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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 - 엄마라는 여자들의 내 새끼를 향한 서툰 연애질
김수경 지음 / 포북(for book) / 2015년 3월
평점 :
'여자들이 수다가 많아지는 이유'?
아니, '이런 책을 쓰지 않으려면'?
리뷰를 쓰기 앞서 제목을 뭐라고 할까 이리 저리 궁리해보았다.
세상에 아이 키우는 엄마 치고 수다의 컨텐츠로 아이 키우는 얘기 이상이 있으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그야말로 시종일관 자식 얘기만으로 몇 시간을 채우는데 내심 놀라서 돌아온 적이 있다. 다음에 만나서도 마찬가지, 그 다음 만나서도 마찬가지. 본인들 얘기보다는 자식 얘기가 대부분. 나중엔 거의 듣기만 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이상한건가 혼돈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fbook이라는 출판기획사 대표이자 오랫 동안 편집자로 일해 온 사람으로 소위 책 만드는 베테랑이라고 할 정도의 경륜이 있는 사람이다. <작은 집이 좋아>, <살림이 좋아> 등의 책등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깔끔한 판형과 제본으로 서가에서 유독 눈에 띄었었다. 자칭 책 만드는 일에 미쳐살았다고 하는 이 분에게는 이제 스물 남짓된 아들이 하나 있는데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이 아들을 보며 이젠 다 키웠구나, 내 품에서 완전히 떠나보내야겠구나 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느낌은 마치 재밌게 말 잘 하는 친구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기 얘기를 옆에서 들어주고 있는 듯 했다. 맞장구 쳐가며, 어느 대목에서는 깔깔 거려가며, 어느 대목에서는 어깨를 토닥거려가며. 수다떠는 여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하는 엄마, 사서 고생하는 걸 좋아하는 버릇, 사는데 규칙이 많다는 것 등은 나랑 비슷하다 싶어 더 친근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자는 나보다 몇 십배 더 마음이 넓고 포용력 있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 다섯 남매의 맏이로 자라서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느라 분투해야했던 자기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안타까우면서도 역시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자식에게도 충분한 애정을 쏟아주지 못했다는 자괴감, 아이 낳고 바로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버린 남편때문에 당장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 그래도 금쪽 같은 내 새끼라며 애지 중지 키운 아들이 이제 남편의 판박이가 되어가며 엄마 품을 벗어나려하는 것을 보는 아쉬움, 글 잘 쓰는 사람이니 오죽 절절하게 잘 써놓았으랴.
'연애'라고 까지 표현한 아들과의 사이를 과연 어떤 시점부터 딱 끊을 수 있을까? 피 섞이지 않는 남자와 연애하다가 그걸 끝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엄마가 아들을 품에서 내보내며 이젠 네가 알아서 네 인생을 살아라 한다는 것은 보통 의지와 노력 아니고는 이렇게 계속 각오로만 끝나는 립서비스가 되기 십상이다. 엄마가 이렇게 비장한 각오를 하건 말건 아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이런 각오도 통보도 없이 부모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하고, 그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아들이 그렇게 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고 그것을 보는 엄마 마음이 몹시 서운한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서운함을 못이기고 언제까지 아들에 대한 안테나를 계속 달고 앉아 100전 100패의 연애를 계속해나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있다. 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나무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까지 달라는 대로 자기가 가진 걸 다 내어주지만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서운함은 느낄지라도. 나는 왜 이 책이 떠올랐을까.
부모가 자식을 키워내는 과정은 내 품에서 떠나보내기를 성공적으로 잘 해내는 것 까지이다. 명심해라 hnine.
길은 떠나는 자를 위해 열리는 법이라는 것, 행복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만 찾아온다는 것 (73쪽)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는 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하나, 둘, 사과, 배, 하면서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눈치채지 못하는 게 남자다. 속이 터지다 못해 배알이 뒤틀릴 지경이 와도 속내를 읽어줄 어른이 되지는 못한다. 그게 남자고, 그게 남편이다. 거기에다 아들까지 덤으로 얹히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쭉 견디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사분거리는 딸 없이 오로지 아들만 끼고 사는 엄마들이 가여운 것은 그래서다. (98쪽)
남편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우리 얘기 좀 해" (100쪽)
아이가 집을 따뜻한 곳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며, 부모로서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워싱턴 어빙- (126쪽)
"오늘은 이러고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세익스피어- (138쪽)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 덕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152쪽)
아버지가 자기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8쪽)
숱한 실패와 불행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신뢰를 잃지 않는 낙천가는 대부분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앙드레 모루아- (219쪽)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아들에 너무 올인해서 살면서도 나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고 안 할 자신 있다면야 뭐.
난 그럴 자신 없으므로 적당히 주고 적당히 방관하면서 사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