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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 바람 부는 길에서 ㅣ 동문선 현대신서 93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피에르 쌍소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나’라는 존재는 내게 있어 너무 부담스럽고 불확실하게 보인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을 하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덜 불안할 것 같았다. 산더미 같은 일에 치어, 피곤하고 아무 생각없는 반편이처럼 살아갈 때는,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책도 많이 읽고 하루하루를 충일하게 살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당연 그 모든 불확실성이 일시에 해소될 리 만무했고, 직장에 다니지 않는 시기에는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되려나, 더 불투명해지기만 했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의 가치를 확신한다면 굳이 사회적 위치를 구분해 주는 흔적을 쌓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스스로를 완전히 자유롭고 흠 없는 존재로 이해한다면 굳이 타인을 굴복시키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성스러운 삶을 바라보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인 것은, 나는 내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과연... 자신의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언제쯤이면 그 ‘확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까....의 의문에 앞서, 과연 그런 날을 올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것은.....
왜 느리게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을 읽었을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금방 피에르 쌍소와 같은 사고 체계로 모든 상황들을 바꾸어 바라보아 지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정녕, 느리게 산다는 의미를 깊게 인식하고 살아가는 삶은 내게 많이 어려울 것이다.
회사에서는 내가 스피디하게 일처리를 하고, 오류없이 마감을 지켜 주길 바라고, 퇴근해 집에 가면, 또 고만고만한 일거리들이 정렬해 주고 매만져 주길 기다린다. 우리는 맡은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동시에 주위의 것에 전혀 무관심해도 안 된다. 세상은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해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비밀스러운 기호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해결 하려면 사실 관건은 ‘시간’이다.
그런데 어떻게 느리게 이 모든 것을 하란 말인가.....
그러나, 느림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그냥, 이 사람의 책을 읽음으로써, 삶에 대한 풍취를 잃지 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 내 방식대로 사는 것을 천천히일지라도 간절하게 터득하고 싶었던 것이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기술이 필요할 터이다. 이는 결코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니다.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기술은 살아가는 방법 즉, 살아가는 지혜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함부로 비판하지 말 것,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 것, 상황이 제공해 준 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것, 사회 계층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을 비통한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 것, 시도해 봤다는 자긍심을 갖기 전에 자신의 취향과 운명에 따라서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 한 건강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시대의 흐름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 살 수 있는 사람. 즐겨 침묵을 택할 수 있는 사람. 지식이나 경험을 쌓기 위해 애쓸 때나, 시대의 격랑 속에서 힘든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조차도 즐겨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이 책은 사실 난해하다. 제목이 주는 압박 때문인지.... 결코 빨리 읽어낼 수도 없는 책이고.... 피에르 쌍소는 독자에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 ‘어떻게 해라...’라고 하지 않는다...... . 다만 지금 자신의 참모습을 용감히 마주하고 하라고 무언의 말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내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함을 주지시킨다.쌍소가 책 전체에서 듣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