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에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서구의 무슬림 청년들을 보자. 이들이 보기에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의 좋은 증거가 바로 자신들이다. 서구 사회에서 무슬림들은 최소 수준의 복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술과 마약, 섹스 그리고 서구의 문화상품들이 제공되어, 그들의 영혼을 타락시킨다. ‘자유’라는 이름하에 욕망의 노예가 되는 영혼의 타락이야말로 서구가 자신들을 통치하는 방식이다. 이 타락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그들이 구원될 유일한 방법이며, 이 구원을 거부하는 자들은 마땅히 정화의 불로 태워야 한다. 쾌락에 진 ‘나약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형태가 동성애자들을 향한 극우 개신교의 논리다. 그들은 동성애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가 치유되지 않는 것은 섹스의 쾌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는 쾌락과 소비를 통해 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충분히 치유할 수 있는데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타락을 방치하고 조장한다. 그렇기에 이들, 치유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정화’되어야 하며 이들을 방치하는 이 ‘타락한 사회’는 리셋되어야 한다. 이들이 보기에 동성애자들은 죄 지은 자들인데 쾌락에 빠진 것보다 그 쾌락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즉 ‘나약한 이들’이기에 죄인이다.

물론 정반대편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기득권층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의존’으로 먹고 산다면 이들 기득권층은 부정과 부패로 먹고 산다. 이들 역시 제 능력과 노력으로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그들만을 위한 특권을 통해 노력하는 자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호의호식하는 존재다.


이들은 ‘나약한 이들’만큼이나 정화되어야 하는 반-도덕적 집단이다.

그렇기에 혁파되어야 하는 것은 한편에서는 나약한 이들을 나약한 상태로 내버려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방관하고 제도화하는 이 사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왜 전 지구적으로 자국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토와 이주노동자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전자가 가진 진보적인 측면과 후자가 가진 반동적인 측면이 한 사람에게서 공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분노’가 더 이상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의 분노는 ‘진보적/반동적’이다.

 

-알라딘 eBook (엄기호) 중에서

(ebook으로 공유하기가 이렇게 쉬울 줄은 몰랐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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