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집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추리소설이 최고다. 

그 안에서는 반드시 밝혀지고,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 

역사와 버무린 미스터리, 그 속에서 우리네 인생이란 이런거다로 알 수 있다. 

누군가 권력을 취하는 상황에서 누구는 편익을 취하고, 누구는 고통을 당하면서 개인의 삶은 달라진다. 

그러한 틈새에서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선택지가 아주 미비하다. 그러나,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알지만, 지금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고 있다.  

요즘 애정을 갖고 보는 메이저리그가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시간 제한이 없는 야구(연장전은 있지만)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요기 베라 명언)'가 나왔으니, 우리 시간도 끝날 때까지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보는 거다. 

최근 LA다저스 팀의 믿기 어려운 퍼펙트 경기가 9회말 2아웃에서 뒤집혀진다, 이런 거 보면 최선을 다해도 어렵더라,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최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언제나 어렵고 힘든 거 같다. 

오늘 어디에서 날아 온 돌멩이로 생긴 자동차 앞 유리 돌빵 복원 수리했다. 멀쩡한 도로에서, 이런 게 인생 같다. 밝힐 수도 없고 드러나지 않는 일로 인해 아까운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추리 소설 내용에서 옥의 티라고 생각되는, 캐드펠 수사의 아들이 나온다. 굳이 아들로 연결할 필요까지,,, 그리고 13살 소년의 생각이 그 정도로 깊다니, 놀랍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위로와 위안이 된다.

글의 내용이 뒤죽박죽, 소설 내용과 작금의 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뒤로 하니 이렇다.   

가을이 옷 자락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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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케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서고에 꽂힌 '식물스케치'가 눈에 띄어 바로 집어 들었다.

펼치니, 웬걸, 스케치가 없다. 뭐지, '식물스케일'이다. 


저자가 들어가는 말에서 한 말, '식물이 주인공이 아니다. (중략) 식물 자체가 갖는 물리적 속성, 혹은 식물을 통해 주변과 관계 맺는 방식에 더 경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생명과 성장, 결실과 죽음을 성찰하게 하고, 말없이 위로와 행복을 주는 대상으로서 식물이 갖는 경이로운 지점을 말해보려 했지만, 나의 눈과 발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했기에, 식물을 앞에 두기보다 옆이나 뒤에 두고 발생하는 이야기들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식물이 언제나 나의 지척에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5-6쪽).'


식물의 크기와 비례를 고려하여 생활을 구성하고, 삶의 모양을 바로잡고, 인생의 척도로서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식물의 스케일 아래에서 다루고 있다. 건축 도면의 축소된 크기로 실제 공간을 상상해 보듯이, 저자의 주변에 있는 식물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성찰한 글이다. 

어릴 때 읽은 '걸리버 여행기'가 떠오르는 발상, 시선의 산책, 현실을 유예하면서 상상해보기, 이해하기 위해 근거를 찾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보이지 않는 숨겨둔 것을 볼 수 있다. 


박세미 글을 더 읽고 싶다. 


매일 적어도 한 가지 이상 버리기. 스케치하기. 감사기도 실천 중이다.

'숲을 읽는 사람(허태임)', '가만히, 걷는다(신유진)', 읽다가 말다가 하는 중이다.

휴가를 다녀왔고, 아빠의 마지막 휴가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이 전반적으로 다운되어 있고, 이렇게 살면 안되는 데, 그럼 어떻게, 정답이 있을까... 

추가로 뉴욕양키스 경기 보는 낙이 있어 다행이다.

거의 매일 카페 가서 책 읽는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마구 뛰어다닌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되는 데, 걱정이다, 그들의 미래가. 

또한 도서관 봉사 중이다. 책 빌리는 이가 거의 없다. 답답하다.

그리고 나의 서재 방문객이 어마 무시하다. 왜? 서재 지수가 이제야 보이네, 이 점수는 어떻게 나오는 거지, 몰라도 되고, 그냥 저냥, 나도 자주 방문해야 한다. 

벌써 구월이다. 하늘은 파랗고 높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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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XIQUE(프랑스어로 독, 중독의)에 중독된 프랑수아즈 사강이 전문 의료 시설에서 치료 받는 동안 쓴 일기다.

중독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통하여 자신을 해독한다. 그녀는 두렵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문학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해독한다. 

그래서 이 글은 '해독 일기'다.

특히, 그녀의 일기와 맞물려 베르나르 뷔페의 아주 강력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진하고 굵은 검은 색의 그림과 글씨가 글의 내용을 뒷받침한다. 사강의 심리 상태와는 반대로 그림은 아주 강렬하다. 반어법 같다고나 할까. 

최근 어디서 읽은 글, "글쓰기는 발현이 아니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이 아니다. 이미 있는 것에 대한 해독이다. 당신이 이미 해놓은 것에 대한 해독이다." 사강의 해독은 글쓰기였다. 해독이란 단어에서 두 가지 의미가 같이 떠올라 옮겨 본다.

*해독 解讀 : 어려운 문구 따위를 읽어 이해하거나 해석함. 

*해독 解毒 : 몸 안에 들어간 독성 물질의 작용을 없앰.


그리고 특히, 옮긴이의 말도 참 좋다. 


뜬금없이, 무더위라 하면 1994년 아들이 태어난 해를 잊을 수 없다. 기록은 갱신하기 위한 것이지만, 나에게 더위는 그때가 단연 으뜸이다. 벌써 8월이니, 금방 추위가 오겠지요.   

그래서 지금 할 일은,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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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라는 의미를 다른 시각으로 크게 되새긴다. 그 많은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글이다. 오히려 실패는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실패를 이겨내고 견뎌내야만 하는 시각이 아니라 실패를 삶의 구성 요소로 삼을 수 있으며 결핍을 넘어서 새로운 조건의 기반으로 볼 수 있는 자세로 확장시켜준다. 글을 읽으면서 실패한 모습을 되새김하고 후회와 자책으로 돌아가는 무한 반복의 시간이 멈춤 했다.

저자는 프란츠 카프카, 페르난두 페소아, 장 콕토 같은 작가들을 실패의 예로 든다. 우리가 읽고 있는 작품들이 이들의 실패에서 나왔다는 게 놀랄만하지 않는가. 그리고 스스로 실패했다고 여기고, 실패자로 자신을 규정했다는 사실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특히, 번역에 관한 부분과 읽을 줄 안다는 부분을 읽을 때, 실패라는 사실을 의연히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책은 번역 불가능하고, 번역가는 덧없는 것을 마주하는 위대한 실패자(54쪽)이기 때문이고,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실패를 거듭하지만 의미의 명쾌함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텍스트는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처럼 보이기(205쪽) 때문에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러고 보니 실패는 존재 이유,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 삶의 원동력으로 이제는 '더 낫게 실패하기'가 숙제이다.

그리고 저자의 실패 목록(76쪽/103쪽) 중에서 전화 한 통 넣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권 완독하기/ 자기 기만의 강력한 유혹에 저항하기/ 책 귀를 접거나, 맹인을 치거나,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을 사는 지경까지 나를 놓아 버리기/ 후회하기/ 등이 흥미롭다.

덧붙여 나의 실패에 위로가 되어 준 71쪽 글이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실패하기 때문에. 혹은 글을 쓰면서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삭제하고 다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단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시 쓰는 사람recrivain이 되어야 한다.' 

[각별한 실패]를 각별하게 강력하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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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은 가보고 싶다, 그 길을 걷고 싶다,에서 도저히 못 갈 거 같다. 못 가겠다. 안 가겠다,로 바뀐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저자가 까미노를 걸으면서 수집한 사람들의 말을 글로써 체험한다. 

사람들이 남겨 둔 여러 언어로 된 다양한 말에서 저자가 선택했지만, 그 말에서 내가 또 선택한다.

말, 말, 말이 너무 많다. 넘쳐 나는 세상에 또 끄적거려 보탠다.

누구에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닿는 말이기를 바란다. 


우리말로 읽을 때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THE'의 의미가 '그'는 맞지만..

WHEN YOU LOSE THE MEANING OF THE WAY, 

REMEMBER WHAT YOUR CAMINO SHOULD BE, 

NOT "THEIR" OR "THE"

길의 의미를 잃었을 때, 

'당신의' 까미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기억하세요. 

'그들의'나 ''가 아니라(78쪽)


*이 참에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이라도 가볼까,싶다.

*어마 무시하게 비가 온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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