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뭡니까?" (중략) "군인한텐 첫째도 둘째도 이거예요. 피.아.식.별." 김춘영이 내 팔을 잡은 건 그때였을 것이다. 통창에 비친 김춘영의 모습을 보게 된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사람들으느 남자가 던진 피아 식별의 그물에 순간적으로 갇힌 채 통창에 반사된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31쪽, 최은미 ‘김춘영‘)
"그가 생의 어느 지점에 있는 기억의 습격을 받았는지" 김춘영의 머리가 하룻밤 사이에 새고 그녀의 몸에서 소변이 흘러나온다. 그 소변의 작은 강이 두 여성의 무릎을 적신다. 면담자와 구술자가 소변 강으로 연결된다. 구술자가 오랜 시간을 참아온 배뇨 욕구의 방출에 면담자가 산파 역할을 한다. 면담자는 이제 박선생이 아니라 박정윤이 되며, 피아 식별이 없어졌던 순간들. 탄광촌 내 여자 광부들이 압축기실에서 보낸 목욕 시간에 망을 보던 김춘영의 면담 기록이 환기된다. 상상하고 그려낼 필요가 없는 그냥 모두가 발가벗은 목욕 시간의 더운물이 이들을 하나로 만든다. 피, 아 구별이 없는 어울림의 장면에는 분명 소란스러운 웃음이 있었을 것이다. 김춘영과 박정윤 두사람이 각자의 차이를 넘어 한 밤의 여러 단계를 서로 서두르며 혹은 지연하며 목욕탕 모임에 참여하는 오독의 착각을 한다. (46쪽, ‘김춘영‘에 대한 최윤 리뷰 중)
얘, 너 말이야. 이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아?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증오했고, 또 무엇을 잊지 못했는지. 어떤 미련을 갖고 살았는지 그걸 다 알아? 알면서도 이러는 거야? (74쪽, 강화길 ‘거푸집의 형태‘)
이모는 그 돈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해줄 것 같았다. 그래, 사랑. 처음부터 나를 사랑한 적이 없기에. 그 돈을 받고서, 얼마든지 내게 돌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뭐였을까. 어떤 형태였을까. (중략) 어느 날 오랜 사랑이 확 뒤집어졌다. 그래, 그렇게 되었다. 마치 거푸집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마음이 내 가슴에 꽉 박혔다. 이모의 모든 선택이 우스워졌다. (중략) 이모, 나 그래서 파혼했어. 그 사람이 이모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싫어서. 한순간이나마 나와 이모를 자매 같다고 느꼈다는 것이 싫어서.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싫어졌어. (97-99쪽, 강화길, ‘거푸집의 형태‘)
배신으로 얼룩진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화자는 왜 짜릿한 승리의 예감에 사로 잡히는가. 어째서 이모와 자신이 "마치 꼭 거푸집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고 확신하는가. (중략) 이모는 조카의 삶에 자신의 삶을 덧대어 서사를 새로 만들어냈다. (중략) 화자만이 이모를 일방적으로 갈망한 것이 아니라, 이모 역시 화자의 삶을 욕망하고 동일시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는 사랑의 전율로 진동한다. (114쪽, ‘거푸집의 형태‘에 대한 강지희 리뷰 중)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겹쳐놓는 방식에는 추락을 겪은 자들만 아는 결핍과 인정 욕구가 깃들어 있다. 서로를 탐내고 배반하며 잔혹하게 굴었지만, 그들은 결국 실패와 경멸을 공유하면서 구분 불가능한 신체가 된다. (중략) "못 생긴 게"라 중얼거리는 화자의 마지막 말은 자기혐오를 거쳐야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자의 뒤늦고 뜨거운 고백이다. (115-116쪽, ‘거푸집의 형태‘에 대한 강지희 리뷰 중)
어쩌면 은율은 그때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자기를 가지려고 딸의 팔다리가 찢어지거나 말거나 죽어라고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고. 실은 먼저 놓을 순간을 노리고 있는 거라고. 누군가 먼저 손을 놓으면 동시에 나자빠지겠지. 그리고 곰곰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 먼저 손을 놓아버려 동시에 자빠진다면 쓰러지는 건 둘일까, 셋일까, 혹은 하나일까. 그후 이십 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모든 게 달라졌다. 심지어는 기억조차도. 더 심지어는 기억 속의 사실조차도. (128-129쪽, 김인숙,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유자는 사기꾼 최와 연애를 했던 게 아니었다. 그러나 곧이어 정말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아니라면 뭐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죽을 만큼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온몸이 뜨거운 프라이팬에 볶이는 듯 펄펄 뛰게 화가 나던 마음이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자글자글 끓었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없어서 자꾸 설명을 하려고 들게 되는 건가. (131쪽, 김인숙,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그런데도 무섭다고. (중략) 은율에게는 하지 않았으나 최에게는 했던 말. 그 사기꾼이 얼마나 모든 말을 다 들어주는 척했던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술술 나와서. 그래서 했던 말들. 그런데 나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중략) 최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만 썰라는 듯이. 그러곤 말했다. 누구나 무서워. 그리고 또 말했다. 나는 안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니. 너는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가끔은 정말 무서워. 나도 내가 정말 무서워. (143쪽, 김인숙,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스페이스 섹스올로지]는 한 개인이 수십 년간 축적해온, 삶에의 충실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을 망측하게도 영도零度 급락시킨다. 내부에 순응하려 오랜 시간 감추고 인내했던 의태擬態的 삶의 껍질을 뜯어내어 어리둥절하게 한다. 작가는 감각적인 문장으로 이를 교묘하게 자방낸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를 모르는 채 다만 휘둘림으로써 이것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러니 누군들 망측하지 않을까. 누군들 무섭지 않을까. 이 망측함과 무서움을 모른다면 외려 더 망측하고 슬프지 않을까. (152쪽, ‘스페이스 섹스올로지‘에 대한 구효서 리뷰 중)
이런 일련의 일을 통해 그녀는 친절과 선의가 완성되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음을 배웠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친절과 선의는 있는 그대로 주고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만 유효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염되고 변질되고 공중분해되면서 자신 혹은 상대를 다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누구나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취약했고 위험했고 다루기 까다로웠다. (161쪽, 김혜진, ‘빈티지 엽서‘)
"그냥 별일도" 아닌 일을 그녀는 그만두기로 한다. 친절과 선의가 완성되는 조건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적절해 보이는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아서, 두 사람의 공통된 감정의 기반은 사라져버린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헤어지던 날 그는 엽서 뭉치 중에 하나를 기념으로 그녀에게 건넨다. 그건 그녀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으로 그녀는 남편 앞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건 사소한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알아야 해요." (중략) 이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일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 그래서 이 해석할 수 없는 엽서는 버릴 수 없다. (187쪽, ‘빈티지 엽서‘에 대한 조정란 리뷰 중)
즉 갑작스러운 혹은 갑작스러워 보이는 불행은, 다른 종류의 불행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사실상 매일매일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이다. (198쪽, 배수아, ‘눈먼 탐정‘)
소설 속 세계가 그러하듯 스스로가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들을 내어놓지 않고는 이 세계를 여행할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철저한 이방인 혹은 타인으로 경험한다. 익숙한 인식이나 감저으이 회로를 이탈하며 헤매는 일은 미지에의 모험에 근사하다. 그러하니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손에 넣는 일(소유)이라기보다, 자기(라고 여겨지는 것)를 내어놓고, 약간의 불안과 설렘을 감각하며 낯선 세계의 윤곽을 더듬어보는 사건에 가깝다. (227쪽, ‘눈먼 탐정‘에 대한 김미정 리뷰 중)
많은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문법을 지키지 않고 단어만 나열해도 뜻이 통한다. 빈틈은 표정이나 손짓으로 채울 수 있다. 나를 무뚝뚝하거나 퉁명스러운 사람으로 오해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언어와 국적과 성별이 뒤섞인 환승 터미널에서 나는 모국어가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자유롭다. (244쪽, 최진명, ‘돌아오는 밤‘)
환승 비행장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으므로 이곳의 겨울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는 이 ‘겨울을 경험하러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며 ‘오로라 현상‘을 또 ‘검색‘한다. (중략) 이처럼 인간과 삶, 인간과 세계 사이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매개 기술에 의하여 주체의 기능이 퇴화하면서 개인은 "비행기와 터미널이라는 커다란 공간에 갇혀서 수화물처럼 옮겨지는 기분‘의 수동적 상태에 빠진다. (277쪽, ‘돌아오는 밤‘에 대한 김화영 리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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