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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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책의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보자, 폴 오스터라는 영문 철자 아래 이런 관용구가 있다. hand to mouth 이 책의 원제이겠지. 얼씨구 책 제목이 딱 내꼬라지로구나. ( 자기 연민은 여기까지.) 어찌되었건 두툼한 빵 한 토막처럼 생긴 이 책hand to mouth을 한국어로 ‘빵굽는 타자기’라고 번역하여 제목을 붙인 것은 참 기가 막히게 잘 한 것 같다.

이 책은 폴 오스터와 그의 작품 세계로 가는 관문처럼 보인다.

삼 년 전쯤 이 책을 읽었던 건 폴 오스터라는 인간을 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소설도 아니고 일종의 자서전이랄까, 폴 오스터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의 기록이므로.
그리고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은 건 백수의 자기 위안 주는 심정에서였다. 버는 족족 써야 했고, 하는 것마다 망하는 그를 보면서 힘 좀 얻고 싶어서....

빵굽는 타자기를 다시 읽으면서 3년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의 소설 <뉴욕 삼 부작>, <거대한 괴물> 등등에 나왔던 인물들을 다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 속에 인물들은 대개가 그가 젊은 날 실제로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이나 인물됨을 모델로 했다는 것.

글쟁이를 꿈꾸는 그가 '액션 베이스볼' 카드 게임을 발명해서 장난감 회사에 아이디어를 팔아보려고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부분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로하여금 동병상련같은 그런 연민어린 쓴 웃음을 자아낸다. 그 기분 안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싶은 것, 게다가 금전적으로 상당히 궁하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그는 게임 사업에서의 처참한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그는 다시 옛날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전보다 사정은 더 나빠졌고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난데없이 뉴욕 주 예술협회에서 3천 5백달러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깃점으로 상황이 점차 달라진다.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그래서 포기할까 말까 고민할 때, 그 순간 난데없이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의 앞자락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조물주가 우리를 길들이는 방식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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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3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전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보질 못 해서요.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하루키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오스터가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그의 몇몇 작품들을 읽어 봤다죠. <달의 궁전>, <뉴욕 삼부작>, <공중 곡예사>...
그런데 이상하더라구요. 전 오스터의 소설이 썩 맘에 와닿지 않았는데도, 그의 신간이나 그의 책에 관한 리뷰가 보이면 꼭꼭 챙겨 읽게 되니....
<빵 굽는 타자기>라~ ^^

icaru 2004-04-0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랄까요,..하루키는 잘 모르겠고.. 폴 오스터의 스타일이 참 좋더라구요...헤헤..그의 작품을 다 찾아 읽은 건 아니구요,,,아니..부러 그렇게는 안 하고 있습니다...그에 대해.그의 작품에 대해..빠삭해지면...정말 재미없을 거 같아서요...실은 아껴 읽고 있어요...님이 말씀 하신 책 중엔 공중 곡예사...는 아직입니다...ㅋㅋ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타산지석 1
이식.전원경 지음 / 리수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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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다. 오만과 편견, 러브 엑츄얼리, 헤리포터, 반지의 제왕, BBC 다큐멘터리, 그리고 셜록홈즈. 하루 중에도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영국의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은 집에 일찌감치 들어앉아 탐정소설 읽기에 골몰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만난 영국인의 삶의 모습은 가난해 보일 정도로 검소하지만 삶의 향기가 베어 있는 듯하다. 그리고 '빨리'보다 '제대로'가 훨씬 중요하다고 깊이 느끼며 산다. 식당에서 차 한잔을 시켜 놓고 두세 시간씩 앉아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최고급 스포츠카보다도 예쁜 정원과 오후의 차 한 잔에 더 큰 가치를 둔다'는 영국 사람들은 전국민이 휴일만 되면 정원을 가꾸느라 구슬땀을 흘린단다.

모든 제도와 관습의 변화를 거부하고 하루 일과는 정해진 순서에 맞춰 돌아가며, 물건은 한번 사면 망가지기 전까지는 아니 망가진 후에도 쓴다는 영국 사람들은 자칫 그 옛것을 고수하려는 고집스러움 때문에, 우리의 관습상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항상 본받을 나라로 꼽꼰 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영국에서 배울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지나친 자본제일주의와 일본의 경직된 관료주의에 비해 영국은 합리적이고 성숙한 사회로 비춰진다. 영국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산업이나 자본이 아니라 올바르게 구성된 사회와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합리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모든 산업들이 다 외국에 팔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해도 영국은 끄떡없이 잘 굴러가리라 보인다. 저자 부부 또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보고 겪은 영국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라는 점과 ‘합리적인 사화’라는 점이라고 하니까.

별 기대 없이 만난, 그러나 아주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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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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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를 읽고 나서, 머릿속으로만 실컷 서재를 결혼시키던 내가 드디어 실제로 서재를 결혼시켰을 때, 나의 서재 결혼은 페디먼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남편도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우리의 서재 결혼은 훌륭한 화합을 이루리라 너무 몽상에 젖어 있었던 거 같다. 그는 다 읽고 난 책을 잘 내다버리는 스타일이었다. 책을 내다버리는 기준은 그런 것이었다. 이 책을 다음에 다시 들춰볼 것이냐 말 것이냐였는데 제아무리 세기의 문학 작품이라도 다시 읽지 않을 책을 붙들고 있는 것은 허영심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좁고 지반도 약한 집이 책들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 어떻게 하냐는 오버스런 걱정도 했다.

그런 그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쌓아두고 한번 사면 절대 버리지 않는 나의 책 사랑을 실눈뜨고 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나 내 책을 정리해서 버릴 것을 입으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두꺼운 전공 서적과 기타 수십권의 책 한 리어커를 파지 모으러 다니는 할아버지에게 넘겨 드리는 걸 내가 목격하도록 했다. ‘어떻게 저 책들을 쉽게 한번에 버릴 수 있나’......수십마디의 잔소리보다 더 무서운 한번의 행동이었다.

남편의 무언의 성화에 힘입어 책을 합치면서 같은 책이 두 권이 되었거나, 없어도 그만이겠다 싶은 책들을 40리터짜리 배낭에 한 가득 넣고서, 동네 헌책방에 팔러 갔다. 결국엔 절반 이상을 도로 메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책방 주인 왈, 헤리포터나 이문열의 삼국지 류만 받고, 나머지는 값을 쳐주지 못하겠다고, 나머지는 서점에 두고 갈테면 가라하기에 도로 들고 와 버렸다... 그 책들은 집에서도 귀환을 환영받지 못했다. “그냥 헌책방에 마저 두고 오지 왜.” 하지만 성향이 나와는 많이 다른 남편은 조금씩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역시 한수레의 책을 버리는 남편을 이해하듯이, 페디먼의 말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듯이 책을 사랑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닌 것을 깨달은 것이다.

페디먼은 어릴 적 부모님의 책 중에 <부부들>이라는 책을 읽고 성에 대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어릴 적에 우리집 다락방에 있던 <수사반장>이라는 책이 기억났다. 하드커버이며 세로 줄로 된 두꺼운 책이었는데 불륜에 얽힌 치정극 같은게 제일 많았고, 난삽한 침실 묘사가 간간히 나와서 애간장을 많이 태우며 엄마 몰래 읽던 기억이 난다.

엔 페디먼의 책 사랑 중에 상당히 이질감을 느꼈던 내용이 하나 있다. 다름아닌, “현장 독서”이다. 책이 묘사하는 바로 그곳에 가서 책을 읽을 것.의 열렬한 신봉자가 페디먼이다. 달리는 평원에서, 굽이치는 급류에서, 안개 낀 숲 강가에서 책이 묘사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책을 읽는다니, 아무리 마음의 눈이 문자로 모든 만족을 얻지 못해 그리한다지만 말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는 현장과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읽는 것이 팔자인데....평생에 걸쳐 현장 독서다운 독서를 과연 몇 번이나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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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
보니 앤젤로 지음, 이미선 옮김 / 나무와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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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그 자식 사랑에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모두 훌륭하지만, 그래도 자식을 대통령으로 키워 낸 어머니라 하면 특히 세인의 주목을 받게 마련일 것이다. 그 부모들에겐 자식을 키우는 무슨 특별한 노하우라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노하우라는 게 있었을까 싶게 이 책을 통해서 그것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 어머니의 공통점이라면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의 유대 관계가 특별히 좋았던 딸 자식이었다는 점, 기우는 결혼(남편 집안의 지위가 자기보다 못하다는 거였지만, 사실 도토리키재기식으로 양가 모두 귀족 수준의 집안들이다.)을 들 수 있겠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조금 인상적이다 싶은 어머니 상은 몇 있다. 부정적인 인상이 아주 강했던 어머니는 맨처음에 등장하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어머니 ‘사라’이다. 사라는 아들에 대한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한 어머니였다. 심지어는 며느리까지 그의 휘하에 두어 통제하려 하였고, 귀족적이며 화려한 생활을 상당히 즐기던 부류였다. 루즈벨트가 그의 비서들과 염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어머니의 이런 여러 성향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루즈벨트의 어머니가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왔으니, 초장부터 얼마나 실망스럽고 김샜나 모른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대통령의 어머니들은 조금씩 달랐고, 사라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대체로 있는 집 자식임(?)에도 검소한 청교도적 근면한 생활가이거나, 남에게 베푸는 일에 열심이었고,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았던 강한 어머니들이라고 서술된다.

저자가 서술한 문체의 미시적인 특징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하자면. 존경과 찬사 일색이던 저자의 문체가 클린턴 어머니의 장에 와서는 색깔을 약간 달리한다. 옐로우 신문에 가쉽기사를 써재키듯 버지니아의 남성 편력을 이야기한다. 버지니아는 자신의 어머니를 매우 싫어했으며, 룰렛을과 경마를 좋아하고, 멋진 남자가 옆에 있으면 시시덕거리기를 좋아하고, 화장을 진하게 하며, 경마장과 나이트클럽에서 죽치고 살았으며 자신이 돋보이고 싶어하는 재미있는 여자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했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 아니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싶게...... 글을 썼다. 그리고 저자는 개인적으로 레이건의 어머니 넬을 가장 좋아한 것 같다. 진부한 찬사와 칭찬 일색이다.

사실 이 책은 훌륭한 어머니의 바람직한 자녀 교육 철학관을 배우는 소기의 목적보다는, 역대 대통령들의 가족들 개인사 크고 작은 일화를 엿보는 재미가 더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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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
엘러리 퀸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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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과 최민식이 주연한 영화 해피엔드를 보면, 극중 최민식은 본래 멜로 소설광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아내 전도연의 외도 낌새를 알아차린 날 이후로 무섭게 추리 소설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요는 사람은 무언가를 계기로 하여금 취향을 생면부지의 장르로 바꾸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머리가 커지고 나서는 어쩐 일인지) 그간 가까이 하지 못했던 추리 소설을, 최근의 개인적 사정을 계기로 이제 막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지금도 부모님 댁에 가면 중학교 다닐 때, 지금의 해문출판사 문고판 시리즈 책들이 몇 권 남아 있다. <환상의 여인>과, <교환살인>, <움직이는 표적>, <7개의 다이얼> 등이 그것인데, 아마 지금 다시 읽어도 처음 접하는 듯 줄거리가 많이 생소할 터이다. 해문출판사 문고 특유의 편집 방식인지, 예전 책들은 다 그랬던지, 글자의 행간이 아주 촘촘하다는 것은 지금 출판되어 나오는 책들도 여전해서- 책의 사이즈는 작지만 글자는 아주 알차게 빼곡하다, 가독성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줄거리는 다 잊었지만, 옛날 책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두 사촌 형제가 엘러리 퀸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썼다는데, 엘러리 퀸의 작품은 이것이 처음이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 하는 기분으로 보았다. 재밌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던 새벽 세 시엔 아주 오싹오싹한 기분에 젖고야 말았다.

이 책의 중반을 읽을 즈음에 5, 6년 전에 이 작품이 sbs에서 남량 특집 드라마 비스무리한 것으로다가 각색되어 방영한 적이 있음이 기억났다. 물론 원작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었다. 결말 부분에서였는데...드라마에선 범인이 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탐정 드루리 레인 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줄 목격자는 ‘무언’의 목격자인데다가, 장님이기까지 하다. 오감을 총동원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 중 2개가 빠졌으니....탐정 드루리 레인과 함께 독자 또한 어찌 범인을 추적해 나갈 것인가가 흥미짠짠하다 하겠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 탐정 드루리 노신사 또한 청각 장애,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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