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1 - 3부 3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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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3부에 해당하는 9, 10, 11, 12권은 1919년 3.1운동 후 딱 10년 후인 1929년 광주학생운동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보면 평화로운 시대가 그리 길게 있었던가 싶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만한 때가 있었을까. 주권을 되찾으려는 운동은 물론이고, 근대화의 흐름 또한 거스르지 못하니 사람들의 생활 양식, 사고 방식,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3.1운동 이후 과연 3.1운동은 실패냐 성공이냐 의견이 분분하던 대목도 이전 권에서 몇번 거론되었는데 그것은 아마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운동이었음에도 별로 바뀐 것이 눈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로 독립운동 뿐 아니라 사회 운동 성격을 가진 모임이나 단체가 꽤 많이 생겨났는데 토지 11권에서는 주로 형평사운동과 계명회를 예시로 들고 있다. 형평사운동은 그동안 천민 취급을 당하던 백정 출신들이 모여 그들의 인권을 되찾고자 만든 인권운동이고, 계명회는 사회과학 연구 단체 비슷한 것으로 시작된 것으로서 사회주의의 태동이라고 볼수도 있는데 이것은 조선 뿐 아니라 당시 지식의 온상지로 여겨졌던 일본에서 비슷한 바람이 불고 있었던 영향때문에 대개 일본 유학생 출신이 중심이 된 비밀결사 같은 것이었다. 일본 유학생은 아니지만 서희 남편 길상이 이 단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 하다. 독립운동과 줄이 연줄연줄 닿아 관여하게 된것으로 보인다.

토지, 이 소설의 시작부터 등장한 동학 운동은 그 한 줄기가 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 즈음해서 활발하게 역량을 발휘하였으나 그 내부에서도 의견이 나눠져 갈등을 보이는 가운데 김환은 무시할 수 없는 인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강쇠, 석포, 관수, 혜관 등이 김환 주위에서 그를 돕고 있었다. 3.1운동 이후 독립 운동 관련 세력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동학 잔당 일원이면서 또 하나의 세력을 키워가던 지삼만의 밀고로 김환과 석포가 잡혀들어가게 되고, 병약했던 석포가 고문 받다가 먼저 죽고 김환은 감옥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김환의 죽음은 그를 수년간 옆에서 보필하던 강쇠로 하여금 복수를 결심하게 한다.

계명회도 무사하지 않아 길상 역시 체포되어 서울에서 감옥살이를 시작하고 서희는 외롭고 착잡한 세월을 보낸다.

조준구의 거짓 증언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정한조의 아들 정석은 공부를 마치고 진주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부인 양을례와 원만치 못한 결혼 생활을 하고, 더구나 기화를 돕는 석이를 양을례가 의심하기 시작하자 관계는 더 악화되어 급기야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고 만다.

서희와 길상의 두 아들 환국과 윤국. 활달하고 자기 표현을 잘 하는 편인 동생 윤국에 비해 형 환국은 혼자 생각이 깊고 말수가 적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느라 진주 집을 오가면서 환국은 진주의 있는 집 외동딸 양소림을 알게 되어 연모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양소림의 신체적 결함을 두고 고민한다.

토지에서 비극적 인물 중 한사람인 기화 (봉순)는 외로움과 허무감을 달래지 못해 아편중독자가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서희는 기화를 평사리로 불러 요양하게 하지만 기화는 답답하다며 자꾸 뛰쳐나가려고만 한다. 이상현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양현 조차 이런 엄마를 낯설어하고 기화의 삶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어 읽는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남을 모함한 적도 없고 착하고 순박하게만 살아온 봉순의 삶이 왜 이렇게 흘러가야 하는가. 인간의 비극적 삶의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답없는 질문을 또 해보게 되는 것이다.

기화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했고, 그 이전에 서희와 이루지 못한 사랑을 혼자 품고 살고 있던 이상현은 이 전권에서 친구인 임명빈의 동생 임명희의 사랑 고백을 받지만 이미 결혼한 이상현은 그 고백을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다. 낙심한 임명희는 오빠 임명빈이 교장으로 일하는 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조용하와 사랑없는 결혼을 한다. 임명희를 비롯해 강선혜, 홍성숙 같은 이가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로 등장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개인적 차원 이상으로 두드러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따로 배우지 못하고 농사지으며 평생을 보낸 아낙들이 보여준, 어찌보면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 분량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한 동네 아낙 복동네가 자결한 것이 억울한 누명때문인 것을 알게 된 다른 아낙이 자발적으로 다른 두 아낙과 뜻을 모아 죽은후에라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행동을 취한 것. 헛소문을 퍼뜨려 복동네를 죽게한 봉기 노인을 동네 사람들 앞에 무릎꿇고 자복하게 하는 힘을 보인다. 꼭 많이 배운 사람일 필요 없는 것이다. 의롭고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사는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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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0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전 1권 읽다가 스톱했는데 대단하세욤!

hnine 2018-11-01 09: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잘 읽히네요.
전 1권 아니라 열 페이지 읽고 스톱한 책도 많답니다 ^^
토지 말고도 재미있는 책은 많으니까요.

페크pek0501 2018-11-0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2.

저는 <위대한 유산>1을 읽고 나서 2를 완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과 함께 읽으니 분량 많은 책을 끝내기가 쉽지 않네요.

hnine 2018-11-03 18:29   좋아요 0 | URL
저도 중간중간 다른 책 끼어 읽고 있어요.
토지는 저와 코드가 그래도 맞는 편인지, 읽는데 생각보다 힘들진 않아요. 예전에 TV드라마를 본적이 있어서 등장인물 기억하는데 덜 힘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고요.
제가 알기론 <위대한 유산>도 영화로 나와있지 않나요? 아니면 제가 비슷한 제목의 영화를 착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토지 10 - 3부 2권 ㅣ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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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무리 길다한들 토지하면 최참판댁 최서희를 먼저 떠올리고 어쨌거나 그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려니 했다.

이제 10권까지 읽고 보니 토지는 이제 더이상 최서희를 중심으로한 최참판댁 이야기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권 마다 뒤에 등장인물 소개가 나와 있는데 10권 뒤에 소개된 등장인물만 해도 42명이다. 민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책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꿈을 꾸고 어떻게 꿈을 향해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지, 아니 꿈에 앞서 어떻게 끈질기게 목숨줄 붙잡고 생존해나가는지. 그러면서 어떻게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타협을 하는지, 그러면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사그러가는 과정들. 토지가 스무권의 대하소설이 되기까지는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등장 인물들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것도 한 몫 하지 않나 생각한다.

1권부터 계속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한사람인 용이와 임이네. 이들 사이의 아들 홍이의 갈등하는 부분이 처음부터 상당량 차지한다. 사랑하는 장이를 두고 갈등하고, 더불어 자신의 앞날을 정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홍이의 모습이 이해가 안되는바 아니면서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깝게 한다. 나이들어도 변하지 않는, 아니, 나이들수록 더 탐욕스러워가는 생모 임이네와, 늙어 쇠잔해져가는 아비 용이를 두고 홍이는 한참 젊은 나이에 맘껏 자기 꿈을 펼칠 생각을 못하고 우유부단, 고민만 하다가 결국 맘에 품고 있던 장이 마저 다른데 시집가게 내버려둔채 자시은 주위에서 권하는대로 김훈장 손녀딸 허보연과 혼인해버린다.

한편 부인과 부모와 떨어져 떠돌면서 마음을 한군데 못부치는 이상현은 자기가 모르는새 기화 (봉순)가 자신의 딸을 낳아 군산에서 홀로 키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또한 10권에서는 새로이 교육을 받은 여성 등장인물들이 내용에 본격적으로 포함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이들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지, 교육의 기회를 평생 받지 못하고 살아온 아낙들과 어떻게 다르게 사고하고 행도알지 기대가 된다.

그래도 1권부터의 중심을 지키려는 듯 후반부에 오면 서희 이야기가 나오긴 한다. 길상 없이 혼자 키우고 있는 아들 환국과 함께이다. 평소엔 조용하고 사려깊은 환국인데 아버지 길상을 종의 자식이라고 놀리는 친구를 가차없이 때려서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긴다. 소식을 듣고 다친 아이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으로 달려간 서희는 맞은 아이로부터 환국과 싸움이 일어난 경위를 묻고 자초지종을 들은 후 그 아이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환국이 잘못 한 것은 없다고 조용하고 강인하게. 길상의 부재속에 아들을 바르고 강하게 키우고자 하는 어미로서의 서희를 작가는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희와 길상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면 어떤 성격의 인물로 자라고 있을까, 나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궁금하던 차일 것이다.

서희는 늘 외로와 보인다. 어린 서희는 어린 서희대로, 결혼을 해서도, 어미가 되어서도, 재산을 모두 빼앗겼을때도, 다시 되찾았을때에도, 강인해보이는 외모라지만 내 눈에는 그저 늘 외로와보인다. 그녀를 보살피고 받드는 사람들이 늘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도 없는 느낌. 하기는 토지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용이는 외롭지 않은가? 그 악다구니 같은 임이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외롭고 소외감에 한이 맺혀 나오는 소리로 들리지 않던가?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다 죽은 월선은? 비밀도 너무 큰 비밀을 가슴에 품은 채 일생을 마쳐야했던 윤씨부인은? 그러고보면 외롭지 않은 인생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살아야하는 인생. 토지의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준다.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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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슬 목걸이 파는데 있으면 하나 사서 하고 다녔으면.

 

 

 

 

 

 

 

 

 

저 호박 크기의 반의 반도 안되는 작은게 마트에서 4,500원 하던데 라는 아줌마 다운 생각을.

 

 

 

 

 

 

 

 

 

담자락에 이끼가 만들어내는 그라데이션이 멋지구나.

 

 

 

 

 

 

 

 

 

거짓말 조금 보태면 감나무가 한집 건너 한 그루씩 있는 것 같았다.

 

 

 

 

 

 

 

 

저 하늘 색깔. 자연의 색깔.

 

 

 

 

 

 

 

 

 

 

 

 

 

 

 

 

 

 

 

 

 

 

 

 

 

 

 

무척 큰 은행나무였다. 저 뒤에 감나무에서 감 따고 있는 사람과 사다리 크기와 비교해봐도 짐작이 된다.

 

 

 

 

 

 

 

 

어후, 너 정말 예쁘잖아.

 

 

 

 

 

 

 

 

 

 

 

 

2018년 가을이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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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0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 가는 게 아쉽습니다. 가을 풍경을 사진으로라도 많이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hnine 2018-11-03 18:32   좋아요 0 | URL
아쉬운 마음에 자꾸 사진을 찍게 만드는 것 같아요.
순간을 포착한다는 말, 흔히 들어 새로울게 없는 말인데, 아주 정확한 표현 같아요.
제 아이는 사진을 찍어놓고 그것을 보고 또 그림으로도 그리더군요.
가을은 짧아서 더 아쉽지요. 저희 집은 벌써 언제부터 아침과 저녁에 난방을 하기시작했는지 모른답니다.
 

"황금문명 엘도라도 - 신비의 보물을 찾아서"

2018.08.04 (토) -10.28 (일)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지난 여름 부터 진행되어 오고 있던 전시인데, 황금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지 그냥 지나쳐오다가 전시 끝나기 며칠 안남은 그제 목요일에 결국은 보고왔다.

전시 제목이 <황금문명 엘도라도>라고 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콜롬비아의 금 세공 유물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콜롬비아는 한국전 참전국이기도 하다.

15세기에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인들이 이주해와서 인종이 매우 다양한 나라로서 현재 원주민 비율은 3.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콜롬비아 원주민들에게 황금은 신을 만나기 위한, 신에게 바쳐지는 소중한 것이어서, 신에게 기원을 드리거나 제사를 지낼때 제사장 즉 샤먼은 온몸을 황금으로 치장하여 신에게 부족의 꿈과 기원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러한 순수한 신과 종교적 가치로서의 황금의 의미는 오로지 원주민에게만 통하는 믿음이었다. 샤먼이 황금으로 치장을 하고 의식을 진행하는 장면을 본 외지인들에 의해서였을까. 여기에 황금이 무진장 묻혀 있는 황금도시가 있더라는 소문이 생겨났고 전설로 내려오다가  이 전설 속의 황금 도시를 찾아보자고 스페인을 비롯한 많은 유럽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황금을 찾아 헤매고 황금을 위해 싸웠다. 이들에게 황금은 신에게 닿기 위한 상징이 아닌 부의 상징이었고 콜롬비아 땅은 일확천금의 기회의 땅, 황금의 이상향 엘도라도였던 것이다.

 

 

 

 

 

 

 

 

 

 

 

 

 

 

 

 

 

여기 전시된 대부분의 황금 장식품들은 일반인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샤먼들이 의식을 드릴때 주로 착용했던 것들이다. 샤먼은 여러 동물의 영혼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황금 장식품 중에는 원숭이, 뱀, 새, 물고기, 재규어, 박쥐 등등 다양한 동물들을 형상화한 것들이 많았다. 그 동물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기 보다는 나름대로 특징을 강조해 도식화 추상화 했다고 해야할까. 흥미있는 것들이 많아 눈길을 한동안 머물게 했다.

샤먼이 의식을 드릴때는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었고 이것은 아무리 샤먼이라도 맨정신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코카 잎 가루를 써서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코카 잎 가루를 담는 통 ('포포로' 라고 부른다) 들도 다양하게 전시 되어 있었다.

항아리에도, 그릇에도, 장식품에도, 뼈 항아리에도, 사람 얼굴을 새겨 넣은 것이 많은 것도 이채로왔다. 우리 나라 유물에선 보기 힘든 일이다.

 

 

 

 

 

 

 

 

 

 

 

 

 

 

 

 

황금 유물이라고 하기에 특수 계층의 부의 축적 수단으로서의 황금만 떠올리고 전시를 놓치지 않았던게 참 다행이었다.

편견 하나를 버릴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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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박물관에서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자마자 제일 먼저 사람들 발길을 붙잡는 곳. 로제타 스톤이 있는 곳이다.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의 로제타 (라쉬드) 마을 부근에서 발견되어 로제타 스톤이라는 이름이 붙은 비석.

상형문자 해독에 열쇠를 마련해주기도 하여 유명해진 로제타 스톤이 원래 이런 모양은 아니라는 걸 아래 설명과 그림을 보고 알게 되었다. 비석이 참 특이한 모양으로 생겼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있는 지점이 있는데 람세스 2세 흉상 앞이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라오로 꼽히는 람세스 2세.

 

 

 

 

 

 

영국 박물관에 있는 이 흉상은 원래 있던 위치에서 옮겨 온 일부분이고, 원래 이것이 있던 자리와 전체 모습은 다음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왼쪽에 머리 부분이 없는 조각. 그 머리 부분이 바로 지금 영국박물관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저 흉상인 것이다.

디지털 사진으로 복원해놓은 다음 사진이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위 사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하지만 우리가 현지에서 보는 것은 신전의 기둥뿐. 나머지 대부분은 영국박물관에 전시물로 존재하고 있다.

 

 

 

 

 

 

 

 

 

 

 

 

 

 

 

보존상의 이유로 신전의 조각들을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

아테네 현지에 남아있는 부분조차 새로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본 듯 착각하거나 오해하기가 쉽다.

 

일상에서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부분인지 전체인지 가끔은 짚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2018년 10월, 런던 British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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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10-19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제타 스톤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이걸 보니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엄청난 끈기로 해독해 낸 샹폴리옹이라는 인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다시 떠오르네요.(C.W.쎄람의 사진으로 보는 고고학 역사 이야기,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에 자세히 실려 있더군요.) 그런데, 로제타 스톤이 정작 있어야 할 장소인 카이로 박물관에는 정작 모조품 밖에 없어 씁쓰레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대영박물관에도 고대 이집트의 미라들을 엄청 많이 끌어모아 놓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카이로 박물관에 가 보니 대영박물관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많은 미라들이 있어서 깜놀했던 기억도 나네요.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직도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귀중한 유물들에 관해서는 여전히 천하태평인 느낌도 있는 듯해요. 카이로 박물관엔 여전히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라는 휘황찬란한 보물이 고이 간직되어 있고, 람세스의 조그만 흉상 하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신전들도 도처에 여러 곳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그럴 테지만요. 피라미드 말고도 구경거리 가득한 파라오의 무덤들도 무지 많고요. 다행스럽게도, 그런 유물들이 거의 모두 거대한 돌들을 통째로 깎고 다듬고 새겨서 만든 덕분에 도난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 군대가 끝내 도둑놈 심보를 이기지 못하고 거대한 오벨리스크 하나를 통째로 떼어서 콩코드 광장까지 옮겨 간 걸 보면 가끔씩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 무거운 돌을 옮기느라 얼마나 비지땀을 많이 흘렸을까 싶어서요.^^

콩코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가 원래 있었던 자리는 ☞ http://blog.aladin.co.kr/oren/2393853

hnine 2018-10-20 07:20   좋아요 0 | URL
카이로 박물관에도 모조품 로제타 스톤이 있긴 있군요. 미라는 어디든 인기예요. 영국박물관에서도 미라가 있는 전시실은 특히 더 사람이 많았고, 2017년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브룩클린 박물관 소재 이집트 미라 특별전 할 때에도 사람이 꽤 많았어요. 저 개인적으로도 그때 가서 보고 박물관이라는 곳에 푹 빠지는계기가 되기도 했거든요. 카이로 박물관에는 더 많은 미라가 있다니, 고대 이집트의 미라는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느낌도 드네요.
로제타 스톤도 프랑스가 뺏어온 것을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하면서 영국이 프랑스로부터 다시 빼앗아온 것이라고 하더군요. 람세스 흉상도 원래 한덩어리 돌로 만들어진 것인데 잘라져 나왔다고 해요. 그 시대 평균 수명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람세스2세 통치 기간만 67년이었다고 하니 대단하지요.
카이로 박물관도 정말 흥미진진할 것 같아요.

oren님 서재 가서 오벨리스크 원래 있었던 자리 보고 왔습니다. 왜 웃음이 나온다고 하셨는지 알겠어요. 오벨리스크가 그렇게 열을 지어 세워져 있어야 말 그대로 ‘열주‘인데 콩코드 광장에 하나 덩그라니 있는 것이라니요.

oren 2018-10-19 23:14   좋아요 0 | URL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이집트 미라 특별전‘ 소식은 저도 들었는데, 실망할 것 같아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새로 지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위치도 좋고, 시설도 좋아서 정말 좋긴 좋더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그림이나 서예작품 혹은 서책 등이 너무 빈약해서 조금 놀랍긴 하더군요.

이집트 전역에 널려 있는 엄청난 유물들에 비하면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한 점, 람세스의 흉상 한 조각을 억지로 떼어내어 훔쳐간 건 아무래도 너무 좀도둑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듯해요. 이집트 전역에 람세스 2세의 조각상만 하더라도 일일이 셀 수 없을만큼 많을 테고, 람세스 2세의 신전인 아부심벨 대신전만 하더라도 높이 20m 이상인 거대한 조각상이 4개나 있고, 거대한 바위산을 파내고 뚫어서 만들어 놓은 신전 내부도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고 웅장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겠더군요. 물론 이런 놀라운 감정들은 이집트 여행을 다녀 온 이듬해에 읽은 『월든』 덕분에 그 당시보다 한결 차분해지기는 했지만요.^^

* * *

여러 민족들은 그들이 다듬어서 남긴 석재의 양으로 자신들에 대한 추억을 영구화하려는 광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차라리 그만한 노력을 자신의 품행을 가다듬는 데 바쳤다면 어땠을까? 한 조각의 양식良識은 달까지 솟아오른 기념비보다 더 기릴 만한 것이 아닐까?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그냥 놓아두라. 테베의 장관은 천박한 장관일 뿐이다. 인생의 참다운 목적에서 멀어져버린 100개의 대문을 가진 테베의 신전보다는 어느 정직한 사람의 밭을 둘러싸고 있는 자그마한 돌담이 더 의미가 있다. 야만스럽고 이교도적인 종교와 문명은 화려한 신전들을 짓는다. 그러나 기독교, 참다운 기독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한 민족이 다듬는 돌은 대부분 그들의 무덤으로 간다. 그야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생매장하는 것이다.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야심만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차라리 그 작자를 나일 강물에 처박아 죽인 후, 그 시체를 개들에게 주어 뜯어 먹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당당했으리라.-83쪽

hnine 2018-10-20 07:24   좋아요 0 | URL
이집트에 다녀오셨으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이집트 미라 특별전은 예상하신대로 실망스러우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저야 눈이 휘둥그래져서 관람했지만요.
아, 인용해주신 소로의 월든을 읽으니 사람의 관점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거대한 신전을 쌓아올리는 욕망의 주체이기도 하면서 그것을 한낮 가소롭게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가졌기도 하고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8-10-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분과 전체의 관계. (제 기억에 따르면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편견이 생겼다는 걸 뜻한다, 라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나요? 부분만 보고 전체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잖아요. 무엇이든 전체를 알기란 얼마나 어려운가요...
제가 낳은 제 딸의 맘속도 모르겠는 걸요. ㅋ

hnine 2018-10-20 07:29   좋아요 1 | URL
전체를 보는게 어려우니까 부분을 보고 전체를 예상하고 추측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전체를 완전히 알게 된 것은 아니라는걸 명심해야하는데 실제로 그렇질 못하지요.
내가 낳았으니 너는 내가 잘 알아, 하기에 자식들이 이제 많이 컸어요. 제 아이 이제 고등학생인데 저 아이를 내가 낳아 키웠던가 싶게 낯설게 느껴질때가 많은걸요. 남자 아이라서 더 그래요.

nama 2018-10-2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라 얘기인데요. 신강위구르자치구에는 박물관마다 미라가 참 많이 있어요. 신분고하,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다양한데요. 사막 기후이다보니 세월이 흘러도 썩지 않고 자연스레 미라가 되었다고 하네요. 미라의 다양성(?)을 생각해본다면 이집트의 미라는 한 부분이 되겠지요.

hnine 2018-10-25 00:58   좋아요 0 | URL
그럼 신강위구르 (전 여태 신장위구르라고 불렀네요) 에서 발견되는 미라는 일부러 미라를 만든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미라가 된건가요? 그러고 보니 공주 학봉리에서 발견된 우리 나라 미라를 박물관에서, 아주 가까이 본 적이 있어요.

nama 2018-10-25 07:03   좋아요 0 | URL
신장은 중국식 발음, 신강은 한자를 그대로 읽은 거니까 결국 둘 다 옳아요.^^
3,800년 되었다는 ‘잠자는 미녀‘가 그중 압권이지요. 그 외에도 박물관마다 다양한 미라가 있어요. 모두 자연 건조된 것이라고 해요. 나중에는 ˝또 있어?˝라고 할 정도랍니다.
미라의 모양도 제각각으로 어떤 것은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데 그 당시로서는 그 자세의 매장이 관습이었다고 해요. 새삼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가 매우 편향되었다는 걸 신강위구르에서 깨달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