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을 전제하고, 일생에서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정면으로 죽음과 대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나는 그냥 민둥민둥 심심한 산들을 좋아하지, 절경에다가 험악한 악산을 등반하는 것은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험악한 악산이라, 기억나는 등반은 지당하게도 십수년 전 2박 3일 코스로 지리산 등반이다. 같이 갔던 선배들이 사고 위험이 많은 험한 등반이 될 거라고 엄포를 놔서,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매순간을 긴장하며, 발을 디뎠던 기억이 난다. 엄청난 양의 땀을 쏟고, 갈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마어마한 물을 마셔대고, 배낭은 무겁고, 힘들게 정상에 올라서서 고목에 걸린 운무를 내려다보며 철푸덕 앉아서 담배 한 가치를 피우는 사람들이 무지 부러웠던 기억도. 잠은 텐트를 치고, 별빛 아래서 잤다. 한여름이었지만, 겨울 파커를 껴입고, 냉기가 올라오는 바닥에 이랑곳하지 않고, 눈감기가 무섭게 잠이 들곤 했다.

노고단에서 시작해 돼지평전, 토끼봉, 새석평전을 거쳐 뱀사골(당시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난 다음 해라, 많이 유명해져서 찾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천왕봉으로 해서 마지막 날 산을 내려오다가 진주 어디메쯤, 일듯 사람이 사는 작은 마을을 처음 봤을 때, 그 반가움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살아 돌아와 만나는 것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크고 작은 등산 혹은 등반 경험 이후로, 완주! 정상 정복! 이런 데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악산을 정복하는 희열 같은 거 굳이 내가 체험해야만 맛인가, 이런 식(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는 등의, 하긴 이 아저씨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애팔래치아 종주에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의 대리 만족으로도 감지덕지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은 지적이고, 우스꽝스럽고, 간결하며, 구비구비마다 기막힌 반전까지 갖추고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양장피 겨자 소스와 같은 역은 브라이슨의 등반 동반자 ‘카츠’다.

이이가 산에서 펼치는 대책없는 어떻게 보면 엉뚱한 돌아이 같은 짓. 하하....! 처음엔 브라이슨의 동반자로서는 맞지 않는 우려하는 마음까지 들었으나, 점점 브라이슨에게 뿐만 아니라, 카츠에게까지 감정 이입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등반의 마지막(중도 하차)이 될 것임을 예고하던 날 브라이슨과 카츠의 대화다.

“하지만 나는 술을 좋아하거든. 어쩔 수가 없어. 내 말은, 브라이슨, 나는 그걸 사랑해. 그 맛을 사랑하고 2병을 마셨을 때 취하는 기분을 사랑하고, 냄새와 선술집의 분위기를 사랑해. 나는 음담패설과 주변 당구대에서 공이 부딪치는 소리. 밤에 술집의 어둠 침침하면서 푸른빛 도는 분위기를 그리워했어.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의 전부는 TV 디너뿐이야. 마치 만화속의 한 장면처럼 끊임없이 늘어선 그게 춤추며 나한테 다가와. TV 디너 먹어 본 적 있어? 정말 쓰레기야. 그리고 정말 삼키기 힘들어. 그걸 보면 때때로 내가 바보 멍청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줄 아니? 지금은, TV 디너를 먹을 수 있다면 살인이라도 저지를 기분이야. 정말 살인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트레일을 포기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시도를 했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자랑스럽게도 몸이 날렵하고 튼튼해졌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을 느꼈다. 그게 중요하다.


인생이 그러하듯 트레일 또한, 지겹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 되버리는,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고 마는, 그만두고 싶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한 것.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하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한 것,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으면서도 다시는 봉우리를 안 봤으면 싶은 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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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3-02-1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왕봉에 세번을 올랐는데, 힘들었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았어요. 지금은 가물가물 잘 기억나지 않지만요. 아이들 크면 남편이랑 애들 데리고 지리산 가자고 했는데, 과연 지금의 체력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평소에 운동을 좀 해야하는데 너무 게을러요.ㅜㅜ

icaru 2013-02-19 09:59   좋아요 0 | URL
그날을 위해 꿈섬 님 체력을 갈구 닦으셔야겠네요~ 저도 가족들과 험준하지는 않은 명산 등반하는 게 로망인데, 일단 아이아빠가 비협조적이라서 ^^;;;
가족이라는 전제를 못 달아요!
천왕봉을 세번 씩이나 라니, 저는 노고단만 두 번 ^^;;; 위에 적은 한번만 제대로 된 등반이었고, 나머지 한 차례는 미혼 시절 여름 휴가 때, 노고단까지 차 타고 올라갔다가, 하산할 때 화엄사인가요? 거기까지 줄곧 내리막길만 갔던 거요. 그게 오르락내리락 해야 무릎에 무리가 안 가는데,,, 내려오기만 하니까 무릎 절단 나더라고요~

기억의집 2013-02-2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산 싫어해요~ 애아빠가 주말마다 산에 가자고 하는데,,, 전 그 말이 너무 싫어요. 도대체 왜 헉헉대면서 산에 오르는지..집에서 잘래~ 이래요.

저 책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는데, ㅋㅋ 저는 덤앤더머인줄 알았어요~

icaru 2013-02-22 09:05   좋아요 0 | URL
덤앤더머 ㅋㅋㅋㅋㅋ
전, 남편이 가자고 했으면,, 주말마다 올랐을 듯요.. 현실의 남편은 절대 산에 가자 할 부류가 아니므니닷..
하긴 저도 사람 버글대는 산은 싫은데, 대개의 서울경기소재 산은 사람이 버글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