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의 글을 편히 읽지 못한다. 문학 평론을 하는 그가 쉽게 글을 써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몇 줄만 읽어도 알 수 있기에, 나도 편안하게 그의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가 보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라는 이명원의 이 책.

마음이 소금밭인 것은 어떤 것일까.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소금밭일 때, 이명원은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나는 어떻게 대처했던가 생각해본다. 나는 그저 조용히 무덤 속 같은 몇일 보내고는 서서히 나를 괴롭힌 심각한 사안에 대해 잊어버리는 방식을 택하며 살았던 거 같다.


지금의 내 마음도 전전긍긍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책은 내 이해의 맥락에 닿는 부분에 한해서는 아픈 곳을 위무해주고 또한 깊은 울림까지 주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직함은 문학비평가이지만, 이 책은 그가 문학을 포함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러 매체를 접하면서 품은 여러 단상이랄까 생각들을 엮은 책이라서, (소금밭 같은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 책을 읽고 쓴 이 글들일지라도) 사실은 허리끈 조금 풀고, 편안한 자세로 읽어도 된다.

 

그의 지적에 크게 공감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던 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문학계에서의 통칭 ‘후일담 문학’이라는 용어에 대한 그의 말. 이 용어는 80년대에 정력적으로 진행되었던 진보적 실천행위를 냉소적으로 부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90년대 이후의 현실을 환멸적으로 추수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끄덕끄덕...)

 

영어를 공용화해야 한다는 복거일의 주장과 유사한 것이 수백년전 박제가에게서 있었다. (그의 책 <북학의>를 읽고) 복거일의 주장과는 또 조금 다른 뉘앙스지만, 시대적인 맥락은 이랬다. 당대 조선사회의 위기를 청나라 문명의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돌파하고자 했던 박제가의 의욕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박제가는 중국어가 문자의 근본이며, 문명어이며, 언문의 일치가 중요함을 강조, 조선이 청나라와 같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언문으로 표상되는 조선어를 버리고, 중국어를 국어로 활용할 필요하기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인재 등용의 루트를 다변화할 것을 주장했다. 

박제가의 이 글을 통해 한 사회의 타락과 몰락을 제어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은, 사회적 모순이 심각하게 돌출되고 있는 그 순간에 이미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고, 이 등잔 밑의 정책 대안을 지배층이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민중의 고난은 감당할 수 없이 심화되곤 했다는 사실이다.

박제가가 고뇌 속에서 정책적 대안을 구상하고 있던 때나,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지금의 현실이나 민중들의 고통은 여전하지만 지배층들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권력 투쟁은 그 끝을 모르고 전개되고 있다. (끄덕끄덕...)


이 책이 흥미를 발하는 결정체를 사실 나는 다음과 같은 장에서 꼽고 싶다. 무언고 하면, 비평을 하는 비평가 자신(이명원)이 도데체 독자들이 비평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하고, 답한  것.  이것은 어쩜 비평가 스스로에게 거는 가혹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한다.


첫째, 인식의 새로움에 기여하는 비평을 발견하기 힘들다.

지적 쾌락을 선사하는 좋은 비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사유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둘째, 육성이 담겨 있는 비평을 찾기가 힘들다.

깊은 감동을 주는 비평은 싸늘한 분석적 논리에 기반을 한 것들이 아니라, 비평에서 비평가 자신의 고통스런, ‘육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체취를 내뿜는 것이었다. 비평에서 육성이 사라질 때, 한편의 평론은 수학능력시험 대비용의 문학 자습서와 비슷한 운명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셋째, ‘지식 잡화상’과 같은 비평가의 태도도 문제다.

지식 잡화상인 비평가는 기이한 열정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잡다한 지식을 동원하여, 지랄탄을 쏘아 댄다고. 독자들은 이러한 비평에서 자신의 무식이 추궁당하는 느낌에 빠졌다가, 시간이 지나 그것이 한갓 언어의 사기술에 불과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비평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거두어 들인다. 무관심이 복수라고.


넷째, “주례사” 비평의 토양에서 자라난 비평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밖에 끄덕여지는 구절들이 많았다. 모방송사의 <느낌표!>라는 프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생각들. 아, 그리고 언론상에서 ‘사회지도층’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한국사회가 언어 생활의 측면에서 보자면 중세적 신분사회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지도층'이라니,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는 것인지.)


‘사회지도층’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 이 뿐일까. '경쟁력, 퇴출, 왕따, 조폭, 홍위병'과 같은 유쾌하지 않은 단어가 세상에 버글버글하다.

언어를 순화한다는 것. 글쎄.....

언어가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더욱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또 그러한 세상을 열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제대로 존중받는 사회가 온다면, 우리들의 국어사전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왜냐 하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니까.


밑줄 친 문장

 

"그들(김현과 김윤식)이 패배자인 것은 그들의 문학과 삶의 실천이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승리를 불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것은 그들이 패배자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오만한 승리의 잔을 들게 된다는 사실에 있다. 스스로 패배를 자인하는 것은 운명을 거역하는 자의 오만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오만함은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패배에 우리가 마음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비평에 깃들인 이 근본적인 불가능성을 가장 예민하게 사유한 비평가는 김현이다."


 

"멋부린 문체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글을 읽기에 내 인내심은 걸맞지 않다.

기형도의 어조를 흉내내, 잘 있거라, 짧았던 읽기여!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느낌표가 따발총으로 이어지는 문자들을 발견하면, 숨가쁘기보다는 안쓰러워진다. 전혜린이 살던 시대나 어울릴 법한 새벽의 감상은, 역시 완연한 올드 패션이다. 소설가 김훈의 문체를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 아득한 뱀을 연상하게 만드는 문장들은, 언어적 페티시즘이다. 적어도 소설은 문체의 충만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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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9-1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랄탄에 한 표/김 훈의 문체에 대한 표현에 한 표. 그나저나 더빙의 목소리와 비평가들의 목소리는 왜 저렇게 듣기 거북한 번역체인지.

icaru 2004-09-15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단어에서, 피식 웃음을 자아냈네요. 지랄탄...ㅋㅋ... 그리고 김훈의 글들...특히...<밥벌이의 지겨움>을 산만하게 읽어냈던...내게....저 글이 김훈 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를 제공했어요...^^
아 그리고...제가...말씀 드렸었던가요... 너무 낡은 세상에 너무 젊게 오다...(?) 라는 책...이요...책 표지가 연두색이라서..홀딱...반했다고... 이 책도 그렇네요 ^^*

내가없는 이 안 2004-09-1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론가로서는 가슴 쓰릴 비판을 했군요. 저도 지랄탄 표현에 끄덕끄덕합니다. 도대체 그 잘난 자기만의 해석들을 왜 그리 자신있게 쏟아낼까 싶을 때가 있죠. 문학평론이니 영화평론이니 하다못해 주식시장 해석까지. 그런데 김훈의 소설을 읽을 때는 글쎄 문체라기보단 이미지라는 느낌이 들던걸요. 저걸 유려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그의 소설에는 마음을 두게 되니 참...

superfrog 2004-09-15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평가뿐만 아니라 온갖 잡스런 정보들로 글을 쓰는 인간들도 있죠.. 역겨워요. 뭘 느꼈는지에 대해, 그 책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없고 오로지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음을 뽐내는 글쓰기는 정말이지 짜증납니다. 그리고.. 지도층! 저도 지도층이라는 표현만 나오면 발끈발끈해요.. 아니, 내가 왜 저런 쓰레기한테 지도를 받는다는 거지? 헹헹!! 한다죠..^^;;;

호밀밭 2004-09-1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소금밭이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지금 제 마음이 꼭 그런데 이럴 때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몰라서 추리 소설을 잡고 있어요. 비평에 대한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어요. 사실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비평하는 글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비평가라는 직업도 참 하기 힘든 직업 같기도 하고요. 지도층이라는 말, 참 싫어하는 말이었구나를 느끼고 가요. 이 글 참 좋은데 저는 엉뚱한 말만 하고 가네요.

2004-09-16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4-09-1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김훈 소설 좋아하시는구나~~!!
그가 쓴 “내가 읽은 책과 세상”도 좋은 책이더라구요.... 98년에 사 읽었었는데....
절판되었다가 다시 표지 바꾸고 나오는 거 같더라구요..! 반가웠어요...

모모엄니 오랜만유!! @@!!!
님이 코멘트 보노라니....제게도...짜증으로 기억되었던 책 하나가 생각나네요...님은 어떤 책에 열받으셨을까...궁금해요.... 하긴...불쾌한 글은 사실...기억할 가치조차 없는지도 몰라요....!! 그죠?

호밀밭님...!
소금밭에서도 호밀이 자랄 수 있을까요?
이건 여담인데... 잔디는 잘 자란다지요. 소금이 잡초를 없애 주어서 잔디가 잘 자라게 한대요... 헉... 제가 무슨소릴 하고 있다지요...
님 힘 내세요...!
저도 허수선할 때는 추리 소설 같은게 잘 읽히더라고요.... 님 요즘 뭐 읽으세요?

hanicare 2004-09-1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안님! 님이 그 분의 소설에 마음을 두고 계신다기에 갑자기 김훈을 1그램이라도 더 좋아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용서하시와요 흑흑.그건 개인의 취향이지만, 누가 내 취향을 깎아내리면 내 마음도 깎여 내려가는 듯한 아픔과 상대에 대한 미움이 쿡쿡 마음을 쑤시더군요.그런 점에서 혹시 호밀밭님도 김훈을 좋아하셔서 마음 상하게 한 건 아닐까....(아 참. 여긴 복순이 언니님 서재인데 내가 이렇다니깐 허둥지둥 퇴장)

내가없는 이 안 2004-09-16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여기 재미있어요. 다리 걸러 걸러 오다 보니 복순이언니님네서 하니케어님도 만나고. ^^ 김훈요, 그거 참 이상해요. 전 김훈이 자기 생각을 말하는 에세이는 참 듣기 싫거든요. 도대체가 감정이입이 안 되어서. ^^ 그런데 소설은 마음에 드니 그게 좀 이상하죠. 뭐 사람 취향이 다 다르니 1그램이라도 더 좋아해볼 여지가 없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저 맘 안 상했는데! (그나저나 복순이언니님 서재에 와서 참... 저도 허둥지둥 퇴장) 복순이언니네가 문 열어서 너무 좋아요. ^^

비로그인 2004-09-2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마음이 소금밭.....아니지 콩밭에 가있답니다. ^^* 이명원의 타는 혀가 이번에도 님의 맘을 사로잡은 것 같네요. 그의 신간 소식은 반가움이면서 동시에 지적 긴장을 안겨다 주죠. 저도 이 책 읽은 지는 한참이나 됐는데, 리뷰는 아니더라도 밑줄 친 부분만이라도 다시 한 번 훑어 봐야 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님....그리고 감사해요. ^^

icaru 2004-09-2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아...냉열사 님이닷!!!!!
님의 책을 고르는 코드랄까, 안목이 예리하십니다....

전 실패하는 책들도 많은데...!!

제게 감사하다니요...제가 님의 따따블로 감사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