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작주의자의 꿈 -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
조희봉 지음 / 함께읽는책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좋은 책이란 단순히 한 권의 완벽한 책보다는 한 권을 읽으면 다른 한권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6년 직장 생활을 깨끗이 접고 책을 모으고 읽고 또 쓰면서 살아가기 시작한 저자의 독서 경험과 책 사랑을 보여 줌으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잖이 탄력을 받게 하고 있으니.......
이 책에는 내가 아는 헌책 서점이 둘이나 나와서 반가웠다. 서울역 앞에 있는 뿌리 서점과 우리 동네 흙서점 이렇게.
내가 원하고 찾는 책들의 방대한 목록을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 발품을 팔아 가면서 원하는 책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은 미지의 장소를 향해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과 맞닿아 있다. 혹은 싼 가격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찾은 흥분 때문에 사실 읽지도 않을 필요도 없는 책을 찾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헌책방에서는 세상의 속도를 일부러 거슬러 거꾸로 사는 재미가 있다.
이 책엔 특별히 밑줄 긋고 싶게 하는 문장들이 많다. 저자의 글이건 저자가 옮겨온 또 다른 저자의 글이건 말이다.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 안정효의 창작의 고독을 말한 다음과 같은 글이 내 마음 또한 두드린다.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외로우면 슬퍼진다.
괴로울 때의 형극(荊棘)이 더욱 첨예하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그렇게 첨예한 외로움과 슬픔을 마음의 양식처럼 먹는다. 그래야 속이 잘 영글고 껍질도 단단한 작품이 태어난다.
고독은 영혼을 순수하게 만든다. 순수한 마음은 순수한 작품을 낳는다. 절대 고독은 영적인 수련이다......
나는 외로움을 사냥하려고 여기에 온 것이다.
그러나
단절과 명상은 대화와 군중의 가능성이 있어야만 기쁨이 된다. 시한부 고독은 창작의 열매를 위해서라면 견딜 만한 형벌이었고, 형벌을 견디기 위해서는 대화와 군중의 가능성을 가끔은 확인해야 했고, 그래서 나는 날마다 편지를 썼다.
나는 날마다 편지를 쓰고
날마다 편지를 기다렸다.
그토록 편지가 그립기는 베트남에서 전쟁을 하던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편지를 자주 쓰면 그만큼 더 답장을 많이 받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날마다 편지를 써다. 그리고는 날마다 편지를 기다렸다.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편지를 썼고, 하다못해 대학 동창에게도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날마다 편지를 기다렸다.
안정효, <하늘에서의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