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해결할 방법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어느 날 저녁 셔츠를 다림질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여자들의 삶에는 늘 이렇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또 이렇게 불현듯 떠오른 어떤 생각에 의해서 실행에 옮겨지는 것일까.

 

앨리스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표지가 예뻐서 마치 책표지가 아닌 것처럼 가까이 찍어보기도 했다.

현실에 없는 색.

 

 

 

 

 

 

 

함께 주문한 책 <친절한 생물학>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구성으로 되어있었지만 (단순한 문답식) 저자때문에 구입했다.

이로써 내 책꽂이에 '후쿠오카 신이치'의 책이 한권 더 늘었다.

 

 

 

 

 

 

 

 

 

 

 

 

 

 

 

 

 

 

 

 

오늘 받은 책은 아직 읽기 전이지만 앞의 두권 <모자란 남자들>과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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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11-02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이랑 앨리스 먼로의 책을 주문해두고 기다리는 중이에요. 현실에 없는 색이군요. 나인님 주말 편히 보내세요. ^^ 전 작은딸이랑 딕펑스 공연 보고 오려구요.^^ 표가 두장 생겼는데 친구랑 가라니까 엄마가 구해준 거니 저랑 가겠다네요. ㅎㅎ

hnine 2013-11-02 13:40   좋아요 0 | URL
앨리스 먼로의 책 지금 읽고 있는데 이 작가의 성격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야기도 이야기이지만 작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재미있네요.
저는 딕펑스가 무엇인지도 모른답니다 ㅠㅠ 잘 보고 오세요.
 
모래그릇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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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1961년에 출판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0여년 전.

마쓰모트 세이초는 1924년생. 그가 태어나 자라고 활동하던 시대를 짐작해본다. 큰 전쟁이 있었고 그 후폭풍을 개인, 사회, 국가의 차원에서 겪어야했을 시대. 그 역시 매우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마음껏 배워야 할 나이부터 이미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그는 오로지 독서로 마음의 안식처를 삼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1960년대 거의 1년 동안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일본에도 신문 연재 소설이라는게 있었나보다.

새벽녘 기차 조차장에서 기차 밑에 깔린 것 처럼 발견된 시체를 두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은 사람의 신원을 밝히는데도 한참 걸린다. 그뿐 아니다. 용의자를 추적해가는 과정, 그리고 핏자국이 묻은 천조작이 발견되자 그것을 조사하는 과정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지금 읽자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며칠 걸려서 검사한다는 것이 우선 말라버린 피를 녹여내기 위해 하룻밤동안 어디에 담가 피를 녹여내고 사람의 피인지 동물의 피인지 검사하고, 루미놀 반응이 어떻고, 그 다음엔 무슨 혈액형인지를 검사하고. 요즘 같은 DNA 검사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할 때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1960년이면 DNA 검사는 커녕 왓슨과 크릭에 의해 DNA라는 것이 이 세상에 알려진지 겨우 몇년 안되었을 때이구나.)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불거져 나오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고 쌓여만 가던 시대의 상황을 작가는 작품 속에 반영하고 싶었는지, 이야기의 흐름상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문제들이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한다. '누보 그룹', '실업금', '한센병', '신분 상승', '일하는 여성', '출세', '성공', 등등.

어떤 분야에 대해 집요하게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이야기 속에 포함시키는 점도 주목하게 되었다. 초음파를 비롯한 음향에 관한 전문 지식, 방언의 발생과 분포, 새로운 예술 사조에 대한 비평등. 단순히 하나의 미스터리를 해결해가는 과정이라기 보다 배경이 되고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뚜렷한 의도가 보이는 듯 하다.

미스터리 소설이니 지루할 리야 없겠지만, 시간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인지 1권과 2권, 두권에 걸쳐 펼쳐지는사건의 진행이 매우 느리고 평이하다. 긴장감이 떨어진다. 우연성이 지나치다.  억지 설정, 어설픔이 드런난다. 밑도 끝도 없는 연상에 의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 생각하본다. '모래그릇'이라. 책 내용 중에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단어이기때문에 더욱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를 은폐하고 눈에 보이는 성공을 쫓는 인간의 속성을 의미했을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 전체를 의미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의 현대 일본의 신세대 사회파 미스터리 선두주자들의 원점에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를 꼽는 사람들도 있다니, 아주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뿌듯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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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10-3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 연재소설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
일본이 현대 문명과 문화나 문학 모든 자리에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고 빠르답니다.

'노구치 박사'라고 하는 사람은 소학생 적에도
담임교사가 아주 훌륭한 '글쓰기 지도'를 해서
장애와 가난과 차별을 딛고 일어나서
의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 나라 글쓰기 교육은
이오덕 님이 1960년대에 겨우 밑틀을 닦았지요...

hnine 2013-10-31 10:39   좋아요 0 | URL
일본이 서구 문명을 우리보다 먼저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니까요.
 

 

 

난 TV는 잘 안보지만 라디오는 무척 좋아한다.

언제부터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만큼 오래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가 이번 개편때 폐지 되었다.

본방이 새벽이라 대개는 다시듣기로 듣고, 어떤날 방송은 몇번씩 듣기도 했던 프로그램인데.

진행자는 바뀌었어도 계속되던 프로그램인데...

친한 친구를 떠나보낸 것처럼 마음이 안좋다.

 

헤어지는거라면 눈에 안보이는 전파조차도 이렇게 적응이 안된다.

 

이제, 내 컴퓨터의 즐겨찾기 목록에서 그 프로그램 주소를 지운다.

 

위의 노래는 우리나라 가요로도 번안이 되어 불렸던 노래이다.

원곡의 가사는 어떤 내용인지 몰라도

우리나라 가사는 무척 슬프다.

학교 들어가기도 전 어릴 때 아빠께서 부르시는 걸 듣고 처음 알게 된 노래인데

어린마음에도 무슨 가사가 저렇게 슬프지?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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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 2013-10-2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헤어짐은 슬퍼.
몇 마디 가사 기억 나서 네이버에서 찾았어..
'눈물을 닦아요 그리고 날 봐요
우는 마음 아프지만 내 마음도 아프다오
고개를 들어요 한숨을 거두어요
어차피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할 것을..'

hnine 2013-10-29 22:36   좋아요 0 | URL
맞아, 내가 어릴 때 들은 노래는 네가 검색한 그노래야. 가사 슬프지?

파란놀 2013-10-2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늘 가슴에 남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빚어 내 주겠지요..

hnine 2013-10-29 22:36   좋아요 0 | URL
예, 아마 그럴거예요. 전 쉽게 못 잊거든요.

순오기 2013-10-3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이거 생각나요, 친구들이랑 많이 불렀어요.
특히 생활관 실습 끝나는 날 촛불 밝히고 쓴 메모들을 하나하나 읽고 태우며 불렀던 기억이 나요.ㅠ

hnine 2013-10-30 08:5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 계속 계시기를 ^^

잘잘라 2013-10-3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 번안 가요였군요! 처음 알았어요. 찾아보니 가수 홍민이 부른 「고별」 1973년 발표, 故이종환 DJ가 번안했다고 나와요. 우는 마음 아프지만 내 마음도 아프다오... 노랫말, 멜로디 모두 기억나요. 이제 제목도 기억하게 될 듯..

hnine 2013-11-01 17:27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도 이 노래 아시는군요. 이 노래 다시 들어보니 노래의 마지막 노랫말이 여운을 남기네요 "운다고 사랑이 다시 찾아줄까요" 라고.
그 가수의 <석별>이란 노래도 있어요. 제목이 비슷한데 느낌도 비슷하지요.
 

 

13

 

 

우리 반 마담이 이틀째 결석이다. 이틀 결석이야 나 같은 놈에겐 아무것도 아니지만 마담은 결석 첫날부터 웬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도 학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슬슬 궁금해졌다. 그렇다. 궁금했을 뿐이지 걱정까지 한 것은 아니다. 나란 놈은 원래 남 걱정해주고 챙겨주고 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다른 인간 걱정하고 위로해줄 자격 있는 인간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건 알고 보면 결국 다 흉내이고 가식일 뿐이다. 아무튼 평소 같으면 아파도 학교 와서 끙끙거릴 마담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일분 쯤 하면서 미술실로 가고 있을 때였다.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 치기에 뒤돌아보았더니 거기 거짓말처럼 마담이 빙긋 웃으며 서있었다.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어디 특별히 아픈 기색도 없어 보이는 마담 얼굴을 보며 물었다.

“미술실 가는 길이지? 잠깐 얘기나 하자.”

“계집애들처럼 얘기는 무슨.”

“아, 자식. 정작 요즘 여자애들은 얘기하는 거 안 좋아한다 너.”

그러면서 우리는 미술실 가기 전의 중앙 현관으로 나가 정원석 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아팠냐? 이틀씩이나 안나오고.”

“아팠지.”

“어디가 얼마나 아팠는데?”

“몰라.”

“몰라? 병원에 안갔었냐?”

“의사도 모른다더라.”

얘기나 하자던 녀석이 꼭 말하기 싫은 놈처럼 겨우 대꾸만 하고 있다.

“미술대회 소식 들었다.”

마담 입에서 의외의 얘기가 나왔다.

“못가게 되었다며.”

그렇게 말하며 마담은 어쩐지 내 표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넌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는데 말이야.”

당연하지, 하기 싫으면 왜 하겠냐고 하려다가 지난번에 마담이 한 얘기가 생각나서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이 없자 마담은 내 어깨를 한번 툭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어가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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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강석아, 너 미국에 혼자 가라면 가겠냐?”

미술실로 들어서는 내게 미술 선생님이 느닷없이 던진 질문에 무슨 소리인가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대번에 감이 왔으면서도 정말 나의 짐작이 맞나 싶어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며 답을 읽어보려 하였다. 그때 내 표정 역시 아주 복잡했으리라.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번졌다.

‘아, 됐구나!’

“야, 열여섯 살에 미국, 그것도 뉴욕 연수라니, 너 참 행운아다.”

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본선에서 뽑힌 세 명에게는 여름에 미국 뉴욕에서 한 달 동안 합숙하며 열릴 예정인 국제 청소년 아트 캠프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내가, 거기에 뽑혔단 말이다. 전국에서 세 명 뽑는데, 거기에 나, 서 강석이가 뽑혔단 말이다.

“선생님, 정말인가요? 혹시 이름이 같은 다른 아이는 아닌가요?”

“녀석, 전혀 예상 안한 모양이다? 나는 믿고 있었는데.”

미술 선생님 얼굴엔 이제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다니.

“아마 작품만 달랑 몇 점 보내지 않고 너의 작업 과정을 자세히 담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함께 제출한 것이 영향이 컸던 것 같아. 기술적인 완성도보다 자기만의 생각, 개성, 독자적인 방법 등에 비중을 많이 두는 대회였거든.”

“선생님”

“응?”

“고맙습니다.”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진심이었다. 나도 이제 목표라는 것이 생겼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 날 이후 상철이의 일도, 사진 속의 여인에 관한 일도, 쉽게 잊을 수 있었던 것을 봐도 나는 이후로 많이 들떠 지냈던 것 같다. 자아도취였을까? 생전 처음 나가보는 외국, 여권을 만들고 비자 서류 준비를 하고, 아버지께도 연락하고, 반 아이들의 부러움을 받는 느낌도 은근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인마, 그러게 학교생활을 충실히 해왔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 아니냐?”

무슨 소리인지 감도 못잡으면서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출국 서류 준비하고 심사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했다. 학교에 아예 출석도 하지 않고, 패싸움으로 경찰서를 드나들었으며, 결정적인 것은 상철이 아버지가 그동안 경찰서에 탄원서를 내놓은 모양이었다. 착하기만 하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잘못된 길로 꼬임에 빠지게 되었고, 못어울리게 집에서 막는 것에 대한 반발로 충동적 자살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내 아들 그렇게 만든 놈들은 버젓이 아무 체벌도 없이 학교에 버젓이 다니고 있으니 또 어떤 순진한 학생들을 꼬여낼지 모른다고, 탄원서인지 진정서인지를 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형민이와 내 이름을 비롯해 함께 어울려 다니던 다른 몇 명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회가 그냥 수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국가 대표 격으로 국제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자격에 모자란다는 것이 이유였다.간신이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어쩐지 내게 올 행운치고는 너무 크다 했다고, 나 자신을 마구 비하했다가 곧 제풀에 지치기도 했다. 나의 과거가 나의 현재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은 다시 나로 하여금 모든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지난 일인데, 다 지난 일인데,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건 없지 않느냐고, 하늘을 향해 눈을 흘기다가, 그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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