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몇 달이나 끌고 있는 누수 문제가 이젠 공유 부분으로 넘어가 외부 크랙를 공사하고 최소 한 달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기 저기 생각들을 정리했지만 메모지는 사라지고 남은 것도 글씨가 엉망이고, 내용은 뭐라는 소리야, 정도다.

그냥 지금 생각나는 대로 끄적인다.


1. 몇 시인가요?(존 버거 글/ 셀축 데미렐 그림)

모두에게 가장 공평하고,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 시간이리라. 그러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 차이로 시간의 질은 전혀 다르다. 

지금이라는 현재에 집중하기 보다는 어쩌지 못하는 지나 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마음이 많이 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허투루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하여 '앞으로 얻을 것'이 지금의 것'을 비운다(36쪽).

치열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후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족이 생기니, 그들로 인해 나의 시간이 달리 지나게 된다. 나 또한 그들의 시간에 한 몫하고 있지만, '지금'에 충실하다 보면 시간이 나의 삶을 말해 주리라. 

갑자기 취업한 며느리 덕에 손녀 돌보느라 출퇴근 중이다. 나의 직장 생활을 위해 수고한 친정 엄마의 노고가 이제야 실감난다. 며느리는 보고서 쓰듯 이거 저거를 톡톡 주문하지만, 아들을 위해서, 손녀가 예뻐서 오갔다.


2. 피아노에 관한 생각(김재훈 글)

피아노하면 대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갔을 때, 피아노 학원을 겨우 찾아서 배우게 했던 기억이 난다. 배우다 말다 반복하다 중학교 때 레슨비가 2만원 했던 거, 한 때는 피아노 전공까지 하고 싶었으나, 생일 선물로 받은 피아노, 70년대에 피아노가 있다니, 우리 집 장미 넝쿨 담장 너머로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던 체르니 연습곡과 월광, 비창까지, 귀에 맴돈다. 결혼 후 남편이 사 준 피아노가 애물단지가 되어 아직 버티고 있다. 친정에 가면 그 때의 피아노가 여전히 자매들과 마주한다.

피아노의 약한 피아니시모부터 강한 포르티시모까지 다양한 셈여림에서 인생을 알았는데, 특히 이음줄과 늘림표는 아직도 유효하고 현재는 안단테의 시간이다. 그러나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셀 수 없이 버려지고 있는 피아노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김재훈은 이렇게 버려진 피아노를 해체하여 합주 악기로 만든다.


3. 번역가의 일(양지윤 지음)

한 때 번역가가 되고 싶어 한영이나 영한으로 여러가지 시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미 서점에서 사라졌을 번역 책을 한 권이나 냈으니 소원은 푼 셈이다. 단어 하나하나, 심지어 주격 조사 하나에 들어 간 노력에 비해 번역료는 낮아도 너무 낮았다. 그러나 양지윤은 번역가의 길을 여전히 가고 있다. 그녀의 두근두근, 불안불안, 뿌듯뿌듯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과감히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서 멋짐을 보여주고 있는 양지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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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인가요?
존 버거 지음, 마리아 나도티 엮음, 셀축 데미렐 그림,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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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책을 쓰고 싶어진다
오롯이 시간에 관한 책을
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지,
왜 과거와 미래가
끊임없는 하나의 현재인지에 관한 책을.
모든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았던 사람은
그리고 앞으로 살 사람은, 지금을 살고 있다. (8쪽)

우리는 정치적 실행이란 것이 종종 베틀처럼 예상한 것과 예상치 못한 것 사이를 오가며 두 방향으로 베를 짠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20쪽)

자본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도록 강제되듯이, 끝없는 기대의 문화인 자본의 문화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얻을 것‘이 ‘지금의 것‘을 비운다. (38쪽)

순간의 경험이 깊을수록 더 많은 경험이 축적된다. 순간이 그처럼 오래 살아남는 이유가 그래서다. 흐르는 시간의 소멸이 저지된다. 살아낸 시간의 총량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나 밀도의 문제다. (60쪽)

기억의 수명에 비하면 어떤 생도 기이할 만큼 짧다.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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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에는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 히라노 케이치로의 '결정적 순간', 두 사람의 '크로스 인터뷰'가 들어있다. 

'우리들의 실패'는 어떤 사건에 연루된 누군가를 인터뷰한 후 이를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기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결정적 순간'은 고인이 된 사잔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하다 발견한 사진으로 윤리적 결단의 순간에 놓인 큐레이터가 화자이다.

두 작품은 안과 밖처럼 연결되어 있다. 전자는 이미 드러내어 폭로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고, 후자는 드러내기 보다는 파국을 알기에 고민하며 은폐로 나아간다. 

진실(옳고 그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순간에 있게 된다. 알아버렸기에 말을 해도, 말을 하지 않아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진실에 대한 이러한 딜레마가 '근접'하다. 

진실을 마주 했을 때 결정적 순간에서 정의 또는 용기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위해 많은 머뭇거림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서로에게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       

그 간 선택이라는 길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개인의 선택도 이리 다양한 데, 연결되어 있지만 그리 보이지 않는 다른 이의 선택까지, 우리의 삶은 이렇게 서로 '근접'하고 있다. 

크로스 인터뷰에서 김연수가 말한 '미래적 시점'에서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상상'을 할 수 있고, 무한한 버전의 미래라서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단'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최근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을 보면서, 이전 상황에서 어른들에게 사과나 교육 정도가 아니라 적합한 징계나 벌이 우선 되었더라면, 학생들의 선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슬픈 현실이다.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우리 선수들의 둔한 몸놀림이 아쉬웠다. 당연한 활동이 없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음모가 파생될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리더'의 역할이 가장 크고, 결과에는 리더가 책임져야 한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솔선수범, 언행일치 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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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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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중략) 그때 큰 집이 조금만 도와줬더라도 자신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다는 말이었지요. (중략) 아버지는 서울에 남았다면 자신이 기자가 됐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서울 아저씨는 아버지가 가보지 못한 미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35쪽)

제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쉰 살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열네 살의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우리는 이 세계를, 시간을, 삶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 시간과 공간 속에서 깨어 있는 채로 경험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눈을 감고 잠든 채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60쪽)

나는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보이지 않던 것을 보려는 건가. 이미 보이던 것에 집착하려는 건가. 하지만 기억 속 필름에 확실히 정착된 건 없었고, 필름도 없는 채 알아채지 못했던 무언가를 의식에 현상하려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자. (110쪽)

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온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 있다면 지금 이 세계의 나를 잃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피해자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전시회 성공을 기뻐하는 나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나도,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 문제는 미래 세대와도 공유해야 한다. (167-168쪽)

제(김연수) 소설에도 어떤 시점이 있다면 저는 ‘미래적 시점‘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과거의 일을 서술할 때 그 뒤의 미래까지도 다 알고 있다면 이미 기록된 과거는 수정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래는 끊임없이 갱신되니 과거 역시 끊임없이 수정될 것입니다. 무한한 글쓰기가 가능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중략) 무한한 버전의 과거는 무한한 버전의 미래를 품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미래만 가진 사람에게는 결단의 행위가 없을 것입니다. (중략) 무한한 버전의 미래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200-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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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말에서 상처 받은 자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을 골라 그저 작은 용기라도 주려고 애쓴 흔적이 들어있는 시집을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변명까지 하다니 살면서 나의 시간을 이리 헛되이 쓰고 있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일이라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눈 앞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이제야 알았다면, 너무 늦은 걸까. 책 뿐만 아니라 손에 잡히는 것도 마음이 닿는 것도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부유한 채로, 시간만 흘러간다. 

몇 달 동안 지속되는 천정 누수가 거듭된 위 집 검사에 의해 그 옆집으로 까지 관련되어 있다지만(이도 확실하지 않다. 검사 업자마다 실력 차가 있으니, 우리 돈 들여 검사까지 하여 이상 없다 하니, 검사도중 우리 옆집도 누수 중), 그 옆집은 세입자라 주인과 연락 또한 힘든 상황을 지나고 있다. 우리 옆집도 세입자라 우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곰팡이 냄새가 지독하고 기침과 스트레스 등등으로 대야에 떨어지는 물을 아침마다 재고, 천정과 거실 벽의 물 번짐 정도를 사진 찍는 중이다. 

불변의 진리라 여겼던 물은 아래로 흐른다가 아니라 위로 거꾸로 흐른다는 걸 직접 경험 중이다. 30여 년 가까운 주상 복합 아파트라 그럴 때도 되었고, 살다 보면 온갖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태도에는 문제가 많다. 

모르쇠로 일관할 일이 아닌데, 연락 두절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어쩌자는 걸까, 결국 변호사에게 의뢰한다,까지 왔다.

옆집 주인과 공동으로 우리 돈을 들여 위의 두 집을 함께 검사하기로, 그러나 위의 옆집 주인은 세입자에게 떠 넘기면서 뻐팅기기까지, 세입자는 자주 부재 중이라 문앞에 전화번호 붙이고 기다리는 중이다. 

새로운 사실은 세상에 누수 업체가 이리도 많다니, 더더구나 누수전담 변호사까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경험치를 넓혔다. 

그 간 선거에는 투표지 부족도 있었고, 지금은 멕시코와 축구 경기 중이다. 심판이 편파적인 거 같다. 우리 편이 필요하다. 

그러고보니 이때까지 내 편이 네 편보다 많았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지금은 김연수X게이치로 '근접한 세계'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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