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말에서 상처 받은 자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을 골라 그저 작은 용기라도 주려고 애쓴 흔적이 들어있는 시집을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변명까지 하다니 살면서 나의 시간을 이리 헛되이 쓰고 있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일이라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눈 앞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이제야 알았다면, 너무 늦은 걸까. 책 뿐만 아니라 손에 잡히는 것도 마음이 닿는 것도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부유한 채로, 시간만 흘러간다. 

몇 달 동안 지속되는 천정 누수가 거듭된 위 집 검사에 의해 그 옆집으로 까지 관련되어 있다지만(이도 확실하지 않다. 검사 업자마다 실력 차가 있으니, 우리 돈 들여 검사까지 하여 이상 없다 하니, 검사도중 우리 옆집도 누수 중), 그 옆집은 세입자라 주인과 연락 또한 힘든 상황을 지나고 있다. 우리 옆집도 세입자라 우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곰팡이 냄새가 지독하고 기침과 스트레스 등등으로 대야에 떨어지는 물을 아침마다 재고, 천정과 거실 벽의 물 번짐 정도를 사진 찍는 중이다. 

불변의 진리라 여겼던 물은 아래로 흐른다가 아니라 위로 거꾸로 흐른다는 걸 직접 경험 중이다. 30여 년 가까운 주상 복합 아파트라 그럴 때도 되었고, 살다 보면 온갖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모르쇠로 일관할 일이 아닌데, 연락 두절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어쩌자는 걸까, 결국 변호사에게 의뢰한다,까지 왔다.

옆집 주인과 공동으로 우리 돈을 들여 위의 두 집을 함께 검사하기로, 그러나 위의 옆집 주인은 세입자에게 떠 넘기면서 뻐팅기기까지, 세입자는 자주 부재 중이라 문앞에 전화번호 붙이고 기다리는 중이다. 

새로운 사실은 세상에 누수 업체가 이리도 많다니, 더더구나 누수전담 변호사까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경험치를 넓혔다. 

그 간 선거에는 투표지 부족도 있었고, 지금은 멕시코와 축구 경기 중이다. 심판이 편파적인 거 같다. 우리 편이 필요하다. 

그러고보니 이때까지 내 편이 네 편보다 많았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지금은 김연수X게이치로 '근접한 세계'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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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브루그만이 블로그에 쓴 짧은 에세이, 그는 각 에세이에서 성서적 주해 방법을 이 시대의 사회 문제 하나하나에 차례로 적용한다. 특히 [미국이 만든 가난(Poverty, by America)의 저자 매슈 데즈먼드의 분석 결과에 성서 본문을 연구하여 그 역사의 움직임과 실체를 알아내고 그 혼합물에 사회학을 덧붙인 다음, 다시 그 위에 성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활동을 오늘날 하나님의 활동에 결합하는 신학적 관점을 덧붙인(27쪽) 글이다. 

'공공선'과 '사사로운 이익'이라는 난제에서 발생하는 위기와 실제 현실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정책과 법규에서 믿음이 요구하는 이것 아니면 저것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교회는 언약에 기초한 경제의 주장이 우리가 공공 영역에서 해야 할 실천에 필수 불가결한 점을 자주 가르치지 못했던 것을 가르치고, 제시하지 못했던 해석을 제시(186-187쪽)하면서, 교회가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회 현실을 응시하여 구조적 경제 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37쪽)고 주장한다. 교회가 그저 자선 활동이나 하며 개인 차원에서 선행이나 하라고 독려하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될 정도로 현실의 위기가 절박하다고 고발하고 있다. 이제는 교회가 그렇게 안이한 도피에서 벗어나 공공의 장에서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고, 우리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길을 적극 모색하며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다(190쪽). 

또한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이들의 의무라고 알려준다. 특히 배제와 가난의 재생산에 참여할 때 부끄러움을 당연히 느껴야 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연대에 관하여 양심의 가책을 당연하게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이의 필요를 채우기에는 넉넉하지만, 모든 이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넉넉하지 않지만(10쪽), 우리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가진 것을 포기하고 공동선에 투자하고, 보이지 않는 분리와 수 많은 배제가 아닌 성실함과 연대가 필요하다. 특히 공익을 챙기는 삶에 집중하면서 공동선을 찾는 일을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국내외 문제들을 보면, 공동선보다는 개인, 국가의 이익을 기반하고 있다. 선거가 다가온다. 국민을 공감하는 위정자가 세워지길 기도한다. 우리의 선택을 통해 공동선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추신) 글을 참 쫀쫀하게 잘 쓰셨다. 어렵고, 새로운 사실에 부끄러웠지만 좋았다. 특히, 파라오, 솔로몬의 부요의 기반, 마가 복음 10장 부자 청년에 대한 말씀을 이제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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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ology, 다수의 문학 작품을 하나의 주제(안다)로 모아 출판한 작품집을 읽었다.

'안다'하면 깨닫고 느끼다 또는 두 팔로 나의 일부를 또는 상대를 끌어 당겨 품에 있게 하는 것이다.

제목을 '알고 있다'로 여겨 책을 집었는데, 그게 아니라 '안다'다. 하지만 서로 통한다고 본다.

안을 수 있는 행동은 많은 생각과 경험이 축적되어야 나오고, 안아주는 마음에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들어있다. 그래서 안으려는, 안기려는, 안기기 싫은, 안기를 거부하는 행위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안아 줄 수도 있고, 누구에게 안길 수도 있다. 그 간극의 이야기다. 

안아줘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들은 안겼던 기억으로, 두 팔을 벌려 포용하면서, 등을 토닥 토닥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 안고 살아가는 건 무엇일까도 떠오른다. 

홍상수 '그녀가 돌아온 날' 영화를 보았다. 연기를 중단했던 배우가 오랫만에 독립 영화에 출연하여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연기 수업에 간다. 그 곳에서 세 번의 인터뷰를 복기하고 재현하는 데 정작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포장과 형식적인 대답, 알지 못하고 한 말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한 말도 기억 못하고 불완전한 데 너는 많은 해석에 해석을 더하여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난 진심을 말하고, 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송선미 연기가 돋보였다.   

Ps, 어린이날 생일이 지났다. 올해도 축하와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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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구입한 책, 어렵다.

생일이 다가오면 기쁘기보다는 아련한 슬픔이 앞선다. 하지만, 

태어난 날을 양력으로 기억해 준 부모님, 그래서 늘 어린이 같아야 될 거 같다. 

시집詩集을 엄마에게 바친다는 시인의 말처럼 생일에는 부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엄마를.

아직도 사는 게 서툰 거 같은 데, 도대체 산다는 거에 정답은 어디에 있는 거야? 에서, 

시인이 '혼잣말(132쪽)'로 지금은 말도 안되지만 결코 우리가 살아내지 못할 그러한 시대를 살아낸 엄마를 회상하고 존경하면서, 엄마와 같은 나이가 들어서야만 알 수 있는 거라는 독백으로 답을 얻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오늘을 살피는 다정함으로부터, 평평으로 (39쪽)' 만들어가는 시간에는 아주 많은 수고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배꼽에서 탯줄이 자라 엄마에게 닿을 때까지(104쪽)', 아가야, 너도 수고가 많았다로 쓰담쓰담, 토닥토닥 해 준다.



'완경기'


혼잣말.

대체 엄마는 이 혹독한 시기를 어찌 건너간 거야?

혼잣말.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어 이제야 간신히

혼잣말.

집, 무덤, 길, 벽, 꽃, 열매, 때를 안다는 건 외로운 일이로구나

중얼거린다, 이제는 만질 수 없는 엄마를 쓰다듬으며

할머니가 되는 건 위대한 일이었어!

걷자, 걷자, 한 걸음만 더 걷자,

여기까지 와야만 알 수 있는 거였어!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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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기념 티저 시집에는 시인들의 얼굴까지 있다. 시를 읽으며 상상했던 시인의 모습을 보다니, 편견을 또 한 번 깬다. 시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전제 하에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도 있다. 이러한 발상이 참 웃긴 이야기지만, 시인의 발생에 대하여 신비를 품고 있었나 보다.    

부제가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그 말이 맞다. 그들의 아름다움이 글이 되어 내게로 왔다.

어디를 펼쳐도, 누구의 시와 산문을 읽어도,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괜찮다를 동시다발로 연발하고 있으니, 딱 집어낸 말에서 들킨 마음에는 질투까지 났다.  

부모님을 만나고 왔다. 말의 틈새를 이용하여 아들과 같이 살면 안될까,를 살짝 얹고, 이 딸 저 딸로 내달리는 엄마의 말에서는 한영옥의 시가 들어 있다.

눈꺼풀로는 볼 수 없지만 선명하다고 우기고 있는, 우리의 기억들을 맞춰보면서 서로의 불안을 잠재우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지만, 이쯤 되면 아무것도 지긋지긋해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 시인들이 필사의 노력으로 그리 말하고 있으니,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96번째와 88번째의 봄 날에 있는 부모님을 보고 오면 진한 소원도 빌어야 하고, 서로가 사랑이라 부르는 단단한 매듭도 완성해야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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