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이 이미지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불편하면 바로 고개를 돌리거나 채널을 돌리면 된다. 그 불편함이란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나에게 닥치기 전에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 부분을 끌어들어 고통을 '고쳐야 할 무엇, 거부해야 할 무엇,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엇으로 여기는(150쪽)'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타인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알리는 일환으로 사진을 예로 들고 있는데, 사진은 충분히 조작될 수 있다는 것, 그 곳의 본연의 목적과 동떨어진 부분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연출되지 않고서는 고통의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우아한 사진이 될 수 없다는 것. 사진을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들의 관계가 역전될 수 있고, 지금까지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서의 고통의 사진들이 대부분 가난한 나라들의 이야기로 국한 될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현실감이 떨어지고 연민자체도 사그라지게 된다는 것. 이미지는 싫증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 점점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원하게 되고. 혹은 제각자 이미지가 되기를 원해서 현실이 아닌 재현만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 더아나가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 견주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점이 관건이다. 고통의 이미지까지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의도가 있다. 현실속에서 당하는 실제적인 고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모두 잊고 있고,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리가 없다는 생각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 세계곳곳에서 일어났던, 일어나는 전쟁들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알아듣지도 못한다.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사진 속의 고통받고 죽어가는 그들의 시선에 눈을 맞추고 그들이 들려주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라고 꼭꼭 챙겨야 한다. 그래야 구경꾼이 아니라 불편하지만 고쳐야 할 무엇이고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은 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보여지는 사람으로 나뿐만 아니라 가족, 우리나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기억하기다. 

영화 뷰티플 라이(The Good LIe)를 보았다. 전쟁의 참혹함에서 개인의 상처까지. 그 상황에서의 각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을 인정하기. 형의 붙잡힘과 암으로 죽은 여동생 대신 나였어야 하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등에서 부모님이 떠올랐다. 부모님세대의 그분들의 지난하고 고통스런 삶, 일제와 육이오, 베트남참전, 사일구, 오일육, 광주항쟁 등에 대하여 아무도 괜찮다를 말해주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라가 사라지고, 남의 나라 말을 사용하고, 서로를 죽이고,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웠을까. 그리고 개인적인 상처들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모두가 ptsd를 경험하고 있는 듯 하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타인의 고통은 결국 나의 고통이다. 같이 고통을 느끼고 헤쳐나갈 수 있는 감수성과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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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루 2015-04-0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세월호 가족들의 삭발식을 보며 슬프고 아프고 답답하고 미안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라걸 우리는 직접 겪지않으면 모르는, 알고 싶어하지 않는 바보들같아요.

iamjune 2015-04-04 20:23   좋아요 0 | URL
어느 시인은 숨쉬기도 미안한 달이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직접 겪기 전에는 왜 모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