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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진단 3 - 만화로보는
이원복 / 조선일보사 / 1996년 2월
평점 :
절판
이원복의 만화를 대할 때마다, 학교 다닐 때 알았던 어느 선배가 생각난다. 그 선배는 후배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곤 했다. 신문은 다른 면 안 보고, <해외 토픽>란만 보면 된다고... 그리고, 이 선배도 이원복처럼 남이 모르는,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자료들을 인용하며, 과장해서 나름대로는 재밌게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뭐, 좋은 말로 박학다식했다고나 할까. 일본 섬자락 어느 촌 구석의 동네 락밴드 이름까지 줄줄 읊을 정도였으니까. 이원복이 그렇듯이 말이다.
해외 토픽엔, '이 세상에 과연 그런 일이...'라는 말이 나올성 싶게 이례적이고, 희안한 일들이 보도된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르면 토픽에 나올법한 그런 일들은 금방 우리의 일상사가 되곤 한다. 그만큼 인간 사고의 패러다임은 쉬이 바뀌고, 지난 세기말과 근례에도 국내,외로 돌발적인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우리 나라가 개최하는 월드컵 시즌이다 보니까, 요즘 들어 자꾸만 내 속에서는 다국적인 문명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다국적인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이 책이 채워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 만화 책은 세계 각국의 문명 진단에 관한 내용이라기 보단 유럽과 미국 일본의 문명 진단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
만화의 내용은 크게 6가지의 주제로 나뉘어 진다. Y세대 혹은 X세대 N세대라고도 불리는 신세대들의 문명 적응 세태법,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 방식,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으로 처세하는 소비자들의 권리 찾기의 행태, 성에 대한 풍속도, 경제 전쟁이 곧 문화 전쟁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모습 등이다.
이원복의 만화는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내는 재주에 있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재주라고 본다. 이 책은 재작년 회사에서 하는 작업에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 본 것이었다. 작업이란 주어진 각각의 주제에 대한 네 칸짜리 도입 만화의 원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쉽게, 재밌게, 강렬하게 조금은 과장되게 주제를 환기시킬 수 있는 내용이어야 했다. 그런데 만화 스토리를 짜는 내내, 머리에서 쥐가 났다. 그렇게 일의 진전없이 한참을 시달리다 못해, 그 작업에서 피하고 싶기만 했다. 정말 지독하고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쪽 방면으로는 쥐뿔만큼의 재주도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 만화들은 구구절절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다 소화하기에 현기증이 난다. 세상이 너무 빨리빨리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인지, 따라잡기 자신없어서인지..아마 둘 다 이유가 될 것이다. 갑자기 몇일전에 본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생각난다. 그 영화에서 그랬다. 우리가 평생 동안 접하는 모든 정보는 가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