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간까지 이렇게 버티고 앉아있을 수 있는 것도 내일 아침 출근을 안해도 되는 사람으로서 감사할 일 중 하나이다. 10시쯤 남편과 아이 모두 잠들고 나면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그 시간부터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생각하며 그냥 신이 난다. 막상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이 책 저 책 찔끔찔끔 읽기도 하고, 몰래 아이 일기장도 읽어보고, 그러다가 부엌에 나가 내일 아침 먹을 국을 끓여놓기도 하고, TV를 켜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졸음이 와도 눈을 부릅뜨며 안 잘려고 애쓰는 모습이 내가 봐도 웃긴다.
며칠 전 있었던 어떤 일 때문에 한동안 우울했고,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며칠이었다. 그러다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비록 나는 정해놓은 종교는 없지만, 진실은, 내 앞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한 그 사람도 아니고, 그 말에 상심한 나도 아닌, 어떤 높은 존재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나중에 얼만큼 살다가 세상을 뜰때 아마도 우리가 아쉬워 할 것은 더 미워하지 못했음이 아니라, 더 사랑하지 못했음이 아닐까. 그래, 억울하다 생각말고 그냥 받아주자.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다보면 내가 점점 더 커질지도 몰라.
강한 엄마, 모범이 되는 엄마, 훌륭한 멘토 역할을 하는 엄마,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런데 내가 제일 되고 싶은 것은 따뜻한 엄마.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근처에도 못가지만 끝까지 노력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다. 밖에서 힘들고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 사람으로, 이 세상 끝까지 내 편을 들어줄 사람으로, 항상 뒤에서 지켜봐주고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떠올려지는 사람이고 싶다. 어떤 결정을 해야할 때 현실적이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것, 큰일에 대해 침착하게 대처하는 태도, 부모가 할 일로서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 그런데 나는 왜 따뜻한 엄마가 더 되고 싶은 것일까. 아이가 웃을때 같이 웃어주고, 울때 같이 울어주는. 푼수같더라도 나는 왜 그런 엄마가 더 되고 싶은 것일까.
가을 옷들을 입어보기도 전에 겨울 옷으로 넘어가고 있다. 가을인가 싶었는데 겨울이 느껴진다. 우리의 삶도 그런건 아니겠지? 나는 아직 가을을 못보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