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와 백합'은 존 러스킨이 강연한 내용을 모아 논 글이다. 참깨는 교육의 목적과 독서 등, 백합은 여성의 교육과 역할 등에 관한 내용이다. '독서에 관하여'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참깨와 백합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글로, 단순히 번역을 너머 서서 러스킨 글에 대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여 비평한다. 즉 러스킨 독서관에 대한 반박이다. 


'백합' 

요즘과는 너무 먼 내용이라 별루다. 


'참깨'

러스킨은 교육은 경쟁에서 이겨 남들보다 나은 소유와 지위를 누리는 출세 준비 과정이 아니라 진정한 책을 통해 최고의 지혜를 얻으면서 관대해지는 것이다. 점점 관대해지는 것이 인생에서 출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독서는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지혜와 교훈을 주기 때문에 독서가 인생에 절대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독서에 관하여'

프루스트는 독서는 개인적 독서 경험 속으로 인도하는 역할로 본다. 내용 자체보다는 그 책을 읽었던 시간과 장소의 이미지들이며, 독서는 대화와는 정반대로 혼자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으로, 

독서와 교육으로 마음과 정신이 강해지는 것은 곧 타인에게 관대해 지는 일이다. 누구와 대화를 하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대'하여야만 가능하다. 


사족으로,

우리가 상류 사회에 진입하려는 이유는 거기 속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기 속한다는 사실을 내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이유는 상류 사회가 남들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최근 모 개그우먼의 몽클레어 밈풍자가 떠오른다.  


특별히. 

프루스트의 어린 시절 독서에 관한 글(133-151쪽)이 참으로 아름답다. 번역도 참 잘하셨다.


추가로,

아들 출장으로 혼자 있는 며느리와 손녀 보러 몇 일 다녔다. 딱 봐도 배고파 우는 데, 시간이 안됐는데, 왜 울지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아기 울음 분석하는데, '배고픔', 내 참, 그제서야 분유 줬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계속 안아 주고, 버릇없게 만들고 있으니, 주 양육자는 고단하기도 할 거 같다... 그래도, 아이를 온전히 안아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거는 모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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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보름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삶은 살 만하지 않은 것으로, 이런 삶은 주체의 삶이 아니기에,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주체가 있어야 하고 그 주체의 삶이 객관적인 관점에서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본다.   

버틀러는 삶이 살 만한지 살 만하지 않은지는 주체가 느끼는 주관적 경험에 따라 판단하며,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의식하고 그 경험에서 어떤 의미를 끌어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주관적 경험을 통해 삶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정리하면, 보름스는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명확한 생명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삶은 살 만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버틀러는 그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그들의 삶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143쪽)"

보름스는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대하여 주체가 있고 없음 또는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성으로, 버틀러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겹치는 양가성으로 주장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양극성과 양가성의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나는 버틀러의 입장에 동의한다. '좋지 않다'가 '싫다'의 의미가 아니고, '좋다'의 반대가 '싫다'는 아니니까. 

그렇다면 살 만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살 만한 삶의 조건이 확보되어야 한다. 즉 몸이 놓인 사회적 상황에서 '돌봄'의 중요성이다. 이러한 살 만한 삶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가 필요하다.

아무튼, 두 사람은 우리가 살 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돌봄'을 강조한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묶여있기에 또한 다른 사람이 없다면 나의 삶이 없기에, 서로의 삶에 대한 의무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놓여 있는 삶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한다..  


눈이 많이 왔다. 오랫만에 눈길도 걸어봤다. 설날에는 아들 집에 간다고 갈비도 재고 불고기도 만들고, 대기업 도움으로 떡국, 사골 육수, 부침개도 몇 가지 만들었다. 94세가 된 친정 아빠는 왜 못 오고 안 오냐고, 어쩌면 이 후 못 볼 수도 있는 데, 여기의 선택은 잘 한 걸까? 그래서 삶에서 '양가성'이 조금 더 좋다. 


'살 만한 삶'으로의 실천이 남아 있다.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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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신과 의사의 기록은 우리 삶을 보는 거 같다. 비밀 보장 등으로 얕은 글이지만, 조각조각에서 삶의 지혜를 건질 수 있다. 아직도 건져야 하는 지혜가 내게 필요하다니,,,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경중에는 차이가 있지만,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사랑이고, 인정이고, 관계이다. 그래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뗏목도 필요하고, 경청도 필요하고, 몸의 움직임도 필요하다.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어도, 나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 줄 누군가 있다면 그게 성공한 삶인 거 같다.  

새해가 되면서 예쁜 손녀가 태어났고, 그러면서 며느리는 응급 병동에서 몇 일 보냈다. 손녀는 산부인과에, 며느리는 대학병원에서, 부모가 되는 일이 이처럼 힘든 일이었다. 그 와중에 아들이 침착하게 잘 대응해서 칭찬을 듬뿍 해줬다. 누가 정했는지, 조리원 비용은 시어머니가 낸다하여 거금을 보내줬고, 매일매일 봐도 예쁜 손녀를 보니, 그간 친구들이 돈을 내면서 손주 자랑하는 기분을 알았다.   

파더 생파를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자녀들 5명이 마더파더 생신을 돌아가면서 담당한다. 생파의 주관자가 시간장소음식등등을 모두 제공한다. 해가 갈수록 좋다,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파더, 또 언제 오냐로 마무리하신다. 엄마가 자신의 생파와 비교하여 질투?까지 하셨다. "언제 또 오니?" 부모님에게는 참으로 막연한 시간일 거 같다.  

30여년 전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돌려 봤다. 배가 부른 나의 모습, 우리에게 아들이 태어났을 때(지금 손녀 얼굴과 똑같아 신기했다) , 내가 병실에 있을 때, 돌 지난 아이와 가족여행 갔을 때, 완전 푸릇푸릇한 청춘 그 자체였다. 봐도 봐도 우리 모습이 멋있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 거구나...

대학 졸업 40주년 기념 모임에 갔다. 하늘 나라에 간 동기가 3명이나 있었고, 아주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주 잘 사는 동기도 있었고, 엉망진창인 남자를 만나 가정폭력으로 종적을 감춘 동기도 있었고, 사별한 동기, 재혼한 동기, 겨우 살아난 동기, 자식을 잃은 동기 등등, 오만가지 사연들이 난무했다. 삶의 모습이 모두 들어 있는 모임이었다. 매년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너도 나도 도찐개찐,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감사할 게 차고 넘친다.


Be happy in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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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버지니아 울프가 런던 거리를 산책하면서 관찰한 자극들을 소개하는 여섯 편의 글을 읽었다. 

첨부된 지도가 있어 시간과 공간을 건너 와 그녀와 함께 걷는 듯했다.

특히 카라일 하우스와 하원의사당을 지날 때는 더 오래 머물게 되면서 마음이 사로 잡혔다. 


"런던 부두의 짠내를 맡으며 출발한 산책은 옥스퍼드 거리의 북새통을 지나 첼시의 칼라일 하우스, 햄스테드의 키츠 하우스를 거쳐 다시 런던 한복판의 대성당과 사원과 하원의 사당을 통과해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든다. 런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익숙하고 상징적인 장소들이다. (110쪽)"


Ⅱ.

앨리 스미스 '가을' '겨울' '봄' '여름' 시리즈를 차례로 읽으려 쟁였다가 그만 치웠다. 겨우 읽은 '가을'의 요점을 밑줄 긋기로 옮겨 본다. 나와 완전히 다른 타인에 대하여, 더 나아가 작금의 현실에서, 나의 이야기로 가장 적절하게 대처하기로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벌써 가을인 나의 삶 앞에 있다.   

 

"세상을 만들어 내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실제 세상이 이미 있으니까요. 그냥 세상이 있고, 세상에 대한 진실이 있어요. 
네 말은 그러니까 진실이 있고 그것의 가짜 버전이 따로 있는데 우리는 그 가짜를 듣고 산다는 거로구나. 대니얼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세상은 실재해요. 이야기들은 만들어지고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덜 진실인 건 아니지. 대니얼이 말했다. 
그건 초강도 헛소리예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낸단다. 대니얼이 말했다. 
그러니까 늘 네 이야기의 집에 사람들을 반겨 맞으려고 해 보렴. 그게 내 제안이다. (157-158쪽)"

"친애하는 대니 오빠, 문제는 결국 우리가 자신의 상황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야. 우리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보고, 할 수 있다면 또렷하게 볼 수 있을 때 절망하지 않고 가장 적절하게 대처하기로 어떻게 선택하느냐야. 희망은 바로 그거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타인에게 하는 부정적인 행위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 그것뿐이야. 그들도 우리처럼 모두 인간이라는 것을, 사악한 것이든 정당한 것이든 인간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세상에 눈 깜짝할 순간만 머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런데 그 눈 깜짝할 순간은 다정한 윙크일 수도 있고 자발적인 무지일 수도 있는데 자신이 두 가지 다 가능한 존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해. 그리고 악이 턱까지 차 있다 해도 그 너머를 볼 준비를 해야 해.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시간, 우리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그것을 허비하지 않는 거야. (247-.248쪽)"

Merry Christmas!

50여년 전 산타가 두고 간 굴뚝 과자가 먹고 싶고, 성탄절을 위한 찬양과 연극 준비, 선물 교환, 새벽송 등이 그립다. 색종이로 성탄 장식 한 우리집 대문까지. 

며느리가 아아만 마시는 나에게 게이샤 등등 콜드브루 몇 병을 선물로 보내왔다. 고마웠다.

난 엄마 생신 축하하러 부모님 만나고 왔다. 최근 엄마보다 한 살 많은 이모가 돌아가셔서 엄마의 총기가 반 이상 줄었다. 올해 엄마는 절친과 언니와 이별했다. 사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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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저축하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연신 읊조리며 눈을 돌리며 쌓여있는 책은 애써 외면하고 예전 같으면 가방에 한두 권 넣어갈 만한데도, 그냥 마구 다녔다. 마구 살았다.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오래 머물렀다. 아주 간단히? 요기 할 것으로 집어 든, '책의 말들'이다.

저자가 읽은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책들의 말을 들었다. 경청했다.

여러 책들이 말하는 최소 100마디는 들었다.

어느새 상담 모드로 바꿔있다. 상담자가 만난 내담자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다른 여러 계층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 아주 먼 곳에서 온 이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가 되니까.

책을 읽은 다음에는 김겨울 스타일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램이 있다. 부럽다. 나도 자라면서 만만치 않은 독서를 한 거 같은 데, 글 쓰는 데는 젬병인 것 같다. 어쩌겠나..

책을 읽고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지난 밤은 너무 놀랐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을 위해 기도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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