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에 정답이 들어있는 글을 읽었다. 리디아 데이비스는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쓴다. 그러기 위해 아주 작은 것까지 자세하게 보아야 하며, 아주 사소한 것까지 면밀히 기록하는 꾸준함과 주의 깊음과 거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를 찾아낸다. 그리하여야 이 순간이 영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재현할 수 있으며 누군가와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정확하게 정밀하게 나눠 가질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언제나 무언가를 읽고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리도 고단하고 피곤한 일이 즐거운 사람도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쓰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 되물어 본다.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함께 나아가야 하지만, 쓰기의 이유보다는 쓰기의 방법을 생각해 볼 때다.

나에게 즐거움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쓰기보다는 읽기에 더 재미가 있고, 쓰기의 근간에 자신보다는 타인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이미 쓴 글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하게 되니까, 누군가 읽든 읽지 않든 말이다, 그러니, 그럴바에야 누군가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으니 잘 쓰고 싶다는 바램이 크고, 어쩌면 리디아 데이비스의 생각과는 아주 멀기도 하다.

그래서 리디아 데이비스는 글쓰기가 즐거움을 위해서고, 나는 고민과 미사여구에 빠지게 된다.


영화 '파리의 사생활'을 보았다. 타인을 이해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대학 동기 중 가장 마지막으로 퇴직하는 친구(조기 입학과 늦은 호적)를 축하하기 위해 만났다. 1985년 평교사로 시작해 교감 장학사 교장으로 어제 퇴임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케익을 자르고 선물을 주고 받고, 서로를 축하하고 미술관 들러서 왔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겠다. 

지금껏 살아봐도 나와 다른 사람을, 무언가를 이해하기는 무척 어렵다.  

손녀 등하원하는 일은 재밌다. 매일이 다르고 새롭다. 자세히 보니 더 예쁘다. 매 순간 신경써야 한다. 오늘도 꽈당했다. 부모에겐 비밀이다. 내일 잘 살펴봐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부 속으로 -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독자를 설득해 내가 믿는 무언가를 믿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비록 내가 믿는 것은 아주 아주 많지만 말이다. (23쪽)

나는 이따금씩 내가 본 것을 적었다. 3년이 지나자 그렇게 관찰해 적은 메모가 82개쯤 생겼다. 나는 그것들을 사진과 함께 작은 책으로 만들었다. 이 이야기에 포함된 감정에 다양한 형태를 띤 내 즐거움, 내가 암소들과 송아지들의 자세와 행동을 지켜보며 때때로 느꼈던 재미나 공감뿐 아니라 그것들을 관찰한 바를 적고 수고스러운 즐거움, 그리고 세상의 암소 대부분이 바는 취급에 대해 내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도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39쪽)

내가 느낀 흥미를 유지시켜준 건 책이라는 형식 안에서 내게 중요한 두 가지 요소였다. 그 하나는 책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개성이다. (중략) 다른 한 가지 특징은 글 자체의 문체다. (52쪽)

수레바퀴 제작에 필요한 몇몇 기술과 그 기술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된 이후로, 그는 이 특정한 책을 쓰기에 적합한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 어쩌면 거의 유일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지식을 무덤까지 가져가는 대신 알리고 싶어 했다. 누군가 흥미로워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일단 기록하면 그것은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하게 될 터였다. 누군가 읽든 읽지 않든 말이다. 그러니 그가 그 책을 쓴 것은 그 지식을 기록하고 기념하고 거의 확실하게는 쓰는 동안 그것에 감탄하고 이야기하ㅕㅁㄴ서 음미하고 기억하고 다시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61-62쪽)

우리가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짧고 긴 이야기의 흐름들을 품고 계속된다. 바로 지금도 내 삶에서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내가 계속 글을 쓰는 동안 각각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점에 도달한 다음 지나갈 것이다. (중략) 대개는 그렇다. 그리고 내 기쁨의 순간들 역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처럼 내 뒤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68쪽)

나는 내가 듣게 되는 언어에 마음이 움직이고, 그 언어는 한 편의 이야기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또한 나는 내가 읽는 언어에도 마음이 움직이는데 또 다른 작가가 영리하거나 미묘하게 언어를 다룰 때 그렇다. (93-94쪽)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읽고 있고, 그래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와중에는 언제나 무언가를 읽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글쓰기와 글쓰기의 방식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의 더 많은 뉘앙스를 내가 읽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있을 것이다. (100쪽)

어쩌면 내가 그것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이 하루의 이 순간을 재현해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나는 감각으로 인식한 그 현실을 취해 내 뇌를 통해 걸러낸 다음 종이에 옮겨놓고 그것이 거기 붙어있게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내가 이 장면을 혹은 이 순간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내 눈앞의 현재를 나눠 갖기 위해, 눈앞의 현재 속에서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쓴다는 것일지 모른다. (중략) 무언가에 대해 쓰고 싶어 하는 것과 실재로 그것을 쓰는 것은 다르고 때로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또 다르며,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 보여줄지 역시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119-120쪽)

글쓰기를 가르치던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예를 들어 이야기를 훌륭하게 끝내는 법을 배우려면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의 훌륭한 결말을 많이 읽고 그 결말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스스로 파악해보라고 말하곤 했다. (1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경선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을 읽으면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있다. 

진정성을 가지고 진심으로 글을 쓰는 데도, 그리 노력을 하는 데도, 독자의 호불호에 따라 밥은 먹을 수 있나 싶기까지, 하지만 좋아한다면, 사랑에 빠지면, 글을 놓을 수 없다. 

재능이 있다면 벌써 '책만 써서' 먹고 살 수 있을 건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204쪽에 저자가 옮겨 온, 시인 유진목은 산문 [재능이란 뭘까]에서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쓰는 재능'을 두고 "죽지 않을 만큼만 돈을 주고 살려두면서 다른 선택도 못하게 하는 저주"라고 썼다. 오늘도 불행한 재능을 사랑하는 작가들에게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독자가 응원을 보낸다.  


손흥규 '너를 기억하는 풍경'은 1980년대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 마을에서 자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연작 소설이다. 

60년대 태어나 70년대 학창 시절을 지나 80년대에 대학생이 되고 90년대 결혼에 이르러 어른이 되기까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기억들은 단편적이고 흩어지다 새로이 각색되어, 그 기억들이 온전히 내 것일까,하는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풍경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기찻길을 달리는 자전거, 69쪽

세월이 흐른 뒤에도 준은 그날을 잊지 않았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날. 다시 태어났기보다 방금 태어난 것처럼 혼란스럽고, 그냥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깊은 슬픔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던 날. 내 것인데도 내 것인 줄 몰랐던 감정이 내 것임을 알게 된 날이었다. 적어도 그때부터.....

-어느 날 대숲에서, 86쪽

세상의 모든 소리는 어느 정도 ...... 울음을 닮은 듯했다. 

-가난한 이야기, 135쪽

자신을 기억해주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영은 낯설고 신기했다. 기억하는 나와 기억되는 나는 다른 존재 같았고, 이러한 불일치야말로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 사실은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인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소가 오지 않는 저녁, 194-195쪽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대도 이대로 곁에 머물면서 네가 들려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테니 무슨 말이든 해주렴. 그래 그렇게......

-손금, 229쪽

진짜 그리움은 영사가 아니라는 걸. 그리움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고 그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감정이어서 언제나 동사라는 걸. 


박경리 '약이 되는 세월'은 시간이, 세월이 약이다가 절로 느껴진다. 감히 글을 쓴다면 이처럼 써야 한다를 한 꼭지씩 읽을 때마다 실감한다.

-약이 되는 세월, 58쪽

지난날에도 이런 좋은 봄날이 여러 백 번 있었을 텐데 - 잃어버리고 잊어버릴 수 있어야 약이 되는 세월도 많지만 모두 빈손만 펴보고 어째서 이렇게 가난할까. 어떤 철학자께서 언어가 진실의 표현이라면 많은 말이 필요 없을 것이며, 언어를 사용할 때 벌써 이야기꾼은 비속해진다고 했다. 돌아오지 못하고 가버리는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저마다 말고 글로 추억을 만든다. 하고 많은 말과 글은 얼마만큼이나 추억을 만들어놓았을까. 꿈에 본 숲, 흐르는 구름, 탱자나무 울타리의 놀, 마음에 비친 천만 가지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얼마만큼이나 기록해 놨을까. 참말을 하려면 그럴수록, 참말을 쓰려면 그럴수록 철학자의 말씀대로 비속해지고 말이 많아질 뿐, 진실은 저 혼자 아무도 몰래 둥둥 떠내려가 버린다. 


오션 브엉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는 글을 읽지 못하는 엄마에게 쓴 편지 이야기, 베트남 역사와 맞물린 여성의 삶은 슬프고 비참하고 또한 슬프다. 1부 103쪽까지 읽고 덮는다. 살면서 한때, 잠시라고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오죽하면 그 잠시에라도 기대어 볼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에 가장 진심을 담으면 쓰는 사람은 쓰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소중하고 중요한 어떤 것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면 글쓰기 작업에 반드시 수반되는 물리적 가혹함을 전혀 낼 수 없다. 간절히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장 정직하게 써 나갈 때 나는 보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간다. (17-18쪽)

진짜로 간절하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게 재능이 있을까?‘라고 묻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재능이 밖으로 흘러넘쳤을 테고, 대부분 고만고만한 우리에게 재능은 있고 없고의 문제라기보다, 여러 가지 행동과 실천의 ‘결과‘로서 어쩌면 중간부터 드러나는 무엇일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저 너무 쓰고 싶으니까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목표 지점의 성취나 인정을 바라기보다 글쓰기 작업 자체를 일단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60-61쪽)

수정을 좀 더 편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수정이 어려운 것은 내가 쓴 것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정은 나의 부족함을 정면으로 보는 일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내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과 그에 따른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138쪽)

내게도 작가나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있다. 나니 심한 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만약 그 작품이 어떤 절대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작가 자신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176쪽)

현실에서는 책만 쓰며 먹고살수 없다. 대체 언제까지 청탁 원고나 강연, 글쓰기 수업 같은 숱한 ‘다른 일들‘을 해치우면서 동시에 시간을 쪼개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장담도 못한다. 책만 써서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쳐도 그 감사한 상황이 지속될지는 미지수이다. 전망은 대개 비관적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쳐내야 하는 현실을 겪다 보면 문학을 사랑하기엔 때로는 너무나 지쳐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4쪽)

하나의 특성을 두고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한다. 이거싱 바로 이토록 다채로운 개성의 작가들이 공존하며 저마다의 독자들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중략) 그러나 그책을 사지 않았다고 해서 독자가 그대로 바로 빠져나간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사라져 있다가 다음 책의 소재가 마음에 들면 다시 독자로 돌아온다. (140-14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읽으면서,

몇 달이나 끌고 있는 누수 문제가 이젠 공유 부분으로 넘어가 외부 크랙를 공사하고 최소 한 달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기 저기 생각들을 정리했지만 메모지는 사라지고 남은 것도 글씨가 엉망이고, 내용은 뭐라는 소리야, 정도다.

그냥 지금 생각나는 대로 끄적인다.


1. 몇 시인가요?(존 버거 글/ 셀축 데미렐 그림)

모두에게 가장 공평하고,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 시간이리라. 그러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 차이로 시간의 질은 전혀 다르다. 

지금이라는 현재에 집중하기 보다는 어쩌지 못하는 지나 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마음이 많이 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허투루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하여 '앞으로 얻을 것'이 지금의 것'을 비운다(36쪽).

치열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후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족이 생기니, 그들로 인해 나의 시간이 달리 지나게 된다. 나 또한 그들의 시간에 한 몫하고 있지만, '지금'에 충실하다 보면 시간이 나의 삶을 말해 주리라. 

갑자기 취업한 며느리 덕에 손녀 돌보느라 출퇴근 중이다. 나의 직장 생활을 위해 수고한 친정 엄마의 노고가 이제야 실감난다. 며느리는 보고서 쓰듯 이거 저거를 톡톡 주문하지만, 아들을 위해서, 손녀가 예뻐서 오갔다.


2. 피아노에 관한 생각(김재훈 글)

피아노하면 대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갔을 때, 피아노 학원을 겨우 찾아서 배우게 했던 기억이 난다. 배우다 말다 반복하다 중학교 때 레슨비가 2만원 했던 거, 한 때는 피아노 전공까지 하고 싶었으나, 생일 선물로 받은 피아노, 70년대에 피아노가 있다니, 우리 집 장미 넝쿨 담장 너머로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던 체르니 연습곡과 월광, 비창까지, 귀에 맴돈다. 결혼 후 남편이 사 준 피아노가 애물단지가 되어 아직 버티고 있다. 친정에 가면 그 때의 피아노가 여전히 자매들과 마주한다.

피아노의 약한 피아니시모부터 강한 포르티시모까지 다양한 셈여림에서 인생을 알았는데, 특히 이음줄과 늘림표는 아직도 유효하고 현재는 안단테의 시간이다. 그러나 요즘 여러 가지 이유로 셀 수 없이 버려지고 있는 피아노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김재훈은 이렇게 버려진 피아노를 해체하여 합주 악기로 만든다.


3. 번역가의 일(양지윤 지음)

한 때 번역가가 되고 싶어 한영이나 영한으로 여러가지 시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미 서점에서 사라졌을 번역 책을 한 권이나 냈으니 소원은 푼 셈이다. 단어 하나하나, 심지어 주격 조사 하나에 들어 간 노력에 비해 번역료는 낮아도 너무 낮았다. 그러나 양지윤은 번역가의 길을 여전히 가고 있다. 그녀의 두근두근, 불안불안, 뿌듯뿌듯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과감히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서 멋짐을 보여주고 있는 양지윤에게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