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론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거나 진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서술의 방법도 신앙적 고백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15쪽)
삶이 달라지면 인간의 종교성과 그에 응답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당연히 기도하는 방법, 신앙을 고백하는 형식이 달라지고, 설교를 듣는 신자들의 마음의 자세도 달라집니다. (23쪽)
매 시대는 성성의 그리스도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시대와 문화 안에서 새롭게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때 그리스도는 생기 있고 살아 있는 방법으로 그 시대에 현재합니다. 과거의 그리스도론이 새로우 ㄴ시대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시대와 괴리가 있는 그리스도론은 활기를 잃은 그리스도론이며, 그런 그리스도론으로는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을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그 시대와 대화할 수 있는 그리스도론이 없으면, 기독교인은 활기를 잃게 되고, 자신의 시대에 해야 할 소명과 과제를 상실하게 됩니다. 교회가 시대정신과 괴리가 있을 때 위기가 오고, 반면 교회가 살아 있는 선포는 역사를 바꿉니다. (26쪽)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 나라라는 종말론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역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서의 섭리와 구원은 ‘역사적 구조‘를 가집니다. 즉 구원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이 역사 안에서 체험됩니다. 구원은 역사와 시간을 벗어난 구원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구원은 이 세상으로부터(from)의 구원이 아니라, 이 세상과 함께(with)하는 구원입니다. (57-58쪽)
이제 교회는 구원이 삶의 다양한 차원에서, 즉 사랑의 행위, 정의로운 행위, 선한 행위, 생명을 살리는 행위 같은 삶의 영역에서 체험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66쪽)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현재 역사 안의 가능성에 따라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것이 옳으면 행합니다. 즉 종말론적인 신앙은 미래에 명목상의 개념으로 존재하는 거싱 아니라, 현재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74쪽)
즉 인간은 신앙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기다리며 서두르는 관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며 오류입니다. 인간은 서두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 안에서, 어느 순간 인간은 하나님과 결정적인 관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87쪽)
목회자가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는 교인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방향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만 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교회에서 배운 신앙을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중략) 교인들도 끊임없이, 성서의 말씀과 교회의 선포를 자신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할지를 고심해야 합니다. 신앙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그냥 성장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삶 속에서 훈련됩니다. 훈련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관이 세워지고, 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100쪽)
성서에는 신앙적 선포도 있고, 교리적인 것도 있고, 신학적으로 설명해야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중략) 한국교회의 문제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믿음‘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신자들의 자신의 시대 속에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그 대부분은 ‘신학적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신자들의 의문에 대해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교회는 신자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도 위축됩니다. 목회자는 이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답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1세기의 목회자는 영성과 지성을 겸비해야 합니다. (101-102쪽)
즉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를,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오용했습니다. 악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죄성, 인간의 사악함, 그리고 피조세계가 가지는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모순된 현실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6-107쪽)
하나님이여, 왜 악을 허용하십니까? 이렇게 물을 것이 아니라, 질문은 우리 자신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허용했는가? 왜 우리는 악과 타협했는가? 이런 큰 물음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 속에 던져입니다. 우리는 왜 가정폭력을 눈감고 있는가? 왜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외면하는가? 왜 세제를 함부로 사용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파괴하는가? 이것이 죄입니다. 이 모든 무책임함이 모여서 악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때로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형태로 폭력, 증오, 살상과 같은 악의 현실이 불현듯 발생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명 속에서, 악한 현실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순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찾아 담대히 맞서고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악한 현실과 부조리 앞에 선 기독교인의 살아 있는 신앙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출발입니다. (109-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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