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hology, 다수의 문학 작품을 하나의 주제(안다)로 모아 출판한 작품집을 읽었다.

'안다'하면 깨닫고 느끼다 또는 두 팔로 나의 일부를 또는 상대를 끌어 당겨 품에 있게 하는 것이다.

제목을 '알고 있다'로 여겨 책을 집었는데, 그게 아니라 '안다'다. 하지만 서로 통한다고 본다.

안을 수 있는 행동은 많은 생각과 경험이 축적되어야 나오고, 안아주는 마음에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들어있다. 그래서 안으려는, 안기려는, 안기기 싫은, 안기를 거부하는 행위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안아 줄 수도 있고, 누구에게 안길 수도 있다. 그 간극의 이야기다. 

안아줘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들은 안겼던 기억으로, 두 팔을 벌려 포용하면서, 등을 토닥 토닥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 안고 살아가는 건 무엇일까도 떠오른다. 

홍상수 '그녀가 돌아온 날' 영화를 보았다. 연기를 중단했던 배우가 오랫만에 독립 영화에 출연하여 기자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연기 수업에 간다. 그 곳에서 세 번의 인터뷰를 복기하고 재현하는 데 정작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포장과 형식적인 대답, 알지 못하고 한 말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한 말도 기억 못하고 불완전한 데 너는 많은 해석에 해석을 더하여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난 진심을 말하고, 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송선미 연기가 돋보였다.   

Ps, 어린이날 생일이 지났다. 올해도 축하와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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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하다 앤솔러지 5
김경욱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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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미래의 감옥.
오래동안 충분한 고통을 겪은 자만이 미래로 돌아갈 수 있다. 마주하기 두려운 무언가를 용기 내어 끌어안을 때 시간의 문은 열리나니. 남겨진 자들이 두려움을 놓아 버리고 자유로워지는 순간 비로소 그는 미래로 돌아갈 수 있다. (40쪽,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질)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는 똑똑하든 멍청하든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괴롭게 만들었다. 일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신정윤이 보기에는 이 회사의 모든 것이 어이없고 한심하게 보이겠지만 결국 돈도 일도 모두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었다. (57쪽, 가짜 생일 파티)

위엄을 잃지 않은 뒷모습.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이 그뿐이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 이날까지 나를 살아남게 한 중요한 직관이다. 나는 그것에 한없이 집중하여 사무실의 문을 닫은 뒤에도 꼿꼿한 뒷모습의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왕처럼 당당하게 그 의미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지금은 무너지지 않은 뒷모습, 그것만이 중요했다. (77쪽, 가짜 생일 파티)

우리 목사님이 그러더군. 그 말 하나는 참 맘에 드는데 좀 어려운 말이지만 마음을 재지 말래. 발이 먼저 나서면 마음이 따라온다는 거야. 그걸 유식하게 삶의 형식이라고 하더구먼. 지나가야 할 자리는 그냥 지나가는 거야. (110쪽, 히치하이킹)

그들이 어떻게 재회할지 궁금했다. 허방 같은 긴 시간을 두고 헤어진 연인들이 이제 어떻게 만나는지 보고 싶었다. 그녀는 실망했다. 지영은 영호를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자신이 영호에게 애틋한 추억으로 남을 수 없다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내가 지나치게 큰 욕심을 가졌던 걸까. 그녀는 자책했다. 어쩌면 나를 용서하고 잊어 달라는 말은 실상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오래 기억해 달라는 말이 아닐까. (116쪽, 히치하이킹)

우리는 자리에 선 채로 노을을 바라보다가, 이내 왔던 길을 되짚어 묵묵히 걸었다. 저물어 가는 빛 속에서 우연히 평점 4.9의 식당을 발견하게 되면 좋을 것이다. 인생에는 드물게 그런 행운이 있으니까. 발견하지 못해도 또 다른 곳이 있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148쪽, 다시 한번)

엄마들은 자신이 노인이라는 걸 언제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글쎄. 난 이제 물어볼 수도 없고. 아마도 그냥 우리처럼 잘 몰라서 혼란스러워하지들 않으셨을까. 우리는 우리가 중년이 됐다고 인정하지만 그게 실은 어떤 건지, 거기에 뭐가 필요한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186-187쪽, 그녀들)

말할 수 없다. 어떤 이야기들은. 언젠가는 말할 수 었는 이야기도 있다. 서로에게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고 어쩌면 앞으로 더 생길지 몰랐다. (중략) 어쩌면, 서로를 이해해서 멀어질 때도 있을 거야.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선배는 여기 온 것 같았다. (190쪽,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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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구입한 책, 어렵다.

생일이 다가오면 기쁘기보다는 아련한 슬픔이 앞선다. 하지만, 

태어난 날을 양력으로 기억해 준 부모님, 그래서 늘 어린이 같아야 될 거 같다. 

시집詩集을 엄마에게 바친다는 시인의 말처럼 생일에는 부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엄마를.

아직도 사는 게 서툰 거 같은 데, 도대체 산다는 거에 정답은 어디에 있는 거야? 에서, 

시인이 '혼잣말(132쪽)'로 지금은 말도 안되지만 결코 우리가 살아내지 못할 그러한 시대를 살아낸 엄마를 회상하고 존경하면서, 엄마와 같은 나이가 들어서야만 알 수 있는 거라는 독백으로 답을 얻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오늘을 살피는 다정함으로부터, 평평으로 (39쪽)' 만들어가는 시간에는 아주 많은 수고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배꼽에서 탯줄이 자라 엄마에게 닿을 때까지(104쪽)', 아가야, 너도 수고가 많았다로 쓰담쓰담, 토닥토닥 해 준다.



'완경기'


혼잣말.

대체 엄마는 이 혹독한 시기를 어찌 건너간 거야?

혼잣말.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어 이제야 간신히

혼잣말.

집, 무덤, 길, 벽, 꽃, 열매, 때를 안다는 건 외로운 일이로구나

중얼거린다, 이제는 만질 수 없는 엄마를 쓰다듬으며

할머니가 되는 건 위대한 일이었어!

걷자, 걷자, 한 걸음만 더 걷자,

여기까지 와야만 알 수 있는 거였어!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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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생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62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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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 결국 우물에 포섭되고 만다네. (12쪽, 폴짝인입니까?)

법의 언어가 아니라
경전의 언어가 아니라
숫자의 언어가 아니라
신화의 언어가 아니라
고유명사를 찬미하는 송가가 아니라
보통명사 하나하나를 고유한 세계로 맞이하려는 태도,
그 따스한 흔들림으로부터

이곳의 정의는 (평평으로)

(중략)

이곳의 민주주의는 (평평으로) (39족, 한 마을의 시가 태어나는 자리)

발 딛고 선 이곳이 운명이라는 건
어디서든 의지로 나를 지킨다는 건

당신이 내 운명이라는 건
내 의지로 당신을 지킨다는 것

그러므로 운명은 없다는 것 (73쪽, 벼랑 끝 나무로부터 배운 운명은)

꽃을 먹으면서
내가 먹는 것이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략)

말과
돌과
금과
총알과
포탄이
뒤섞인 하늘 아래에서
너무나도 똑똑해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꽃을 들고서
꽃이 없다고

꽃을 먹으면서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96-97쪽, 무화과)

배꼽에서 탯줄이 자라
엄마에게 닿을 때까지 (104쪽, 축 생일)

궁리 끝에 도달한 결론은 시시했다
떠났다 혹은 흩어졌다, 이 정도로구나
세상의 이쪽에서 어딘가 다른 쪽으로 떠나는 것
유목민이 천막을 걷어 살 곳을 옮겨 가듯이

여기에 사람으로 잠시 머물다 흩어져
저기의 무엇, 무엇, 무엇인가로 가는 것
그리하여 어느 날 어느 때에 무한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일 (121쪽, 여명)

지금껏 살던 대로 살아간다 해도
봄은 올 것입니다

인간 없는 봄이

그때
우리의 부재를 슬퍼할 누군가 있을까요? (140쪽, 거대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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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시인선 기념 티저 시집에는 시인들의 얼굴까지 있다. 시를 읽으며 상상했던 시인의 모습을 보다니, 편견을 또 한 번 깬다. 시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전제 하에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시와 어울리지 않는 이도 있다. 이러한 발상이 참 웃긴 이야기지만, 시인의 발생에 대하여 신비를 품고 있었나 보다.    

부제가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그 말이 맞다. 그들의 아름다움이 글이 되어 내게로 왔다.

어디를 펼쳐도, 누구의 시와 산문을 읽어도,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괜찮다를 동시다발로 연발하고 있으니, 딱 집어낸 말에서 들킨 마음에는 질투까지 났다.  

부모님을 만나고 왔다. 말의 틈새를 이용하여 아들과 같이 살면 안될까,를 살짝 얹고, 이 딸 저 딸로 내달리는 엄마의 말에서는 한영옥의 시가 들어 있다.

눈꺼풀로는 볼 수 없지만 선명하다고 우기고 있는, 우리의 기억들을 맞춰보면서 서로의 불안을 잠재우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지만, 이쯤 되면 아무것도 지긋지긋해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 시인들이 필사의 노력으로 그리 말하고 있으니,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96번째와 88번째의 봄 날에 있는 부모님을 보고 오면 진한 소원도 빌어야 하고, 서로가 사랑이라 부르는 단단한 매듭도 완성해야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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