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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 단단한 생각의 말들이 이루는 공감과 울림
정은령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7월
평점 :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2017년부터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 팩트체크센터장을 맡아 일했다.
이런 저자 소개 이전에,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같은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때는 문과, 이과로 나뉘어 자주 볼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같이 졸업하고 같은 해 대학생이 되었다.학력고사 세대. 키도 훤칠하고 리더쉽도 있어 중학교때부터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던 학생이었다. 나는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키도 작고 조용하니 눈에 띄지 않아, 동급생이지만 요즘 말하는 넘사벽이라고 할 그 친구와는 그냥 알고 지내는 이상의 친구가 되기에는 공통점이 많지 않아보였다.
서로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고 대학에 간 후에도 동창들로부터 소식은 종종 들어 알고 있었다. 졸업후에는 신문 지상에서 가끔 그 이름을 봐오며 역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기자로 일했으니 그동안 많은 글을 써왔을텐데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2021년에 처음 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기사와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책을 내기로 할때에는 개인사가 어느 정도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주저하는 동안 여러 차례 권유를 받았을 것이다.
일하는 여성이면 일의 종류를 막론하고 거쳐왔을 치열한 시간대를 그녀도 어김없이 거쳐왔다는 것을 글을 읽으며 알수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을 먼저 보냈고, 미국에서 가족과 의절하며 사시던 외삼촌의 마지막을 지킨 이야기, 감기가 낫지 않아 대학병원에 갔다가 혈액암 판정을 받고 무균실에서 고립된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엔 나도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은 단단해진다.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을 겪어내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속에 단단해져간다.
50대 후반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가장 치열하게 지내온 시기는 40대가 아니었나 싶다. 1인 1역도 버거운데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야했던 시기이고, 직장에서도 가장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대되는 시기이며,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기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남이 보기에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 두고 혼자 몸도 아니고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도전을 시도한다. 4년 여를 그렇게 보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산을 넘어야 했을까.
얼마전에 펴든 백석의 시집도 이 책 때문이었다.
사랑과 슬픔은 언제나 함께 부어져 삶의 잔을 가득 채운다. 그 모든 것이 앙금이 되어 가라앉은 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외로움의 시간으로 향할 때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나도 생각하게 될까. (171쪽)
'백석을 읽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 중 일부이다. 그렇다 사랑과 슬픔은 언제나 함께 부어져 삶의 잔을 채운다. 앙금이 되어 가라앉은 뒤, 아마 나이가 훌쩍 든 후겠지, 그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외로움의 시간. 그것마자도 우린 극복하며 살것이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때로 생명의 힘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설명할 수도 없을 때, 삶을 생명 쪽으로 끌어간다. (185쪽)
치열하게 살며 남은 것이 나와 내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이기심만은 아니고, 물욕과 명예욕만은 아니며, 여전히 사회의 소외되고 눈길 못받는 사람들을 향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좋다.
중고등학교때 그 씩씩하고 당당하던 모습의 그녀가 쓴 글에 이렇게 공감하고 빠져들수 있던 것은 나이가 주는 선물이라 여긴다. 앞으로도 신문지상에서 아니면 이렇게 책으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