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은 성적욕망처럼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망자와 산자를, 실존하는 존재와 상상의 존재를, 꿈과 역사를 결합한다. (14쪽)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해 주는 문장들을 노트에 적으면서-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그것을 느낄 때 깨닫는 것이다. (78쪽)

우리는 정해진 이 미래 앞에서 막연히 오랫동안 젊음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연설과 제도는 우리들의 욕망보다 뒤처졌고, 사회가 말로 표현하는 것과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릐 격차는 당연했으며, 그것은 메울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95쪽)

그녀에게 학업이란 가난에서 벗어나는 수단만이 아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성의 담보와 한 남자에게 빠지는 유혹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특별한 무기다. 결혼할 마음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고 모성애적인 행동과 지성의 삶은 양립할 수 없다고 여긴다. (107쪽)

그녀가 진짜 생각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녀가 혼자 있을 때나 아이와 산책할 때 찾아온다. (중략) 그녀 자신에 대한 질문들, 존재와 소유, 실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121쪽)

우리들의 인생을 다시 돌아봤고, 남편과 아이들을 떠날 수 있음을,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그리고 잔인한 것들을 쓸 수 있음을 느꼈다. (137쪽)

지방에서 파리 지역으로 오면서 시간은 가속화됐다. 감정이 유지되는 시간이 달랐다. 저녁이 오면 신경이 곧두선 학생들과 모호한 수업을 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파리 지역에 산다는 것은, 차로만 다닐 수 있는 도로망으로 혼잡해진, 지리학을 벗어난 영토에 던져지는 것이다. (158쪽)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책 한 권이 저절로 써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무것도 없다. (178쪽)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 막히는 무언가가 있고, [그녀] 안에는 너무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225쪽)

아노미가 이겼다. 지적인 구별의 표식으로서 언어는 더욱 현실감을 잃었다. 경쟁력, 불안정, 고용적격자, 유연성은 분노를 일으켰다. 우리는 정돈된 담화 속에 살면서 그것을 거의 듣지 않았다. 리모컨은 지루한 시간을 단축시켜 줬다. (228쪽)

우리는 어른이 된 그 아이들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들을 결속하는 것은 피도 유전자도 아닌, 다만 함께 보낸 수천 번의 나날들, 마로가 몸짓, 음식들, 차를 타고 다닌 거리, 의식한 흔적 없는 다수의 공통된 경험들의 현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240쪽)

우리는 늙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어떤 것도 노화에 이를 정도로 충분히 오래가지 못하고 교체됐으며, 전속력으로 재개발됐다. 기억은 그것들을 삶의 순간에 결합시키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 (248쪽)

그녀는 하나씩 차례로 떠다니는 인생의 여러 순간 속의 자신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녀의 의식과 그녀의 육체를 사로잡는 낯선 본성의 시간이며, 그녀였던 모든 존재의 형태들이 순식간에 되돌아오는 듯한, 현재와 과거가 뒤섞임 없이 겹쳐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255쪽)

뒤섞인 개념 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문장,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외치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278쪽)

해가 다르게, 아니 달이 바뀔 때마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변함이 없는데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된다고 확신했었던 사춘기 때와는 반대로, 이제는 그녀가 달리는 세상 속에서 부동의 자세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293쪽)

어쩌면 언젠가는 사물들과 그것의 명칭이 불일치를 이루고 그녀가 현실을 명명하지 못하게 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재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바로 지금, 글로써 미래의 자신의 부재를 형태로 만들어 놓아야 하며, 20년째 자신의 분신이자 동시에 앞으로 점점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될, 아직 미완성인 수천 개의 메모 상태에 불과한 이 책을 시작해야만 한다. (298쪽)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대에 이 땅위에 살다간 그녀의 행적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한 그 시간, 그녀가 살아 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다.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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