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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평점 :
대학원 시절, 실험실에서 거의 12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머리보다 몸이 더 지쳐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기대하는 것은 오늘 누군가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편지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 속의 대령처럼 특별히 편지 기다리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기대를 하곤 했다. 하루 중 마지막 기대를 갖는 시간, 그것을 기대하며 하루를 버텼나 싶게 매일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림 만큼 사람을 서서히 지쳐가게 하는 것이 있을까. 동시에 그 기다림의 힘으로 어려운 시간대를 통과해나가기도 한다.
대령은 커피 통 뚜껑을 열고 커피가 한 숟가락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7쪽, 이 책의 첫 문장)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몇달 전 살해당하고, 아픈 아내와 둘이 외롭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퇴역 군인 대령이 오로지 기다리는 것은 군인 연금 자격 통지서이다. 참전했던 내전이 끝나고 56년째 그는 연금을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다 ('기다린다' 라는 말 대신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에게 남은 것은 죽기 전까지 아들이 키우던 수탉 한마리. 아내는 그것이라도 팔아서 식량을 사는데 쓰자고 하지만 대령은 끝까지 거부한채 때로 사람 먹을 것 없을 때 조차 수탉을 먹여가며 지키려고 한다.
짧은 스토리이다.
1927년생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그의 나이 31세때 이 책을 발표하였다. <백년의 고독>이 나오기 거의 십년 전이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한 편의 소설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이 소설이 주목을 받은 것은 <백년의 고독>이 나와서 라틴 아메리카의 훌륭한 소설로 인정받은 후이다. 이를테면 재조명을 받은 셈. 하지만 <백년의 고독>을 먼저 읽고 난 후 읽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년의 고독>이 복잡한 구성, 여러 인물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는 반면 이 소설은 간단한 구성, 소수의 인물만 등장시키면서도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싸움닭, 배고픔, 병듦, 외로움.
희망이 없는 시간을 버텨나가게 하는 것은 부질없어보이는 기대와 점점 가치가 떨어져가는 수탉이다. 효용으로 보자면 수탉을 집에서 아무 쓸모없이 끼고 있는 것 보다는 아내가 주장하는대로 팔아서 당장 먹을 것 살 돈을 마련하거나 투계 시합에 내보내 우승을 기대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끝까지 거부하는 대령에게 수탉은 그런 용도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연금 통지서를 기다리는 일을 결코 그만 두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으로 남은 삶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정치적 상황 설명없이 당시 사회상이 잘 나타나고 있고,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고 살면서도 자존심과 주관을 지키고 사는 대령, 현실적인 잔소리를 해대면서도 대령을 생각해주고 보살펴주는 진심을 행동으로 보이는 아내는 민중이 살아가는 모습을 대변하기도 한다. 죽은 아들 대신 부여잡고 있으려는 수탉은 그것을 팔아 얻을 수 있는 몇푼의 돈보다, 당장 떨어진 식량을 구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절실하며 그런 것 이외 달리 희망이 없는, 그렇게 삶을 이어나가는 목숨들이 있다.
삶에 무슨 특별한 목표가 있을까. 그저 이어가는 것. 버텨가는 것.
<백년의 고독> 못지않게 탁월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