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아주 잘 하시는 분이 글도 이렇게 맛있게 쓰다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저자가 말한 생각의 맛을 알게 되었다. 특히, 타인의 생각의 맛이다.
[글자들의 수프]는 타인의 생각을 제철과 재료에 맞게 재해석하여 내 놓은 근사한 한상이다.
그저께 읽은 책 내용(실존주의)에 빗대어 말해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읽어야지 하는 결정만이 남아있다.
그 결정이 잘못된거라면 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아님말고, 빨리 덮으면 되는거고, 다른 글을 찾으면 된다.
나도 뭐든 내맘대로 할 수 있지만, [글자들의 스프]는 내맘대로 안되고 할 수없다. 
아니 이 스프를 먹어야한다는 결정이 내맘이 된거다.
입맛과 침으로 범벅된 입이 기억과 맞물리면서 어느새 맛있게 먹고 있었다.
특히 프루스트에 대한 작가들 이야기와 헤겔과 하이데거 소시지 논쟁은 엄청 맛있었고, 동서고금의 글과 음식, 식재료, 사람이야기는 정갈하고 맛깔났다.

*핸폰으로 글쓰기 어렵다. 수정도 덧붙임도 어렵다. 데스크탑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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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혼자다, 알고 있지만 왜 혼자이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규정하는 일은 어렵다.
책의 내용은 실존주의 철학을 기반하고 있다지만, 나는 모르겠고, 아무튼 재미는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하고 있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끝나지 않는 행위들은 그 다음에는? 또 그 다음에는? 하고 우리를 물고 늘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멈춤 또는 출발을 정해야 한다는데, 그러한 질문에 답하는 책이더라, 정도로 읽었다.
데스크탑 고장으로 핸폰으로 작성한다. 기계에 대한 마이너스손이라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다. 나의 기투와 일치하지 않는 타인과는 소통이 어렵고 나의 행동에는 책임이 있기에 눈을 부릅뜨고 톡톡해본다.
각각의 목차에서 중요 문장과 나의 생각을 적어봤다.
1. 캉디드의 뜰 : 우리는 어떤 행위를 통해서야 타인과 서로의 이웃이 될 수 있다.
나와 타인을 연결시키는 관계를 나는 혼자서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나한테서 타인으로 향하는 기획이며 초월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물체가 아니라 자발성이다. 희망하고 사랑하며 욕망하고 행동하는 자발성이다. 사람은 누구의 이웃도 아니다. 어떤 하나의 행위를 통해 자신이 타인의 이웃이 됨으로써 타인을 자신의 이웃으로 만든다. (25-26쪽)

2. 순간 : 우리는 각자 세계에서 자기가 차지할 장소를 결정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는 다른 것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그는 자기와는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자신일 수 있다. (37쪽)

3. 신 :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철저하게 인간의 기획에 의해서다.
어떤 대상을 향해 자기를 초월하는 것은 그 대상을 정립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새로 정립할 수 있는가? 신이 완전히 주어져 있지만 인간은 신을 향해 자신을 초월하지 못한다. 인간은 존재의 표면 위에 있는 무관심한 우연성에 불과하다. 인간이 자기행동에 어떤 의의를 부여하고 싶다면 이 무관심하고 완결된 비인격신에 의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51쪽)

4. 인간 : 우리 속에는, 우리 각각의 행위 속에는 인류의 모든 과거가 기입되어 있다. 우리는 이 과거를 넘어서 미래 쪽으로 향한다. 이러한 진보는 항상 우리를 서로 이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만의 관점만 가질 수 있다.
인류는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미래를 향하여 기투한다. 인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양하는 존재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개의 인간들을 통하여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합류하려 한다. 그의 존재 자체가 성립되는 것이 바로 개개의 인간들 속에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초월성은 결코 인류를 지양할 수 없고 다만 함께 동반할뿐이다. (61-62쪽)
하나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선택하는 것이며 한정하는 것이다. (77쪽)

5. 상황 :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반성할 수 있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하여 행위한다.자신이 즉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는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그는 즉자적으로 존재하기를 바라기때문에 그의 초월성은 하나의 충만성으로서 포착되어야 한다. 인간의 초월성이 응고되어 나타나는 것은 그가 창설한 대상 속에서이다.
기투는 자유이고, 개별적이며 따라서 한정적이다. (83쪽)

6. 헌신 : 타인의 존재가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하에 우리는 헌신할 수 있다.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을 포기할 수 없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므로 누군가에게 헌신한다. 그가 헌신하기를 원하는 것은 이런 방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93-94쪽)
헌신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96쪽)
우리는 타인에게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110쪽)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숙명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다. 모든 거절은 선택이고 모든 침묵은 목소리이다. 우리의 수동성조차 우리 의지의 소산이다.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선택해야 한다. 선택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14쪽)

7. 소통 : 나의 기획이 그들의 기획과 일치하느냐에 따라 소통할 수 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들의 행복이다. (116쪽)
각자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만 주체일뿐이다. 그리고 타인의 눈에는 '그저 아무나'일 뿐이다. (119쪽)
타인 앞에 있는 나의 상황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120쪽)
물론 그가 살고 있는 지금, 비행기는 하나의 필요에 부응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 물건이 존재함으로써 생겨난 필요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의 존재로부터 사람들이 만들어 낸 필요이다. (121쪽)
나의 존재가 타인과 소통하는 것은 오직 내 존재가 관여한 대상들에 의해서이다. (124쪽)

8. 행동 : 우리는 자기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 이러한 행동에는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지는 것이 자유다.
자신의 계획이 파괴되지 않은 채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146쪽)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책임지는 것은 불확실과 위험 속에서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본질이다. 자유는 미리 정해진 구원을 목표로 자신의 마음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147쪽)

**그리고 단편들로 구성된 김연수 [너무 많은 여름이] /프로스트 [밤이 오기 전에]는 각각 서너편씩 읽고 덮었다. 
**블라블라,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도 출근해야한다고 잠깐씩 깜짝 놀라고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여전히 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는 나를 마주하고 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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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안 베르는 루게릭 병이 자신을 잡아먹는 시간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내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 

생의 마지막을 선택한 그녀의 마지막은 여름이었다.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미래를 도모할 수 없고 희망이 없다. 불능과 의존만이 있다. 

그녀의 시간은 정지되고, 손자들은 어른이 되고 계속 나이를 먹겠지만 자신은 영원히 쉰아홉 살로 남게 된다는 것, 현재형만 있다는 것, 언니가 눈 앞에 있지만 손이 아니라 시선으로만 꼼꼼히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촘촘한 바늘 땀으로 맺어진 인연을 풀어헤쳐야 한다는 것, 그래서 무시무시하고 늘임표가 찍힌 슬픔을 느낀다는 것, 그녀처럼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이는 없을 거다. 

얄밉게도 나는 그녀의 글에서 깊은 안도와 위로를 받는다.

생각해 볼 것은, 죽음을 타인에 의함이 아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그에 앞서 남이 나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은 나도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우리의 의무로 해야 된다로 확장하여 생각해 본다.   

번역도 참 잘하셨다.  

약속이 있어서 생각이 모이지 않는다.

[나의 마지막은, 여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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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달력을 보니 오늘 하루가 더 숨어있었다.


아그네스 발차가 부르는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오겠지 /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 노래를 반복하여 듣는다 : Agnes Baltsa 'There will be better days, even for us'

노래 제목을 달리 보면 와 닿는 의미가 완전 다르다. 고통이 팬던트처럼 목에 걸려 있지 않도록 자신을 깨우치라는 가사가 있다. 


사진 시집, [아직 거기 있었구나]에서는 사진과 시가 각각 부족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둘 다 있어 채워지고 보완되고 있지만, 책으로 내야 할 정도로 완벽하지는 않는 것 같다. 순전히 책 제목에 이끌려 펼쳤다.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늘상 있어 당연한 것들, 사라지지도 가버리지 않고 아직도 거기에 있는 것들이 마음을 헤집고 다닌다. 요즘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예전 일은 오래도 남아 있다. 

산불로 모두 잃어버린 이재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탠다. 나비 효과를 믿어본다. 

3월 31일이 있었구나,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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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 나오는 문장들을 모두 옮겨 적고 싶다.

첫 번째 문장만 적어본다.  

'나는 거의 팔십 년 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 글쓰기 활동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활동 덕분에 나는 의미를 찾고,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더 깊고 더 일반적인 무언가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가 언어 자체와 가지는 관계다. 이 짧은 글의 주제는 언어다(7쪽).'


존 버거는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8쪽).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언어적, 비언어적 부분을 텍스트로 끄집어 내어 알게 해 준다. 


존 버거는 채플린 몸짓, 사랑단풍나무, 새털, 다육식물, 나뭇잎, 바다로 가는 장어, 노래, 사진, 누군가의 대화, 그림, 정치가의 연설, 담론 등에서 한 번도 말해진 적 없는 언어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의 페르소나를 벗게 만든다. 말이라고 다 동일하고, 진실의 말은 아니다. 어떤 이는 본인조차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이도 있으니...    


특히, 드로잉으로 표현한, 자연의 외양들을 텍스트로 읽어 낸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좌파든 우파든 정치인들의 의도도 알았다. 최근 산불로 피해 입은 지역에서 '사진 찍으로 왔제?'하는 주민의 말과 불편함 줄까 찾아 가지 못한 정치인이 진실되고, 본질적으로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of the people 정치를 하길 바래본다.

이러한 와중에도 존 버거는 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이며, 역사로부터 알 수 있는 텍스트들이 현재에 희망을 준다고 한다. 


요즘 대화할 때, 타인의 눈과 의도를 거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본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 보면 그 사람이 자라 온 환경, 부모, 배경 전체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는 하나의 몸이 되며, 살아있는 피조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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