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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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중략)
"군인한텐 첫째도 둘째도 이거예요. 피.아.식.별."
김춘영이 내 팔을 잡은 건 그때였을 것이다. 통창에 비친 김춘영의 모습을 보게 된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사람들으느 남자가 던진 피아 식별의 그물에 순간적으로 갇힌 채 통창에 반사된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31쪽, 최은미 ‘김춘영‘)

"그가 생의 어느 지점에 있는 기억의 습격을 받았는지" 김춘영의 머리가 하룻밤 사이에 새고 그녀의 몸에서 소변이 흘러나온다. 그 소변의 작은 강이 두 여성의 무릎을 적신다. 면담자와 구술자가 소변 강으로 연결된다. 구술자가 오랜 시간을 참아온 배뇨 욕구의 방출에 면담자가 산파 역할을 한다. 면담자는 이제 박선생이 아니라 박정윤이 되며, 피아 식별이 없어졌던 순간들. 탄광촌 내 여자 광부들이 압축기실에서 보낸 목욕 시간에 망을 보던 김춘영의 면담 기록이 환기된다. 상상하고 그려낼 필요가 없는 그냥 모두가 발가벗은 목욕 시간의 더운물이 이들을 하나로 만든다. 피, 아 구별이 없는 어울림의 장면에는 분명 소란스러운 웃음이 있었을 것이다. 김춘영과 박정윤 두사람이 각자의 차이를 넘어 한 밤의 여러 단계를 서로 서두르며 혹은 지연하며 목욕탕 모임에 참여하는 오독의 착각을 한다. (46쪽, ‘김춘영‘에 대한 최윤 리뷰 중)

얘, 너 말이야. 이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아?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증오했고, 또 무엇을 잊지 못했는지. 어떤 미련을 갖고 살았는지 그걸 다 알아? 알면서도 이러는 거야? (74쪽, 강화길 ‘거푸집의 형태‘)

이모는 그 돈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해줄 것 같았다. 그래, 사랑. 처음부터 나를 사랑한 적이 없기에. 그 돈을 받고서, 얼마든지 내게 돌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뭐였을까. 어떤 형태였을까. (중략) 어느 날 오랜 사랑이 확 뒤집어졌다. 그래, 그렇게 되었다. 마치 거푸집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마음이 내 가슴에 꽉 박혔다. 이모의 모든 선택이 우스워졌다. (중략) 이모, 나 그래서 파혼했어. 그 사람이 이모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싫어서. 한순간이나마 나와 이모를 자매 같다고 느꼈다는 것이 싫어서.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싫어졌어. (97-99쪽, 강화길, ‘거푸집의 형태‘)

배신으로 얼룩진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화자는 왜 짜릿한 승리의 예감에 사로 잡히는가. 어째서 이모와 자신이 "마치 꼭 거푸집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고 확신하는가. (중략) 이모는 조카의 삶에 자신의 삶을 덧대어 서사를 새로 만들어냈다. (중략) 화자만이 이모를 일방적으로 갈망한 것이 아니라, 이모 역시 화자의 삶을 욕망하고 동일시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는 사랑의 전율로 진동한다. (114쪽, ‘거푸집의 형태‘에 대한 강지희 리뷰 중)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겹쳐놓는 방식에는 추락을 겪은 자들만 아는 결핍과 인정 욕구가 깃들어 있다. 서로를 탐내고 배반하며 잔혹하게 굴었지만, 그들은 결국 실패와 경멸을 공유하면서 구분 불가능한 신체가 된다. (중략) "못 생긴 게"라 중얼거리는 화자의 마지막 말은 자기혐오를 거쳐야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자의 뒤늦고 뜨거운 고백이다. (115-116쪽, ‘거푸집의 형태‘에 대한 강지희 리뷰 중)

어쩌면 은율은 그때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자기를 가지려고 딸의 팔다리가 찢어지거나 말거나 죽어라고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고. 실은 먼저 놓을 순간을 노리고 있는 거라고. 누군가 먼저 손을 놓으면 동시에 나자빠지겠지. 그리고 곰곰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먼저 손을 놓아버려 동시에 자빠진다면 쓰러지는 건 둘일까, 셋일까, 혹은 하나일까. 그후 이십 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모든 게 달라졌다. 심지어는 기억조차도. 더 심지어는 기억 속의 사실조차도. (128-129쪽, 김인숙,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유자는 사기꾼 최와 연애를 했던 게 아니었다. 그러나 곧이어 정말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아니라면 뭐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죽을 만큼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온몸이 뜨거운 프라이팬에 볶이는 듯 펄펄 뛰게 화가 나던 마음이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자글자글 끓었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없어서 자꾸 설명을 하려고 들게 되는 건가. (131쪽, 김인숙,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그런데도 무섭다고. (중략) 은율에게는 하지 않았으나 최에게는 했던 말. 그 사기꾼이 얼마나 모든 말을 다 들어주는 척했던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술술 나와서. 그래서 했던 말들. 그런데 나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중략) 최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만 썰라는 듯이. 그러곤 말했다. 누구나 무서워. 그리고 또 말했다. 나는 안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니. 너는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가끔은 정말 무서워. 나도 내가 정말 무서워. (143쪽, 김인숙,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스페이스 섹스올로지]는 한 개인이 수십 년간 축적해온, 삶에의 충실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을 망측하게도 영도零度 급락시킨다. 내부에 순응하려 오랜 시간 감추고 인내했던 의태擬態的 삶의 껍질을 뜯어내어 어리둥절하게 한다. 작가는 감각적인 문장으로 이를 교묘하게 자방낸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를 모르는 채 다만 휘둘림으로써 이것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러니 누군들 망측하지 않을까. 누군들 무섭지 않을까. 이 망측함과 무서움을 모른다면 외려 더 망측하고 슬프지 않을까. (152쪽, ‘스페이스 섹스올로지‘에 대한 구효서 리뷰 중)

이런 일련의 일을 통해 그녀는 친절과 선의가 완성되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음을 배웠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친절과 선의는 있는 그대로 주고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유효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염되고 변질되고 공중분해되면서 자신 혹은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누구나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취약했고 위험했고 다루기 까다로웠다. (161쪽, 김혜진, ‘빈티지 엽서‘)

"그냥 별일도" 아닌 일을 그녀는 그만두기로 한다. 친절과 선의가 완성되는 조건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적절해 보이는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아서, 두 사람의 공통된 감정의 기반은 사라져버린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헤어지던 날 그는 엽서 뭉치 중에 하나를 기념으로 그녀에게 건넨다. 그건 그녀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으로 그녀는 남편 앞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건 사소한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알아야 해요." (중략) 이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일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 그래서 이 해석할 수 없는 엽서는 버릴 수 없다. (187쪽, ‘빈티지 엽서‘에 대한 조정란 리뷰 중)

즉 갑작스러운 혹은 갑작스러워 보이는 불행은, 다른 종류의 불행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사실상 매일매일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이다. (198쪽, 배수아, ‘눈먼 탐정‘)

소설 속 세계가 그러하듯 스스로가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들을 내어놓지 않고는 이 세계를 여행할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철저한 이방인 혹은 타인으로 경험한다. 익숙한 인식이나 감저으이 회로를 이탈하며 헤매는 일은 미지에의 모험에 근사하다. 그러하니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일(소유)이라기보다, 자기(라고 여겨지는 것)를 내어놓고, 약간의 불안과 설렘을 감각하며 낯선 세계의 윤곽을 더듬어보는 사건에 가깝다. (227쪽, ‘눈먼 탐정‘에 대한 김미정 리뷰 중)

많은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문법을 지키지 않고 단어만 나열해도 뜻이 통한다. 빈틈은 표정이나 손짓으로 채울 수 있다. 나를 무뚝뚝하거나 퉁명스러운 사람으로 오해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언어와 국적과 성별이 뒤섞인 환승 터미널에서 나는 모국어가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자유롭다. (244쪽, 최진명, ‘돌아오는 밤‘)

환승 비행장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으므로 이곳의 겨울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는 이 ‘겨울을 경험하러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며 ‘오로라 현상‘을 또 ‘검색‘한다. (중략) 이처럼 인간과 삶, 인간과 세계 사이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매개 기술에 의하여 주체의 기능이 퇴화하면서 개인은 "비행기와 터미널이라는 커다란 공간에 갇혀서 수화물처럼 옮겨지는 기분‘의 수동적 상태에 빠진다. (277쪽, ‘돌아오는 밤‘에 대한 김화영 리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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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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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계획대로 뚜벅뚜벅 가고 있으면서도 가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며 의도적으로 내 여정을 오역했다. 지쳐서, 다 놓고 쉬고 싶어서. (47쪽)

"난 왜 이렇게 못생겼어?"
엄마는 단호하게 답한다.
"넌 못 생기지 않았어."
어기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런 대답을 하리라.
"엄마는 내 엄마니까 그러는 거잖아."
엄마는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다.
"내 생각은 엄마라서 안 중요해?"
"안 중요해!"
(중략)
"엄마의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한 거야. 내가 널 제일 잘 아니까."
하긴 그렇다. 엄마의 생각이니까 안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엄마의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하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알고 제일 아끼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어마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 옳다. (88-89쪽)

"I‘m not defined by you."
(나는 당신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중략)
가령 어떤 사람이 나를 고구마라고 부른다 해서 내가 고구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나를 형편없는 번역가, 못난 부모라고 한다 해서 내가 형편없는 번역가나 못난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말엔 날 정의할 권위나 권리가 전혀 없다. (90-91쪽)

어떤 논리가 있든 어떤 사정이 있든 내 마음에 안 들면 틀렸다고 주장하는 태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면 대개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목소리 큰 사람과 싸우는 건 피곤한 일이거든. (157쪽)

자식들은, 특히나 궁하게 자란 자식들은 그저 부모의 인생이 불행했을 거라고 넘겨짚는다. 하지만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대로 희로애락이 있었을 거다. 어떻게 나는 그 시절을 한번 물어볼 생각도 않고 당신의 불행을 멋대로 단정했을까. 자고로 번역가라면 원문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노력은 기울었어야 했다. (167-168쪽)

반복된 농담이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174쪽)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의 행동을 번역하다 보면 이런 오역을 저지르기 쉽다. 마치 영어 번역을 해야 하는데 일어 사전을 들고 번역하는 것과 같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번역할 땐 어른 사전을 잠시 치우고 아이 사전을 펼쳐야 한다. (215쪽)

가난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말은 그들이 그저 미련했기에, 노력하지 않았기에 가난하게 죽는다고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련하지도 않을뿐더러 몸을 갈아가며 노력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죽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많이 봤다. (중략) 가난은 쉽게 죄악시할 대상도, 자랑할 대상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실존적이고 실제적인 비극이다. (223쪽)

성공은 ‘오로지 운‘도 아니고 ‘오로지 노력‘도 아니다. 개화할 정도로 충분히 쌓아 온 노력이 좋은 때를 만나 결실로 구체화하는 게 성공이 아닐까. 그러니 남들이 운이 먼저라고 하든, 노력이 먼저라고 하든, 또 다른 뭔가가 먼저라고 하든 일단은 멈춰서 고민하기보다 뚜벅뚜벅 제 길을 갔으면 좋겠다. (중략) 누가 뭐라건 자기 의지로 걸아야 한다. 외부에서 유발한 동기는 가치도 효용도 없다. 내부에서 유발한 동기만이 나를 투과하지 않고 남는다. (233쪽)

애초에 좋은 위로의 말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격과 식을 갖춘 말이야 있겠지만 온전히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마법 같은 위로의 말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이번에도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종일 먹먹하다. (중략) 개인적인 행복과 타인의 불행을 동시에 마주하는 순간에도, 때로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감사함으로 삶을 이어간다. 삶은 이토록 모순적이고 불가해하다. 감히 번역해 낼 수 없을 만큼. (272쪽)

나의 온기를 나누거나 타인의 온기를 인식하는 것은 감각의 영역 같기도 하다. 나의 나의 온기를 나누거나 타인의 온기를 인식하는 것은 감각의 영역 같기도 하다. 나의 온기가 필요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외부의 손길이 계산 없는 온기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감각이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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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도 결코 이러지 않았다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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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린다 리는 더러운 지중해 물속에 발목을 담그고 첨벙거렸다. 내가 지루해하는 것이면 뭐든 즐기고, 내가 즐기는 것이면 뭐든 지루해하는 여자 같으니. 우리는 완벽한 짝이었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견딜 만하면서도 견딜 수 없는 거리distance가 우리를 묶어주었다. 우리는 매일 만났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할 기회도 없었다. 완벽했다. (20-21쪽)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나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 목록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사교댄스. 롤러코스터 타기, 동물원 구경, 소풍 가기, 영화 보러 가기, 천문관 관람, 텔레비전 시청, 야구 경기 관람 등. 장례식, 결혼식, 파티, 야구장, 자동차 경주, 시 낭송회, 박물관, 집회, (중략) 스포츠 경기에도 가기 싫다.... 또한 해변, 수영, 스키, 크리스마스, 새해. 7월 4일 독립기념일, 록 음악, 세계사, 우주 탐험, 반려동물, 축구, 성당, 위대한 예술 작품에도 관심 없다. 거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남자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글을 쓰고 또 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 햄버거를 씹는 강간범의 생각과 기분, 공장 근무자의 생활, 길바닥의 삶, 빈자와 불구자와 미치광이의 방 같은 하찮은 것들을 쓴다. 나는 그런 하찮은 것들을 많이 쓴다. (54쪽)

나는 시 낭송 사이사이 청중과 대화를 나누었다. (중략) 독일 군중에겐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그간 수많은 낭송회를 가졌다.(중략) 낭송회 청중은 특정한 부류의 시를 선호했는데, 그들은 웃기는 시를 좋아했다. (중략) 그런데 함부르크 군중은 이상했다. 내가 웃기는 시를 읋으면 웃음을 터뜨렸지만 심가한 시를 읋으면 열렬히 박수를 쳤다. 정말이지 다른 문화였다. (중략) 내 시는 지적이지 않았지만, 일부 청중은 진지했고 열광했다. 군중에게 내 시를 이해받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정신이 말똥해져 술을 더 마셔야 했다. (72-73쪽)

한 청년은 계속 내 얼굴에 마이크를 디밀었고, 녹음테이프는 계속 돌아갔다. 그는 나에게서 깊이 있는 것을 끌어내려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내 얼굴에 디민 이 마이크만 없다면 그렇겠지, 멍텅구리 씨...." "여성을 싫어합니까?" "아이들만큼 싫진 않아." "인생의 의미는 어디 있을까요?" "부정否定하기" "그럼 인생의 기쁨은?" "자위행위" "그럼 인생의 참맛은?" "반값 세일" 그날 밤이 어떻게 파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13-114쪽)

나는 느끼는 대로 감정에 의해 행동한다. 내 감정은 다치고, 고문당하고, 저주받고, 길 잃은 사람들에게 향한다. 동정심이 아니라 형제애의 발로에서. 나 역시 길을 잃었고, 혼란스러복, 저열하고, 쪼잔하고, 겁 많고, 비겁하기 때문이다.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반짝 친절을 베풀 뿐이다. (115쪽)

인생이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척 연기하려고 배웠을 뿐이다. 간혹 자살 사건이 일어나거나 누군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대다수의 대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만사 즐거운 듯 계속 연기한다. (121쪽)

바벳이 부엌에 들어가 그 물고기(강꼬치고기)를 가지고 나왔다. "이것 좀 봐! 이 이빨 좀 보라고! 엄청난 놈이야!" 그의 손에 그것이 매달려 있었다. 죽은 몸으로. 길고 날씬한 전직 킬러가 우리 눈 앞에. 바로 앞에 있었다. 놈은 죽어서도 아름다웠다. 한 치의 오류도 없었고, 한 점의 과다한 지방도 없었다. 거짓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창조물. 찢고, 뜯고, 둘러보고 헤엄치는 삶. 도덕도, 성경도, 친구도 없는 그저 돌진하는 삶. (153쪽)

독일은 내가 태어난
곳.
할리우드는 내가 사는
곳.

나는 독일에 갈
것이다
말들과 이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우드 앤더슨이 우리와 동행할
것이다.
양식이 떨어졌을 때
그의 책은 내게
양식이었다.

-‘다 함께‘ 중에서(176쪽)

독일인들은 1914년 이후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패했다. 그렇게 패배자가 되어가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의 과묵하고 자제하는, 특별히 눈에 띌 필요를 느끼지 않는 섬세함은 내 기운을 돋우었다. 자신과 타인을 인내하는 무관심이라니.

만하임 기차역에서 맥주꾼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믿는 무엇이 선포하고 성취하는 것을 목도한다. 역사의 한 장과 삶의 한 현장에 선 그들이 시연하는 것은, 삶이란 때때로 지독하게 다가오지만 어떨 때는- 어쩌면 자주 -아득바득 악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맥주 맛이 좋고, 기차는 올 테니까.

-‘기차역‘ 중에서(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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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5 소설 보다
강보라.성해나.윤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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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받은 번역 대본을 읽으며, 이 연극이 자신이 생각하는 배우의 일 -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 -을 완전히 거스르는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다. (16쪽)

어쩌면 소설을 쓴다는 건 무심결에 흘려보낸 기억의 틈을 더듬더듬 메우는 일인지도요. (61쪽)

아주 좋은 사람들. 그의 말을 나도 미온하게나마 수긍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고 수고를 마다 않고 마음까지 내어주는 온정 넘치는 이들이었다. (101쪽)

이해의 온기를 보여주는 순간, 바로 그 이해의 얄팍함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요.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믿는 순간이 몰이해의 결과일 수도 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순간이 이해의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115쪽)

하늘이 너무 아름답잖아.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자연스러운 것들은 좀 수상해. 이유를 알면 수상함이 풀려? 흠, 꼭 그렇지는 않아. (152쪽)

슬픔이나 분노, 사랑, 질투, 부끄러움, 죄책감과 같은 마음에는 모종의 불편함이 앞서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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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개역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까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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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숲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중략) 말 그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거기에서는 당신에게 일어날 수가 있다. (19쪽)

수개월 동안 이 날을 위해서 기다려왔던 것이다. 저기에 무엇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59쪽)

숲은 어느 공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은 당신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중략) 술은 거대하면서도 특징 없는 게다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다. (74쪽)

나는 살다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과 얼마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 신의 섭리라는 것을 안다. (84쪽)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미터는 꽤 먼 길이고, (중략) 그리고 삶 역시 굉장히 단순하다.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날이 새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중략) 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고 필요한 것은 눈곱만큼도 없다. (중략) 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또 멀리 걸었어도 당신은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일 뿌니다. 숲이다! 어제도 거기에 있었고, 내일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광대무변한 하나의 단일성! (112-113쪽)

함부로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야성 그대로인 그 숲은 대책없는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거기서 죽고 싶다. (174쪽)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찔끔거리지 않고 계속 꾸준히 정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생긴 것이다. (274쪽)

미국에서는, 제기랄, 아름다움은 차를 몰고 가야 마주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고 자연은 양자택일적 제안-탁스 댐이나 수많은 다른 곳에처럼 성급하게 정복하려고 하거나 애팔래치아 트레일처럼 인간과 동떨어진 곳으로 신성시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어느 쪽이든 사람과 자연이 서로가 이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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