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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문학 걸작선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태동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잘만 쓰여졌다면 추리소설만큼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쟝르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추리문학이라니까 금방 떠오르는 작품이 없기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책은 아니고 2002년에 출간된 책이니 거의 20년전이다.
900여쪽의 두툼한 책 속에 한국 추리 작가 스물 여덟 명의 스물 여덟 작품이 들어있다. 스물 여덟 명 작가 이름을 훑어봐도 아는 이름은 김내성, 이상우, 김성종, 이렇게 겨우 세명. 다른 작가들의 이력을 보니 신춘문예 출신 작가도 있고, 시나리오 공모전으로 등단한 작가,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진 작가, 방송드라마를 쓰고 있는 작가등 다양하다.
간단하게나마 작가 이름, 제목, 읽은 소감 정도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해서 몇줄씩 남겨본다.
김내성, 타원형 거울
-치정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으로 지목받는 사람이 화자가 되어 사건을 풀어나간다. 마지막 반전으로 인해 끝까지 독자는 누가 진짜 범인인지 혼란스럽다.
현재훈, 그밤에 있은 일
-역시 치정에 의한 살인. 수사보다는 유도심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도록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
이경재, 바꿔바꿔
-거짓말을 하는데 든 시간과 노력에 비해 푸는데는 단순한 추리력과 증거만 있으면 된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노원, 짧은 불륜, 긴 악몽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이렇게 헛점 많은 범인이 있을까. 전체적인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짰지만 캐릭터를 좀더 살렸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목이 너무 직접적인 것도 유감이다.
이상우, 두 사람이 가는 지옥
-분량만큼 간단한 이야기이다. 사건 발생 동기, 범인 추적 과정,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 등,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목의 '두사람이 가는 지옥'이란 불륜지옥. 역시 치정살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원두, 아내 지키기
-무난한 스토리 라인이지만 추리문학이라고 하기엔 추리할 기회가 별로 없이 이야기가 끝난다. 바람난 여자와 남자, 그를 의심하는 상대방. 여기까지 읽어오는 동안 모든 작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구성이다.
김성종, 어느 창녀의 죽음
-'여명의 눈동자' 작가이다. 그런 선입관을 가지고 읽어서인지,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사회소설의 성격도 있긴 하지만 두드러진 정도는 아니다.
김남, 바닷가의 두 남자
-은행 권총 강도가 썩은 방탄 조끼로 인해 범행 실패라니,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닌가. 이 작품에도 역시 추리는 없다. 수사도 없다. 그냥 에피소드일뿐.
정현웅, 어느 여공의 죽음*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중 사회성을 보여주는 확실한 경우이다. 여대생의 위장 취업, 중소기업 경영 비리, 갑질 문제, 언론사의 공정 수사 결과 은폐 등, 일개 기자의 소신은 감히 여기에 대적할 수 없었다.
강형원, 여름 추리 학교의 살인*
-실제 존재하는 추리 작가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특이한 구성이다. 추리학교에 참석한 추리작가들중 한명이 거기 모인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참신해보이는 구성에 비해 살해동기나 수사과정이 빈약하고 전형적인 것이 아쉽다.
권경희, 늪은 허우적거리는 자를 더 깊이 끌어들인다
-이게 왜 추리문학으로 분류되는지 모르겠다. 살인 사건이 나오면 다 추리 소설인지. 자살인줄 알았던 아내의 죽음에 목격자가 있었고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절대자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위증을 결심하는 대목이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김상헌, 작전완료*
-제목만 봐서는, 그리고 마지막 줄에 이르기 전에는 도무지 어떤 결말인지 예측이 안되는, 의외로 참신한 작품이다. 비행기 폭파범에 의한 테러 사건 처럼 전개되다가 반전 결말까지, 단편의 특징을 충분히 이용하며 진부하지 않았다.
유우제, 빛의 살인
-극장에서 영화 관람중이던 한 남자의 죽음의 원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지만 나중에 그날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는 그날을 되돌아보다가 그때 심장마비를 유발시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수광, M의 사냥
-이쯤에서 이책 읽기를 그만 두어야 할까 망설이게 한 졸작이다. 여자들만 골라 연쇄살인을 벌이는 사이코패스의 독백,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다.
장세연, 위험한 주말
-심드렁한 부부관계에 찾아온 아내의 옛 애인에 대한 질투심으로, 아내와 동승한 차에서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남편. 나중에 아내는 임신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냥 꽁트.
한대희, 수출살인
-역시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이다. 특이한 제목이지만 내용과 큰 관련 없어보인다. 스토리보다 그저 하나의 평범한 사건 기록 수준. 초반부 완전범죄에 대한 설명도 불필요해보인다.
백휴, 휠체어 여인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스토리이다. 다만 과거 여인과 헤어진 동기가 여인의 등의 흉터 보기가 싫증나서라는 설정이 현실성 떨어지고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여자가 투신하는 것으로 복수를 계획한다는 것도 현실성없고 억지스러운 건 마찬가지이다.
이승영, 숲속의 마녀
-화성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쇄살인의 공통점은 성교후 독극물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이다. 성적인 내용과 엽기적 방법의 살인을 접목시켜 흥미를 만들어내고 싶었나. 저속함과 불쾌함만 남긴다.
최종철, 빨간 스카프
-범행에 사용한 물건을 담당형사에게 보내는 선물 포장용으로 사용하는 어리숙한 범인도 있나? 플롯의 어리숙함이다.
김차애, 열대어를 사랑한 남자
-구성이나 이야기 흐름에 무리가 없다. 문장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읽힌다. 살인의 동기와 결과가 엽기적이긴 하지만 갑작스럽지 않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류성희, 사쿠라 이야기*
-추리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미스터리라고 하면 맞다. 이야기의 소재도 신선하고 역사의식도 담고 있어 여기 실린 수십편의 글중 좋은 작품으로 꼽고 싶다.
서미애,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그럴듯하다. 제목부터 독자를 끌어당긴다. 서른 가지 방법을 무색하게 만든 타인의 한가지 방법이 나온다.
이기원, 라스트 카니발
-연쇄성 폭행사건을 다루고 있다. 고단수 범인의 정체가 결말에 드러난다. 살인동기가 모호하다는 단점과 의외의 긴장감을 주는 구성이라는 장점을 보여준다.
정석화, 종족보존의 법칙
-환상에 기반한 이야기. 앞에 전개된 상황들이 다소 황당한 결말로 급마무리 된 느낌이다.
현정, 거울여자의 죽음
-상대에게서 자신의 퍼스나를 발견할때 그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지만 꼭 정상적인 사랑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황세연, 천생연분
-천생연분과 천생악연은 종이 한장 차이일수 있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이 세상에 천생연분이란 없다고 해야할까. 부부 사이 말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몇 작품 (* 로 표시) 을 제외하고는 실망스럽기만한 책이었다. 스물 여덟 명의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이 들어간 저서 한권을 더해주었다는 것 외에, 독자들에겐 어떤 의미를 주었을지 모르겠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은 이 책이 나온 2002년보다 한국추리문학에 뚜렷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져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