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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ㅣ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화이트칼라의 구직기.
노동의 배신이나 긍정의 배신과는 다르다. 노동이 아니라 그 이전 구직 활동 자체가 문제인 것. -이 부분은 미국의 현실이 많이 반영된 것이라,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얿애야 경영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이른바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의 귀결을 저자는 중산층의 대참사라고 표현한다.
"나이가 마흔여덟쯤 되면 충분히 기반을 잡을 줄 알았어요. 편안히 앉아서 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알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 죽어라 일만 하고 있을 따름이에요. 먹여 살려야 할 애들이 있잖아요. 그래요. 낙담한 건 맞아요.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할거예요.
레아 그레이는 실업자 및 불완전 취업자에게 친숙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이 빠졌다가 지난해에는 스트레스 탓에 몸무게가 13킬로그램이나 불었는데 면접 때 입을 새 정장을 살 돈이 없다.
아무리 낙관적이고 독창적이고 유연해도 실어자와 불완전취업자는 등 뒤에서 째깍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를 의식하고 있다. 실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괜찮은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판매원, 리무진 기사, 웨이터로 일한 기간은 늘어난 이력서의 공백을 메울 매력적인 내용이 되지 못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그 사람의 가치는 저하된다. 라고 말한 그대로다.
하향 이동으로 사회가 얻는 보충적인 가치가 무엇이든 간에 생존용 일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교육 받고 준비해온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파괴적인 경험이다. 마오쩌뚱이 이식한 사람들은 더 훌륭한 시민이 되지 못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원망을 새겼다. 더군다나 수입과 지위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 심각해서 하향 이동은 실패, 거부, 수치심을 동반한다.
비단 미국 중산층의 구식 청교도 논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물질적 풍요와 안정을 누리게 된다는 윤리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이제 기업 관료주의의 원료 공급원인 교육 받은 중산층에게 그런 윤리는 점점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고 있다.
생각의 범위를 좁히고 집단행동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은 이직 산업에서 구직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구직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데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