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이병우 연주 / 명음레코드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마리 이야기’나 ‘스캔들’의 영화 음악을 맡은 것으로 이젠 더 많이 알려진 기타리스트 이병우.

이병우의 기타곡을 처음 들은 게 고등학교 다닐 때지 싶다. 사실 그 때는 누구의 곡인지도 연주자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몰랐고 여하간 사전 지식 하나 없이 그저 ‘새’라는 곡 하나만 내 귀에 콱 박혀 들어왔다.(제목이 ‘새’라는 것도 당시는 몰랐고,)

그리고는 이 곡의 제목과 수록 앨범을 수소문하고자 일단 동네 음반 가게를, 여기에 없으면 더 큰 시내(읍내라고 해야나)에 나가 음반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얼마 안 되는 서푼짜리의 단서만 가지고 꼬치꼬치 귀찮게 캐물으며 음반을 찾아보던 여정들을 생각하면 아....! 그렇다. 아련한 추억인 것만 같다. 컴퓨터로 쉽게 검색하고 찾아내는 스피디한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정말이지 쉽게 느끼기 어려운 체험이지 싶다.

이 곡 ‘새’는 생동하는 아침의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나 클래식 기타의 플랫과 플랫을 바꿀 때의 찌찍하는 음이 마치 새의 지저귐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 앨범에서 ‘새’ 다음으로 좋은 곡은 ‘비’와 ‘머폴리와 나는 하루종일 바닷가에서’이다.
‘비’는 사실 계속 듣고 있으면 슬픈 느낌이 많이 난다. 단조로 시작하니까, 하지만 중간에 장조로 바꾸어 약간의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다시 단조로 끝난다. 그리고 이것의 반복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이병우의 음반의 매력은 반복에 있는 게 아닐까. 새도 그렇고 반복을 통해 곡을 친근하게 만든달까.

‘머플리와 나는 하루종일 바닷가에서’는 아무래도 머플리라는 이병우의 애완 멍멍이와 바닷가를 달리면서 떠올랐던 영감을 음악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강아지와 장난치며 바닷가를 달리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곡 중간에 자연스럽게 삽입된 남성의 허밍도 그렇고, 정말 사랑스러운 곡이다. 하지만 곡 끝부분에 가면 템포가 느려지면서 힘없게 끝난다는 것이 아쉽다. (머플리가 너무 달려서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싶은 염려가 들 만큼)

그리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곡은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이다. ‘간장 공장 공장장은’처럼 재밌고 긴 제목(제목도 길지만 곡도 길다, 약 8분 연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곡의 시작과 끝이 완연히 다르다는 점 때문에. 일렉 기타의 주멜로디에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를 넣은 이 곡의 도입 부분은 상당히 몽상적이다. 그런데 끝부분에 가서 뽕짝처럼 얼렁뚱땅스럽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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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kitchen 2004-04-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어요, 요즘엔 정말 곡 찾기가 쉬워졌죠. 저는 뒤늦게 음악을, 그것도 책을 통해 접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고 아..이건 정말이지 들어보고 싶다, 싶은 것들만 음반으로 사고 그랬어요. 그래도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다구요ㅠ,,ㅠ 저도 님처럼 못 부르는 노래 불러 가면서 찾은 음반 하나가 있었는데, 김종서 in 카리스마. 하하..사고 보니까, 내가 알던 그 곡만 좋더라구요 -_-a

비로그인 2004-04-26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앨범 하나 있는데..유희열 4집 앨범. 이름이 뭐더라. [거짓말 같은 시간]하고 [여전히 아름다운지]그거 빼곤 좀 그저 그런.. 암턴, 복순 아짐 맴에 적극 공감하는 이유가 찾고 싶은 음반을 차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이란 것이 상다히 커서 말이죠. 아, 머플리..전 이병우님을 '우리'라는 곡으로 첨 알았거덩요. 밤에 잠들려고 불 끄고 누웠는데 심야 라디오에서 들려 주더라고요. 마음속 근저, 잊혀졌던 무언가를 건드리는 기타 선율..정겹고 좋더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