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25 소설 보다
김지연.이서아.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사람한테 갚을 게 신세 진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걸 엉뚱하게 갚으면 안 되지. (24쪽, 무덤을 보살피다)

앞서 가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수동이 부럽기도 했다. (중략) 오늘 내린 선택들은 죄다 엉망이었지만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 다가올 일들 미처 알 수 없는 것일까? (38쪽)

소설의 제목처럼 무덤을 보살피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무덤을 보살피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망각과 은폐를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걸까요. (49-50쪽, 무덤을 보살피다 인터뷰)

정치적 판단과 행위는 단지 사랑의 마음으로 주고받을 종류의 일이 아니어서, 화수의 이야기를 들은 연인과 수동은 "할아버지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냐며 화수를 한심하게 바라봅니다. 이때 처음으로 화수의 세계가 무너집니다. 물론 화수는 "자신에게 선했던 세계가 패배했다는 것"과 자신에게 "그런 패배가 필요했음을" 인정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3쪽)

어쨌든 마을은 아주 많은 생의 역사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64쪽, 방랑,파도)

남매는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바다에 대해서는-적어도 서핑에 대해서는-놀라운 전문가였다. 나는 그들이 바다를 대하는 태도가 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게 바다는 장소였지만, 그들에게는 온몸으로 일렁이며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물체였던 것이다. (78쪽)

내게 좋은 파도란 없다. 죄다 견디기 힘들고 고달픈 파도일 뿐이다. (79쪽)

슬픔은 전문성과 세련됨을 박탈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전문적이고 세련된 슬픔만을 환대한다. (99쪽)

거대한 존재는 내 슬픔을 주워주지 않는다. 거둬 가주지도 않는다. 보살펴주지도 않는다. 슬픔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100쪽)

서핑을 배우는 ‘나‘의 시간을 그리는 일은 어떤 마음의 움직임으로 가득한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105쪽, 방랑,파도 인터뷰)

아무래도 스쿠버다이빙과 서핑은 수평의 움직임과 수직의 움직임의 혼합을 가장 근사하게 나타내는 스포츠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중략) 어쩌면 생의 모든 행위는 수평적 움직임과 수직적 움직임을 내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106-107쪽)

할머니가 책의 문장을 밑줄 그르며 마음에 새겼듯 할머니의 문장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보는 ‘나‘의 시간이 이토록 가깝고도 아득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기 때문이기도 (111쪽)

가깝고도 먼 채로 문장을 나누는 시간, 쓰고 읽고 밑줄을 긋고, 그 흔적을 곱씹으면서 내내 활자 너머를 매만지려는 마음을 지키고 이어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힘을 사람은 어떻게 스스로 만들어내곤 하는 걸까요? (중략)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요? (111-112쪽)

벤치에 많은 노인들이 지켜보았다. 그들은 얇은 코트 혹은 우비만 걸친 채 매일 오후 벤치로 왔고, 날이 저물 때까지 앉아 있었다. 노인들이 무엇을 하러 오는지 노아는 잘 몰랐다. 시간을 때우러 오나 보다, 막연히 추측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이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일이었다. 느리고 꾸준하게, 표정 없는 얼굴로 시간을 흘러보내는 일. (123-124쪽,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너무 오래 눈 마주치치 마세요." 목적어와 주어 모두 분명치 않은 지시였다. 누구와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건지, 어느 정도 바라보아야 오래 눈을 마주친 것인지, 무엇 하나 명확한 게 없었다. (133쪽)

어머니는 노아가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불현듯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노아의 양손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네 이름은 더 낫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모두를 인도하는 이름인걸. 그 새로운 세상에선 모두가 배부르고, 즐겁고, 따뜻할 테고......(147쪽)

‘필연‘ 또는 ‘우연‘에서 관계가 발생하는 이유는 실상 당사자들의 감정(또는 인식) 때문이죠. 관계의 계기 자체가 중요하기보다는, 뭐든 간에 관계의 계기로 삼아보려는 마음이 더 핵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166-167쪽,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인터뷰)

응시는 소통과 위험이 모두 담긴 행위입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면도 있을 거예요. 끔찍한 장면이 펼쳐질 걸 알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공포 영화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도 계속 보게 되는 타인의 얼굴처럼, 삶에서도 도무지 시선을 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있어요. 설령 본인이 그 장면을 보고 상처받으리라 예상해도 말이죠. (172쪽)

권태를 견디든 변수들을 버티든, 그 모든 인내를 합당케 하는 확신을 누구에게도 쉽게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저도 늘 제 일과 삶에 관한 확신이 있는지 의심하며 벌벌 떨고 있기에.....(17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르는 마음 - 리브레리아Q 서점원 노트 ðiː inspiration 작가노트
정한샘(정림)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방문 리뷰 중 ‘눈을 감고 골라도 좋은 책을 안고 나가는 곳‘이라는 글이 있었다. (중략) 이곳에서 책을 안심하고 골라 가는 데에는 아주 큰 전제가 따른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분노하고 상처받는 지점이,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웃고 우는 마음이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다. 그렇지 않다면 이곳의 책들은 마치 외계의 다른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것이고 그저 한번 둘러보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어쩌면 까다로운 한 인간의 개인적인 취향을 통과한 책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집 센 곳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30-31쪽)

책을 사지 않고 나갔을 뿐인데 내가 골라놓은 책이 외면받는 기분이 든다. 선택받지 못한 책들은 외로워 보이기만 한다. 책방의 하루는 그저 낭만만 가득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밖에서 보이던 그 노란 책방의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나는 영영 모를 텐데도 내 마음대로 따뜻한 공간이라 생각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끊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이어지면 다시 말들이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책 좋아하면 책방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94쪽)

어느 속상한 날
사람들은 작은 화면 뒤에 ‘누군가‘있지 않고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방은 낭만이 있어야 하고, 책을 파는 사람은 친절할 거로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존경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환멸을 느낄 때가 많고,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지만 빨리 그만두고 싶기도 하다. 세상도, 개인의 상황도 온통 먹구름이다, 선물 받은 잔에 선물 받은 코냑을 따라 두고 이쁘다, 이쁘다 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밤. (119쪽)

안다. 이런 수많은 ‘만약‘을 떠안고는 그 어떤 글도 읽을 수 없다. 읽을 수만 없나, 쓸 수도 없다. 이런 ‘만약‘들로 문장을 파헤치고 비난할 수 없다. 그 모든 ‘만약‘을 피해 갈 수 있는 글은 이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책의 첫 문장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이미 일어난 행위인지 열망이지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므로 나의 ‘만약‘들은 이미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만약‘들은 머릿속에서 정렬되다 곧 사라지고, 다시 읽기 시작한다. 다음 문장, 또 다음 문장에 경탄하면서. (127쪽)

이 작가는 자신의 삶을 소설로 썼으며, 그 삶은 세대와 지역의 차이를 빼고 보더라도 내가 겪고 아는 삶과는 너무나 다르다. (중략) 다른 삶을 발견하는 것은 종종 나의 무지를 발견하게 되고, 빈약하고 초라한 앎의 깊이를 마주하게 되는 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때론 부끄럽고, 때론 화가 난다. 어떤 때는 아무도 몰랐으면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도 된다. 그래도 발견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서 연결되는 것들에 나를 맡겨보고 싶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연결에 초대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160-161쪽)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후의 삶.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바로 지금 살아내고 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수도 읽을 수도 없다. 읽을 수 없으므로 쓰기를 멈춘다. 병과 죽음. 남겨짐과 애도를 빼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갑자기 몸을 부풀리는 순간이 있다. 주로 후회로 연결되는 기억들이다.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결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 그냥 운다. (189쪽)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말 어느 상황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마음먹기 마련인 감정일까요? 만약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행복을 찾는 기준을 바꾸어야 하는 것일까요? (20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의 사진 - NO. 1
홍재운 지음 / 서정문학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은 시각적 감각으로 기록한 한 편의 시, 낱낱이 드러나는 상처의 증언이고,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의 재현입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 파생되는 이미지는 비가시적 공간으로 펼쳐지고 재생산됩니다.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21쪽)

사진은 실제의 숲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숲이라는 개념 자체를 감각적으로 재조립한 풍경이다. (52쪽)

이미지는 문자보다 때로 더 강한 전달과 울림으로, 이동하는 감성을 포함하고 있다. (97쪽)

사진은 때로 편견을 허무는 해방이다. (중략) 카메라의 위치를 낮은 자세로 변형시킨 방법은, 낯익은 풍경을 낯선 풍경으로 재구성해 평범함을 허문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이렇게 수평, 초점, 자세를 변형해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한다. (122-123쪽)

보는 각도에 따라 높이에 따라 우리의 눈은 다르게 제시하고 받아들인다. 같은 도시의 풍경을 전혀 다른 스토리로 번역, 반전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지요. 그리하여 이미지를 개념화하는 사진, 여행입니다. (143쪽)

사진은 단순한 조형 예술의 기록이 아니다. ‘지금‘이라는 순간이 철 구조물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되는 감각, 왜곡된 시간으로 늘어나는 세상을 발견하는 통로이며 사랑 움직이는 전복적 상상이다. (175쪽)

카메라의 눈은 이미지에 대한 강제 포착으로 일종의 폭력이다. 반면에 사람의 눈에 비친 사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잊혀진다. (중략) 어쩌면 자주 카메라와 사진작가의 눈이 다르게 표현될 때가 있다. (중략) 기억과 기록이 다른 방향으로 분리되는 시선이다. (198-19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담과 이브의 일기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마크 트웨인 지음, 프란시스코 멜렌데스 그림,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긴 머리의 새로운 피조물이 아주 거치적댄다. 항상 얼쩡거리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도 않거니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어색하다. 그것이 다른 동물들하고 지내면 좋겠다...... 오늘은 흐리고 동풍이 부니, 우리에게 비가 찾아올 모양이다...... 우리? 내가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더라?...... 지금 떠올랐는데, 새로운 피조물이 그 말을 쓴다. (11쪽, 아담의 일기 중)

이 모든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초반에 이브를 잘못 판단했음을 알겠으며, 그녀 없이 동산 안에서 사느니 그녀와 함께 동산 밖에서 사는 편이 더 낫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가 침묵에 잠겨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우리를 가까이 하나로 맺어주고 나를 깨우쳐 그녀의 선량한 마음과 그녀의 다정한 영혼을 알게 한 그 밤栗에 축복 있으라! (38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거리를 조금 두고 다른 ‘실험‘의 뒤를 밟으며, 가능하다면 그것의 존재 이유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남자인 것 같다. 남자를 본 적은 없으나, 그것은 남자처럼 생겼으며, 나는 그것이 다름 아닌 남자라고 확신한다. (중략) 처음에 나는 그것이 무서웠고, 그것이 뒤돌아볼 때마다 나를 쫓아올까봐 도망부터 쳤다. (46쪽, 이브의 일기 중)

지금, 우리는 정말로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점점 더 친해지는 중이다. 그가 더는 나를 피하려 들지 않는데, 이는 좋은 징조이며, 그가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실이 기뻐서, 그의 호감을 사고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힘쓴다. (중략)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가 어색한 침묵을 드러낼 새도 없이 내가 먼저 이름을 지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내 덕분에 그는 곤란한 상황을 수차례 모면했다. 나에게는 그와 같은 결함이 없다. (중략) 그리고 그러면서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50-51쪽, 이브의 일기 중)

이 행성에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나는 어떤 동물한테는 무관심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차별 없이 모든 동물에게 정을 쏟고, 그들 전부를 보물로 여기며, 새로운 동물은 무엇이든 환영한다. (66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지금껏 많은 것을 배웠고 이제는 박식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지했다. (중략)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러면 앎을 얻게 되지만, 짐작과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면 결코 박식해지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답을 얻을 수 없지만, 짐작과 가정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조차 결코 알아내지 못할 테니, 정말이지,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답을 얻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고, 세상이 몹시 흥미로워진다. 알아낼 게 하나도 없다면 따분하리라. (71-72쪽, 이브의 일기 중)

내가 그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영리함 때문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뜻이 아니었기에 그의 탓이 아니며, 그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는 어떤 현명한 목적이 있었으며, 그쯤은 나도 안다. (75-76쪽, 이브의 일기 중)

그렇다. 나는 단지 그가 내 것이고 남성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내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사랑은 이성과 통계의 산물이 아닌 듯하다. 이 사랑은 그냥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략) 알고 보면 무지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잘못 판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78쪽, 이브의 일기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서를 열다 -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가해한 세계 앞에서 비아 시선들
토마스 머튼 지음, 정다운 옮김 / 비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서를 이해하는 길은 분투의 여정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저 의미를 찾아보려고 참고서적 뒤지듯 성서를 읽어서는 안 됩니다. 성서를 이해하는 길은 성서에 내재한 극명한 걸림돌과 모순을 정직하게 마주하려 분투하는 길이며, 그 길로 나아가려 애써야 합니다. (52쪽)

우리는 성서, 우리가 ‘읽는‘ 책이라 여기는 그 책이 본래는 특정 무리, 그 메시지와 호흡을 맞춰온 무리가 ‘낭송‘하며 또 ‘듣던‘ 글임을, 구전 전승들의 모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략) 성서의 메시지는 공동체와 모임의 정체성을 세우고 굳건히 하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말씀은 예배를 위한 것으로, 공동체가 함께 믿고 응답하며 받아들이고 확증하며 찬미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성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를 알아야 합니다. (78-79쪽)

성서를 읽을 때 우리는 각 성서 저자가 의도한 바, 그 실제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객관적이고도 현실적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중략) 성서 안에 있는 각 책은 제각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문학적으로도 폭넓은 양식을 지니며, 다채로운 역사적 배경 속에 쓰였다는 사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성서가 분리될 수 없는 한 권의 책이며 동일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러면 불가피하게 성서 바깥에 있는 무언가, 즉 전통과 함께 읽어야 할 테지요. 전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성서에 여러 저자뿐 아니라 다수의 편집자가 참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자들의 의도와 더불어 편집자들의 의도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편집한다는 것은 곧 해석한다는 뜻이며 이는 성서 본문에 이미 다양한 층위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100-101쪽)

성서를 읽으며 우리 자신이 문제임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이 자유의 역동으로, 이러한 이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서는 화해와 일치의 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자리한 근원적인 분열, 일치와 화해에 반발하는 마음을 끌어내 자각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분열에 대한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으로, 그 뼈아픈 현실 속으로 걸음을 내딛게 되며, 무책임과 본능에 분별없이 빠져들지 않게 됩니다. 역사 속으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 어떤 운명을 감내하는 것,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지난한 의무를 다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자유로 부르셨다는 말은 인간이 이 사랑의 세계를 건설할 수도 있고, 그 일을 거절한 수도 있다는 뜻, 탐욕, 미움, 욕정, 살해의 욕구에 사로잡힌 자리에 머물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116-117쪽)

이성을 잃어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 대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좋지 않은 일을 피하려 이상보다 훨씬 ‘덜 이상적인‘ 일을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계산해 낸다면 어떨까요? 이때 계획은 ‘부도덕‘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악에 관한 교리는 혼란스럽고 어려운 경험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의 자비 가운데 어떤 의미를 빚어내는 방식이 아닌, 복음의 급진적인 요구를 계속 회피하는 방식으로, 계속 ‘상대적으로 덜 나쁜‘ 길을 택하게 만듭니다. (중략)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미리 합리화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상상력을 마비시키고, 어떠한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어떠한 흔들림, 내적 갈등없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갈등은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합니다. (151-15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