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 우리가 알고 싶었던 또 다른 눈의 세계
이은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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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에 이어 이번엔 눈 이야기이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책 한권이 오로지 한 기관에 대한 내용. 저자 이름에 대한 신뢰도가 아니더라고 수박 겉핥기 식 내용은 아니겠다고 예상했다.

심장이면 심장, 뇌면 뇌. 신체에서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없지만 눈의 소중함은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 부터 잘 알려져 있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말하고 있듯이 '보다'라는 말이 꼭 눈을 통해 보는 행위를 떠나  확장적인 의미로 얼마나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지 (무려 28가지 용법이라고 한다).

이 책은 눈에 관한 과학적 이야기라기 보다는 눈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초보자의 서투른 관찰기라고 저자는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읽어보면 과학적 이야기로 손색이 없으며 책의 여기 저기서 저자의 성실한 집필 태도와 책임감, 한 문장도 허투르 쓰지 않겠다는 노력이 보여, 제대로 만들어진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요즘 같이 인터넷 상으로 자료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지만, 저자는 직접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을 찾아가 수업 참관을 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센터의 부검실을 찾았다. 별 다섯개가 결코 아깝지 않은 책, 전공에 상관없이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 뒷껍데기에 책 내용 요약을 대신하는 질문이 아홉개 나와있어서 복습겸 답을 적어보았다. 물론 한번 읽고 내용을 다 기억해서 답을 적은 건 아니고, 문제를 보고 해당 부분을 다시 찾아보면서 답을 적어보았는데 이중 한 문제는 기억도 안나고 어디서 나온 내용인지 조차 찾지 못했다 ㅠㅠ 혹시 읽으신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좋겠는데.

 

사람의 눈은 왜 두 개인 걸까?

(뭐 이런 걸 다 묻냐고 하지 마시고)

눈의 개수가 늘어나면 각각의 눈이 수집한 정보들을 통합하여 의미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파악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정보처리 능력이 뇌에 요구될 것이고, 그러려면 뇌가 지금보다 더 커지고 복잡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뇌라는 기관은 에너지 측면에서 본다면 꽤 비싸고 유지가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눈이 세개, 네개 되어 얻는 잇점 보다는 이걸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커져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아마도 눈이 두개일때 최적의 타협수에 도달하는게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48쪽)

 

TV를 많이 보면 정말 눈이 나빠질까?

확실한 증거는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 하지만 TV가 시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는데 이때 시력에 영향을 미치는 건 시청 시간보다는 TV와의 거리다. 즉 TV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시력에 악영향을 비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63쪽)

 

왜 하늘은 파랗게 보이는 걸까?

혼합광인 태양빛은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하는 중 대기 중의 작은 입자들에 의해 각 파장의 빛들이 부딪혀 산란된다. 파장이 짧다는 건 에너지가 높다는 뜻이기에 같은 각도로 부딪쳐도 더 강하게 반발한다는 뜻이 된다. 색깔 중에 파란 빛은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높기에 그만큼 대기 중 입자들과 더 강하게 부딪혀 산란하며, 이렇게 부딪쳐 나온 빛이 다시 다른 미세입자들과 부딪치며 하늘 전체를 푸르게 물들이는 것이다. (123쪽)

 

아기들은 우는데 왜 눈물이 나지 않는 걸까?

(답 못 찾음 ㅠㅠ)

 

피곤하면 눈부터 피로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체에서 직접적인 움직임을 담당하는 것은 근육이지만, 근육이 제 할 일을 하도록 조정하는 것은 신경이다. 따라서 신경과 근육은 협동 관계에 놓여있다. 실제 신경섬유 하나가 10~1,000여개의 근섬유를 관장한다. 그런데 눈에서만은 다르다. 안근에 존재하는 신경과 근육의 비율은 1:1이며 많아도 1:5를 넘기지 않는다. 근육섬유 하나하나를 신경섬유가 하나씩 전담 마크해서 조절하기 때문에 안근은 우리 몸의 근육 중에서 반응 속도가 가장 빠른 근육 중 하나가 되었고, 이처럼 눈의 신경과 근육의 협업이 매우 미세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 결과 눈 근육은 많은 양의 산소를 필요로 해 매우 쉽게 피로해진다. (186쪽)

 

악어의 눈물을 거짓 눈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잇감을 물어뜯는 순간 흐르는 악어의 눈물은 자신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존재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턱에 강한 힘을 주면서 발생하는 반사작용일 뿐이다. (172쪽)

 

비둘기들은 왜 쉴 새 없이 머리를 움직이는 걸까?

답은 눈, 정확히는 눈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에 있다.

비둘기는 사람과 달리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안구를 움직일 수 없다. 안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눈동자를 데굴데굴 돌릴 수 없다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걷거나 움직이면서도 특정 대상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걸어가며 가로수를 본다고 가로수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몸의 평형 센서가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에 맞춰 끊임없이 안근을 움직여 시야를 재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둘기는 다르다. 비둘기는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동하는 과정에서 초점이 맞지 않아 시야가 흐려 질 수 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비둘기가 선택한 전략은 '눈 대신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면 비둘기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일차적으로 비둘기는 이를 피하기 위해 목을 뒤쪽으로 쭉 뺀다. 하지만 머리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어깨 위에 얹혀 있으므로 길게 늘이는 건 곧 한계에 부딪친다. 그럼 비둘기는 다시 고개를 재빨리 앞으로 잡아 당겨 몸과 같은 선에 가져다 놓는데 이 과정에서 시야를 재조정해 다시 뚜렷한 시야를 확보한다. 그래서 비둘기는 걸을 때마다 발걸음에 맞춰 리드미컬한 목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184쪽)

 

홍채주름이 개인을 구별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을까?

홍채의 1차적 역할은 동공의 크기를 적절히 조절하고 눈 안으로 들어가는 광량을 조절해 우리가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빛이 약하면 홍채를 열어 동공을 크게 하고, 빛이 강하면 홍채를 닫아 동공을 줄여야 눈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홍채는 이렇게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기 위한 '주름'을 가지고 있으며 홍채 주름이 개인을 구별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동공괄약근에는 무늬가 복잡하게 나타나는데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덟 살 정도가 되면 홍채 주름이 완전히 자리 잡히면서 그 패턴이 일정하게 정해진다.

지문은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개인 인식 방법이지만, 손을 많이 사용하거나 습진을 앓게 되면 마모되고 상처를 입기 쉽고 손의 특성상 흉터 등으로 인해 변형되기도 쉽다. 하지만 눈은 상대적으로 다치거나 변형되는 일이 적은 부위이므로 마모되기 쉬운 지문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홍채가 이처럼 개인의 구별 기준이 된다는 사실에 기반해 근래에는 홍채진단학이라 하여 홍채의 주름 패턴을 통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거나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128쪽)

 

백내장이 모네의 그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카메라의 렌즈에 해당하는 것이 눈의 수정체이고, 수정체의 얼룩짐과 혼탁함은 곧바로 시력 저하로 이어진다.

수정체가 투명성을 잃는 대표적인 현상이 백내장이다.

빛의 화가라고 불렸을 만큼 눈부실 정도로 다채로운 빛의 향연을 고스란히 그림에 담았던 모네였기에 노년에 찾아온 백내장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매우 컸다. 가장 큰 변화는 그가 더 이상 다양한 빛과 색을 화폭에 담아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모네를 비롯한 안과 질환이 환자에게 미친 영향을 연구한 스탠퍼드 대학교의 안과 의사 마이클 마머 교수는 같은 장소를 전혀 다르게 그린 모네의 화풍 변화를 심리적이거나 예술적인 변화 대신 백내장이라는 생물학적이고 의학적이 변화 때문으로 분석했다. 결국 모네는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의사의 권유로 수정체 적출술을 받게 되었고 모네의 눈에서 안개를 걷어냈지만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느낌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수정체가 흐려지거나 수정체 적출술을 받은 사람은 마치 파란 선글라스를 낀 것 처럼 세상이 파랗게 보인다고 한다. 즉, 눈 내부에 파란색이 갇히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같은 장소를 그린 그림에서 백내장을 앓던 때 그린 모네의 그림이 이전에 비해 모두 붉은 색으로 바뀐것은 파란 색이 잘 투과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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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반부엔 확대경의 발명으로 인해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의심이 생겨나게 되어, 지금껏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념에 결정타를 날리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의 고찰까지, 참으로 성실하게 쓴 책이다.

정보나 지식 전달 목적의 이런 책들은 재미있게 읽히는게 일차적 목적은 아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조사하고 보여주었느냐 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즉, 이 책은 '눈'에 대해 알기 위한 '눈'이 되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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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지 않는 연습 - 불안.분노.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가르침
나토리 호겐 지음, 이정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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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이었을 때 알고 지내던 친구가 있다. 프랑스 친구였는데 그녀는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나이 들며 바뀌는 점 중 하나가 accept, 즉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마음에 안드는 점을 발견하면 바꿔보려고 안간힘 썼으나 점점 받아들이는게 늘어간다고. 성격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몸매까지도 말이다. 그건 한편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지만 한편 무력해보이기도 할 것이다.

행복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 책 껍데기에 써있는 이 한 줄 뜻을 모르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다만 잊고 살 뿐이지. 내 욕심에 가려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그 마음에 가려서 말이다.

이런 책들을 가끔 읽어주는 이유이다. 모르던 것을 배우기 위해 읽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던 것, 잊고 있던 것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마음의 덮개를 걷어내기 위해서. 비록 시간이 지나며 다시 때가 끼고 먼지가 쌓이겠지만 먼지가 다시 쌓인다고 청소를 안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사실 모든 일은 처음에 마찰이 발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참고 지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가 자신의 규칙을 주장하는 태도는 앞으로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차차 서로 맞추어나가면 된다. (42)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자리를 나도 모르게 피하는 내 심리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람을 싫어하지 않음에도, 아니 오히려 사람에 관심이 많고 친구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잘 들어주는 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 중의 하나임에도, 사람들 모이는 자리에 잘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마찰이 생길까봐 그걸 미리 피하려는 것이었다. 일단 마찰이 생기면 내 주장을 펴지 못하고 대부분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가는 습성때문에. 그리고 돌아와서는 마음 불편해한다.

 

쓸데없이 긴장하지 않는 용기를 갖는다. (50)

긴장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용기.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은 사람은 심리학 수업을 듣기보다는 소설을 읽는 것이 낫습니다. (83)

저자가 대학에 다닐때 심리학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나아가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군상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소설을 읽으며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소설보다 다른 책을 읽으라고, 소설 읽는 것을 다소 경시하며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하는 대답과 같은 구절이라 반가왔다.

 

나는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왜 그런 걸 바라는 것일까?

납득할 수 있는 부분에까지 '왜?'를 반복해보자. (151)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감정의 차원에서 끝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가 좋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라는 말은 지금의 자신이 완전하거나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라, 나약한 자신을 자각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바꾸어보려고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불완전하고 미숙하고 미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쪽으로 너무 치우치면 평생을 그런 자기 규정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소중한 나를 너무 박대하는 것이 아닌가? 그건 또한 행복에서 가장 멀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깨달음으로 가는 수단(방편)이 사실은 깨달음이라는 목표 그 자체.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209)

 

자신의 마음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것을 불교에서는 唯識이라고 표현한다. (218)

자기 중심 (유식, 唯識)과 자기 우선의 차이. 자기 우선으로 살게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살도록 힘쓰라.

 

질투를 느끼는 것은 지금 행복하지 않기 때문 (237)

바꿔 말하면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은 지금 대체로 행복하고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질투라는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 나 같은 경우는 아마 행복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위에 말한대로 대체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리 잘나봤자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부처님 손바닥 위의 삶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알고보면 회의적, 염세적 사고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화의 기본은 성실 (260)

대화의 기본은 말을 얼마나 조리있게 잘 하느냐 보다 성실이다. 그리고 인내. 성실과 인내는 서로 다르지 않은 덕목이긴 하다.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랴는 질문에 돈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마치 높은 장소에 있는 어떤 물건을 원하는 사람에게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사다리'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275)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많은 청소년들이 돈을 많이 버는 CEO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고 하는 것을 들으며 의아했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대답이 될것 같은데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가 장래 희망이라니.

 

인연

「가족 상호 간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애착이나, 친하게 사귀고 있는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끊기 어려운 일체감.

어떤 계기에 의해 발생한, 지금까지 비교적 소원했던 사람끼리의 필연적인 결합」

이렇게 정의를 내려놓고 있는 사전이 있는가 하면, 저자가 찾아본 또 다른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가 되어 있다고 한다.

『말의 다리에 얽혀 있는 끈. 또는 사람을 구속하는 의리, 인정 등의 비유.

묶어놓다, 묶어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게 하다』 (291)

 

좋고 싫은 기호를 줄인다. 부처님은 좋고 싫은 기호가 없다. 무연 (無緣, 특정한 인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절대적인 평등)의 경지에서 우리를 상대해주신다. (295)

그런데 이 세상은 점점 좋고 싫은 것을 확실히 하는 쪽을 바라는 것 같다. 마음이 그렇게 확실하면 모를까, 많은 경우에 우리는 좋은 점도 있고 싫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던가? 그럴 때 억지로 마음을 한쪽으로 정해야할 필요가 있나. 또한, 당장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게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줗고 싫다 확실하게 단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고 싫은 기호를 줄인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고 쉽게 말하지 않음을 뜻한다.

 

'소유한다'는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기쁨보다는 '소유하지 않는 삶'이 더 큰 정신적인 해방감을 맛볼 수 있으며 인생을 더 낫게 만든다. 생활하면서 이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가짐. (299)

정신적인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는 말에 완전 공감.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그게 풍요로움이 아니라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필요 이상 많은 옷, 잔뜩 들어차 있는 냉장고, 하다 못해 필요 이상 많이 차 있는 수납장의 물건, 그릇, 필기 도구 모두가 내게는 부담이다. 그보다는 어딘가 빈 공간이 느껴지는 상태가 가장 좋다. 그게 정신적인 해방감이라고 근사한 말로 포장되기 전에 이미 느껴지는 감정이다.

 

어떤 일을 떠맡게 되었을 때에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보답이 될 수 있는지, 인정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자신감 과잉은 아닌지, 이해득실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하고 용기를 내어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03)

시간이 더 필요해도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은 일종의 자신감, 책임감과도 통한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자비에 관한 설법은 해도 사랑에 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에 관해서 말한다면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항상 미움과 함께 등장한다. '내 것'이라는 집착을 하게 된다. 그래서는 평온한 마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을 조심해야 한다고 설법한다. (313)

 

지금의 선택이 미래가 된다. (319)

지극히 불교다운 생각.

 

무의미하 하루는 없다. (324)

오늘은 아무일도 없었던 날, 시시한 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날이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런 날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축복받은 날인지.

 

우리는 자기평가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를 통하여 자신을 확인하려 한다. 칭찬을 받는 것, 도움이 된다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며 자란 사람들이 바로 우리이다. (331) 

 

각주구검 (刻舟求劍) 이야기.

강을 건너다가 실수로 칼을 물 속에 빠뜨리고는 칼이 떨어진 지점을 배에다 표시하고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말. (268)

배는 이미 칼을 떨어뜨린 장소로부터 이동했고 칼은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데도 강가에 도착해서 칼을 찾으려고 함은  시세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낡은 관습을 고수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인데, 과거의 가슴 아픈 추억이나 실패의 경험을 마음에 새겨두어보아야 부질없는 짓이라는 뜻도 된다. 배가 움직이듯 시간도 움직여 주변 상황이 바뀌기 때문이다.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칼을 인생이라는 강에 떨어뜨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말 "각주구검"을 참고해보라고 한다.

 

 

소제목만 쭉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마음의 때가 조금은 벗겨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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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6-05-31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저만의 착각일까요?^^
책을 읽는다는게 알아간다는거뿐 아니라 잊고 있던것을 되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말 좋아요
저도 많이 되살려봐야겠다는~~~
날이 덥네요 찬 거 넘 많이 드시지 마세요~~^^

hnine 2016-05-31 07:59   좋아요 0 | URL
푸른희망님, 밀린 리뷰 쓰느라고 지금도 다른 한권 리뷰를 막 쓰려고 하는데 세탁기 삑삑 소리가 들려서 빨래 널으러 가려던 참입니다 ^^
모르는 것도 아직 많지만 알면서 잊고 사는 것이 더 많지 않나 싶어요. 그동안 읽은 책에서 배운 것만 해도 얼마나 많겠어요. 지금 읽는 책도 수십년 전에 읽은 책인데 우연히 생각나서 헌책방 다 되져서 다시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요, 좀처럼 읽은 책 다시 읽는 법이 없는 저이지만 너무나 감회가 새롭네요. 이것도 곧 리뷰 올릴께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날이 더워도 예전만큼 찬걸 찾게 되지 않네요. 예전엔 따뜻한 밥보다 찬밥은 더좋아할 정도로 찬거 좋아했었는데 말입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푸른희망님 대문 사진 클릭!해서 저 고양이 얼굴 좀 다시 한번 크게 보고서 빨래 널러 가렵니다.

2016-05-31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몬스터 2016-05-31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nine님 , 건강하시죠?

.....과거의 가슴 아픈 추억이나 실패의 경험을 마음에 새겨두어보아야 부질없는 짓이라는 뜻도 된다. 배가 움직이듯 시간도 움직여 주변 상황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참 좋네요.

머리로는 잘 아는데 , 도무지 , 마음도 행동도 잘 따라오지 않아서 스스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일례로 , 누군가에게 어떤 것이든 강요 받는 것을 절대로 싫어하는 전데 , 그런 행동을 제 이기심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어서 이런 제가 싫어요.

hnine 2016-06-01 04:51   좋아요 0 | URL
저도 읽다가 그 구절에 시선이 좀 오래 머물렀답니다.
머리로 아는데 행동이 잘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머리로라도 알고 있는게 어디예요. 그게 출발점이 될거예요. 가슴 아픈 추억이나 실패의 경험이 현재를 지배한다 싶을땐 그냥 내 인생의 컨텐츠가 풍부해졌다 생각해요. 이거 다 언제 써먹을 날이 있겠지~ ^^ 이러면서요.
저 역시 누구에게 지시 받거나 강요받는 것 무척 싫어하고 그럴 것 같은 자리는 아예 피하기 까지 해서 좀 문제인데, 책에 의하면 그냥 그것도 내 성격으로 받아들이라네요.
저는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영국에 가서 우와좌왕 힘들어하며 겨우겨우 공부 마치고 돌아온 것 생각하면 몬스터님은 자기 관리 잘 하시고 참 꿋꿋하시다 생각하는걸요. 진심으로요.
 
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 - 엄마라는 여자들의 내 새끼를 향한 서툰 연애질
김수경 지음 / 포북(for book)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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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수다가 많아지는 이유'?

아니, '이런 책을 쓰지 않으려면'?

리뷰를 쓰기 앞서 제목을 뭐라고 할까 이리 저리 궁리해보았다.

세상에 아이 키우는 엄마 치고 수다의 컨텐츠로 아이 키우는 얘기 이상이 있으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그야말로 시종일관 자식 얘기만으로 몇 시간을 채우는데 내심 놀라서 돌아온 적이 있다. 다음에 만나서도 마찬가지, 그 다음 만나서도 마찬가지. 본인들 얘기보다는 자식 얘기가 대부분. 나중엔 거의 듣기만 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이상한건가 혼돈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fbook이라는 출판기획사 대표이자 오랫 동안 편집자로 일해 온 사람으로 소위 책 만드는 베테랑이라고 할 정도의 경륜이 있는 사람이다. <작은 집이 좋아>, <살림이 좋아> 등의 책등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깔끔한 판형과 제본으로 서가에서 유독 눈에 띄었었다. 자칭 책 만드는 일에 미쳐살았다고 하는 이 분에게는 이제 스물 남짓된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이 아들을 보며 이젠 다 키웠구나, 내 품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야겠구나 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느낌은 마치 재밌게 말 잘 하는 친구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기 얘기를 옆에서 들어주고 있는 듯 했다. 맞장구 쳐가며, 어느 대목에서는 깔깔 거려가며, 어느 대목에서는 어깨를 토닥거려가며. 수다떠는 여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하는 엄마,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하는 버릇, 사는데 규칙이 많다는 것 등은 나랑 비슷하다 싶어 더 친근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는 나보다 몇 십배 더 마음이 넓고 포용력 있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 다섯 남매의 맏이로 자라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느라 분투해야했던 자기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안타까우면서도 역시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자식에게도 충분한 애정을 쏟아주지 못했다는 자괴감, 아이 낳고 바로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버린 남편때문에 당장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 그래도 금쪽 같은 내 새끼라며 애지 중지 키운 아들이 이제 남편의 판박이가 되어가며 엄마 품을 벗어나려하는 것을 보는 아쉬움, 글 잘 쓰는 사람이니 오죽 절절하게 잘 써놓았으랴.

'연애'라고 까지 표현한 아들과의 사이를 과연 어떤 시점부터 딱 끊을 수 있을까? 피 섞이지 않는 남자와 연애하다가 그걸 끝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엄마가 아들을 품에서 내보내며 이젠 네가 알아서 네 인생을 살아라 한다는 것은 보통 의지와 노력 아니고는 이렇게 계속 각오로만 끝나는 립서비스가 되기 십상이다. 엄마가 이렇게 비장한 각오를 하건 말건 아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이런 각오도 통보도 없이 부모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하고, 그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아들이 그렇게 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고 그것을 보는 엄마 마음이 몹시 서운한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서운함을 못이기고 언제까지 아들에 대한 안테나를 계속 달고 앉아 100전 100패의 연애를 계속해나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있다. 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나무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까지 달라는 대로 자기가 가진 걸 다 내어주지만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서운함은 느낄지라도. 나는 왜 이 책이 떠올랐을까.

부모가 자식을 키워내는 과정은 내 품에서 떠나보내기를 성공적으로 잘 해내는 것 까지이다. 명심해라 hnine.

 

 

길은 떠나는 자를 위해 열리는 법이라는 것, 행복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만 찾아온다는 것 (73쪽)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하나, 둘, 사과, 배, 하면서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눈치채지 못하는 게 남자다. 속이 터지다 못해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 와도 속내를 읽어줄 어른이 되지는 못한다. 그게 남자고, 그게 남편이다. 거기에다 아들까지 덤으로 얹히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쭉 견디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사분거리는 딸 없이 오로지 아들만 끼고 사는 엄마들이 가여운 것은 그래서다. (98쪽)

 

남편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우리 얘기 좀 해" (100쪽)

 

아이가 집을 따뜻한 곳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며, 부모로서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워싱턴 어빙- (126쪽)

 

"오늘은 이러고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세익스피어- (138쪽)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 덕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152쪽)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8쪽)

 

숱한 실패와 불행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신뢰를 잃지 않는 낙천가는 대부분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앙드레 모루아- (219쪽)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아들에 너무 올인해서 살면서도 나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고 안 할 자신 있다면야 뭐.

난 그럴 자신 없으므로 적당히 주고 적당히 방관하면서 사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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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6-05-1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들 때문이 아니라 남편때문에 확 공감이 가는데요.. 98쪽의 글,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 와도 속내를 읽어줄 어른이 되지 못하는게 남자고, 남편이다`라니... 다들 그런거라니, 좀 위로가 되네요.

hnine 2016-05-17 15:33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의 미덕이 그런 점 같아요. 읽으면서 속시원하게 글로 표현해주는 것,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위로 ^^
저도 읽으면서 확 공감이 가서 옮겨적었답니다.

icaru 2016-05-1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 ˝우리 얘기 좀 해˝ 어쩜 똑같죠? ㅎ;;

아드님 많이 컸죠? 제가 님 서재의 글들을 한창 구독(?)하기 시작했을 때가 아드님 5학년이었고, 시간이 적잖이 흘렀으니까...!
그때 1학년이었던가 유치원생이었던가 하던 우리 큰아이가 4학년이 되었으니 말이죠 ㅎㅎㅎ

아이를 그것도 남아를 키우는 일. 아후...ㅎ

저는 요즘에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해요~ 하루키가 자녀를 두지 않아서, 에너지를 십분 활용할 수 있었고, 지금의 하루키가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ㅍㅎㅎㅎㅎㅎ;;

hnine 2016-05-19 12:4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집에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얘기가 하고 싶을 때 친구를 찾고 선배를 찾고, 그렇게 되나봐요.
벌써 4학년이 되었군요. 4학년만 해도 괜찮지요 ㅠㅠ 제 아이는 열여섯살, 중학교 3학년인데 제가 제 집에서도 출가한 수도승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을 읽으니 공감이 될 수 밖에요. 그런데 제 친구들을 보면 모든 아들들이 그런건 아닌 것 같으니 안심하세요. 딸보다 더 순둥순둥한 아들도 많고, 아들보다 더 활동적이고 아웃고잉한 딸들도 많더라고요.
하루키에 대한 icaru님의 생각엔 저도 무릎을 탁 쳤습니다!

yamoo 2016-05-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더라구요. 아이 키우는 분들과 얘기를 해 보면 온통 아이 얘기.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시는 건 어떠냐구요. 자기 삶이 없고 하루 24시간이 자식 위주로 돌아가는 여자 사람들. 대학 입학 때까지 노심초사...

개인적으로 전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삶입니다요~ㅎ 자녀를 두면 다 그리 되나 봅니다..^^;;

hnine 2016-05-19 14:43   좋아요 0 | URL
자신의 인생의 중심에 아이가 들어와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고 자동적으로 작동됩니다 ㅠㅠ 자기 삶, 자식의 삶이 따로 없는거죠. 일부러 각성하고 이러지 말자! 하기 전에는요.
저도 경험하고 있는, 어찌보면 딱한 여자 사람의 생존 방식입니다 ^^

2016-05-26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5-27 09:08   좋아요 1 | URL
저는 이미 받았으니 안받으신 다른 분께 기회를 드리고 싶어요.
서니데이님의 마음씀에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요즘 올려주시는 꽃 사진도 잘 보고 있답니다.
꽃처럼 활짝 피는 주말 계획 세워보시길 바랄께요.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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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던가? 전생(前生)이던가? 어제 일이던가? 바로 이 항구로 내려와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 것은? (9쪽)

사랑하는 친구와 헤어지고, 주인공 (책 속에서 조르바가 내내 '두목'이라고 부르는)은 무겁고 울적한 기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쉽게 헤어나올 수 있는 친구도 아니었고 이별도 아니었다. 

나는 검은 배와 그림자와 비와 형상을 갖춘 내 슬픔의 실체를 보았다. (9쪽)

친구와 헤어진 바로 그 항구에서 고향 크레타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면서 그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단테의 문고판 책을 여행의 동반자로 삼아 지옥편을 읽을까, 연옥편을 읽을까, 시편을 읽을까,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띄었을까? 문득 누군가 그를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을 느낀다.

"여행하시오?"

"크레타로 가는 길입니다. 왜 묻습니까?"

"날 데려가시겠소?"

"왜요? 함께 무슨 일을 할 수 있어서요?"

"왜요! 왜요! ......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자, 날 데려가쇼. 요리사라고나 할까요. 당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수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수프를 만들 줄 압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17쪽)

조르바와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조르바가 먼저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런 조르바를 주인공은 외모에서부터 말투에 이르기까지 관찰하고 탐구하기 시작한다. 짧은 대화이지만 조르바가 어떤 인물인지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의 나이 35세, 조르바의 나이 65세였다. 이 둘 사이를 한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가 훨씬 연배인 조르바가 주인공을 '두목'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라고만 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친구라고 보기엔 서로 주고받는 감정과 영향력이 친구 사이의 그것과는 다르다.

단테를 여행의 친구로 삼는다는 것에서도 보이듯이, 쉼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거기서 삶의 문제, 생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는 주인공에 비해 조르바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왜 해야하나 왜 하지 말아야 하는 생각보다 중요한 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거기서 행복을 느끼고 사는 맛을 느낀다. 그런 조르바가 볼때 두목은 알 수 없는 인간이며 그런 조르바를 보는 두목에게 있어 조르바는 신기함 자체, 새로운 연구 대상이고 그동안 자기가 생각해오던 방식, 걸어오던 길에 대한 딴지걸기이다.

그런 조르바이지만 마음의 갈등을 겪을 때 그는 '두 조르바'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고 표현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느님대 악마의 싸움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곧 하느님과 악마는 따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스러지는, 마음의 두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조르바란 인물이 주인공에게는 어떤 책이나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고 강력하게 다가오는 경험 자체임을 주인공은 이렇게 표현한다.

전에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시편들이 그날 아침에는 느닷없이 지적인 광대놀음, 세련된 사기극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196쪽)

지금 우리가 읽는 책, 우리의 사유, 고뇌도 어쩌면 어느 날 어느 시 맞닥뜨릴 경험으로 인해 지적인 광대놀음, 세련된 사기극으로 몰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닌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사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오랜 주제이기도 했고 이 책의 주인공에게 역시 그러했던 궁극적인 인간형, 이상적인 인간형, 최후의 인간형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대목을 찾았다.

최후의 인간 (모든 믿음에서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그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어진)은 자신의 원료가 되어 정신을 산출한 진흙이며, 이 정신이 뿌리내리고 수액을 빨아올릴 토양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 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196쪽)

이 대목에서 그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오르는 독자는 나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가 생전에 준비해 두었다는 묘비명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리고 책 속 주인공이 추구하는 인간형은 믿음과 환상과 기대로 가득찬 인간이 아니라,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벗어난 인간인 것이다. 그것이 자유로운 인간이고 궁극적인 인간이라니, 살아서는 도달하지 못할 인간형이란 말인가.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조르바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 아니, 그의 말을 빌자면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나이드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조르바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를 맞이하는 오르탕스 부인은 끝까지 절규했다.

"죽고 싶지 않아! 정말 죽고 싶지 않아..."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규하게 하는 그것이 곧 가장 인간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본성, 신과 구별되는 한계,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조르바는 끝까지 자신이 당장 원하는 것을 하며, 생각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진 채, '안전하게'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 책의 말미에, 조르바와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조르바는 무아지경에 빠져든 듯, 입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두목,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만물은 각기 무슨 의미를 지닌 건가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나는 가장 단순한 질문,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받은 셈이었지만 그에게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모르신다!" 조르바의 둥근 눈이 놀라움으로 열리면서 소리쳤다. 내가 춤출 줄 모른다고 고백했을 때와 표정이 똑같았다. 그는 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소리쳤다.

"......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중략)

".....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385쪽)

조르바의 물음에 주인공은 그동안 50톤 종이를 씹어 삼키며 읽었을 거라는 책, 사유하며, 고뇌하며 알아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이리 저리 비유하며 설명하려 하지만 조르바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아니, 그 자신 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 조차 희미해짐을 느끼며 새벽을 맞는다.

본연의 질문 앞에 맞닥뜨리는 순간은 책을 읽는 동안 오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하는 질문은 어떤 특별한 '죽음'을 목격하고서 비로서 제대로 시작된다. 조르바가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을 경험하며 그랬듯이,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나 자신 아버지의 죽음을, 죽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비로소 열리는 질문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듯이.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417쪽)

이거?

조금 더 읽어내려 가다가 다음 구절을 만났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 (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417쪽)

인간의 추구해야할 최고의 지점은 하느님이나 악마의 말씀을 따라서, 또는 타협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비록 하느님이나 악마에 의해 자신의 영혼이 시험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끝까지 부서지지 않고 인내와 용기로 버텨내는 것!

이런 실마리를 던져 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내 생각에서 나오는 것으로 못미더운 못난 인간 나는 그 누가 이렇게 확인시켜주기를 바라고 있었나보다.

책 전편에 흐르는 조르바의 마초적 행동과 말에서 느꼈던 거부감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찾아내야할 것이 분명 이 작품에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찾아낸, 이 책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조르바가 어릴때 한 성인(聖人)이 들려주었다는 다음 구절이다.

 

알렉시스 (조르바의 이름), 내 너에게 비밀을 일러주마, 지금은 너무 어려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자라면 알게 될 것이야. 잘 들어 둬라, 얘야. 천당의 일곱 품계도 이 땅의 일곱 품계도 하느님을 품기엔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기에 넉넉하지. 그러니 알렉시스, 조심해라.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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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0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로 내가 이 노래, 500 miles 를 알게 된지 31년이 되었다.

노래를 부른 세 사람, Peter, Paul, Mary. 이 중 Mary는 2009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 노래를 처음 내게 알려준 친구는 아직까지 내게 둘도 없는, 41년째 친구.

며칠 전 이 친구가 블로그에 지금 가족과 자동차로 여행중인데 500 마일을 운전했다고 쓴걸 보고, 500 마일이라는 단어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이 노래를 떠올리고는 오늘까지 계속 흥얼흥얼 거리고 있다.

 

 

 

 

 

 

 

 

 

 

 

 

 

 

 

 

 

 

 

 

 

 

 

이 책 역시 다 읽은지 며칠 되었건만 아직도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말이야~"

남편은 아무 죄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나로부터 튀어나오는 그리스인 조르바로 시작하는 말을 들어주고 있는 중이다.

 

 

 

 

 

 

500 마일과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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