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는 우리를 들뜨게 하지
바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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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뜨개를 하는 사람은 다소곳하거나 여성스럽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또한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뜨개는 지루하고 촌스럽다는 편견 역시 깰 수 있길 바란다. 뜨개는 그런 것이 아니다. (10쪽)

나는 니터의 첫 번째 덕목은 무엇보다 숫자를 잘 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미스터리다! 셀 때마다 콧수가 달라지는 경험을 꽤 많이 했다. 정말 미스터리다! (21쪽)

뜨개뿐만이 아니라 모든 취미가 그렇겠지만, 취미에는 돈이 꽤 많이 든다. 뜨개실은 저렴한 실부터 고가의 실까지 가격대가 매우 다양하고 어떤 실로 뜨개를 하냐에 따라 들어가는 돈은 천차만별이다. (97쪽)

바로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는 행동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뜨개는 요가와 비슷하다. (중략) 뜨개를 할 때 실제로 몸에서는 항우울제인 세로토닌을 방출해서 우울감 완화와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중략) 하지만 뜨개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칼로리 소비는 없다는 것이다. 전혀, 전혀 없다. (102-107쪽)

하지만 가끔 뜨개를 하다가 실이 침대 밑으로 떨어지면 운동 아닌 운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코어에 힘을 주고 상체만 길게 늘어트려 실을 줍는다. 이건 좀 그래도 코어 운동이지 않을까? (186쪽)

다시는 충동적으로 캐스트온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하지만 캐스트온은 사채 같다. 빌릴 땐 기간 안에 사채 대금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돈을 빌리면 빨리 빨리 갚기가 싶다. 과연 문어발을 모두 청산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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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 스케치북
존 버거 글.그림, 김현우.진태원 옮김 / 열화당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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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드로잉을 하는 사람들은, 관찰된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15, 17, 20쪽)

역사는 이미 인정이 된 후에도 영원히 반동적이기 때문이다. (중략)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견딤, 역사를 마주한 결과로 생겨난 견딤, 역사의 반동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속성을 보장하는 견딤. 지나간 무엇과 다가올 무엇에 대한 소속감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해 주는 점이다. 하지만 역사를 마주한다는 것은 비극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외면해 버리게 하는 이유이다. 스스로 역사에 동참하겠따는 결심은, 설령 그 결심이 절박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희망이다. (49-50쪽)

운명에 이름을 지어 줄 수 있을까. 운명에 종종 기하학 단위 같은 규칙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표현할 명사는 없다. 드로잉 한 점이 명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중략)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 이미지는 더 자주 생생해진다. (71쪽)

노인이 되어 가는 동안, 어떻게 그림들은 그렇게 아름답게 남아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 그림들은 왜 바뀌지 않는 걸까. 너무 근사한 마돈나의 얼굴은 왜 나이를 먹지 않은 걸까. 왜 그 눈은 그동안 흘린 눈물로 멀어 버리지 않은 걸까. 어쩌면 그 불멸성-영원성-은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 아닐까. 어쩌면 그런 식으로 예술은 자신을 낳은 인간들을 배신하는 것일까. (82쪽)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은 만남의 장소로 꽤 특별하다. 전시관이 마치 거리 같다. 산 자(관람객들)와 죽은 자(그림 속의 인물들)로 북적대는 거리.
하지만 죽은 자들도 떠나지 않았다. 그 인물들이 그려질 당시의 ‘현재‘, 화가들이 만들어낸 현재가 마치 그들이 직접 살았던 그 순간의 현재만큼이나 생생하고, 인적이 느껴진다. 가끔 더 생생한 경우도 있다. (99족)

만약 인간에게 있는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등하다면, 분명히 인간의 삶은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 (117쪽)

인간 신체는 매우 많은 수의(상이한 본성을 지닌) 개체들로 합성되어 있으며, 이 개체들 각자는 매우 복합적이다. (중략) 인간 신체를 합성하는 개체들, 따라서 인간 신체 그 자체는 매우 많은 방식으로 외부 물체들에 의해 변용된다. (중략) 인간 신체는 외부 물체들을 매우 많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이것들은 매우 많은 방식으로 배치할 수 있다. 인간 정신은 매우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신체가 좀 더 많은 방식으로 배치될 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다. (147쪽)

드로잉은 무언가를 지향하는 실천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서 발생하는 다른 지향의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드로잉을 할 때 나는, (중략) 대상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드로잉은 무언가를 꼼꼼히 살피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는 본능적인 충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구, 점을 찍으려는 욕구, 사물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 위치시키려는 욕구에서 나온다. (중략) 모든 드로잉은 각자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독창적인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매번 드로잉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그때만의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번 드로잉은 예측할 수 없는 그때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실패한다. 그럼에도 모든 드로잉은 비슷한 상상력의 작동으로 시작된다. (중략) 바로 그 상상력의 작동-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많은 것들처럼 복잡하고 모순적인 그것을, 나는 정의 내리고 묘사해 보고 싶은 것이다. (155-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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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은유들
페드로 알칼데.멀린 알칼데 지음, 기욤 티오 그림, 주하선 옮김 / 단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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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영역에서 메타포는 서로 다른 두 단어의 동일화, 다시 말해 ‘의미의 전이‘를 뜻하며, 이는 대부분의 서양 언어에서 동일하게 이해된다. (2쪽)

문학 작품처럼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삶을 탐구하는 키르케고르의 철학은, 인간에 대한 하나의 완전한 지도를 그려 낸다. 다양한 가명을 사용해 쓴 그의 글은 여러 삶을 소개한다. (중략) 각 장면마다 인물들은 존재 가능한 여러 좌표를 제시하며, 독자는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 선택한 길 위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비밀의 은유는 인간 영혼의 깊숙한 영역을 탐험하는 데서 시작된다. 비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내면이 핵심을 나타내는 이미지다. ‘비밀‘을 통해 우리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삶의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의 원천이 되는 각자의 고유한 개인성을 발견하게 된다. (32쪽)

아렌트가 말하는 사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정치적 공간이 사라질 때 생겨나는 황폐한 공간을 가리킨다. (중략) 인간은 그 자체로 정치적 존재가 아니며,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공적이고 공통된 공간에서 나타난다고 보았다. 사막은 바로 이러한 공적 공간이 사라진 결과이다. 정치가 부재할 때 사막은 확장된다.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바람은 모래 폭풍처럼 불어와 남아 있던 건강한 상호작용의 공간과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세력에 맞서 살아 있는 작은 오아시스까지도 덮쳐 버린다. 더 큰 위험은 우리가 회피와 오락이라는 신기루에 빠져, 귀신처럼 떠돌며 사막의 삶에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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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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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9-10쪽)

소박한 삶의 상징들에 결부된 지적 허영은 종종 감미롭게 느껴진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시골풍의 사치다. (23-24쪽)

이것은 모순적인 사치다. 우리는 가장 완전한 평화 속에서, 진한 커피 향 속에서 온 세계와 소통하는데, 그 세계가 담긴 신문에는 전쟁의 참화, 사건 사고가 난무하다. 똑같은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면, 연신 휘몰아치는 말 때문에 주먹질을 당한 듯 벌써 스트레스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리라. (중략) 하지만 그 폭력에서는 까치밥나무 열매 시럽과 코코아, 구운 빵 냄새가 난다. 신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31쪽)

두 팔을 펼쳐 모은 상태로 오래 책을 읽다 보면, 턱이 스르르 내려가 모래사장에 파묻힌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중략)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싫증이나 들쭉날쭉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에 포함되는 것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그런 느낌이 든다. (40쪽)

엉겁결에 초대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속박에서 벗어나 몸이 몹시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다. 초대 받은 집의 검은 고양이가 무릎 위로 기어올라 앉으면, 마치 내가 그 집에 입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 삶은 그곳에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다. (47-48쪽)

그러나 사과 냄새는 예전 기억 이상의 그 무엇이다.(중략) 지하 저장고나 어두운 곳간의 추억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곳에 살아 서 있기에 옛날 일을 떠올린다.(중략) 사과 냄새를 맡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것은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떤 삶, 더 이상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없는 ‘느림‘의 냄새이기 때문이리라. (78쪽)

때마침 괜히 바나나 스플릿을 주문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후회의 감정이 당신을 어쩌면 따분한 단맛일 수 있는 바나나 스플릿을 끝까지 먹게 만든다. 건강해진 타락이 나약해진 식욕을 부추기러 온다. 어린 시절, 찬장 속 잼을 몰래 꺼내 먹던 기분처럼, 우리는 어른의 세계에서 부적절한 쾌락을 훔쳐온다. 규범에 의해 마지막 한 스푼가지 배척당하는 쾌락. 바나나 스플릿은 우리를 죄악에 빠뜨린다. (104쪽)

시간을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버는 것일까? 여하튼, 길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조용히 열을 지어 돌아가고 있는 이 무빙워크는 나에겐 하나의 긴 공백이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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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여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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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사촌 사이 같지 않은 사촌인 그들은 싸움에 휘말려 서로를, 그리고 잉글랜드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한 연중의 농사, 철이면 철마다 해야 하는 쟁기질과 씨레질,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하는 법이었다. 영혼의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이곳 수도원과 교회의 일상도 마찬가지였다. (17쪽)

내 경험하기로, 산다는 게 편하고 평화스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네. (34쪽)

죽음과 유사한 수면의 상태와 깨어 있는 삶이 엇갈리는 지극히 짧은 순간마다 그의 기억을 차단하고 있는 장막이 얇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장막은 얇아지기만 할 뿐 결코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148쪽)

극단의 상황에 처할 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생존에 가장 큰 힘이 되는 법이다. (167쪽)

해야 할 의무 이상의 첵임을 스스로에게 지워서는 안 되지.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야 마음껏 후회하고 고백하고 참회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는 건 다른 얘기요. 하느님의 평가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185쪽)

지난 다섯 세기 동안 누군가 특정 시기에 특정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물론 세상은 달라졌겠지. 하지만 그 세상이 지금의 세상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만일이라는 가정은 아무리 해봐야 의미 없는 것이오. 그보다도 우리가 서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지. (186쪽)

왕가의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고자 서로 치고받는 곳에서는 저열하기 짝이 없는 또 다른 인간들이 제 이익만을 쫓아 조금의 망설임이나 자비도 없이 시류를 이용하리라. 캐드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저열한 인간들이 날뛰는 곳. 범죄가 만연하고 정의가 실종된 곳에서는 근방의 집집이 온갖 악행의 제물이 되는 법이다.(306쪽)

사실의 한 토막만을 가지고 어떤 사태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거든. 비록 그 한 토막의 사실이 자백처럼 명명백백한 것이라 해도 말이지. 다른 사실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지 않느냐.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해야 해. (3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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