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속성을 두 줄로 말하라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나,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지없이 반하게 될 소설이다. 둘, “글 쓰는 행위”와 다른 여타의 힘들 사이의 극적인 긴장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의 작품을 먹는 것에 비유하자면, 칼국수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밀가루 음식은 별로라 그냥 그래 했다. 그런데 회사 근처에 자주 가는 칼국수집이 있는데, 처음에는 동료의 손에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갔었다. ‘칼국수가 맛있어 봤자지.’ 그렇게 해서 처음 먹은 그 집 칼국수는 그냥 썩 괜찮은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을 한번 다녀갔던 이후로는 맑은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이나 그 면발이 삼삼히 떠오르곤 한다. 도시락을 준비 못한 점심 때가 되면, 발걸음이 알아서 예의 그 칼국수 집으로 향한다. 그 칼국수가 왜 그렇게 좋을까. 잡다하게 이것저것 갖은 양념들이 들어간 것도 아니다. 밀가루를 손수 밀어 만든 면발, 넉넉한 바지락, 그리고 김부스러기와 국물이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도 내게는 그 집의 칼국수 같다. 그의 소설의 힘은 언어의 탐구와 우연의 일치 등이 관계의 중복 등이 얽히고 설키는 것인데, 특별할 것 없을 듯한 이 장치들이 배합되어 오묘하게도 그 집 칼국수 같은 작품이 되어 나온다.


독자는 그의 소설을 읽는 그처럼 짧은 기간에 무진장 많은 삶의 형태와 사건과 만남이라는 우연의 계곡을 따라 헤엄쳐 돌아댕긴다. 글쟁이 시드니 오어의 이야기를 읽는가 했더니, 주석으로 밀려난 글을 따라 다니게 되고, 그러다가 소설 속의 소설인 닉 보언의 이야기에 몰두하다가는, <플리트크래프트>라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가고, 다시 시드니 오어가 우찌되는가에 예의주시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좇아가는 (물리적으로 짧다면 짧다고 볼 수 있는) 시간 동안에, 독자는 주인공(혹은 독자)가 세상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조금은 소름끼치는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된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사실. 그것은 두 글자로 ‘우연’이 아니겠느냐는 것.


그런 단순하고도 복잡함 때문에 목울대가 따끔따끔해질 정도의 이상한 기운으로 몸서리쳐지는 게, 단지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 동안만이고 도무지 지속 효과라는 게 없다고 할지라도, 우짜하든 나는 좋다. 그의 소설이 그리고 <신탁의 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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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7-0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했어요!! 오늘 와야 하는데.. 왜 씨제이 택배총각이 안 온담.. 1시에 띵똥하는데.. 흠.. 추천 한 방 날리고..^^

panda78 2004-07-0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칼국수 먹어 보고 싶네요... (딴 소리.. ^^;;;) 저도 추천! 망설이는 중이었는데, 사야겠군요!

icaru 2004-07-0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엄니도 신청했어요??!!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거예요...(딴소리..씨제이 택배는 씨제이몰과 관련이 있나요?? 있겠죠??)

판다 님...그 집 칼국쉬....당췌 질리지가 않더라구요.... 정말 놀라워요...!!

비로그인 2004-07-0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세요, 복순 아짐.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 제가 이래서 서재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당게요. 아, 이거 책도 안 읽고 리뷰도 안 쓰는 저, 정말 창피해지는 걸요. 암턴 오스터의 소설을 칼국수로 비유하시다니. 멋지세요. 이 주에도 복순 아짐의 리뷰가 당선되었으면 좋겠네요.

icaru 2004-07-05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복돌 성님...넘..칭찬해 주시는거 아녜요!! 에구구...저 짐...한 쪽 손으로 얼굴 반을 가리구 있어용...부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