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 글 답다. 인간의 시선으로 그린 아담과 이브 이야기다.

낯선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고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 때가 떠오른다.

아담과 이브, 서로에게 새로운 피조물은 시작은 '그것'으로 불린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매우 낯설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나 서로의 시선을 교차하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기록한다. 그러면서 그녀, 그에서 '우리'가 된다.

아담의 다정하고 선한 마음, 이브의 아름다움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서로는 짐작과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지 않고 관찰하며 실험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수많은 결점들과 다름을 인정, 수용하면서, 그냥 다가 온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는 고백으로 나아간다.


*사랑은,

'이러한 사랑은 이성과 통계의 사물이 아닌 듯하다. 이 사랑은 그냥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78쪽).'

*이브를 욕하지 마,

'금단의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밤栗이라고 그 뱀이 장담하더란다. 그녀가 말하길, '밤'은 낡고 곰팡내 나는 농담을 뜻하는 비유적인 말이라고 그 뱀이 알려주더란다(24쪽).'

*'우리'라는 단어,

최근 배우 예지원이 함께 한 세계테마기행 타이티 편을 보면서, 그들은 늘 우리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우리도 밥 먹듯 우리를 사용하는 데 아주 많이 다르지요.

*다큐를 농담으로, 농담을 다큐로, 살아가는 데 호환이 필요하고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자고요. 담 주는 대학 동기들 만난다.

*벌써 2월이다. 한 것도 없는 데 시간만 지나갔다고 볼멘 소리도 들리지만, 잘 지내왔잖아. 아담이 일요일마다 '잘 버텼다(15쪽,18쪽,21쪽).'로 지내다 어느새 '일요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은 쓸모가 있다(29쪽).'는 고백까지 우리는 매일을 좋아하면서 살아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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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일기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마크 트웨인 지음, 프란시스코 멜렌데스 그림,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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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머리의 새로운 피조물이 아주 거치적댄다. 항상 얼쩡거리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도 않거니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어색하다. 그것이 다른 동물들하고 지내면 좋겠다...... 오늘은 흐리고 동풍이 부니, 우리에게 비가 찾아올 모양이다...... 우리? 내가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더라?...... 지금 떠올랐는데, 새로운 피조물이 그 말을 쓴다. (11쪽, 아담의 일기 중)

이 모든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초반에 이브를 잘못 판단했음을 알겠으며, 그녀 없이 동산 안에서 사느니 그녀와 함께 동산 밖에서 사는 편이 더 낫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가 침묵에 잠겨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우리를 가까이 하나로 맺어주고 나를 깨우쳐 그녀의 선량한 마음과 그녀의 다정한 영혼을 알게 한 그 밤栗에 축복 있으라! (38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거리를 조금 두고 다른 ‘실험‘의 뒤를 밟으며, 가능하다면 그것의 존재 이유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남자인 것 같다. 남자를 본 적은 없으나, 그것은 남자처럼 생겼으며, 나는 그것이 다름 아닌 남자라고 확신한다. (중략) 처음에 나는 그것이 무서웠고, 그것이 뒤돌아볼 때마다 나를 쫓아올까봐 도망부터 쳤다. (46쪽, 이브의 일기 중)

지금, 우리는 정말로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점점 더 친해지는 중이다. 그가 더는 나를 피하려 들지 않는데, 이는 좋은 징조이며, 그가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실이 기뻐서, 그의 호감을 사고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힘쓴다. (중략)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가 어색한 침묵을 드러낼 새도 없이 내가 먼저 이름을 지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내 덕분에 그는 곤란한 상황을 수차례 모면했다. 나에게는 그와 같은 결함이 없다. (중략) 그리고 그러면서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50-51쪽, 이브의 일기 중)

이 행성에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나는 어떤 동물한테는 무관심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차별 없이 모든 동물에게 정을 쏟고, 그들 전부를 보물로 여기며, 새로운 동물은 무엇이든 환영한다. (66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지금껏 많은 것을 배웠고 이제는 박식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지했다. (중략)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러면 앎을 얻게 되지만, 짐작과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면 결코 박식해지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답을 얻을 수 없지만, 짐작과 가정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조차 결코 알아내지 못할 테니, 정말이지,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답을 얻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고, 세상이 몹시 흥미로워진다. 알아낼 게 하나도 없다면 따분하리라. (71-72쪽, 이브의 일기 중)

내가 그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영리함 때문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뜻이 아니었기에 그의 탓이 아니며, 그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는 어떤 현명한 목적이 있었으며, 그쯤은 나도 안다. (75-76쪽, 이브의 일기 중)

그렇다. 나는 단지 그가 내 것이고 남성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내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사랑은 이성과 통계의 산물이 아닌 듯하다. 이 사랑은 그냥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략) 알고 보면 무지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잘못 판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78쪽, 이브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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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성경을 읽을 때, 아니 읽어야지 할 때에는 그 시점에는 분명 의도가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거의 안다는 식의 건성으로, 건너뛰기와 오독까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성서를 열다'에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가해한 세계 앞에서' 라는 말이 덧붙여있다. 

이제껏 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성서의 낯선 세계를 만나야 하고 그 속에서 너 자신을 열어 보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성경과 마주한 사람들로, 파졸리니, 에리히 프롬, 본회퍼, 윌리엄 포크너를 언급하고, 타종교, 동양 경전 등까지 성서와 비교하기까지 한다. 

차례에 나오는 6가지 질문에 답해보는 맛도 있다. 각자의 답이 있겠지만, 정답(?)이나 오답을 가리기 위해 애쓰며 읽었지만 잡힐 듯하지만 한마디로 채점하지 못한 답만 남아 있다. 결국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리라. 중간 중간에 나오는 성경 구절이 책 읽기에 방해가 되었다면, 이 말씀들이 너무 익숙해서 그냥 넘기고 싶은 충동까지 싸우다 보니, 몰입도가 떨어지고 주의가 분산되니 어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변명한다.


그럼, 진지하고 정직한 자세로 답해보자.

성서는 어떤 책인가?

성서를 읽는 당신은 누구인가?

누가 성서에 들어가는가?

성서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성서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성서에서 무엇이 열리는가?


이 참에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긴 역사 속에서 다양한 저자들과 편집자들의 손을 거친 성경은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와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생겨나는 것 보면, 이 또한 '성서를 열다'와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닌지 애써 합리화한다.


더 생각할 부분으로 부록에 나오는 내용(151-153쪽), 인간은 '차악'을 선택하므로 그나마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여기면서 자신에게 '무고함'을 판정하는 궁극적인 힘을 부여하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인간은 잘못했다 할지라도 '정당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힘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미리' 말함으로써 우리는 힘과 권력을 얻게 되며, 내적 갈등 없이 우리를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갈등을 외부화한다. 내면에서의 충돌은 사라지고, '나'가 아닌 '타자', '우리'와 '다른 타자들','저들'과의 갈등만 존재한다. '합리적인 나'와 '불합리한 타자','나'라는 의미 있는 존재와 '타인'이라는 무의미한 존재 사이의 갈등만 존재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전도연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해 주려고 만났는데, 범인은 '나는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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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열다 -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가해한 세계 앞에서 비아 시선들
토마스 머튼 지음, 정다운 옮김 / 비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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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이해하는 길은 분투의 여정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저 의미를 찾아보려고 참고서적 뒤지듯 성서를 읽어서는 안 됩니다. 성서를 이해하는 길은 성서에 내재한 극명한 걸림돌과 모순을 정직하게 마주하려 분투하는 길이며, 그 길로 나아가려 애써야 합니다. (52쪽)

우리는 성서, 우리가 ‘읽는‘ 책이라 여기는 그 책이 본래는 특정 무리, 그 메시지와 호흡을 맞춰온 무리가 ‘낭송‘하며 또 ‘듣던‘ 글임을, 구전 전승들의 모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략) 성서의 메시지는 공동체와 모임의 정체성을 세우고 굳건히 하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말씀은 예배를 위한 것으로, 공동체가 함께 믿고 응답하며 받아들이고 확증하며 찬미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성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를 알아야 합니다. (78-79쪽)

성서를 읽을 때 우리는 각 성서 저자가 의도한 바, 그 실제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객관적이고도 현실적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중략) 성서 안에 있는 각 책은 제각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문학적으로도 폭넓은 양식을 지니며, 다채로운 역사적 배경 속에 쓰였다는 사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성서가 분리될 수 없는 한 권의 책이며 동일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러면 불가피하게 성서 바깥에 있는 무언가, 즉 전통과 함께 읽어야 할 테지요. 전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성서에 여러 저자뿐 아니라 다수의 편집자가 참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자들의 의도와 더불어 편집자들의 의도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편집한다는 것은 곧 해석한다는 뜻이며 이는 성서 본문에 이미 다양한 층위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100-101쪽)

성서를 읽으며 우리 자신이 문제임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이 자유의 역동으로, 이러한 이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서는 화해와 일치의 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자리한 근원적인 분열, 일치와 화해에 반발하는 마음을 끌어내 자각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분열에 대한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으로, 그 뼈아픈 현실 속으로 걸음을 내딛게 되며, 무책임과 본능에 분별없이 빠져들지 않게 됩니다. 역사 속으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 어떤 운명을 감내하는 것,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지난한 의무를 다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자유로 부르셨다는 말은 인간이 이 사랑의 세계를 건설할 수도 있고, 그 일을 거절한 수도 있다는 뜻, 탐욕, 미움, 욕정, 살해의 욕구에 사로잡힌 자리에 머물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116-117쪽)

이성을 잃어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 대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좋지 않은 일을 피하려 이상보다 훨씬 ‘덜 이상적인‘ 일을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계산해 낸다면 어떨까요? 이때 계획은 ‘부도덕‘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악에 관한 교리는 혼란스럽고 어려운 경험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의 자비 가운데 어떤 의미를 빚어내는 방식이 아닌, 복음의 급진적인 요구를 계속 회피하는 방식으로, 계속 ‘상대적으로 덜 나쁜‘ 길을 택하게 만듭니다. (중략)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미리 합리화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상상력을 마비시키고, 어떠한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어떠한 흔들림, 내적 갈등없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갈등은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합니다. (151-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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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대신 카렐 차페크가 쓴 [조금 미친 사람들]을 챙겨 떠났다.

사이 사이 멋진 삽화까지 그려 넣은 100년 전에 쓴 여행기라니, 놀랍지 않은가.

카렐 차페크는 기차를 타고 체코를 출발해서 몇몇 나라를 거쳐 가장 스페인다운 곳을 여행했고, 나는 비행기를 타고 소위 유명하다는 곳을 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긴 시간 차가 있었지만 그가 다닌 길과 거의 유사했다. 

출발 전에 읽기 시작하여 그가 다닌 곳을 따라가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기시감까지, 카렐 차페크와 같이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서로의 좋아하는 영역과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의 거리야말로 가장 좋은 박물관(41쪽)'이라는 사실은 유사했다. 영어가 아니라 넘치는 스페인어, 낯선 문화, 그렇지만 이런 편안함과 풍성함, 즐거움은 뭐지, 여행은 이런 것이다, 이런 맛에 다니는 것이다를 처음 느꼈다. 

제목은 역자가 저자가 엘 그레코를 가리켜 한 말,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55쪽).'에서 [Trip to Spain] 대신 따온 것이리라. 

미치지 않고서야 가 볼 수 없는 곳을 다녀왔다. 한 때 세계에서 일등을 했던 스페인에는 뿌리깊은 뭔가 있었다. 도무지 설명할 수 없으니까, 아무 말로 끄적거린다.


*그러고보면 미쳐야만 지금을 온전히 살아 낼 수 있다. 

*꼬르타도 커피, 알람브라 맥주, 상그리아, 착즙오렌지, 에그타르트, 빠에야, 바깔라우, 젤라또, 하몽, 타파스, 츄러스 등 맛보았다. 

*부에르타 델 솔(솔광장)에는 다양한 크리스마스마스(122416) 조명으로 반짝거렸고, 곰동상, 제로포인트, 펠리페 3세 기마상 주변에는 사람들로 더 붐볐다.

*톨레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이자 스페인의 옛 수도다. 특히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그림이 있는 산토도메 성당은 좁은 골목들 사이에 아주 작은 곳이었다.

*세비야 대성당의 콜럼버스 묘가 인상적이었고, 성당내 굳게 닫힌 개인 기도처가 곳곳에 있어 낯설었다.

*공항 검색대보다 더 철저한 검색을 통과하여 들어간 미술관이 인상적이다. 온전히 자국민의 작품만 있다 해서 더 놀라웠다. 

*육만봉을 병풍삼은 베네딕트 수도원, 보압딜이 알람브라 궁전을 이사벨 여왕에게 건네주고 눈물흘린 무어인의 한숨 고개, 좁은 골목길, 혼합된 고딕 및 바로크 양식과 아랍 양식의 건축물, 가우디가 영혼을 갈아 만든, 아직도 진행중인 성가족성당, 누에보 다리, 헤밍웨이가 작품 구상한 론다, 온전한 그들만의 문화 투우, 세상의 끝 호카곶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울림을 마음에 담아왔다.  

*구성진 목소리의 가수, 남녀 무용수, 기타리스트로 구성된 플라멩코를 보는 데 눈물이 났다.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라니, 끝없는 들판에는 몇 백년을 살아 낸 올리브 나무들이 도열해 있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아껴가며 읽는 중이다.

*내가 다닌 곳과 카렐 차페크가 다닌 곳을 사진으로 연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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