 극작가이자, 수필가였던 카펙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카펙이 말하는 게으름은 '사람이 정신 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게으름인, 거의 명상의 상태에 가까운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은 무위라기보다는 여가와 재미있는 사색의 결합 쪽에 가깝다.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을 추구한 인생의 요점은 바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힘들게 고군분투하며 악바리처럼 사는 쪽보단, 최대한 충돌을 피하고 선한 본성으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사는 인생 쪽이 행복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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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진단 3 - 만화로보는
이원복 / 조선일보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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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만화를 대할 때마다, 학교 다닐 때 알았던 어느 선배가 생각난다. 그 선배는 후배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곤 했다. 신문은 다른 면 안 보고, <해외 토픽>란만 보면 된다고... 그리고, 이 선배도 이원복처럼 남이 모르는,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자료들을 인용하며, 과장해서 나름대로는 재밌게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뭐, 좋은 말로 박학다식했다고나 할까. 일본 섬자락 어느 촌 구석의 동네 락밴드 이름까지 줄줄 읊을 정도였으니까. 이원복이 그렇듯이 말이다.

해외 토픽엔, '이 세상에 과연 그런 일이...'라는 말이 나올성 싶게 이례적이고, 희안한 일들이 보도된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르면 토픽에 나올법한 그런 일들은 금방 우리의 일상사가 되곤 한다. 그만큼 인간 사고의 패러다임은 쉬이 바뀌고, 지난 세기말과 근례에도 국내,외로 돌발적인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우리 나라가 개최하는 월드컵 시즌이다 보니까, 요즘 들어 자꾸만 내 속에서는 다국적인 문명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다국적인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이 책이 채워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 만화 책은 세계 각국의 문명 진단에 관한 내용이라기 보단 유럽과 미국 일본의 문명 진단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

만화의 내용은 크게 6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진다. Y세대 혹은 X세대 N세대라고도 불리는 신세대들의 문명 적응 세태법,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 방식,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으로 처세하는 소비자들의 권리 찾기의 행태, 성에 대한 풍속도, 경제 전쟁이 곧 문화 전쟁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모습 등이다.

이원복의 만화는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내는 재주에 있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재주라고 본다. 이 책은 재작년 회사에서 하는 작업에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 본 것이었다. 작업이란 주어진 각각의 주제에 대한 네 칸짜리 도입 만화의 원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쉽게, 재밌게, 강렬하게 조금은 과장되게 주제를 환기시킬 수 있는 내용이어야 했다. 그런데 만화 스토리를 짜는 내내, 머리에서 쥐가 났다. 그렇게 일의 진전없이 한참을 시달리다 못해, 그 작업에서 피하고 싶기만 했다. 정말 지독하고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쪽 방면으로는 쥐뿔만큼의 재주도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 만화들은 구구절절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다 소화하기에 현기증이 난다. 세상이 너무 빨리빨리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인지, 따라잡기 자신없어서인지..아마 둘 다 이유가 될 것이다. 갑자기 몇일전에 본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생각난다. 그 영화에서 그랬다. 우리가 평생 동안 접하는 모든 정보는 가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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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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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 시절 이후로, 그러니까, 요즘도 나는 가끔 기형도의 시를 들여다본다. 나는 특히,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로 시작하는 그의 시 '오래된 서적'이 제일 좋다. 그리고 '휴일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게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라고 시작하는 '흔해빠진 독서'라는 시도 좋다.

나는 그렇게, 그의 몇몇 시가 미치게 좋지만, 그의 시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 같은 건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또한 내가 살아온 지금까지가 참, 기적적으로 여겨지는 사람이기도 하고 휴일 대부분을 방구석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을 일삼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의 시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나.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고 기형도는 시 속에서 말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죽은 사람들은 불행한 생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휴일 대부분을 죽은자들에 대한 기억으로 심란한 나는 죽은 기형도라는 시인의 생애가 이해하기 쉽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기형도보다 훨씬 앞서 죽은 비트켄슈타인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두 번째 부분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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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형도 전집이 신간으로 나오자 마자 사서 읽었더랬습니다. 그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기만 했었죠...

icaru 2004-03-1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이는 종로에 있는 모 극장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죠.... 시가 무척 어둡지요? 한때는 어두움을 풍기는 것이 퍽 편하게 여겨졌더랬어요.... 지금은? 밝고...즐겁고 싶은 바람이 커서리...
 
여자들의 동경 여행
김명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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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디자인과 기획면에서 뛰어남을 입증하는 책이 있다. 특별 부록으로 동경 지하철 노선도까지 챙겨 주는 자상함. 그뿐인가, 책의 맨 뒷부분에는 도쿄 여행 정보에 관한 메모를 할 수 있는 메모지란도 마련했다. 사진과 삽화들이 굉장히 많이 수록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의 디자인은 눈을 편안하게 한다.

이 책은 패션 뷰티 잡화 맛집 등 진짜 도쿄 멋쟁이들이 찾는 단골집 359개를 꼼꼼하게 다룬 책이다. 그리고 신주쿠, 하라주쿠, 시부야, 오다이바, 다이칸 야마, 지유가오카, 긴자, 롯폰기 등으로 분류하여 거리에서 만난 멋쟁이 여성들의 사진들을 실어 동경의 지역색을 더해 준다.

또한 동경 근교의 하코네와 도쿄 디즈니랜드 등 하루짜리 여행 코스들을 자세히 소개해 주며, 동경에 있는 우에노, 요요기를 비롯 갈만한 공원들도 빼놓지 않고 다루어 주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일어를 소개한다.

나는 쇼핑 마니아도 아니고, 예쁜 것, 아기자기한 것에 사족을 못 쓸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의 예쁘고 아기자기한 기획에는 쏙하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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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철학 - 문화마당 5 (구) 문지 스펙트럼 5
김영민, 이왕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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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5년 봄부터 1996년 가을까지 부산일보의 '문학 속의 철학' 란에 철학을 전공한 젊은 교수님들인 이왕주와 김영민 두 사람이 매주 연재한 글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신문에 연재한 글이어서 그런지, 한 주제 아래에서의 한 편이 페이지로 3~4쪽 분량을 넘지 않는다.

문학 평론도 아니고 본격 철학도 아닌, 애매한 범주에 놓인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좋다. 더러 들리는 철학과 문학의 과장된 불화는 어쩌면 근거없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삶 속에는 문학도 있고 철학도 있어서 서로 만나고 있는데 왜 글에서는 문학과 철학이 결합할 수 없겠는가. 어쩌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올리고 있는 글쓰는 행위의 본질도 결국 '소설 속의 철학'이 지향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잡글 쓰기' 방식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국내의 소설들, 광화사, 백치 아다다, 봄봄, 운수 좋은날, 날개 같은 중고들학교 권장 소설 냄새가 나는 작품들을 비롯,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김형경의 담배 피우는 여자와 같은 1990년대 소설, 그리고 국외로 가서, 백경, 목로주점, 킬리만자로의 눈 등등과 같은 소설들을 그 대상으로 한다.

특히나 이 책에서 인상적인 진술로 여겨진 부분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흔히 인용되는 대목이지만, '킬리만자로의 눈'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 말라 얼어죽은 한 마리의 표범 시체가 있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행동적 삶 속에서, 작품 해석의 모티브를 찾는다. 즉, 헤밍웨이의 삶이 시사하듯 이 작품도 찾아야 할 무엇 혹은 행동 너머의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본질이 될 만한 무엇 쉼터가 될 만한 집이 없더라도 움직여야 하고, 찾아야 하고, 또 올라가야만 하는 행동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얼어 죽더라도 정상을 향해 끝없이 발걸음을 옮겨 놓고 싶어한 표범의 이야기. 혹은 자살에 이르도록 그 행동의 고독을 피하려 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보고 있다.

이 책의 싸이즈는 B5 용지를 반으로 접은 싸이즈에 25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문지스펙트럼 책이 그렇듯 포켓북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책에 담긴 각 텍스트들의 구구절절한 맥락들로 보아선, 이 책을 '포켓북을 가장한 백과 사전'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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