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시 말들의 흐름 3
정지돈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직 이름만으로 사랑에 빠지기.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애정이자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15쪽)

나는 대부분의 영화를 컴퓨터 모니터로 봤고, 요즘은 핸드폰 액정으로 본다. 이건 어떤 면에서 독서와 동일한 개념이며 그래서 많은 경우 내게 영화는 책이기도 했다. 파일화된 영화는 언제나 멈출 수 있고 다시 볼 수 있으므로 그건 나를 자유롭게 했다. (17쪽)

그러므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영화와 시를 좋아하는 것(또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 내 과제다. 즐기고 공감하고 감동받는 것으로 끝내기. (인디아나 존스)를 보던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19쪽)

뉴욕의 일상과 점심시간이라는 찰나 동안 잠깐 부상했다 사라지는 감각을 포착하는 데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 자신의 사소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있다. 그는 냉소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스스로도 냉소적이라고 말했지만 (중략) 그는 삶의 사사로운 요소들에는 냉소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열광적이었다. 무언가가 지속되고 확장되며 정립되어야지 의미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냉소적이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시가 영원이나 상징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리얼리티‘이길 원했다. 시는 시를 읽는 지금 이 순간 삶과 함께 일어나는 일이다. (64-65쪽) * 그 = 프랭크 오하라

내가 과거에 좋아햇던 이 책을 지금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축자적 의미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말이 나왔던 세계에 감응하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확신에 찬 말, 우울하고 울분에 찬 말, 자조적이고 냉소적이고 아름답고 비참한 말, 모든 시대는 모든 시대를 꿈꾸게 한다. 이러한 종류의 꿈은 서로 다른 맥락과 선으로 얽혀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보다 선들의 흔적을 쫓아가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 (90쪽)

브로드스키의 방식은 사람들 사이로 점점 퍼져나갔다. 다시 말해 (1)사회의 전형적인 롤모델을 따르지도 않고 (2)사회를 비판하거나 저항하지도 않으며 (3)자신만의 시공에 존재하기. (중략) 이런 식의 행위 모델을 알렉세이 유르착은 담론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대신에, 그것을 내부로부터 탈영토화시키는 또 다른 전략이라고 말한다. 대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일탈이 주류가 될 때에야 비로소 근원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110쪽)

낡은 시네필리아는 미학적 즐거움을 특권화했고, 이는 영화를 가치 매기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네필리아는 영화의 즐거움과 가치에 관한 더욱더 폭넓은 개념으로 영화를 본다. 주변화된 사람들의 삶, 주체성, 경험, 세계가 곧 그들의 중심이다. (130-131쪽)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방향성이다. (중략) 모른다는 것은 몇 안 남은 축복이다. 알아가는 것은 몇 안 남은 기쁨이다. 대상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대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1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