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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사람들은 서로 다른 표정과 마음가짐으로 저마다의 삶의 질곡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일상을 겹겹이 빚어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인생을 즐기고 사랑하기보다는 점점 딱딱하게 두터워지는 아집 안에 갇혀 무기력과 독선을 꼴사납도록 토해낸다는 점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듯 싶다. 오늘도 돌이켜본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 한번 제대로 손대보지 못한 채 상황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밤의 피크닉에 나오는 이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뭔가를 시작하기 전 (대학 진학이 되었건, 사회 생활을 하기 전이건)에는 어땠나,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순수했냐, 아니냐가 아니다.
뭔가의 끝은 언제나 뭔가의 시작이라고, 그 아이들의 ‘인생’은 아직 멀었다. ‘인생’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전념할수 잇는 시간은 아주 조금 밖에 없다. 기껏해야 수험 생활의 궁핍한 빈 시간을 변통하여 ‘인생’의 일부인 청춘인지 뭔지를 맛보자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보행제가 곧 끝나듯이, 그 시기도 금방 지나가리라.
이미 다른 시작을 맞이하고 있는 나는 밤의 피크닉 속의 고등학생들을 지금 내 현실 세계로 불러들여 보는 것이다. 지금의 나또한 아직 자신의 위치도, 자신이 어떤 조각인지도 모른다.
도오루의 감정은 복잡했다. 물론 고교 생활은 즐거웠지만, 장래를 서두르는 그에게 2년 반은, 조금씩밖에 나아가지 않는 답답한 세월이었다. 빨리 대학으로 빨리 취직하여 사회로, 빨리 독립하여 자신만의 세계로 도오루는 언제나 장래를 선망하고 있었다.
도오루 군, 장래를 선망하는 것은 좋지만, 지금 당장,, 들려오는 여러 잡음들을 무시하지 말라구~
안나는 귀국자녀여서인지(그 외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언제나 그녀의 주위에만 다른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게는 천성적인 활달함, 환경에 단련된 강인함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 있었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닌 만큼 오히려 일본적인 시스템을 갖춘 고등 학교의 일종의 불합리하게조차 생각되는 인습 같은 전통에 동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너의 오픈 마인드를 닮고 싶어라~
154쪽
일상생활은 의외로 세세한 스케줄로 구분되어 있어 잡념이 끼어들지 않도록 되어 있다. 벨이 울리고 이동한다. 버스를 타고 내린다. 이를 닦는다. 식사를 한다. 어느 것이나 익숙해져 버리면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반사적으로 할 수 있다.
오히려 장시간 연속하여 사고를 계속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에 의문을 느끼게 되며, 일단 의문을 느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구분하여 다양한 의식(儀式)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 의식은 언제나 자주 바뀌어가며 쓸데없는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보행제는 얻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만 하루, 적어도 선잠을 잘 때까지는, 계속 걷는 한 사고한 한줄기 강이 되어 자신의 속을 거침없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