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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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지금 나는 마음대로 옷을 입는다. 하지만 과거의 그 불안, 옷을 잘못 입어 뭐라 핀잔을 듣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그림자로 남아 있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적당한 옷을 골라 입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간혹 시달릴 때면 차라리 교복 같은 유니폼을 입는 게 더 간단하지 않을까 아직도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19쪽)

진실과 거짓, 겉모습과 현실 사이의 대립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표지는 책에 하나 목은 두 개의 정체성을 부여한다. 내용과는 별개의 표현 요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책이 말하는 것이 있고, 표지가 말하는 것이 있다. 이 때문에 표지를 좋아하지만 책을 싫어할 수도 있고, 반대로 책을 좋아하지만 표지를 싫어힐 수도 있다. (29쪽)

안타깝게도 표지 없이는 책을 팔 수 없다. 누구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책, 설명 없는 책을 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지금의 독자는 관광객과 닮았다. 관광객은 안내 책자를 읽으며, 독자는 표지의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모르는 지역에 내리기 전 정보를 얻고 방향을 잡는다. 관광할 장소를 직접 찾아가 그곳에 있기 전에. 책을 읽기 전에. (49쪽)

표지에 내 사진을 싣겠다는 제안에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사진을 싣는 게 허영기로 비춰질까 봐, 마니아 독자층을 가진 책을 팔기 위한 뻔뻔스러운 전략으로 비춰질까 두려웠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쳤다. (중략) 그래서 처음으로 난 내 책의 표지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결국 작가는 책이다. 작가는 직접 진솔하게 책을 나타낸다.내용과 상관없는 불꽤한 이미지보다는 내 사진이 더 낫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에서 내가 표지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을 터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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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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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칭이란 인생이 항상 그렇게 심각하고, 형식적이고,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유물, 어린 시절이 남겨준 유물인 것이다. 애칭은 또한 사람이란 함께 있는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41쪽)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긑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는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과,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 (71쪽)

어찌 보면 아쇼크와 아시마는 아주 늙은 사람들의 삶을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알던 사람들, 사랑하던 사람들을 모두 잃은 채 오직 기억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남은 사람들, 아직 살아 있는 가족들까지도 어떻게 보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볼 수도 없고 손에 닿지도 않는 곳에 있었으니까. (88쪽)

이제까지 고골리는 이름도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이름 또한 사라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96쪽)

그는 그녀가 죽도록 보고 싶었다. 마치 부모님이 그 세월 동안 인도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것처럼, 난생 처음으로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155쪽)

둘만 남겨져 있으니, 그에게는 어느 때보다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아직도 누구에겐가 기대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망명을 자처한 그였고, 누군가로부터의 기대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집에서 그는 어떤 책임도 없었다. (188쪽)

이제야 부모님이 그동안 속에 담아두셨을 죄책감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부모님이 인도에서 돌아가셨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으셨을 때, 게다가 돌아가신 지 몇 주 혹은 몇 달 후 그곳에 가서 자식으로서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음을 느끼셧을 때의 기분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234쪽)

드레스를 기억 못하는 그를 탓할 일만도 아니었다. 11월이었고 토요일이었다는 것만 기억났다. 그런 날들은 이제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 연애할 때의 기억은 지금 기념해야 할 일들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321쪽)

처음부터 부모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보장된 장래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한때 그에게 글리게 했던 친숙함이 이제는 오히려 그녀에게 장애가 되기 시작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끔가다 그를 생각하면 어떤 패배감과 함께 그녀가 거부했던 종류의 삶, 그토록 잊으려고 애썼던 종류의 삶이 어쩔수 없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니킬은 그녀가 함께 있기를 굼꾸어왔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랬던 적도 없었다. (323쪽)

그리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를 생각했다. 둘은 싸우지도 않았고 섹스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없었다. 그는 모슈미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걸까? 그녀가 불평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모슈미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뭔가 불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곳에 신경이 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349쪽)

그러나 고골리를 형성한 것은, 결정적으로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이것들은 사전에 준비가 불가능한 일들이지만, 되돌아보려면, 돌아보며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평생이 걸리는 일들인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될, 제자리를 벗어난 곳에서 잘못 일어난 일들이지만, 결국 끝까지 삶을 지배하는 동시에 삶을 견뎌낸 것들이었다. (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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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김근주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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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다. 하나님을 믿고 이해하고 깨닫는 근원적인 출처가 바로 신구약성경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의 계시인 이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어떤 행동이나 적용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20-21쪽)

해석은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이 공동체 안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해석은 반드시 공동체적이어야 하며, 우리 해석의 타당성 역시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진리 주장은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확인되고 검증되는 것이다. 그러니 개별 본문들에 귀 기울이며 충실히 다루어 가되, 우리의 해석이 타당한지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검토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64쪽)

구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신약을 구약의 문맥 안에서 읽어야 한다는 실천적인 함의를 지닌다. 구약은 사라진 시기의 말씀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한결같은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구약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구약은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적 차원을 항상 명심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지극히 사사롭고 개인적인 차원으로 축소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가 드러내고 있는 문제의 본질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07쪽)

불의한 세상을 향한 예언자의 비판은 온데간데없이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만 들여다보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독재 권력과 부패한 권력에게 최상의 종교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교회가 늘어갈수록, 이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잘못되고 불의한 구조보다는 내면의 평화, 내면의 변화, 내 안에 있는 죄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중략) 그러니 이렇게 개인주의적이고 사적인 성경해석은 어느 시대든 절대 권력이나 부패한 권력의 환영을 받고 막대한 후원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례들을 이미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 곳곳마다 볼 수 있다. (117쪽)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이 두 가지를 합쳐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 전체의 맥락 안에서 읽는다는 의미며, 신약의 모든 본문이 구약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139쪽)

논리적으로 당연하게, 이후 이스라엘의 존재는 정의와 공의의 삶으로 대표된다. 다윗의 나라는 정의와 공의의 나라고(삼하 8:15), 솔로몬의 통치 역시 정의와 공의의 통치로 알려졌으며(왕상 10:9), 이스라엘에서 새로 등극하는 왕들에게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를 부어주시기를 기도했다(시 72:1). 정의와 공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걲는 것‘(시 72:4),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는 것‘(사 1:17),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않는 것‘(렘 7:6),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는 것‘(렘 22:3)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풍성한 제사를 드릴지언정 이러한 정의와 공의의삶에 대한 요구는 도외시했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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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적의 친구 - 파리, 내가 만난 스물네 명의 파리지앵 걸어본다 8
김이듬 지음, 위성환 사진 / 난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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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그렇다면 당신의 주된 활동은 무엇인가?
E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리서치‘라고 부른다. (중략) 내가 하는 일들은 모두 일종의 리서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등도 마찬가지다. (19쪽)

K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A 생각을 적게 하는 사람, 바로 행동하는 성격의 사람. 나는 너무 신중한 편이거든요. (30쪽)

K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성균관대학교 외의 다른 대학에서 일한 경험도 있으시죠?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P (중략) 교육의 문제점은 학생들의, 학생들을 위한 자주성이랄까. 자율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한 주된 구성원인 학생들에게 상세히 발표하거나 면밀히 검토하고 잘 구조화된 리포트를 작성하는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사상가들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없었습니다. (37-38쪽)


K 마지막으로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P 살라, 행동하라, 일하라. 하지만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항상 궁금해하는 것을 멈추세요. (

K 너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G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는 나라와 사람들이 힘들고, 또 정말 힘들다고 생각해. 그들은 인정받기를 원해. 나는 가끔 슬퍼. 왜냐하면 한국은 현대성의 측면에서 너무 미숙하고 나는 그들이 서양에 의해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49쪽)

K 어리석지만 중요한 질문을 드릴게요. ‘문학‘ 혹은 ‘시‘란 무엇입니까?
F 당신은 시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가? (중략) 시나 노래는 혁명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어떤 혁명도 시나 노래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와 정치는 같은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시와 정치는 꽤나 다르고, 종종 상반된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협력하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낳는다. 내 친구인 어느 미국 시인이 말하길, 이것은 왼손. 오른손과 같다. 그것들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둘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의 뜻은 문학적 장르로서의 시poetry가 없는 정치적 시poeme politique는 공허하다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인간적이고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시가 필요하다. (61-62쪽)

K 무슨 데모가 이렇게 축제 분위기야?
A 우리는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거야, 시민들이 거리에서 시위 행진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행위잖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보호해주는 것이 민주주의지. 한국은 어때? (69쪽)

김 파리에 유학 오려는 이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면요?
최 (중략)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따위의 세계화를 가장한 편협한 민족주의적 사고에는 개인적으로 반대하지만, 한국 안에서 그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과 대립하며 사유와 예술을 펼치는 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세계적인 문제와 맞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공부만을 위하여 이곳에 올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중략) 프랑스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을 매일 던져보게 되는 나라이기도 하죠.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는, 그 어디에 있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77-78쪽)

K 네 커피가 유독 맛있는 건 골드 샷에 기인한 거 같은데, 골드 샷은 어떤 거야?
E (중략) 나에게 골드 샷이란 가지고 있는 원두에서 최상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마시는 사람이 맛과 향과 그 느낌을 언제나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샷을 말해. 내 커피를 마시는 손님에게 하나의 지침서(참고서)가 되길 바라. (84쪽)

K 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S 음악은 당신이 듣는 모든 것과 당신이 이해하는 그 모든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95쪽)

K 당신은 무엇을 위해 연주를 해요?
S 콘서트와 DVD 만들기는 달라요. DVD는 모르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같아서 예쁘게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콘서트는 다르죠. 모든 이와 여러 시간 공유하는 세계입니다. 즉흥적인 소통이 가능해요. 음악은 말이고 놀이입니다.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한다고 하면 당신은 실망할까요? (103쪽)

K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R (중략)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나의 일을 좋아하고 현재를 사랑합니다. 아, 그리고 난 프로듀서지만 음악가예요. 중세 유럽 기타를 밤새워 연습하고 있지만 좋은 아티스트는 아니라서 하루종일 아주 좋은 음악가들과 생활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해요. (112쪽0

한국을 떠나 평생 살 수 있을까? 난 글쎄다. (120쪽)

"탱고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요?" 직업이 고교교사인 에바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탱고는 인생이죠. 난 죽을 때까지 춤추고 싶어요." 누구나 자기 삶이 끝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는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대단히 가치 있으며 무엇이 하찮은가는 아무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128쪽)

K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뭘까요?
P 돈과 이혼 문제입니다. 이혼 때문에 아이 셋의 양육 소송중인데, 그애들은 스페인에 살고 있고 1년에 두 번 만나고 있어요.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고 부드러운 뺨을 쓰다듬을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슬픔이에요. (136쪽)

욕심내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좀 더디더라도 제가 가진 것에 맞춰 천천히 가면 되지 않을까요? (중략)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남과 비교해서 나를 채찍질하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우리 자신한테 너무 관대하지 못한 것 같아요. 사실 여기서 지내는 6년 동안 친구들한테 그런 지적도 많이 들었고요. 이런 엄격함이 우리가 진짜 포기해야 할 것과 욕심내야 할 것을 바꿔 놓은 건 아닐까요? (164쪽)

K "파리지엔 파리지엥"을 피사체로 한 작품 모음도 있는데요. 그들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H 나는 파리지엔느 하면 검은 여자가 떠올라요. 이 여자는 엘레강스하고 오래전부터 프랑스에 있어온 어떤 하나의 문화예요. 반면 한국 여자들은 같은 옷, 비슷한 스타일을 많이 따르는 것 같아요. 파리지엔느는 다른 국가와 다른 프랑스의 유일한 것, 유행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미학 같은 겁니다. (195쪽)

나는 인터뷰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건강한 아웃사이더를 만나도 그 거울 속엔 신음하는 내가 있다. 인터뷰라는 형식의 창으로 그들을 찌른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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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 장석주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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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그것을 지시하는 이름 사이에는 심연 같은 게 놓여 있다. 이름들 속에서 사물의 근원적 기원을 찾는 일은 아득하다. 이름은 실재가 없는 시랮요. 사건이 없는 실존-사건이니까. (19쪽)

"술빵 냄새의 시간"이란 술빵이 부풀고 익어가는 시간이다. 술빵이 숙성하듯이 사람도 성숙해진다. 숙성이나 성숙에는 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103쪽)

봄이 해마다 축복처럼 돌아오는 세상에서 끔찍한 불행과 고통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너의 절망을 말해보렴. 내 절망도 말할 테니. 패악과 부조리가 전횡하는 세상이라도 꺽이지 말고 꿋꿋하게 살자. (중략) 더 이상 착해지지 말자. 더 이상 무릎을 끓거나 기어 다니지도 말자. (133쪽)

사람은 늙고 죽는다. 죽은 이에게 남은 것은 뼈의 슬하. 물렁한 살의 슬하뿐이다. 끔찍해라. 그 슬하에 꿈틀거리는 거리는 것은 "구더기"들이다! 그 구더기들이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177쪽)

우애와 우정이 있던 그 시절. 시간은 기쁨으로 가득 찬 윤무와 같았다. 예전보다 더 많이 가졌지만 지금은 더 가난하고, 더 높은 직책을 가졌지만 기쁨이나 보람은 줄었다. 양친 다 떠나시고 형제자매들도 다 흩어졌으니, 호시절이 다시 오기는 아예 글러버린 것이겠지? (197쪽)

한번 난 것은 받드시 죽는다. 죽음이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찰나들이 빛난다. (중략) 죽음이 별것인가? 모인 기가 마침내 흩어지는 게 죽음이다. 그때 우리 안의 구름, 바람, 물도 다시 제자리로. 제 모습으로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계급, 존비, 대소 따위가 아니다. 사는 동안 ‘활짝 열린 존재‘로 얼나나 열심히 사는가가 중요하다. (219쪽)

‘밀당‘을 하고, ‘썸‘타는 것. 인맥을 ‘어장‘이라 하고, 그것을 ‘관리‘한다고 표현하는 따위가 다 그렇다. 인간관계를 전략으로 보고 거내 든 야트막한 수작들이다. 겉치레와 허장성세로 짜인 관계들 위에 세워졌다면 그 삶은 진짜가 아니다. 사랑이건 우정이건 제 것을 아낌없이 주며 환대하고, 받을 때도 벼랑에서 목숨받듯 한다. 전율이 전류처럼 찌릿하게 흐른다. 그게 진짜다.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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