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앰플 없이 열세 시간을 버텼다. 이건 사건이 틀림없다. (17쪽)
나 자신과 함께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기묘한 기분이다. 고백하자면 내겐 나하고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 더 좋을 것 같은 사람이 대여섯 명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나 자신과 맺는 관계 앞에서 거만해진다. (23쪽)
이제부터 나 자신과 맺는 행복한 관계는, 자연이 주는 육체적으로 편안하거나 고양되는 몇몇 순간과 다른 존재들을 제외하고, 오로지 문학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중략) 품에 안을 사람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리고 고독이 더는 아무도 주지 않는 일거리와 같은 의미가 될 대, 인생은 서글퍼지니까. (25쪽)
나는 글 쓰는 게 몹시 좋다. 건강한 작가가 마지막 문장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며 거만한 포즈를 취하듯, 내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머리 뒤로 손깍지를 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27쪽)
인과응보를 믿지 않던 내가, 나의 주정뱅이 형제들, 파리의 밤을 함께했던 사람 좋고 다정한 무리들이여, 이제는 더 이상 당신들을 이 바에서 저 바로, 이 자동차에서 저 자동차로 따라다니지 못하겠군요. 아니면 술을 조금도 마시지 않고 따라다니거나. 하지만 그건 안 될 듯해요. 그런 건 슬플 것 같거든요. (35쪽)
나는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무시무시한 사실은 행갈이를 해서 써줄 가치가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이 벌어지든, 문학적으로 생각하거나 글을 쓴다. 나는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내게 반하고, 나를 돌보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근육을 하나하나 다시 키우고, 옷을 차려입고, 끝없이 내 신경을 달래고, 나에게 선물을 하고, 거울 속의 나에게 불안한 미소를 지어 보여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43쪽)
오로지 먹기 위해서, 그리고 햇볕을 쬐기 위해서만 일어나는 건 매력적인 일이지.하지만(그러고 보면 나도 참 어지간하다), 그렇게 하는 건 사흘을 도둑맞는 것 같다는 기분이 동시에 든다. 내 인생의 사흘, 침대와 소파만 오가고, 조금 답답해하면서,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려고 애쓰며 보내게 될 시간. (48쪽)
어쩌면 이 하찮은 일기를 쓰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내 문학 활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편? 그래, 그런데 뭘 쓰지? 도입부가 서른 개나 떠오르는데 결말은 없다. (56쪽)
프랑수아즈 좋아, 아주 좋아. 내 관심사는 이거다. 단편소설을 써야지. 문제는 ‘계획‘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든다는 사실이다. 비가 내린다. "아, 삶은 얼마나 느리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아, 아폴리네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나는 얼마나 지루한가. 그냥 도망쳐버릴까? 어쩌면. (59쪽)
큰비가 온 뒤에 읽는 랭보. 잘 알던 앙다유 해변에서 이 시들을 읽으며 혼자 않아 있었던 어느 아주 이른 오후가 생각난다. 아주 커다란 행복. (63쪽)
나는 어떤 것들을 배웠다. 어쩌면 속임수였을지도. 그런데 언제쯤이면 내게 애스턴을 몰 힘이 생길까? 포르트 마요 교차로를 속력을 좀더 내서 달릴 힘이...... 도로와 광정들이 모두 그립다. 돌진하는 그 검은 보닛, 믿음직스럽고 정겨운 그 소리, 약간 길쭉한 재규어, 약간 묵직한 애스턴. 너희 때문에 죽을 뻔하고 나니 너희가 죽도록 그립구나. (66쪽) 아주 인간적이야. (67쪽)
그들과 함께 택시를 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예전에 나는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다. 지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속상하다. (69쪽)
나는 왜 항상 상황 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던 걸까? (75쪽)
프루스트를, 스완의 열정을, 행복해하며 다시 읽는다. 진정한 행복은, 진실과 산문이 일치하는 순간처럼 드문 일이다. 나는 문학에서 발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포크너를 읽으며 한 번도 진찌로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 이유다. (중략) 나 혼자 쓸데없는 말놀이를 하는 대신 단편소설이나 써야겠다. 초등학생, 약에 취한 초등학생 같다. 진짜다. (77쪽)
마치 텅 빈 느낌. 이 건강 타령은 너무 길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못하게 된 기분이다, 정말 이상한 기분. 병은 정말 최악이다. (79쪽)
이 병이 낫지 않는다면 염두에 둘 하나의 흔한 해결책처럼. 나를 두렵게도 하고 혐오스럽게도 하지만 죽음은 일상적인 생각이 되었고, 만약의 경우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내 몸을 오래 속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자살하는 것. 맙소사, 때때로 우리는 얼마나 혼자가 될 수 있는지. (중략) 넉 달 동안 나는 두려웠다. 두렵고 두렵다는 게 나는 지겹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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