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도 학교에 가야 한다> 수지 모건스턴 글
이 작가는 원래 미국 태생이지만 프랑스인과 결혼한 후 프랑스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도 프랑스어로 출간된 것을 우리 나라에서 번역 출판한 것.
제목을 보고 어떤 이야기가 짐작되는가. 공주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책을 읽는 너희들도 공부 하기를 싫어하면 안된다는 이야기? 물론 그런 이야기일리는 없다. 제목은 이야기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어야 하지만 제목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있어서도 안된다.
파산한 왕 조르주 114세는 왕궁을 팔고 가족을 데리고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어린 딸 알뤼에스테르 공주는 아는 친구도 없고 할일도 없어 심심하기만 하다. 어느 날 공주는 동네 사는 또래 아이들이 아침마다 가는 곳을 따라가 보기로 하는데. 
그 날 이후로 공주는 자기도 다른 아이들이 아침마다 가는 그 곳을 가고 싶어 왕과 왕비를 조른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생각해낼수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읽으며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되는 책이다. 초등 3,4 학년 용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고.  


<퀴즈 왕들의 비밀> E.L.코닉스버그 글
원제는 The View From Saturday
책의 내용으로 미루어 봐도 원제가 더 알쏭달쏭하다.
코닉스버그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교사 출신. 역시 많이 알려져 있는 <클로디아의 비밀>의 저자이기도 하다. 두 권 모두 그에게 '뉴베리 상'의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는데 읽어보면 이 사람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느 누구도 쓴 적이 없으리라 생각되는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 여러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서로 연관되어 진행되도록 하는 돋보이는 구성력, 행간에 흐르는 유머, 그리고 이 책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를 수 있는 자신의 경험, 과거를 상처로 생각하지 않고 떳떳하게 드러내보여도 된다는 가르침이 아주 살짝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만든다. 지금, 찾으러 간다!  

 

 
<어린이가 닮고 싶은 조선의 고집쟁이들>
이 책은 배송을 기다리고 있지만 기대감때문에 미리 올려본다. 아는 분이 저자 중 한사람으로 참여한 책이라서 ^^
책에 수록된 사람들은 우리 귀에 익은 위인들이 아니라 모두 숨어 있는 인물들. 기획이 참신한데 쓰는 사람은 자료 조사하느라 얼마나 애썼을지 짐작이 간다.
'고집쟁이들'이라...무슨 일을 해내려면 확실히 고집이 필요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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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간까지 이렇게 버티고 앉아있을 수 있는 것도 내일 아침 출근을 안해도 되는 사람으로서 감사할 일 중 하나이다. 10시쯤 남편과 아이 모두 잠들고 나면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그 시간부터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생각하며 그냥 신이 난다. 막상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이 책 저 책 찔끔찔끔 읽기도 하고, 몰래 아이 일기장도 읽어보고, 그러다가 부엌에 나가 내일 아침 먹을 국을 끓여놓기도 하고, TV를 켜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졸음이 와도 눈을 부릅뜨며 안 잘려고 애쓰는 모습이 내가 봐도 웃긴다. 

며칠 전 있었던 어떤 일 때문에 한동안 우울했고,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며칠이었다. 그러다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비록 나는 정해놓은 종교는 없지만, 진실은, 내 앞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한 그 사람도 아니고, 그 말에 상심한 나도 아닌, 어떤 높은 존재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나중에 얼만큼 살다가 세상을 뜰때 아마도 우리가 아쉬워 할 것은 더 미워하지 못했음이 아니라, 더 사랑하지 못했음이 아닐까. 그래, 억울하다 생각말고 그냥 받아주자.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다보면 내가 점점 더 커질지도 몰라.

강한 엄마, 모범이 되는 엄마, 훌륭한 멘토 역할을 하는 엄마,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제일 되고 싶은 것은 따뜻한 엄마.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근처에도 못가지만 끝까지 노력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밖에서 힘들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 사람으로, 이 세상 끝까지 내 편을 들어줄 사람으로, 항상 뒤에서 지켜봐주고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떠올려지는 사람이고 싶다. 어떤 결정을 해야할 때 현실적이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것, 큰일에 대해 침착하게 대처하는 태도, 부모가 할 일로서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 그런데 나는 왜 따뜻한 엄마가 더 되고 싶은 것일까. 아이가 웃을때 같이 웃어주고, 울때 같이 울어주는. 푼수같더라도 나는 왜 그런 엄마가 더 되고 싶은 것일까. 

가을 옷들을 입어보기도 전에 겨울 옷으로 넘어가고 있다. 가을인가 싶었는데 겨울이 느껴진다. 우리의 삶도 그런건 아니겠지?  나는 아직 가을을 못보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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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엔야의 노래를 듣네요. 참 좋아요.

저는 회사 관둔 이후 아침 시간이 너무 여유로와 좋아요. 저만의 시간이란거,
서재도 기웃대고, 못 다 읽은 책도 읽고, 급한 수업 및 리포트도 하고,
또는 숙제처럼 밀린 퀼트도 하고....
아침에 집을 주욱 치우고 나면, 편안한 집이, 아 내 집 맞네 싶어서 참 좋아요.

hnine 2010-10-29 12:19   좋아요 0 | URL
네, 마녀고양이님. 현재를 즐기세요.
저 위의 페이퍼 올려놓고 내렸다 올렸다 그랬답니다. 너무 감상적인 글이 아닌가 해서요. 모두들 이해해주실거라 믿고...^^

세실 2010-10-2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냥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해요. 자고 싶으면 자고, 깨어있고 싶으면 깨어있고...
다행히 아침잠은 없어서 아무리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게 되네요.
저도 따뜻한 엄마, 친구같은 엄마가 제일 되고 싶어요.

hnine 2010-10-29 21:43   좋아요 0 | URL
아침잠 없다고 하면 부러워 하는 사람들 많아요 ^^
예전엔 아이따라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었는데 요즘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네요. 건강에도 안 좋고 피부에도 안 좋을 것 같지만 혼자 깨어있는 시간이 좋아서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있어요.
친구 같은 엄마, 이미 그렇지 않으신가요? 특히 보림이와 세실님이요.
남자 아이와도 그게 가능할지, 아직 다 안키워봐서 모르겠어요 ^^

상미 2010-10-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결혼전에 배우자에 대한 <이상형>이 있듯이
이상적인 엄마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게 아닐까?
넌 다린이한테 따뜻하고 좋은 엄마야...
자신있게 살면 되는거란다.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나보다 더 따뜻하고 좋은 엄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 이러면서 ㅎㅎ

hnine 2010-10-29 12:25   좋아요 0 | URL
그 이상형이라는게 그냥 나오는게 아니라는거지.
따뜻한 엄마인지 모르나 일관성 있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엄마는 아니야.
소심한 A형이라서 자신있게 살기가 잘 안돼.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 때문인가?' 한다잖아~ ^^

깐따삐야 2010-10-29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푼수 같은 엄마는 자신있는데 멘토 같은 엄마는 자신없어요. 사실은 둘 다 자신없기도 해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엄마로 사는 일 같아요.

hnine 2010-10-29 12:29   좋아요 0 | URL
나중에 자식이 원할때 필요한 만큼만 멘토링을 해줄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모 자식 사이에 그 조절이 잘 안되더라고요. 월권하려 들고, 간섭하려들고요. 그게 겁나요.
깐따삐야님과 영달이 얘기, 잘 보고 있어요. 힘들다 힘들다 하며 지냈으면서, 지금도 아기들 얘기가 나오면 몰입하며 읽으며 부러워해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하고 있는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사람들이어요. 맞죠? ^^

2010-10-29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9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0-3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월 마지막주.

당연한 얘기긴 한데.. 11월의 첫주를 앞둔 날이기도 하고요 ^^
이밤에 음악들으면서 마실 다니고 있는데, hnine님 방은 참 따뜻해서 좋습니다.



hnine 2010-10-30 22:10   좋아요 0 | URL
서로 남의 방에 가 있었군요 ^^ 저 지금 바람결님 방에서 음악 듣고 왔거든요^^
시월과 슈베르트라~ '이보다 더 어울릴 순 없다! 역시 바람결님~' 이러면서요.
그러고 보니 음악만 듣고, 추천만 누르고, 댓글은 안달고 왔어요. 다시 가야지~~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히라타 겐야 글, 가토 구니오 그림
조심스런 의견이지만 일본의 어린이책들을 보면 참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할 때가 많다. 혼, 신, 유령 등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의 특성도 한 몫 하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보다 판타지 세계, 상상력의 세계를 잘 그려내는 것 같다.
집의 공간적 깊이와 할아버지가 그간 살아온 시간을 서로 맞물려 감동적인 이야기 한편이 만들어졌고 그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 집은 지상 위의 집이 아니라 바닷속 집이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보게 되는 계기가 떨어뜨린 도구를 찾기 위해서라는 것은 작가가 억지로 설정했다는 티가 나지 않아 자연스럽고 납득이 갈 만한 상황으로 보였다.
할아버지가 망치를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면 이전의 시간의 흔적을 못 볼수도 있었을까?
계속 허물어져가는 집에 계속 살려면 (미래) 보수가 필요했고, 그러다가 망치를 떨어뜨리는 사건이 일어났고 (현재), 그것을 찾으러 갔다가 과거와 만난다. 멋진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동생은 싫어> 로리 뮈라이, 장노엘 로쉬 글
6-7세를 위한 그림 동화이다.
새로 태어난 동생 때문에 생기는 형의 고충을 그린 이야기들은 많다. 그런 이야기에 또 하나 보태는 책인가? 하고 들춰 보았는데, 아니었다. 책 속의 세바스티앙이란 아이는 표지 그림의 왼쪽의 아이. 혼자 노는게 심심해서 상상 속의 동생 피에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늘 자기와 얘기하고 같이 놀아주는, 한마디로 자기 취향에 맞는 상대를 만들어냈는데, 문제는 엄마가 그것을 알고 세바스티앙에게 어떤 행동을 권할때 비교 대상으로 이 피에르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부터 세바스티앙은 자기와 반대로 뭐든지 엄마가 원하는대로 즉시 행동하는 이 가상의 동생이 싫어진다.
제목을 보고 미리 어떤 내용일거라 짐작하며 읽기 시작한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다. 

 

<비를 피할 때는 미끄럼틀 아래서> 오카다 준 글
이 작가의 <신기한 시간표>를 읽고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책도 기대하며 읽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용, 구성, 소재.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열명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피하기 위해 공원의 미끄럼틀 아래로 들어간다.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미스테리한 인물 아마모리씨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담을 돌아가며 하나씩 풀어놓는데, 이 이야기들이 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신기한 시간표>에서 그랬듯이 아이들이 어떤 혼자만의 걱정이나 근심에 빠졌을 때, 정말로 바라는 것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상상만 하고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 이 아마모리씨를 통해 잠깐 동안이나마 이루어지는 경험들을 하는 것이다. 열명의 아이들이 이야기를 다 끝내고난 후 결말 처리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이 따라갈 수 없는 면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좋은 작품이다. 

 

<방귀 한 방> 제4회 푸른문학상 동시집.
2006년 푸른문학상 동시 부문에 수상을 한 이 옥근, 유 은경, 조 향미, 이 정림 시인의 작품 묶음이다. 이 분들의 이력을 보니 국문학을 전공한 분도 있지만, 경영학, 생화학 등, 그렇지 않은 분도 계셨는데 공통적으로 참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였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읽다 보면 네 사람만의 개성도 짚을 수 있었다. 이 옥근의 시 속에는 시인의 눈이 아니면 찾아내기 어려웠을 아이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었고, 조 향미의 시는 어른들의 마음에도 울림이 큰 내용들이 많았으며 이 중 제일 연배가 높은 이 정림 시인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진 시를 썼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사내아이 때문에  

                                               조 향미

서울서 전학 온 사내아이
하얀 얼굴 말쑥한 옷차림이
내 마음에 쏙 들었죠 

그 아이 뒷그림자 조심스레 밟으며
교문을 나서는데
장에 오신 아버지가
고추 보따리 지고서 교문 앞에 계셨죠 

이리저리 날 찾는 아버지 보고도
모르는 척 담장 밑으로 쏙 숨어 버렸는데
우리 아버지 날 봤는지
슬그머니 뒤돌아 학교서 멀어졌죠 

집으로 오는 내내
돌아서던 아버지 모습 자꾸만 눈에 서려
목줄기가 뻣뻣이 저리고 아파 왔죠 

쇠죽물 끓이시는 아버지 옆에서
마른침 삼키며 아무 말 못 하고 앉았는데
부지깽이만 탈탈 터시던 아버지
눈가 주름 굵게 잡으시며
씨익 한 번 웃으셨죠 

그 사내아이가 뭐라고
내가 왜 그랬을까? 

불씨를 뒤적이는 아버지의 옆을 보니
어느새 귀밑머리 하얀 눈이 소복했죠.

무슨 이유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어른의 시든, 아이들의 시든, 시를 늘 가까이 하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시를 읽을 때마다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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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를 피할때는 미끄럼 아래서...잼날것 같아여~

시도 좋고요~^^

hnine 2010-10-28 22:33   좋아요 0 | URL
재미있어요. 저는 성인용 일본 소설은 잘 안보는데 (저랑 별로 궁합이 안맞는것 같아요 ㅠㅠ) 어린이책은 일본 작가의 작품 많이 봐요. 재미있고 기발해서요.
 
어떤 고백 문학동네 청소년 3
김리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작품이다. 여섯 편의 중단편 소설 모음집.
<열입곱 순정> 제목에서 연상되는 어떤 스토리가 있다면 그것이 맞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 내용이라 하겠다. 같은 학교 여학생을 혼자서 좋아하다가 다른 남자 아이가 그녀와 더 친하게 되고, 그래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그 여학생을 지켜 보고. <스타일>에서는 각자 남자 친구를 데리고 함께 만나기로 한 두 여고생이 우연히 똑같은 옷을 입고 그 자리에 나타나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열다섯 봄날> 냄새 나는 간장 게장을 들고 내키지 않는 엄마 심부름을 가는 길에 하필이면 혼자 마음에 두고 있는 남학생을 버스 안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버스 속에서 자기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남자를 보고도 모른 척 하는 그 남학생의 전화 번호를 마침내 휴대폰에서 삭제해버린다. <문>에서는 환타지 기법을 부분적으로 이용하여 고등학교때 잘못을 저지른 친구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남친만들기>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은 여고생의 심리를 읽을 수 있을까 했는데 늘 그렇듯이 내가 좋아하는 상대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같지 않다는 것으로 갈등을 삼아서 좀 식상한 면이 있었다. <나를 위한 노래>에서는 삼각 관계 플러스 자아 찾기 과정의 이야기.
대화가 많이 나오고 지루한 묘사가 없어 페이지는 빨리 넘어가는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어서, 성장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매력을 기대했다가 좀 실망하기도 했다. 작가의 중고등학교 시절도 아니고 바로 지금의 그 세대들이 쓰는 말, 관심사, 일상을 그리기 위해 인터뷰를 비롯한 조사 작업을 많이 했는지 감사의 글에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장감 있게 읽히기는 했다. 이 작품들이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의 수준을 뛰어 넘으려면 작가가 무엇을 더 해야 했을까? 아마도 좀더 독창적인 소재를 찾았어야 하고, 소소한 일상 얘기들도 좋지만 좀 더 비중있는 사건이 들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사건의 진행을 통해 작가의 의도가 읽히고 독자들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그런데 이 책 속의 모든 이야기들은 마치 재미있는 시트콤을 여섯 편 보는 기분이어서 재미는 있으되 감동까지는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현재 중고등학생들이 읽는다면 또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바로 내 얘기라면서 무릎을 치며 읽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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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0-23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별 두개짜리도 있으시군요~
이 책을 읽진 않았지만,리뷰만으로도 님에게 공감합니다.

저도 문학동네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을 다른데서 만들었어도 그만큼의 상업성 가치를 갖게 만들어 냈을까 싶을 때가 종종,아니 꽤 많거든요~^^

hnine 2010-10-23 08:22   좋아요 0 | URL
쓰고서 오타 확인도 안하고 그냥 올려버린 리뷰를 이렇게 읽어주시니 감사하고 또 부끄럽네요.
별 두개는 좀 심했나 싶기도 하지만...^^

순오기 2010-10-24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리리는 <나의 달타냥>과 <호기심>에 실린 단편을 참 좋게 봤던 작가인데...
소소한 일상 소재에서 감동을 담아내려면 작가가 더 많은 고민을 해야겠지요.^^

hnine 2010-10-24 18:48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이 처음이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마음까지 전달될만한 뭔가가 없어서 아쉽더군요. <나의 달타냥>은 제목부터 흥미를 끄는데요?

순오기 2010-10-25 21:54   좋아요 0 | URL
나의 달타냥은 주제나 풀어가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도서관에서 찾아보셔도 좋을 책입니다.
님을 위해 짧은 리뷰를 올려둡니다.^^

hnine 2010-10-25 22:57   좋아요 0 | URL
잘 읽고 왔습니다.
전 읽고 나서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시는지요.
위의 책보다 훨씬 더 진지한 내용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 작가의 다른 책도 더 읽어봐야겠어요. 그래도 한권 읽고 생길뻔한 편견을 갖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순오기 2010-10-25 23:46   좋아요 0 | URL
작년에 알라딘에 리뷰는 안 올렸지만, 독서마라톤 하면서 남겨둔 기록이 있었어요.제가 무슨 수로 다 기억하겠습니까? 보통 기록을 안 남기면 내용보다 분위기만 기억하는데, 이 책은 좀 무겁고 어두운 아픔이라서 비교적 많이 기억하고 있어요.
 
그림에도 불구하고 - 글쟁이 다섯과 그림쟁이 다섯의 만남, 그 순간의 그림들
이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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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젊은 문인과 다섯 명의 젊은 화가가 모였다. 읽기 시작하면서 누구의 기획인지 참 괜찮다 생각했는데 다 읽은 후 에필로그를 보니 미술이론가 박 준헌이 처음 제안하고 기획을 하였고 여기에는 위의 필자로 참여하기도 한 김 민정 시인의 기획력도 많이 공헌했다고 한다. 누가 되었든 참신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인 이 원과 화가 윤 종석, 읽지 않고 보기만 해도 그의 작품은 표시가 나는 소설가 김 태용과 화가 이 길우, 어렵고 진지한 시를 쓰는 신 용목과 화가 이 상선, 톡톡 튀다 못해 적나라하기를 서슴치 않는 시인 김 민정과 화가 변 웅필, 소설가 백 가흠과 화가 정 재호, 이렇게 묶여서, 이런 책을 내는 것을 전제로 하고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옷을 구한다, 그 옷을 적당히 접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든다, 주사기 끝에 물감을 묻혀 그 위에 찍는다, 이제 처음의 옷은 새로운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맨 앞에 소개된 화가 윤 종석의 작품 패턴이다. 이 원 시인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림과 관련된 에세이 형식의 글에서도, 화가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그녀의 뾰족하지 않으나 반짝이는 감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녀의 시집을 한번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화가 이 길우의 그림은 극장에서 3D 영화를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 볼 때와 같은 그림들이다. 조금씩 옆으로 어긋나서 환영처럼 보이는 그림, 또는 두 개의 다른 인물이 하나의 평면에 겹쳐져 있는 그림. 종이 위를 대롱 모양의 인두로 콕콕 찍어 태워서 작은 구멍을 냄으로써 형태를 만들었다. 소설가 김 태용은 그런 그림에 대해 '언어에 구멍을 뚫을 수 없을까' 라는 문장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글 속으로 끌어 들이고. 이 둘의 대담에는 '화폭에 구멍을 뚫는 화가, 언어에 구멍을 뚫는 작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아해'를 대상으로 그려서인가, 이 상선의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가분수이다. 명암 생략, 화면 속에 분분이 날리는 꽃잎이 상징하는 것은 무얼까. 이 책에서 보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림에서 보이는 어떤 형태나 대상의 의미, 상징하는 바를 궁금해하여 화가에게 그것을 묻는다. 그런데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별 뜻 없이' 마음 가는대로 그렸다는 대답을 하곤 한다.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작가와 의미를 만들어내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기분, 즉흥성을 중시하는 화가.  물은 사람의 머쓱함을 나도 종종 경험해보는 지라 읽는 나도 당황할랴치면 작가는 그것을 의식 못하고 그렸으니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았겠냐고 너스레를 떨며 받아치고. 화가와 시인의 이런 식의 대담은 그림보다, 글보다 훨씬 더 흥미있었다. 이런게 시너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김 민정의 시는 파격이다. 그녀의 시를 몇 편 읽어보면 왜 그렇게 불리는지 대번 알게 될 것이다. 앞의 신 용목 시인과 달리 고뇌하며 쓴 흔적도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시인 자신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읽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글과 만난 그림의 화가 변 웅필의 그림은 느끼하다. 어떻게 이렇게 얼굴을 정말 얼굴색으로 이렇게 그릴 수가 있는지.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잖은가. '가로 본능'이라고 말하는 그의 특기는 그 얼굴에 가로로 굵은 획을 거침 없이 그어 놓는 것. 이 얼굴의 모델이 대부분 화가 자신이라니 더 엽기스러워지기도 한다. 그가 김 민정의 글에서 주인공 '변'이라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대담중에도 서슴없이 그림 한점 사라고 하는 변 웅필 화가에게 김 민정은 가난한 시인이 어떻게 비싼 그림을 사냐면서 그냥 하나 달라고 하며 고른 그림이 하필 <6 * 9> 란다.
대형 작품을 주로 하는 화가 정 재호의 그림 속에는 여러 가지가 보인다. 복잡한 지그재그 속에 횡단보도가 보이고 서로 충돌한 차들이 보이고, 오토바이 타고 달리는 사람이 보인다.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있을 수록 보이는 것이 더 많아질 것만 같다. 작품의 제목이 너무 단순하다고 좀 고쳐보면 어떻겠냐고 변죽을 울리는 작가,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화가의 대화 속에서 그림이 다시 태어난다.

새로운 도시에서 사물들은 인격을 갖게 되었다. 사물들의 인격은 인간을 차갑고 무관심하게 대한다. 사물들의 하나뿐인 감성은 인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볼 줄만 안다 (210쪽).

아, 그렇구나. 우리는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인격을 불어넣기까지 했구나. 그리고 때때로 그것의 말에 귀를 기울이느라 정작 내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못듣기도 하는구나.  
에필로그에서 기획자 박 준헌은 예술의 문제는 길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고 했지만, 길이 너무 많다는 것이 때로 길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보이지 않던 길이 눈 앞에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것 같은, 바로 그런 느낌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들뜨게 했다. 표지를 더 눈에 확 뜨이게하고, 좀더 홍보를 많이 했다면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읽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라면 그런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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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바빠도 서울의 전시회를 하나 다녀와야겠어요.
가서 눈물 뚝뚝 흘리며, 그림을 하염없이 보고 와야겠어요.
그러면........

그림이 저를 위로해주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저, 가을 너무 심하게 타나봐요. ㅎㅎ

hnine 2010-10-24 12:47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예, 그러셔요. 누구랑 함께 갈까 찾지 마시고 혼자 가세요. 그래야 눈물이 나면 마음껏 울지요. 그림은 음악과 또 다르더군요.
저는 워낙 '사는건 즐거울 때보다 괴롭고 눈물날 때가 더 많다'고 보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마음이 편하다는 걸 알고서 잔꾀 부리는 것인지는 몰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