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의 일기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마크 트웨인 지음, 프란시스코 멜렌데스 그림,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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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머리의 새로운 피조물이 아주 거치적댄다. 항상 얼쩡거리며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도 않거니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도 어색하다. 그것이 다른 동물들하고 지내면 좋겠다...... 오늘은 흐리고 동풍이 부니, 우리에게 비가 찾아올 모양이다...... 우리? 내가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더라?...... 지금 떠올랐는데, 새로운 피조물이 그 말을 쓴다. (11쪽, 아담의 일기 중)

이 모든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초반에 이브를 잘못 판단했음을 알겠으며, 그녀 없이 동산 안에서 사느니 그녀와 함께 동산 밖에서 사는 편이 더 낫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가 침묵에 잠겨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우리를 가까이 하나로 맺어주고 나를 깨우쳐 그녀의 선량한 마음과 그녀의 다정한 영혼을 알게 한 그 밤栗에 축복 있으라! (38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거리를 조금 두고 다른 ‘실험‘의 뒤를 밟으며, 가능하다면 그것의 존재 이유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남자인 것 같다. 남자를 본 적은 없으나, 그것은 남자처럼 생겼으며, 나는 그것이 다름 아닌 남자라고 확신한다. (중략) 처음에 나는 그것이 무서웠고, 그것이 뒤돌아볼 때마다 나를 쫓아올까봐 도망부터 쳤다. (46쪽, 이브의 일기 중)

지금, 우리는 정말로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점점 더 친해지는 중이다. 그가 더는 나를 피하려 들지 않는데, 이는 좋은 징조이며, 그가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실이 기뻐서, 그의 호감을 사고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려고 힘쓴다. (중략)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날 때마다 그가 어색한 침묵을 드러낼 새도 없이 내가 먼저 이름을 지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내 덕분에 그는 곤란한 상황을 수차례 모면했다. 나에게는 그와 같은 결함이 없다. (중략) 그리고 그러면서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50-51쪽, 이브의 일기 중)

이 행성에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바로는 없다. 나는 어떤 동물한테는 무관심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차별 없이 모든 동물에게 정을 쏟고, 그들 전부를 보물로 여기며, 새로운 동물은 무엇이든 환영한다. (66쪽, 아담의 일기 중)

나는 지금껏 많은 것을 배웠고 이제는 박식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지했다. (중략) 실제로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그러면 앎을 얻게 되지만, 짐작과 가정과 추측에 의존하면 결코 박식해지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답을 얻을 수 없지만, 짐작과 가정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조차 결코 알아내지 못할 테니, 정말이지,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답을 얻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고, 세상이 몹시 흥미로워진다. 알아낼 게 하나도 없다면 따분하리라. (71-72쪽, 이브의 일기 중)

내가 그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영리함 때문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가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뜻이 아니었기에 그의 탓이 아니며, 그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는 어떤 현명한 목적이 있었으며, 그쯤은 나도 안다. (75-76쪽, 이브의 일기 중)

그렇다. 나는 단지 그가 내 것이고 남성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 같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내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사랑은 이성과 통계의 산물이 아닌 듯하다. 이 사랑은 그냥 다가오며,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고 설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략) 알고 보면 무지와 경험 부족으로 인해 잘못 판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78쪽, 이브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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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열다 -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가해한 세계 앞에서 비아 시선들
토마스 머튼 지음, 정다운 옮김 / 비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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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이해하는 길은 분투의 여정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저 의미를 찾아보려고 참고서적 뒤지듯 성서를 읽어서는 안 됩니다. 성서를 이해하는 길은 성서에 내재한 극명한 걸림돌과 모순을 정직하게 마주하려 분투하는 길이며, 그 길로 나아가려 애써야 합니다. (52쪽)

우리는 성서, 우리가 ‘읽는‘ 책이라 여기는 그 책이 본래는 특정 무리, 그 메시지와 호흡을 맞춰온 무리가 ‘낭송‘하며 또 ‘듣던‘ 글임을, 구전 전승들의 모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략) 성서의 메시지는 공동체와 모임의 정체성을 세우고 굳건히 하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말씀은 예배를 위한 것으로, 공동체가 함께 믿고 응답하며 받아들이고 확증하며 찬미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성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를 알아야 합니다. (78-79쪽)

성서를 읽을 때 우리는 각 성서 저자가 의도한 바, 그 실제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객관적이고도 현실적인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중략) 성서 안에 있는 각 책은 제각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문학적으로도 폭넓은 양식을 지니며, 다채로운 역사적 배경 속에 쓰였다는 사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성서가 분리될 수 없는 한 권의 책이며 동일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러면 불가피하게 성서 바깥에 있는 무언가, 즉 전통과 함께 읽어야 할 테지요. 전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적어도 성서에 여러 저자뿐 아니라 다수의 편집자가 참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자들의 의도와 더불어 편집자들의 의도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편집한다는 것은 곧 해석한다는 뜻이며 이는 성서 본문에 이미 다양한 층위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100-101쪽)

성서를 읽으며 우리 자신이 문제임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이 자유의 역동으로, 이러한 이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서는 화해와 일치의 책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자리한 근원적인 분열, 일치와 화해에 반발하는 마음을 끌어내 자각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분열에 대한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역사 속으로, 그 뼈아픈 현실 속으로 걸음을 내딛게 되며, 무책임과 본능에 분별없이 빠져들지 않게 됩니다. 역사 속으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 어떤 운명을 감내하는 것,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지난한 의무를 다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자유로 부르셨다는 말은 인간이 이 사랑의 세계를 건설할 수도 있고, 그 일을 거절한 수도 있다는 뜻, 탐욕, 미움, 욕정, 살해의 욕구에 사로잡힌 자리에 머물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116-117쪽)

이성을 잃어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 대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좋지 않은 일을 피하려 이상보다 훨씬 ‘덜 이상적인‘ 일을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계산해 낸다면 어떨까요? 이때 계획은 ‘부도덕‘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악에 관한 교리는 혼란스럽고 어려운 경험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의 자비 가운데 어떤 의미를 빚어내는 방식이 아닌, 복음의 급진적인 요구를 계속 회피하는 방식으로, 계속 ‘상대적으로 덜 나쁜‘ 길을 택하게 만듭니다. (중략) 극단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미리 합리화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상상력을 마비시키고, 어떠한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어떠한 흔들림, 내적 갈등없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갈등은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합니다. (151-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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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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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도 후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도 우리는 날렵한 발굽으로 돌길을 재빠르게 걷는 당나귀를 피할 테고, 열린 안뜰과 마졸리카 계단을 볼 것이며, 무엇보다 현지 사람을 만나게 될 테니까. (37쪽)

살아 있는 사람들의 거리야말로 가장 좋은 박물관이다. 여기서 마치 다른 시대로 헤매 들어온 것 같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한층 이상하다. 다른 시대란 없다. 과거에 있던 것이 지금도 있다. 만약 저 기사가 칼을 찼고, 저 사제가 알라의 경전을 해설했으며, 저 소녀가 톨레도의 유대인이었다면. 그것이 톨레도 거리의 성벽보다 이상하고 멀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다른 시대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다른 시대가 아닐 것이다. 그저 몹시 아름답고 숭고한 모험일 뿐이다. 톨레도처럼, 스페인 땅처럼 말이다. (41쪽)

그렇다. 이 그리스인(엘 그레코)은 압도적인 천재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한다.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 혹은 적어도 그는 비전의 소재와 형식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자신에게서 가져오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진다. (55쪽)

우리는 그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을 움켜지고 만지작거린다. (98쪽)

투우를 보는 동안 나는 매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잊을 수 없는 아주 놀라운 순간이 있었고, 차라리 땅이 나를 삼켰으면 바랐던 고통스러운 시점도 있었다. 물론 가장 멋진 광경은 투우사들이 투우장으로 엄숙하게 입장하는 모습이다. (120쪽)

스페인의 깊은 비밀 중 하나는 지역색이다. 이는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사라져가는 독특한 미덕이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국민성의 결합체인 스페인이 아직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역사를 잊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은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 민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경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뿐이다. (181쪽)

친애하는 독자여, 익숙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보거나 다르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사물과 사람 간의 다양성은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준다.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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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케이 템페스트 지음, 연진 옮김 / 교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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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성에 머무룸은 연결의 지향을 품는 것이다. 부대끼더라도 자기인식에 닿아있는 이는, ‘나의 살아남기와 내 아이의 살아남기‘에 갇혀 모든 관계를 대상화하고 소외된 채로의 부산함 속에서 다만 또 하루를 살아내기보가는, 나의 행위가 세계에 미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껴안는다. (22-23쪽)

무감함은 시대의 공격성에 상응하는 논리적인 반응이다. 제정신으로 버티려면, 기능을 수행하려면, 성공하려면 무감함이 필요하다. (중략) 존재를 버티어내며 보낸 무감한 하루의 끝에서 다시 무감하게 일상을 살아낼 때, 멀어져 있음의 무감함은 확연하다. (34-35쭉)

모든 사람은 살아감에서 겪는 폭력으로부터 저마다의 방식으로 흔들리고, 감당이 되든 안 되든, 저마다이 방식으로 그 짐을 진다. 고통에는 트라우마를 겪어낼 시간과 그리하여 평온에 이를 시간이 응당 뒤따르는 것이라면 참으로 이상적이겠지만, 한 순간도 가벼워질 수 없는 버거움이라는 것도 있지 않던가. 감당함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을 감당하는지도 다르다. 그러니 네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이러했어야 한다고, 네가 이르러 마땅한 결론은 이것이었다고, 내가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이제 나는 정신머리를 바꿔놓고 싶지 않으며, 다만 연결되기를 바란다. (53쪽)

이미 세상에 있으므로, 다음 번에 또,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비방하였을 때, 그 사람의 인간됨을 거칠게 단정짓기보다는 그를 다만 불환전하고 다면적인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슬픔과 상실과 바람과 낙담이 교차하는, 그 모든 어긋나버린 순간들을 휘청이며 걸어온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다음번에, 나에게 이런저런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로 내게 있어 그 누구보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거칠게 평가내리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에는 어떨까. 그때도 모르는 사람에게처럼 할 수 있을까. 그를 나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79쪽)

자기인식에는 어떻게 이를까. 타인이 보는 나라는 불편한 층위, 혹은 남들이 나를 그렇게 보기 때문에 나도 내가 그렇다고 여기는 선, 그 아래를 어떻게 찾아 들어갈까. 나는 무엇을 보여주려 하고 또 무엇을 감추려 하는가. 가기지식과 자기강박은 어떻게 다른가. 자아는 극복해야 하나 북돋워야 하나. 한편으로, 나로부터 소외되어 있지 않음은 타인과의 함양적인 연결을 가능케 한다. 다른 한편으로, 나의 마음의 욕구를 소홀히 대함은 타인의 욕구에 대해서도 소홀함을 낳는다. 나로부터의 욕구를 알고 스스로 경계를 정해 그 선을 넘지 않는 것. 그로써 나를 지켜내기가 쉽지는 않다. (88쪽)

타인에게 수용되는지로 내가 규정된다면 나는 타인의 배제에도 내맡겨진다. 그들의 생각에 흔들리고,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더 굳건히 그들 사이에 자리매김하려 애를 태운다. 이러할 때, 닿아 있음의 감각은, 타인의 생각이나 수용이나 자리매김으로는 내가 규정될 수 없음을, 사실 그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님을 환기한다. 타인에게 수용되어야 굳세어지는 확신이라면 그것은 확신이 아니라 허위이다. (92쪽)

나는 누군가의 평가로 규정되지 않는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이곳 지금이다. 연연해하지 않는다.
소리 높여 나누는 인사, 멈춰서는 차 소리, 경적, 아이와 여우와 라디오와 강아지의 외침. 세상의 모든 소리는 살아감이다.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배경음이 아니다. 다만 가까이 다가선다. 앞으로 가운데로, 수많은 건물의 수많은 창을 올려다본다. 그곳에 살아감이 있다. 나는 미루어둔다. 내려놓는다. 타인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나뭇가지의 움직임에, 갑자기 차장든 비에, 물결의 무늬에 시선을 둔다. 벤치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사람, 잔디밭에 몸을 누인 두 사람, 건널목에서 머리칼을 당기며 노는 셋, 손에 든 짐의 무게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엄마의 굳센 두 다리를 쫓아가는 아이. 그들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그곳에 중요한 것이 있다.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다. (137-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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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
가브리엘 쉬숑 지음, 성귀수 옮김 / 아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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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의 문제는 두 가지 관점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인데, 첫째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는 기질로 보는 관점이고, 둘째는 그 기질을 다루고 조작하는 차원에서 보는 관점이다. (48쪽)

두려움이 고난을 예상하는 태도라면, 강함은 고난을 제어하고 정복하는 자세다. 따라서 진정한 강함은 눈앞의 고통은 물론 향후 있을 고난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힘에서 온다. 강한 사람의 힘은 나약함을 떨쳐낼뿐더러 무모함을 경계하는 미덕이기도 하여, 위험을 미리 인지하고 그것을 피해가는 지혜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69-70쪽)

블레즈 파스칼도 아리스토텔레스에 동감하며 말하기를, 인간은 참으로 안쓰러운 존재라고 했다. 불안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이 불안에 시달리는 존재이기 때문인데, 이는 그의 본질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 자체가 괴로움을 부른다 해도 유독 여성에게 그것이 특히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조건이 자연에 반하는 삶의 태도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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