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은 최근에 읽었다. 읽다가 다음 내용을 보고, 뭔가를 적고 싶어졌다. 버트런드 러셀의 케임브리지 시절에 스승과 사제로 만나 나중에는 친구 사이가 되었던 수학자 화이트 헤드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스승으로서 매우 완벽했고(자신이 관계해야 할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므로 - 살다보니 개인적으로 누구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천성이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던 나같은 사람조차도 보통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됨-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제자에게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이끌어 내곤 했고, ((다음이 중요함)) 학생들을 억압하거나 빈정대거나 잘난 척하거나, 기타 저급한 선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그는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다정하고, 합리적이며 침착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딱 한 가지 결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편지를 받고도 절대 답장을 해 주지 않는 면이 있다는 것.
그냥 결점이 아니라, 치명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답장을 잘 안 해주는 편이었지 절대로 안 한 것은 아니었겠지. 아무튼 그의 변명을 들어보면, 완벽한 변명이다 싶어 그렇겠거니 여겨지는데, 바로 일일이 답장을 해주다 보면 저술 작업할 시간이 없다는 것.
이 유명한 수학자와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메일을 쓸 때, 용건만 쓰고 싶은데 그것만 허락하지 않는 상황 일테면 서두에 계절 인사를 곁들인다거나 하는 것. 등을 겪을 때 문구를 생각해 내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좀 피곤을 많이 느끼는 편인듯. 알라딘에서 찾아보면 영업용으로 쓰라고. 메뉴얼들을 엮은 책들도 출판되어 나와 있을텐데.
채사장은 그의 책에서 '불편한 지식들이 나를 키운다'고 했지만, 나는 당분간 내 입맛에 맛는 것들만 읽을란다. 그런 의미에서 러셀의 자서전을 고른 것은 참 잘한 일. 나는 누군가의 자서전을 좋아한다. 자서전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도 하던데 자서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병원에 있는 동생에게 책을 빌려 주기 위해서 자서전 코너를 서성이다가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을 골라서 가져갔는데, "언니 나는 자서전은 취향이 아니야!"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다른 자서전하고는 다른데." 라는 궁색한 한마디. 대인관계에서는 어설픈 실수도 많이 하는 사람 마르크스를 읽을 수 있고, 글을 쓴 프랜시스 램의 유머 감각과, 번역자의 천의무봉을 이야기했었어야 했나보다. 그랬다. 이 책에서 깊게 와 닿았던 것은 마르크스도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강한 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천한 자들을 높일 수 있을까를 골몰한다. 그리고는 마치 뒝벌(공기 역학의 모든 법칙에 따르면 뒝벌은 날 수가 없는 데도 용케 날아다닌다. 마르크스는 이 벌과 비슷하게 중력에 도전하는 재능을 지녔다.)과도 같은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의 의지들을 피력해간다.
아무튼 동생은 마르크스 평전만 거부했을 뿐이고, 온 더 무브를 건냈더니, 아주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다. '이 책(온더무브)도 자서전인데 동생아?'
온 더 무브에서 올리버 색스도 황소를 피하려다가 높은 데서 떨어져 척추와 무릎 골절상을 입는다. (동생은 큰 개를 피하려다 요추와 발꿈치 ㅠ) 동생은 신경통은 없지만, 올리버 색스는 그의 75세 즈음에 지난 날 겪었던 골절 사고들 때문이었는지 다음과 같은 고통의 나날들을 겪는다.
그가 많이 생각하고 쓰고 읽은 것은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직접 겪은 고통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통증이 있음을 서술한다. 무릎 수술에서 오는 통증, 철저하게 국소적인 것, 무릎 부위 너머로는 절대 퍼지지 않는 통증이란다. 수술로 인해 수축된 흉터 조직을 얼마나 스트레칭해 주느냐에 따라 기꺼이 이겨내고 안아 줄 수 있고, 훈련으로 이겨내고 정복할 수 있는 ‘착한 통증’이다. 그러나 좌골신경통의 경우 통증이 통증에 그치지 않고, 고난 혹은 공포 아무튼 불쾌한 감정 요소까지 포함되는 그것이란다. 신경통은 기꺼이 안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맞서 싸울 수도 그냥 적응할 수도 없는 통증, 사람을 으스러뜨려 영혼이 빠져나가도록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강철같은 의지도, 인간적 존엄성도, 그런 통증의 공격을 받으면 산산이 바스라지고 만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좌골신경통으로 그는 일흔다섯살 처음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흔 다섯 살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 책 앞에 헌정자의 이름으로 올라간 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