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행기가 나와있지만 이 책을 구입하게 된데는 어딘가 이 책이 이미 나와있는 다른 책들과 다른데가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의 여행기는 많이 보았고 엄마와 아들의 여행기도 보았지만 그건 아들이 아직 부모품을 떠나지 않은 나이였을 때의 여행이었지 이렇게 서른과 예순의 조합은 아니었다. 나도 나이를 들어가다보니 예전엔 간단히 할머니 세대로 포함시켰던 60대가 이제 그렇게 노인 취급 받기엔 억울한 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 나이에 살가운 딸도 아닌 젊은 혈기로 어디든 휙휙 날라다닐 것 같은 서른의 건장한 아들과 여행을 한다니, 그것도 일주일, 한달 정도가 아니라 몇달에 걸친 세계 여행을, 배낭 여행으로? 이건 한번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아들의 생각은 기특했다. 얼마전 외할머니와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동안 일만 해오신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무너져내렸을까 생각하여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가보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는지 엄마가 그동안 해오시던 가게를 정리하고, 누나도 경제적으로 보태어 떠나게 된 세계 여행. 떠난 후 어떤 고생을 하였든 일단 떠나기 전 가슴 설레었을 엄마 마음이 짐작이 된다.
바람 매서운 겨울 엄마와 아들은 드디어 짐을 꾸려 메고 중국으로 가는 배에 오르게 되는데, 아시아 일주를 마치고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기 전까진 육로로 다닌다는 계획이다. 인천에서 중국의 칭다오라는 곳까지 운임이 12만원이라니 싸긴 싸다. 열차와 버스로 그 큰 중국 땅 여기 저기를 누비고 다니는데 특히 '리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기에 일주일 씩이나 머물렀다 떠나면서도 한달도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할만큼 좋았는지 궁금해진다. 지친 몸과 마음을 여기서 다 회복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니. 여행도 파도타기 같은가보다. 힘든 곳이 있으면 이렇게 쉬게 해주는 곳이 나오고.
태국의 물총 축제는 엊그제 TV를 보다보니 우리 나라 어디에서도 여름에 바닷가에서 한다고 하던데 어린이 처럼 노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아들의 마음이 그려져 있다.
기대에 비해 최악이었던 라오스를 떠나 치앙마이로 가는데, 버스로 자그마치 20시간. 경비도 경비이지만 여행할때 이동 수단 선택에서 오는 득과 실을 잘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힘들면 신경도 날카로와지고 엄마와 아들 역시 뭔가 속에 쌓여가는데 다행이 그때 마침 누나의 깜짝 방문으로 둘 모두에게 분위기를 띄워주고 격려를 해준 덕에 여행을 계속 해나갈 수 있었다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여행은 거기서 중단되었을지도 모르고 그 긴 여행이 무사히 해피 엔딩으로 맺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여러 종교가 모여 있으면서도 별다른 분쟁없이 잘 모여 사는 나라 말레이지아, 계산 없고 순박하기 그지 없는 스리랑카 사람들, 이집트로 넘어가 말로만 듣던 사막위를 여행하는 기분, 사막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사진으로도 장관이었지만 그 나라에선 그것의 댓가를 치르어야만 했다. 기독교인인 엄마의 원대로 계획에 없던 이스라엘 땅을 밟게 되는데 엄마조차도 이젠 여기 다신 오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혹독하고 모욕적이기 까지한 국경심사를 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를 거쳐 다른 나라로 넘어가서도 이스라엘을 거쳐왔다는 것때문에 문제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요르단의 페트라는 아들이 이번 여행중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란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찍었던 전설적인 고대도시라는데 바위산 안쪽에 붉은 사암으로 이 도시를 건설했던 것이 지진으로 사라졌다가 2000년이 지난 후 한 탐험가에 의해 발견된 신비로운 곳. 43m나 되는 신전 형태의 건물을, 건축한게 아니라 조각한 것이라니 그 앞에서 저절로'알 카즈네'를 외쳤다는데 알 카즈네는 보물창고라는 뜻. 이곳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욕심에 혼자서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일행을 놓쳐 버스에서 너무 먼곳까지 와버린 아들,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알고 낙오되지 않으려고 6km되는 거리의 사막을 30분 만에 질주하는 일이 벌여야 했다. 더운 땡볕의 사막에서 무리한 결과 버스 일행에서 낙오되진 않았지만 결국 아들은 며칠을 의식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몸져 누었다가 간신히 회복하여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난다. 2권이 곧 나올 모양인데 제목이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란다. 아마 주로 유럽의 일주 여행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78쪽) 라고 했다는 60세 엄마의 소감이 글 중에 더 많이 드러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들이 글을 썼기에 엄마의 느낌도 아들의 눈을 통해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에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엄마 글이 짧게 실리긴 했는데 편집을 거쳤다고 해도 엄마의 글 솜씨가 결코 아들에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이다. 사실 아들인 저자에 대해 아는 바 없어서 이전에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경험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도 여행기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경험 많은 여행가에 의한, 유용한 정보가 충분히 담겨 있고 그곳의 특색을 자기의 느낌과 잘 버무려 독자에게 전달하는 그런 프로급 여행기는 아니다. 어느 여행지에선 자기의 개인적인 느낌, 실수담, 이런 것에 치중하느라 정작 그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은 별로 없이 지나가는 곳도 있고, 아주 좋았다고 하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그 느낌이 전달되게 하는데 하는 힘도 약했다. 그야말로 초보 여행기의 느낌이랄까.
읽으면서 나의 생각은, 나중에 나는 60 넘어서 아들보고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여행은 나와 비슷한 사람과 하든가 혼자 하는게 제일 좋다는 생각이다. 혼자 하는 여행이 물론 순탄할리 없겠지만 혹시 내 여행파트너에게 내가 짐이 되지 않을까, 나와 다른 의견인데 나에게 맞춰주느라 속으론 불만이 쌓이는건 아닐까, 이런거 신경쓰는게 더 힘든 인간이 나이기 때문이다.
리뷰 제목에도 썼지만 여행은 떠나기 전엔 설렘이지만 막상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현실이다. 책 제목처럼 '일단 가고 보자'로 출발한 여행은 그만큼 고생이다.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고 계획하고 꼼꼼한 탐색이 필요하다. 더구나 엄마를 모시고 하는 여행임에랴. 엄마도 마찬가지. 다 큰 아들이니 믿고 따라만 간다는 생각이라면 여행 가서 우왕좌왕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몇배로 더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그게 아들의 본 모습임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