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철학 - 문화마당 5 (구) 문지 스펙트럼 5
김영민, 이왕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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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1995년 봄부터 1996년 가을까지 부산일보의 '문학 속의 철학' 란에 철학을 전공한 젊은 교수님들인 이왕주와 김영민 두 사람이 매주 연재한 글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신문에 연재한 글이어서 그런지, 한 주제 아래에서의 한 편이 페이지로 3~4쪽 분량을 넘지 않는다.

문학 평론도 아니고 본격 철학도 아닌, 애매한 범주에 놓인 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좋다. 더러 들리는 철학과 문학의 과장된 불화는 어쩌면 근거없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삶 속에는 문학도 있고 철학도 있어서 서로 만나고 있는데 왜 글에서는 문학과 철학이 결합할 수 없겠는가. 어쩌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올리고 있는 글쓰는 행위의 본질도 결국 '소설 속의 철학'이 지향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잡글 쓰기' 방식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국내의 소설들, 광화사, 백치 아다다, 봄봄, 운수 좋은날, 날개 같은 중고들학교 권장 소설 냄새가 나는 작품들을 비롯,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김형경의 담배 피우는 여자와 같은 1990년대 소설, 그리고 국외로 가서, 백경, 목로주점, 킬리만자로의 눈 등등과 같은 소설들을 그 대상으로 한다.

특히나 이 책에서 인상적인 진술로 여겨진 부분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흔히 인용되는 대목이지만, '킬리만자로의 눈'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 말라 얼어죽은 한 마리의 표범 시체가 있다. 이처럼 높은 곳에서 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행동적 삶 속에서, 작품 해석의 모티브를 찾는다. 즉, 헤밍웨이의 삶이 시사하듯 이 작품도 찾아야 할 무엇 혹은 행동 너머의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본질이 될 만한 무엇 쉼터가 될 만한 집이 없더라도 움직여야 하고, 찾아야 하고, 또 올라가야만 하는 행동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얼어 죽더라도 정상을 향해 끝없이 발걸음을 옮겨 놓고 싶어한 표범의 이야기. 혹은 자살에 이르도록 그 행동의 고독을 피하려 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보고 있다.

이 책의 싸이즈는 B5 용지를 반으로 접은 싸이즈에 250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문지스펙트럼 책이 그렇듯 포켓북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책에 담긴 각 텍스트들의 구구절절한 맥락들로 보아선, 이 책을 '포켓북을 가장한 백과 사전'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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