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 많이 했다. 외국에 나가서 살면 좋겠다고. 그런데 나는 최근 두 가지 일을 계기로, 그 막연한 생각에 작은 마침표 하나를 찍었다. 하나는 이 책 때문이고, 하나는 친구의 경우 때문이다. 먼저, 친구 이야기를 하자면, 그 아이는 6년 전에 가족 모두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그 친구는 현재 한국을 무척 그리워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여건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실현 안 될 가망성이 99%에 가깝다.) 이민 가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하던 공부를 살려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직종의 일(베이비시터, 썸머스쿨 한국어 교사 등)을 거쳤고, 현재 네일 아트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뉴욕에 사는 한국인 여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아무리 고국에서 수련한 학문의 정도가 깊고 얕고 간에,) 네일 아트 일을 한다는 게 친구의 말이다.(그리 고되지 않으면서도 적지 않은 수입을 가져다 준다고.) 그 아이가 전하는 뉴욕 생활은 한국의 케이블 채널 속 섹스 앤 시티에서 보는 네 여성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곳은 소수 이민족끼리의 갈등도 많고, 주류 백인들의 소수 민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뿐만 아니라 보이는 차별도 심하다고. 특히 9.11 이후에. 게다가 문제는 언어이다. 성인이 다 되어 영어를 완전 마스터하는 것은 어려운 일. 이민자로서 주류에서 자신의 자장을 넓히며, 살기 위해서 한 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야 하고, 이 책 속의 헨리 박이 그런 것처럼, 한국적인 일체의 것을 자신에게 체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친구는 말한다.

하지만, 한 살 때부터 그 곳에서 철저히 미국 사람으로 산다고 해서 그가 주류 미국 시민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헨리의 어린아들 밋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주류에 끼지 못하는 이민자들이 국외자로서 갖게 되는 관찰 능력이 있다. 그 관찰 능력이 거대하게 민감해진(그러니까...이렇게 소설의 주인공이자 나래이션으로 설정될 수 있었겠지...) 이민 1.5세대 헨리 박이 주인공이다. 그와 백인 아내 릴리아 사이에서의 아들 밋에 대해 그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엄마를 닮아 흰 피부에 가까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 나는 우리 아들이 고국의 언어를 결코 배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생각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애가 자신의 세계에 대하여 하나의 감각만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 내 희망이기도 했다.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권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다가 아이가 일곱 살때 백인 아이들과 놀다가 사고로 죽게 된다. 유색 인종에 대한 어릴 적부터의 고질적인 놀림과 치열한 기득권 싸움의 단면을 헨리 아들의 사고가 보여 준다.


그러면서 헨리 박은 생각한다.

“백인처럼 생활을 하면서 백인이 될 수 없는 나는 누구인가.”


헨리 박에게 정체성의 의문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이다.   


이 소설에서 뉴욕에 사는 소수민족 집단인 한인들의 독특한 삶, 즉 비시민권자들의 삶을 희석시키는 것은 아내 릴리아가 맡기도 한다. 그녀의 직업은 이민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교사이다. 그녀는 언어(영어)를 웃음거리로 삼는 창백한 백인 여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이 책은 작게는 한국인으로 건너간 미국 이민자의 정체성 찾기를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소설이며, 넓게는 이 나라 안에서 살건 밖에서 살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건 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소설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하늘 2004-09-20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 얘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거 같은데...^^:;
사람마다 각자 환경과 경험에 따라 미국 생활에 대한 시각이 다르니까, 제 얘기만으로 일반화할 순 없겠죠. 저도 한국에 있었으면 외국생활을 동경하고 있을지도...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에 대한 기대는 누구나 조금씩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듯 해요.
소영씨(복순이언니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서재 자주 둘러봐야겠어요. 책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소영씨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요.^^

icaru 2004-09-2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친구...의 이야기를 리뷰로 써먹은 꼴이 되었네...기분이 이상한 걸...

내가없는 이 안 2004-09-2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고민스럽게 하는, 만만치 않은 소설이겠는걸요. 외국에 휙 나가 살았음 좋겠단 생각, 사회에서 거세게 부딪힐수록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요... 글쎄, 그 뿌리라는 것이, 일단 나가면 껌마냥 질기게 작용할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들과 살 때는 별로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참... 아마 이런 사람이 코 높은 사람들 속에 서 있으면 김치 먹고 싶다고 울며불며 할 것 같아요. 헹.

icaru 2004-09-2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에...분량도 분량이지만.... 주제가 무거워 좀 심각해지기도 했던...음...그랬어요.. 오래도록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답니다...공교롭게도 저 책을 잡을 때마다 일이 생기곤 해서...가뜩이나 두께도 만만찮았는데....나중에 다시 한번 천천히 정독하고픈 책이래요~!

비로그인 2004-09-2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복순 아짐. 난 지금 거즘 10여페이지 남겨두고 끝내질 몬 했는데..크..먼저 리뷰럴 올려버리다뉘. 도대체 언제 회사일이랑 서재질 하시고 게다 또 언제 리뷰를 쓰시냔 말임돠. 얼굴 이쁜 사람들이 글까지 잘 써버리면 나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요! 암튼 되레 지가 다 민망코만요. 근데 이창래라는 분 말에요. 사진 보면 좀 뚱허니 무슨 갈비집 사장처럼 생겼는데 책을 읽다보면 군데군데 지성적인 언어로 번뜩이는 묘한 느낌을 받아요. 꼭 쿤데라나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을 읽는 듯한. 근데 책의 내용은 재미완 다소 거리가 멀어보이는 듯..아, 리뷰 좋아요. 조옿습니당..

2004-09-20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7-2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갈비집 사장 .. 구져...사진엔 얼굴에 어깨선까지만 나왔지만...몸집은 아마 풍선 같을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동글한 어깨선 땜에...복돌언니....이렇게 좋은 책을...훌훌훌....영원히...감사해요...!!
글구...힘내시고욧...! 저도 힘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