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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구름 -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하명희 지음 / 강 / 2024년 5월
평점 :
몇해전 <고요는 어디 있나요>를 읽고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기에 신간이 나왔나보다 하고 주저없이 골랐는데 알고 보니 작가의 첫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의 개정판이었다. 아직 못 읽고 있던 차에 잘되었다. 2014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던 <나무에게서 온 편지>가 10년 뒤인 2023년에 <슬픈 구름>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1989년. 일용직으로 어렵게 겨우 살림을 꾸려가는 할머니와 사는 고등학교1학년 도은이가 주인공이다. 바람막이 하나 없던 집은 태풍때문에 그나마 있던 쪽문마저 날라가고, 집을 나간 엄마는 감감무소식이다. 의지하고 살던 할머니마저 일하러 나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시자 고약을 포장하는 아르바이트와 이웃의 도움으로 버텨가는데 학교에선 담임선생님이 전교조 문제로 해직되는 일을 겪는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급조차 따질 수 없는 영세 아르바이트, 담임선생님의 해직 등의 일을 겪으면서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되는 도은이는 고등학생운동에 발을 들이고, 대학생들과 함께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1991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당연히 1990년대의 정치 사회 이슈들이 줄줄이 나온다. 전교조,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등등. 이런 일들을 주인공과 비슷한 시기에 겪어낸 사람으로서 그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네 편이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기다린 시간만큼 그 시간의 아픔만큼 살아내라고. 그 기다림의 힘으로 살아보라고. (105쪽)
기다림의 힘으로 사는 동안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어쩌라고. 버틸만큼의 힘이 되어 줄까?
힘을 빼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기가 앉을 곳을 향해 가장 편한 자세로 착지하려는 새는 호수의 저녁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얼마나 날아야 저렇게 날 수 있을까. 용기도 습관일거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용기는 용기를 내지 않아도 생길 거야. 날갯짓처럼, 밥 먹는 것처럼. 고약을 쌀 때 처럼.
"자, 지금이야!"
도은은 가로등 불이 켜지는 것을 포기하고, 새가 나무 위에 내려앉는 순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10쪽)
가로등이 켜지면 걱정을 자르고 벌떡 일어설 거라고 다짐하며 망설이던 도은이가 새를 보며 용기를 내는 대목이다.
바뀐 제목 '슬픈 구름'은 도은이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무에게 보내는 편지' 사연을 보낸 것이 소개되면서 함께 나온 노래 제목에서 왔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뼈를 깎아 만든 피리로 연주하는 음악이라고 한다.
함께 운동을 하던 친구들중 누구는 자퇴를 하고, 누구는 대학에 진학을 하고, 누구는 징계를 받았다. 도은이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재수 학원에 등록을 한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내가 싸운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도은이는 생각한다. 다시 어떻게 사회로 섞여들어가나, 어떻게 내 자리를 지키며 계속 살아가나.
지금도 세상의 뭔가를 바꿔보기 위해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건 사람들이 있겠지.
30년 전의 일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기억으로부터 고스란히 재현되는 통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