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뜨개를 알게 되어 수 시간을 뜨개하였는데, 저자가 말한 '들뜸'의 기분을 다시 한껏 누렸다.
저자가 뜨개에 입문하고 한땀씩 과정을 적어나간 글에서 나의 지난 모습을 보았다. 뜨개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할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 간의 수도 없이 셀 때마다 틀린 콧수, 공포의 푸르시오가 압도적으로 밀려오지만, 그럼에도 완성작을 볼 때, 내 맘대로 만든 결과물을 볼 때 하나의 작품 같았던 기억이 났다.
뜨개를 멈춤하였는데, 허즈번이 위스키와 와인을 수집하면서, 알록달록 뜨개실이 들어 있는 공간을 비워줘야 했다. 이렇게 많은 뜨개실이 있다니, 요즘은 실 파먹기 중이다.
이 참에 나의 뜨개도 정리해 보면,
뜨개를 knitting(대바늘), crochet(코바늘) 중 무엇으로 할까에서, 바늘 굵기를 정한다. 대바늘은 줄 바늘을 사용하고 소매는 장갑 바늘을 사용한다. 코바늘은 실을 더 가는 걸 사용해야 한다. 대바늘의 두배가 들어간다.
뜨개바늘도 셋트부터 낱개의 바늘까지, 심지어 작은 줄바늘은 소매가 두개라고 호수별로 각 두개씩이다. 쇠바늘보다 나무바늘을 더 선호한다. 사각사각 소리가 좋다. 기타 장비는 마커, 가위, 줄자, 게이지자, 와인더까지 있다. 여기서 예쁜 마커와 가위가 압도적이다.
뜨개실도 색상별, 용도별로, 이거 저거 구매한 게 어마했다. 주로 매듭 만들기 싫어 콘사를 사용한다.
뜨개 도안은 유명한 Ravelry(회원가입도 쉽고 써칭도 편리함, 이 사이트 명을 어떻게 읽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저자가 '라벌리'라고 하니, 이제 나도 정했다)와 Yarnspirations를 주로 이용한다.
뜨개 책도 몇 권 샀다. 도안은 서술형과 차트형에서, 그림은 눈이 나빠 보기가 어렵고 글로 씌여진 서술형이 좋다. 그래서 라벌리 도안이 좋다.
하지만 나는 게이지와 스와치는 내지 않고 실이 알려주는 게이지로 계산하여 코를 만든다. 도안책은 바늘크기를 바꾸거나 실의 굵기를 조정하여 뜨개를 한다. 핏하면 핏한대로, 오버핏은 오버핏대로 그냥 입던지, 그 옷에 맞는 이들에게 선물로 준다.
뜨개에는 바텀업과 탑다운이 있는데, 주로 탑다운을 이용한다. 콧수를 적게 잡아서 몇 번이나 세는 것을 줄일 수 있다. 하나의 통으로 뜰 수 있고, 조각내어 연결하기도 하는데, 연결이 무척 어려워 연결하고 나서는 쿠션으로 남는 경우가 몇 개나 있다.
코를 잡을 때도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long tale cast on을 주로 사용하는 데, 코 잡는 실을 가늠하기가 내게는 어렵다. 많이 남는 게 싫어서 몇 번을 코 잡는다. 그리고 바텀업 옷을 뜰 때는 tubular cast on, 탑다운 목둘레와 cuff down 양말은 german twisted cast on을 이용한다. 그리고 스웨터와 가디건, 양말뜰 때 꼭 필요한 wrap&turn, german short row를 적용한다.
뜨는 방법은 메리야스뜨기, 짧은뜨기, 긴뜨기가 기본이 되면서 다양한 무늬를 변주곡처럼 넣어 주면 된다. 정말 무늬가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그런데 두 개를 동일하게 떠야 하는, 소매와 양말 같은 부분이 싫다. 코수도, 단수도, 수 번을 세어야 동일해지니, 이게 단점이다. 그러나 두 팔이 있어야 뜨개를 할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해야 한다.
마무리에서 돗바늘을 이용하면 마지막 코로 갈수록 바늘에 걸린 실이 흐늘해져(?) 별루였다. 덮어씌우기 마무리는 너무 쫀쫀해져, 나는 주로 코바늘을 이용하여 나름대로 느슨하게 마무리한다.
그런데 뜨개를 하다보면 문어발이 된다. 스웨터, 가디건, 양말 등등이 바늘에 걸려 진행 중에 있다.
뜨개인들이 모여서 함께 뜨는 함뜨, 뜨개의 초보자 뜨린이, 뜨개에도 권태기가 있다면, 뜨태기 등의 말도 있다.
털실은 조금씩 날리고, 중독이니 계속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이 실을 어떡할거야, 팔기에는 너무 아깝다. 실을 고르기까지 많은 고민과 과정이 떠오르니, 암튼 느리게 떠 볼 예정이다. 정말 이 실을 다 소모하면 그만둘거야, 다짐한다.
저자가 말한 뜨개에서 아쉬운 점, 칼로리 소모가 없다에 동의한다. 또한 시력이 나쁘고 손목이 얇은 나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저자처럼 침대 아래로 실이 굴러갈 때 코어에 힘을 주고 허리를 숙여 실을 줍는 데 얼마의 칼로리가 소모될까마는, 뜨개에서의 좋은 점이 훨씬 많다. 감정 정리와 안정감, 창의력, 성취력 등등으로 도움이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시간, 그 많은 돈, 그러한 노력을 들여 기성복을 사입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그러나 뜨개라는 행위는 감정, 이성, 정과 동적인 복합적인 활동이다.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을, 잘 살고 있음을, 행복하다를 가장 잘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글을 읽다 보면 저자의 행복한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녀의 느낌을 몇 십분, 수 백분 이해하고도 넘치게 된다. 나 또한 행복해진다.
그래도 과하면 안된다. 잠시 뜨개를 끊은 이유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추신)공효진이 입은 보디 가디건을 보고 뜬 옷을 자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