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강석아, 너 미국에 혼자 가라면 가겠냐?”
미술실로 들어서는 내게 미술 선생님이 느닷없이 던진 질문에 무슨 소리인가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대번에 감이 왔으면서도 정말 나의 짐작이 맞나 싶어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며 답을 읽어보려 하였다. 그때 내 표정 역시 아주 복잡했으리라. 그런 나를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번졌다.
‘아, 됐구나!’
“야, 열여섯 살에 미국, 그것도 뉴욕 연수라니, 너 참 행운아다.”
선생님은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본선에서 뽑힌 세 명에게는 여름에 미국 뉴욕에서 한 달 동안 합숙하며 열릴 예정인 국제 청소년 아트 캠프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내가, 거기에 뽑혔단 말이다. 전국에서 세 명 뽑는데, 거기에 나, 서 강석이가 뽑혔단 말이다.
“선생님, 정말인가요? 혹시 이름이 같은 다른 아이는 아닌가요?”
“녀석, 전혀 예상 안한 모양이다? 나는 믿고 있었는데.”
미술 선생님 얼굴엔 이제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오다니.
“아마 작품만 달랑 몇 점 보내지 않고 너의 작업 과정을 자세히 담아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함께 제출한 것이 영향이 컸던 것 같아. 기술적인 완성도보다 자기만의 생각, 개성, 독자적인 방법 등에 비중을 많이 두는 대회였거든.”
“선생님”
“응?”
“고맙습니다.”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진심이었다. 나도 이제 목표라는 것이 생겼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그 날 이후 상철이의 일도, 사진 속의 여인에 관한 일도, 쉽게 잊을 수 있었던 것을 봐도 나는 이후로 많이 들떠 지냈던 것 같다. 자아도취였을까? 생전 처음 나가보는 외국, 여권을 만들고 비자 서류 준비를 하고, 아버지께도 연락하고, 반 아이들의 부러움을 받는 느낌도 은근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인마, 그러게 학교생활을 충실히 해왔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 아니냐?”
무슨 소리인지 감도 못잡으면서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출국 서류 준비하고 심사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했다. 학교에 아예 출석도 하지 않고, 패싸움으로 경찰서를 드나들었으며, 결정적인 것은 상철이 아버지가 그동안 경찰서에 탄원서를 내놓은 모양이었다. 착하기만 하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잘못된 길로 꼬임에 빠지게 되었고, 못어울리게 집에서 막는 것에 대한 반발로 충동적 자살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내 아들 그렇게 만든 놈들은 버젓이 아무 체벌도 없이 학교에 버젓이 다니고 있으니 또 어떤 순진한 학생들을 꼬여낼지 모른다고, 탄원서인지 진정서인지를 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형민이와 내 이름을 비롯해 함께 어울려 다니던 다른 몇 명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고 한다. 대회가 그냥 수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국가 대표 격으로 국제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자격에 모자란다는 것이 이유였다.간신이 쌓은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어쩐지 내게 올 행운치고는 너무 크다 했다고, 나 자신을 마구 비하했다가 곧 제풀에 지치기도 했다. 나의 과거가 나의 현재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은 다시 나로 하여금 모든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지난 일인데, 다 지난 일인데,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건 없지 않느냐고, 하늘을 향해 눈을 흘기다가, 그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