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은유들'은 연대 별로 21명의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철학 개념을 메타포로 시각화 한 그림책이다. 그림을 보면 개념이 떠오른다. 

메타포(metaphor)는 은유, 비유이다. 학창 시절 외우고 분류했던, 비유법과 은유법이 떠오른다. 예로 강 같은 인생이나 인생은 강이다의 의미는 다르다. 은유는 뭐는 뭐다,는 바로 전하려는 말의 핵심이 들어 있다.  

'철학에서 은유는 대부분 개념적 은유이다. 형태가 없어 보이지 않는 개념 또는 아이디어를 실재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과 결합하여 감각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통해 개념은 이미지가 된다.(2쪽)'

철학의 은유에 들어 있는 각각의 이미지들은 추상과 구성의 경계를 허물어, 우리가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메타포적 의미 전이, 즉 연관되지 않은 전혀 다른 의미로 넘어 갈 수 있는, 의미가 구상이 아니라 추상으로 전이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질문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나를 나타내는 은유는, 나의 삶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은유는 무얼까, 추상으로 마무리하려 하지만 구상으로 해체하여 인식한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재해석하고 성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내가 말하니 말 장난 같다.

철학의 은유는 미래를 예측하거나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공공의 이익, 공동의 선, 행복 추구에 목적을 두고 있다. 

철학적 은유의 여정은 강에서 시작하여 액체로 끝난다. 아니 열어두고 있다. 오래 전부터 우리가 찾아 온 철학적 은유들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특히, 나에게는 사막의 은유가 그렇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가장 적합한 새로운 철학적 은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1. 고대

*헤라클레이토스: 강: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만물은 흐른다.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세계는 강물의 은유를 통해 시각화되며,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가 다시 강물로 내려갈 때, 이미 처음 내려갔던 순간의 우리는 아니다.


*파르메니테스: 구: 존재자는 모든 방면에서 완전하여 완벽한 구와 유사하다: 이 세계에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으므로, 비존재는 사유하거나 탐구할 수 없다. 따라서 존재는 불멸하고 유일하며, 변하지 않는 완전한 실체로 남는다.


*노자: 음양: 만물은 음을 등지고 양을 가슴에 안고 있다: 음양은 양면성 또는 세계를 구성하는 상반되는 성질을 나타내는 보편적인 은유로 사용된다. 


*플라톤: 동굴: 사람들이 거대한 지하 동굴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사슬을 끊고 동굴 밖으로 나가야만 햇빛을 쬐며 바깥 세상의 진짜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성으로 인지하는 이데아의 세계만이 진실이며,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은 일종의 환영이다.


*에피쿠로스: 정원: 나그네여, 여기서 그대는 편히 지낼 것이오. 이곳의 최고선은 쾌락이라네: 정원 안에서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요소인 평온함(아타락시아)과 자족의 상태(아우타르케이아)가 꽃핀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꼭두각시: 꼭두각시가 되지 말라: 우리는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행복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추기는 우리 내면의 열정이다. 내면의 충동과 열정을 제어함으로써 얻는 고요만이 우리를 적대적인 세상의 불안과 억압에서 자유롭게 하고, 행복을 위해 필요한 자주성을 갖추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거울: 지금 우리는 답이 희미한 수수께끼와 같은 거울을 통해 보고 있다: 거울에는 신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자리는 없다. 거울 속 이미지는 당신과 같고자 하나, 그러지 못하기에 거짓인가?


2. 중세

*오컴: 면도날: 더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은 것을 통해 얻는 일은 헛되다: 면도날 은유는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가설, 가정 또는 명제를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논리와 신성 사이의 명확한 구분선을 그어, 철학적 사고와 신학적 사고를 분리한다.

 

3. 근대

*몽테뉴: 여행: 나는 무엇 때문에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내가 피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만, 내가 찾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곤 한다: 여행은 자아와 세상을 탐구하는 행위가 되며,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인상을 언어로 재구성된 여행 경험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 의식의 변화를 증언하는 역할을 한다.


*홉스: 늑대: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어떠한 개인도 자연 상태에서는 타인에게는 늑대가 되어 위협적 존재로, 자신과 가까운 이들에게는 희생자이자 처형자로 변하는 인간이기에, 생존을 위해 외부의 질서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자신의 자연권을 포기하고 주권자에게 그 권리를 위임한 국가가 탄생한다. 


*디드로: 빛: 이 땅에 빛이 퍼지리라: 현재를 계몽하여 미래를 변화시키고자, 지식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간한 백과전서, 진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절대성을 잃고 상대적 개념이 된다.   


*칸트: 비둘기: 가벼운 비둘기는 자유로운 비행을 하다가 공기의 저항을 느끼면서, 공기가 없는 공간에서라면 더 잘 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인식과 경험의 한계를 무시하고 감각적 근거 없이 이성만으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잘못된 추론을 경계한다. 


4. 19세기

*헤겔: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밤의 고요가 찾아올 때 모습을 드러내는 부엉이처럼, 철학도 현실 세계가 형성되고 인식 과정이 완성된 후에야 비로소 날개를 펼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해라.


*키르케고르: 비밀" 그러니까 비밀이란 직접적으로 지식을 표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비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내면의 핵심을 나타내는 이미지다. 비밀을 통해 우리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삶의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의 원천이 되는 각자의 고유한 개인성을 발견하게 된다.


*마르크스: 아편: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세속적인 고통을 초월해 행복을 약속함으로써 종교는 사회를 마치 몽유 상태에 빠뜨린다. 그로 인해 사회는 현실의 불의를 감지하고 이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한다. 아편처럼 종교는 사회를 움직이는 경제적 기반을 짙은 연기로 가려버린다. 그러나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만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의 조건이다. 종교와 사회경제적 구조는 긴밀히 얽혀 있다.


*니체: 바다: 바다가, 우리의 바다가 다시 열렸다. 이렇게 '활짝 열린' 바다는 아마도 이전에 존재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경직되고 유연성이 결여된 모든 철학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열린 바다처럼 유동적이고 역동적이며 현실을 생생하게 해석하는 열린 사유의 밑그림을 그린다.



5. 20세기

*프로이트: 빙산: 수면 위로 보이는 일각으로 빙산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억눌린 트라우마, 두려움, 은밀한 욕망과 잊혀진 갈등이 저장된, 인간 내면의 지하 창고와 같다. 90%는 수면 아래 있고(무의식) 단 10%만이 물 위로 보이는(의식) 빙산 이미지, 우리의 내면 세계는 의식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 잠긴 무의식 안에 숨겨진 에너지에 의해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비트겐슈타인: 놀이: 나는 또한 언어와 그 언어가 얽혀 있는 활동 전체도 '언어 놀이'라로 부를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특정 상황에서의 규칙을 따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놀이'이다. 문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혼동하거나 잘못 사용하는 데서 생겨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벤야민: 아우라: 아우라는 지금, 여기와 연결되어 있다: 복제 불가능한 고유성에서 비롯된 '아우라'는 복제 과정에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아렌트: 사막: 사막은 인간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한다: 사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정치적 공간이 사라질 때 생겨나는 황폐한 공간이다.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공적이고 공통된 공간에서 나타난다. 정치가 부재할 때 사막은 확장된다. 우리 사이의 사회적 공간, 즉 '사이 공간'을 지켜내면서 사막의 확장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들뢰즈/ 가타리: 리좀: 기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항상 중간에 있다: 지식, 문화, 사회는 모든 지점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횡단적 네트워크로 간주한다. 단일한 기원이나 원인을 찾기보다는, 현실을 다양한 요인과 힘, 현상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이해한다. '리좀식' 사고는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수목식' 사회 위계 구조에 저항한다.


*사이드: 동양: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규정되었다: 동양의 은유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문화적 표현이 어떻게 권력 및 정치와 상호작용하며 '타자'와 '그들'에 대비되는 '나'와 '우리'의 개념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머틀러: 매트릭스: 이 관계들은 주체 형성을 위한 매트릭스를 구성한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특정한 규범 체계 내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설명한다. 기존의 규범 체계를 벗어나는 행동이 발생할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매트릭스가 가시화된다.


6. 21세기

*바우만: 액체: 삶의 유동성과 사회의 유동성은 상호 작용하며 강화된다: '액체 근대성'의 삶은 끊임없이 형태와 경로를 바꾸며 이동한다. 사회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며, 사람들이 적응할 겨를도 없이 해체되고, 인간 간의 연대는 약해지며 공동체 의식은 희미해진다. 개인의 정체성은 부유하며 관계, 유행 그리고 무분별한 소비의 영향을 받으며 쉽게 변한다. '액체 현대'에서 철학은 고정된 이론으로 남아서는 안 되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철학적 은유가 필요한 때 일지도, 우리는 새로운 은유를 찾는 길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이승국이 해설하는 '누구나 클래식' 들으러 세종문화회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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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은유들
페드로 알칼데.멀린 알칼데 지음, 기욤 티오 그림, 주하선 옮김 / 단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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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영역에서 메타포는 서로 다른 두 단어의 동일화, 다시 말해 ‘의미의 전이‘를 뜻하며, 이는 대부분의 서양 언어에서 동일하게 이해된다. (2쪽)

문학 작품처럼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삶을 탐구하는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인간에 대한 하나의 완전한 지도를 그려 낸다. 다양한 가명을 사용해 쓴 그의 글은 여러 삶을 소개한다. (중략) 각 장면마다 인물들은 존재 가능한 여러 좌표를 제시하며, 독자는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 선택한 길 위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비밀의 은유는 인간 영혼의 깊숙한 영역을 탐험하는 데서 시작된다. 비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내면이 핵심을 나타내는 이미지다. ‘비밀‘을 통해 우리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삶의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의 원천이 되는 각자의 고유한 개인성을 발견하게 된다. (32쪽)

아렌트가 말하는 사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정치적 공간이 사라질 때 생겨나는 황폐한 공간을 가리킨다. (중략) 인간은 그 자체로 정치적 존재가 아니며,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공적이고 공통된 공간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사막은 바로 이러한 공적 공간이 사라진 결과이다. 정치가 부재할 때 사막은 확장된다.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바람은 모래 폭풍처럼 불어와 남아 있던 건강한 상호작용의 공간과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세력에 맞서 살아 있는 작은 오아시스까지도 덮쳐 버린다. 더 큰 위험은 우리가 회피와 오락이라는 신기루에 빠져, 귀신처럼 떠돌며 사막의 삶에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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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순전히 제목에 끌려 펼친 책이다. 아울러 표지에 따뜻한 스웨터, 사과, 크로아상, 버섯 등 그림도, 중간 중간 삽화도 한몫했다. 번역도 참 잘하셨다. 

행복은 언제나 함께 있다. 기억의 저편에서 부터 넘어온 행복이 지금도 넘친다. 


'우리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삶. 거의 다다를 뻔했던 삶.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있었던 풋풋한 삶. 하나의 소박한 판타지라 할 수 있는 그 삶은 집 안에서 치러지는 절차의 순서를 바꾸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바꾸는 착한 광기가 약하게 일기만 하면 될 일이다.(16쪽)'


서른 네편의 행복의 항목들에 하나하나의 추억까지 버무려저 더디게 읽혔다. 아니, 아껴서 읽었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파리 별장에 머물렀을 때, 아침 일찍 폴 베이커리까지 걸어가 크루아상 사서 냄새 맡으면서 온 기억이 난다.

첫 맥주 한모금,의 맛을 어찌 잊을까, 생맥주 한잔에 오백원했던 그 시절, 뭣 모르고 아껴가며 마시던 기억이 있다.

일요일 저녁에,서는 화장실이 집안에 있었던 우리 집, 친구들의 부러움으로 욕조에 물 가득 담고, 손가락 끝이 쪼글했던 기억이 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엄마와 공중 목욕탕으로 명절 전에는 꼭 다녔던 기억도 있다.

아침 식사 때 읽는 조간신문,에서는 한겨례가 처음 나왔을 때, 보던 신문을 교체하여 바꿨던 기억, 그리고 아빠가 닭장차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가족들과, 특히 둘째 동생과의 치열한 논쟁, 기억이 난다. 다시 다른 신문으로 바꿨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자전거의 휴대용 발전기 소리,에서는 딸들을 차례로 태워서 운동장을 돌아 줬던 기억과 자전거 배우면서 무릎 깨진 기억도 있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는 처음 바다를 본 기억이 있다. 아직도 바다가 좋다.

처음 하는 페탕크,는 아빠가 보여준 손으로 하는 마술과 함께 악기 놀이했던 기억, 목마와 양팔에 한명씩 올려서 좌우로 흔들어 줬던 기억도, 그리고 이제는 카드 놀이와 윷놀이, 화투, 힐링 게임까지 하고 있다.

멈춰 있는 정원,에서는 마당있는 한옥에 살 때 엄마가 매년 가꿨던 맨드라미, 봉숭아, 사루비아, 붓꽃, 나팔꽃 등이 있다. 서로의 손톱을 물들여줬던 그 시절이 그립다. 양옥집으로 와서는 감나무, 대추나무, 라일락 나무 등이 있었고, 그 아래 사루비아꽃(엄마는 이 꽃이 가장 오래 간다고 예뻐함)이 만발했었다.   

가을 스웨터,는 엄마가 떠준 노랑색 스웨터가 생각난다. 중학교 입학해서 하복 입기 전까지 입고 다녔다. 특히 팔꿈치에 둥그랗게 덧댄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가끔씩 내가 떠서 하나씩 나눠주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어떤 소설,은 우리자매들이 좋아했던 추리소설이라 서로 돌려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집집마다 전집을 들여놓던 시절, 아직도 친정에 가면 세계명작 시리즈들이 도열해 있다. 십오소년표류기, 보물섬, 김승옥 무진기행,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등이 아직 기억난다.

영화관에서는, 아빠와 엄마가 선 보던 날, 두 분이 영화를 보러 갔는데, 아빠가 마음에 딱 들었던 엄마는 아빠의 손을 그때 꽉 잡았단다. 87살 할머니는 아직도 94살 할아버지 손을 잡고 계신다. 

바나나 스플릿,은 달콤함이 넘칠 때, 가끔 일상에서는 커피믹스로, 여름에는 팥빙수로, 겨울에는 단팥죽으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나의 입이 호사를 누린다. 맛있으면 영칼로리를 믿는다.    

이동 도서관,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어릴 때 시골 동네로 다니며 사진 찍어 주던 이동 사진관이 생각난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우리 오남매의 백일, 돌 사진도 다 찍어 주셨다. 

옛날 기차를 다시 타다,는 아주 느린 새마을호, 무궁화호 기차가 떠오른다. 대전역 광장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던, 그리고 경춘선 타고 중도 가서 자전거 탄 기억도 난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하기,는 얼마를 넣었더라, 가물한 기억에 전화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직접 본 거보다 더 가까이 느껴졌던 일, 연애할 때 사용했던 전화카드가 아직도 보물로? 있다. 그때는 손편지도 썼다. 그러고 보니 삐삐도 있었다. 

   

2. '바느질 수다(마르잔 사트라피 지음)'는 이란 여성들의 원색적이고 바늘같이 뾰족한 아찔한 수다지만, 수다의 끝은 멋진 조각들로 이어져 있다. 여자들이 모두 이런 내용의 수다를 떠는 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지만, 이야기 내용을 포장하고 정도의 차이가 나서 그렇지, 동일 선상에 있는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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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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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9-10쪽)

소박한 삶의 상징들에 결부된 지적 허영은 종종 감미롭게 느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시골풍의 사치다. (23-24쪽)

이것은 모순적인 사치다. 우리는 가장 완전한 평화 속에서, 진한 커피 향 속에서 온 세계와 소통하는데, 그 세계가 담긴 신문에는 전쟁의 참화, 사건 사고가 난무하다. 똑같은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면, 연신 휘몰아치는 말 때문에 주먹질을 당한 듯 벌써 스트레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리라. (중략) 하지만 그 폭력에서는 까치밥나무 열매 시럽과 코코아, 구운 빵 냄새가 난다. 신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31쪽)

두 팔을 펼쳐 모은 상태로 오래 책을 읽다 보면, 턱이 스르르 내려가 모래사장에 파묻힌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중략)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싫증이나 들쭉날쭉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에 포함되는 것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그런 느낌이 든다. (40쪽)

엉겁결에 초대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속박에서 벗어나 몸이 몹시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다. 초대 받은 집의 검은 고양이가 무릎 위로 기어올라 앉으면, 마치 내가 그 집에 입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삶은 그곳에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다. (47-48쪽)

그러나 사과 냄새는 예전 기억 이상의 그 무엇이다.(중략) 지하 저장고나 어두운 곳간의 추억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곳에 살아 서 있기에 옛날 일을 떠올린다.(중략) 사과 냄새를 맡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것은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떤 삶, 더 이상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없는 ‘느림‘의 냄새이기 때문이리라. (78쪽)

때마침 괜히 바나나 스플릿을 주문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후회의 감정이 당신을 어쩌면 따분한 단맛일 수 있는 바나나 스플릿을 끝까지 먹게 만든다. 건강해진 타락이 나약해진 식욕을 부추기러 온다. 어린 시절, 찬장 속 잼을 몰래 꺼내 먹던 기분처럼, 우리는 어른의 세계에서 부적절한 쾌락을 훔쳐온다. 규범에 의해 마지막 한 스푼가지 배척당하는 쾌락. 바나나 스플릿은 우리를 죄악에 빠뜨린다. (104쪽)

시간을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버는 것일까? 여하튼, 길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조용히 열을 지어 돌아가고 있는 이 무빙워크는 나에겐 하나의 긴 공백이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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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집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추리소설이 최고다. 

그 안에서는 반드시 밝혀지고,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 

역사와 버무린 미스터리, 그 속에서 우리네 인생이란 이런거다로 알 수 있다. 

누군가 권력을 취하는 상황에서 누구는 편익을 취하고, 누구는 고통을 당하면서 개인의 삶은 달라진다. 

그러한 틈새에서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선택지가 아주 미비하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알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요즘 애정을 갖고 보는 메이저리그가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시간 제한이 없는 야구(연장전은 있지만)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요기 베라 명언)'가 나왔으니, 우리 시간도 끝날 때까지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보는 거다. 

최근 LA다저스 팀의 믿기 어려운 퍼펙트 경기가 9회말 2아웃에서 뒤집혀진다, 이런 거 보면 최선을 다해도 어렵더라,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최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언제나 어렵고 힘든 거 같다. 

오늘 어디에서 날아 온 돌멩이로 생긴 자동차 앞 유리 돌빵 복원 수리했다. 멀쩡한 도로에서, 이런 게 인생 같다. 밝힐 수도 없고 드러나지 않는 일로 인해 아까운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추리 소설 내용에서 옥의 티라고 생각되는, 캐드펠 수사의 아들이 나온다. 굳이 아들로 연결할 필요까지,,, 그리고 13살 소년의 생각이 그 정도로 깊다니, 놀랍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위로와 위안이 된다.

글의 내용이 뒤죽박죽, 소설 내용과 작금의 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뒤로 하니 이렇다.   

가을이 옷 자락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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