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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평점 :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나의 부모로서의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자식은 축복이면서 천형과도 같다더니, 자식을 둔 부모는 늘 반성모드, 개선모드로 살게 된다. 뭐 잘못 하고 있는 것은 없나 하는 반성모드에서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은 개선모드.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학생 12명과 교사 한명이 죽었고 24명이 부상당했다. 총기난사 범인은 이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두 사람. 그 중 한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이 책의 저자이다.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엄마는 아들이 사건을 일으킬거라는 기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며 지금까지도 아들이 왜 그런 상상도 못할 사건을 일으켰는지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결손 가정도 아니었으며 충분한 교육을 받은 부모였고, 경제적으로 그리 어려운 환경도 아니었다. 말썽을 일으키는 아들은 더구나 아니었던 것이다. 과잉보호나 지나친 기대 속에서 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필요이상의 개입과 참견, 간섭을 하지 않고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믿어주는 쪽의 부모였다. 읽는 동안 나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이게 한 접점이다. 내가 자랄 때 나의 결정권보다 부모의 결정권이 많이 작용했고 부모는 그것이 더 책임있는 부모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실수를 줄이는 방향이긴 했으나 자신의 의견은 부모 의견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던지라,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는 미성숙하다 여겨질지라도 최대한으로 아이의 의견대로 해주는 쪽을 쫓으려고 해온 나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딜런이 스스로에게나 남들에게 자기 혼자 힘으로 잘해나간다는 확신을 주려고 했던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다. 딜런이 어릴 때부터 보였던 타고난 성격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우리도 그런 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딜런이 삶의 막바지에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으니 말이다. (123쪽)
누구나 자라면서 똑같은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어릴 때부터 딜런의 성향 중의 하나는 망신을 당할 위험을 지나치게 겁낸다는 것과, 자기 실수를 가볍게 웃어넘길 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저자는 그것을 심각하게 문제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이 아이는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구나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쪽이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방임하는 부모는 아니었다.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는 확실히 바로 잡아주려고 했으며 가족과 어울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 노력했다. 딜런에게는 형이 하나 있는데 두 아들의 교육에 아버지의 관여도 협조적이었고 자연스런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저자는 자기 아들이 이처럼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진학할 대학도 결정을 했으며 며칠 전엔 졸업 기념 프롬에도 다녀온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어느 날 학교에 가서는 수십 번에 걸쳐 학생들과 선생님을 향하여 총기 난사를 하였고, 총격후 자살했다.
사건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기에 부모는 물론 경찰도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다방면의 조사와 분석, 관련자 취조, 수색을 해나간다. 저자 역시 무엇이든 조치가 필요했는데 아들의 사고는 물론이고 저자 자신이 앞으로의 시간을 버텨나가기 위한 급박한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상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었으며 이웃과 지인, 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 시키다시피 하며 살아야하는 시간을 거쳐와야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낸 결과물이기도 하고, 사건 이전 이후를 되돌아보며 분석하며 보낸 시간과 노력에 대한 기록이 앞으로 다른 부모들과 미국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권유와 스스로의 확신으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내 이야기를 최대한 충실하게 들려주면 나는 발가벗겨진 기분일지라도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 얼굴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줄 수 있도록 도와줄 빛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 친구들과 동료들도 내 이야기를 알고 육아 방식을 바꾸었다. 부모가 제때 개입해서 엄청난 변화를 이룬 일도 있었다.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끈질기게 물었기 때문에 아이를 구할 수 있었다. (25쪽)
뒤늦게 이 세상을 떠난 아들의 방에 들어가 구석구석 다시 뒤져보고 기록도 찾아보며 엄마는 그동안 모르던 사실을 하나하나 찾아내며 후회한다. 그 중 하나는 아이의 우울증을 사춘기 때 흔히 있는 일이라고 넘어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딜런의 3학년 생활에 우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딜런이 쉽게 화내고 평소 같지 않게 의지가 빈약했던 것도 우울의 징후였다. 십대 남자아이가 으레 보일 만한 범위 안에 있는 듯했지만 말이다. 딜런은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철저히 감췄다. 우리가 딜런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을 할 때마다 딜런은 아무 문제없다고 적극적으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니 부모가 흔한 청소년기의 행동 (게으르다, 태도가 까칠하다, 감정 기복이 심하다)과 우울증이나 다른 병의 지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이나 말이 걱정할 만한 상태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329쪽)
딜런은 우울증과 더불어 일기에 자살에 대해 언급해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대상이 있는 폭력은 대개 개인적 상실이나 모욕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사건이 불만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결심 지점이 된다. (334쪽)
딜런의 우울증 성향은 짜증으로 표현되었으며 (부모는 이것을 청소년기의 특징으로 보았음), 개인적 상실과 모욕이 폭력으로 해소되는 결심으로 향하게 된다. 부모에게는 걱정말라는 말로 안심시켰고 부모는 아들의 말을 믿었다.
'부모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믿으면 위험하다. 행동을 관찰하라'는 말이 나온다. 아이의 말이 앞뒤가 안맞고 설명으로서 부족하다 느껴지면 전문가등 제3자에게 보여서 알아볼 것을 권한다.
미국에서 대규모 총격 사건이 증가하는 까닭은, 고성능 총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과 함께 정신건강에 대한 지식과 지원 부족, 언론이 이런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도 관련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의료 기술은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을 늘어나지만 정신건강은 약해져 간다. 언론은 빠른 정보를 주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데도 일조한다.
딜런은 수십명을 살상한 것과 동시에 자살을 했다. 자살은 죽이고 싶은 욕구,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구, 죽고 싶은 욕구, 이 세가지가 합해져야 일어난다고 한다 (칼 메닝거). 사건이 일어나던 날 현장에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살인범이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오늘 세상이 끝날 거야. 오늘이 우리가 죽는 날이야."
이 책 앞에 해설을 쓴 사람 이름이 앤드류 솔로몬이다. 낯익은 이름이다 했더니 <한낮의 우울>의 저자이다. 충격적인 내용으로 잊혀지지 않는 책이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친 16년'이라고 했다. 알 수 없는 것이란 여전히 아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울은 더이상 과장이나 핑계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고 자식을 키우면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