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Can't and Won't)'를 입 밖으로 내 보내는 쾌감도 있다. 이 말만 잘했어도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싶다. 결혼한다는 청첩장까지 보내고 결혼 안 한다고 했던 기억, 엄마와 수 시간을 설왕설래로 설득당했다. 

살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마음 먹기는 그리 쉽지 않다. 여러 관계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입안에서 늘 맴돌기 마련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니, 시, 산문, 단편 소설, 편지글 등 여러 종류의 글로 5부까지 구성된 이야기집이다.  

각 부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어떻게든 읽으려고 노력중이다(1부). 그저 평범한 난기류(2부), 감정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3부), 모든 것이 변했다는 느낌과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4부), 인생이 너무 심각해서 글을 계속 쓸 수 없다(5부).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감각을 이야기로, 모든 일상이 이야기가 된,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이야기가 된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삶은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것부터 시작되고 그것이 켜켜이 모이고 쌓여 일생이 되는 데 말이다. 


저자는 그 작은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냥 일상이다. 

몇 가지 떠오른 추억을 버무리며,

*돌고 도는 이야기에서 저자를 깨운다는 쓰레기 수거용 트럭 소리를 읽을 때 '엘리제를 위하여'가 떠올랐다. 어릴 때 이 소리가 들리면 청소차가 왔다. 

*러그를 팔지 안 팔지 고민하는 모습에서는 일일 최소 하나씩 비우자고 맹세까지 한, 그러나 매일 추억과 기억이 들어 있다는 고민과 핑계로, 그러면서 오히려 이유를 붙여 무언가를 구매하려 한다. 멈춤해야 한다.

*언니에 대한 글에서는 동생들의 마음을 느끼기까지, 언니있는 친구를 부러워한 어린 시절이 마구 떠올랐다. 

*블루밍턴에 잠깐 머문 것은 와본 적이 없다고 까지, 어디 여행 가서 그 나라를 다 가본 것처럼, 자랑질?까지 한, 상대가 안 가본 나라에 대해 특히, 나에겐 아이슬란드가 있다고까지, 부끄럽다.

*각 부에는 회사나 담당자에게 보내는 항의 편지가 있다. 답장은 어떻게 왔을까, 궁금하다. 편지 주고 받았던 시절, 빨강 우체통과 엽서, 연말에 만든 카드와 연하장 등, 국군 아저씨 위문 편지까지 떠오른다. 편지를 쓰면서 고르고 고른 단어, 쉼표와 마침표까지, 행간의 설렘까지 동봉한 추억이 그립다.

*그런데 저자는 인생이 너무 심각해서 글을 쓸 수 없다고 한다.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쓰기도 하는데, 저자가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글쓰기를 중단하고 삶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인생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맺고 있다. 


덕분에 일상에서 아주 작은 일부터 집중하고 그것을 언어로 글로 더 잘 표현해보려 한다. 적어도 그렇게 살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지금은 타인을 향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 나의 삶의 순간에 대해 섬세하고 객관적으로 "따뜻한 불이라거나 빨간 불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형용사를 더 제거할 것(274쪽)." 이처럼 교정과 수정이 필요할 때다.   


원서로 읽어 보고 싶은 글이다. 번역을 잘 하셨다. 

이제는  6시가 되면 출근 모드로 눈이 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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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 리디아 데이비스 이야기집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에트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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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설

여행길에 챙겨온 이 지루하고 어려운 소설, 어떻게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몇 번이나 소설로 돌아갔고, 매번 진저리가 났으며, 매번 지난번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는 오랜 친구 같은 것이 되었다. 내 오랜 친구 나쁜 소설. (38쪽)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최근 나는 어느 문학상을 받지 못했는데,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게으르다는 것은 내가 축약형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할 수 없어 그리고 하지 않을 거야(cannot and will not)라고 온전히 쓰지 않고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can‘t and won‘t)로 줄여 쓴다는 것이었다. (66쪽)

여자, 서른

여자, 서른은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떠나고 싶지 않다.
왜 집을 떠나야 하지? 이분들은 나의 부모다. 그들은 나를 사랑한다. 내가 왜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말다툼이나 벌일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지?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창문 앞에서 옷 버는 걸 좋아한다. 어떤 남자가 적어도 그녀를 바라보길 소망한다. (85쪽)

이날만은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걸 나는 안다. 이 얼마나 이상한가. 아주 어릴 때는 보통 행복하고, 적어도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이가 들어 세상을 더 명료하게 보기 시작하면 행복할 일이 별로 없다. 또 사람들을, 가족을 잃기 시작한다. (182쪽, 물개들 중)

그때 언니 목소리는 멀고도 지쳐 보였는데, 말투를 부드럽게 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 후로 우리는 다시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나는 언니 삶에서 밀려났다고 느꼈다. 하지만 당시 언니의 냉정함은 나를 향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의 소리였다.
언니가 죽은 후 나는 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애정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서 그 일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언니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동생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품었을 것이다. (191쪽, 물개들 중)

두 사람이 죽고 첫 새해는 또 다른 배신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들이 살았던 지난해를, 그들이 알았던 한 해를 뒤로하고, 그들이 절대 경험하지 못할 한 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205쪽, 물개들 중)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안다는 것, 어쨌든 뭐라도 안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다. 아니, 어떻게 되든지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그 사실을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기 전까지는 죽은 뒤 어떤 형태로 계속 살아가는지, 혹은 그대로 끝인지 결코 알 수가 없다. (212-213쪽, 물개들 중)

통계학의 한 가지 결과

어린아이처럼
더 양식처럼 사람들은
더 오래 산다. (273쪽)

여자는 초콜릿을 하나 먹어도 괜찮을지, 괜찮다면 초콜릿을 혼자 먹을 분위기나 마음 상태는 어때야 하는지 궁금했다. 화나 울분이나 탐욕 때문에 초콜릿을 먹는 건 옳지 않아 보였고, 그저 쾌락을 향한 욕망이나 행복, 축하의 분위기 속에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 탐욕 때문에 혼자 초콜릿을 먹었다 해도 그 초콜릿이 아주 작다면 덜 잘못된 걸까? (321쪽, 작은 초콜릿 상자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글쓰기

인생이 너무 심각해서 글을 계속 쓸 수 없다. 한때 인생은 더 쉬웠고, 종종 즐거웠고, 그래서 글쓰기 역시 심각해 보이기는 했지만 즐거웠다. 지금 인생은 쉽지 않고, 너무 심각해졌으며, 그에 비해 글쓰기가 조금 우습게 보인다. 글쓰기는 종종 현실을 주제로 하지 않는데, 현실을 주제로 글을 쓸 때면 종종 현실에 눌러앉게 된다. 또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쓰기도 하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러니 나는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쓰는 대신 그냥 글쓰기를 중단하고 삶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인생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야 더 똑똑해질 것이다. 대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다.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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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몇 년에 걸쳐 독립된 단편으로 열네 편의 이야기를 썼지만, 이들은 서로 연결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며, 특히 삶의 모든 것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각각의 단편은 소제목이 있지만, 피셔의 변주곡처럼 인물과 사건, 이미지가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면서 하나로 연결된 장편같다.  

'겨울 여행'은 슈베르트 가곡 '겨울 여행(우리나라는 겨울 나그네)'에서 따온 제목이다.

열네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리가 걷고 있는 인생이라는 길을 대변하고 있다.

마지막 편에 나오는 글처럼, '인생은 하나의 경로도 목적지도 아닌 여행이며, 우리가 사라질 때는 그 위치가 어디든 우리는 언제나 여행의 중간 지점에 있다. 하필이면 겨울 여행에 당첨되어(285쪽)'


기억에 남는 글은, 

'사후작품'은 예술가가 마지막으로 슈베르트 대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피셔의 곡을 연주함으로써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를 살아나게 한다.

'유언장'은 더 더 사랑해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넘치는 데, 남의 자식들이라니. 많이 쓸쓸하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살아온 나의 삶은? 

'손안의 희망'은 아주 작은, 실낱같은 희망만 있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순간의 미세하고 작은 기대, 작은 선택이 모여 삶이 되는 거 같다. 

'이 분'은 2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짧은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 진다.

'먼지'는 먼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먼지도 이유가 있어 쌓이는 것이고, 그 먼지는 방심한 틈을 타서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겨울 여행'은 겨울 들판을 걸어가는 나그네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다. 누구는 봄 여행 중이고, 누구는 여름 여행으로, 가을 여행 등등 각자의 도정에 있다. 


살아서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죽어서는 기억된다는 것에서, 남은 자의 기억 속에 소환되는 내 모습은 어떨까 싶다.

추석을 앞두고 세 명의 시누들을 만나 서로 다른 그들의 기억에 나의 기억까지 나누었다.

아들 가족과 일박 이일로 친정에 미리 다녀왔다. 아들 가족은 어제 같이 와인 곁들여 외식하고 오늘은 처가로 일찍 갔다. 좋은 시아버지 시어머니로 남고 싶은 마음과 며느리가 이렇게 저렇게 좀 하면 좋을 텐데 바라는 마음이 수시로 오간다.

하지만 손녀에 중독된 우리의 기쁨에 비하면 에구구 됐다, 됐어, 뭘 바라겠냐, 싶다. 매일 손녀 보여 주는 거로 퉁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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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4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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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하기 위해 음악을 하는 거라고. 청중 앞에 얼굴을 내비치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지 꽤 됐어. 그리고 드디어 오늘......"
"누가 음악은 행복을 위해 하는 거라고 했나?"
(중략)
"나는 행복하지 않지만 그냥 견디는 거라고." (22쪽, 사후 작품)

얼마나 사랑스런 아이들인데! 이 말을 그들에게 자주 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쑥스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지만. (39쪽, 유언장)

알았다면, 그때 아버지는 그를 다시 고향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서사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제멋대로 보여준 채, 아닌 척 모호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속이려 든다. (49쪽, 손안의 희망)

거 봐? 아무것도 아니잖아. 신의를 저버리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62쪽, 이 분)

책 위에 쌓인 먼지는 불명예와 소홀함의 증거였다. (중략) 이 집에서 책으로 된 벽은 그 끝을 알 수 없었고, 먼지는 먼지의 성질대로 거기에 계속 달라붙었다. (74-75쪽, 먼지)

생각 자체에 실수 같은 건 없어. (143쪽, 고트프리트 하인리히의 꿈)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169쪽,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다른 가족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원치 않는데도 모두에 대한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온단 말이지. 그럴 때면 난 북쪽을 바라봐. 마치 가족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얼려 버리기 위해 라플란드나, 필요하면 북극에라도 가 버릴 거라고 운명에게 협박이라도 하듯 말이야. (216쪽, 흔적)

그의 모든 기억들이 허락도 없이 그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중략) 하루는 페테르에게 질문을 결심하고서는, 페테르 너는 행복하니 물었고 그는 그럼, 당연하지라고 답했으며, 그러자 졸탄은 이 대답이 순전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271-272쪽, 거울여행)

그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제야 그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빈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인생은 하나의 경로도 목적지도 아닌 여행이며, 우리가 사라질 때는 그 위치가 어디든 우리는 언제나 여행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의 불운은 하필이면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겨울 여행에 당첨되어,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 (285쪽, 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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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에 정답이 들어있는 글을 읽었다. 리디아 데이비스는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쓴다. 그러기 위해 아주 작은 것까지 자세하게 보아야 하며, 아주 사소한 것까지 면밀히 기록하는 꾸준함과 주의 깊음과 거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를 찾아낸다. 그리하여야 이 순간이 영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재현할 수 있으며 누군가와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정확하게 정밀하게 나눠 가질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언제나 무언가를 읽고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리도 고단하고 피곤한 일이 즐거운 사람도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쓰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 되물어 본다.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함께 나아가야 하지만, 쓰기의 이유보다는 쓰기의 방법을 생각해 볼 때다.

나에게 즐거움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쓰기보다는 읽기에 더 재미가 있고, 쓰기의 근간에 자신보다는 타인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이미 쓴 글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하게 되니까, 누군가 읽든 읽지 않든 말이다, 그러니, 그럴바에야 누군가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으니 잘 쓰고 싶다는 바램이 크고, 어쩌면 리디아 데이비스의 생각과는 아주 멀기도 하다.

그래서 리디아 데이비스는 글쓰기가 즐거움을 위해서고, 나는 고민과 미사여구에 빠지게 된다.


영화 '파리의 사생활'을 보았다. 타인을 이해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대학 동기 중 가장 마지막으로 퇴직하는 친구(조기 입학과 늦은 호적)를 축하하기 위해 만났다. 1985년 평교사로 시작해 교감 장학사 교장으로 어제 퇴임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케익을 자르고 선물을 주고 받고, 서로를 축하하고 미술관 들러서 왔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겠다. 

지금껏 살아봐도 나와 다른 사람을, 무언가를 이해하기는 무척 어렵다.  

손녀 등하원하는 일은 재밌다.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자세히 보니 더 예쁘다. 매 순간 신경써야 한다. 오늘도 꽈당했다. 부모에겐 비밀이다. 내일 잘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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