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이춘기 지음, 이복규 엮음 / 학지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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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나셔서 1991년까지 사신 이춘기 님의 30년 일기 모음집이다. 1961년 아내분이 병으로 돌아가실 무렵부터 쓰기 시작하여 본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의 30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온 일기이다. 나중에 후손 중 한 분이 이 일기를 알게 되었고 그냥 두긴 아깝다 생각하였는지 아는 사람을 통해 출판사와 연락을 하여 이렇게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일기를 쓰신 이춘기 님은 소위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평범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다 가신 분이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전과 다르게 사는 생활이 몇달째 계속 되는 요즘이다보니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 책도 사실 사놓은지는 꽤 되었지만 막상 손이 안가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눈길이 간 것인지 모르겠다.

30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구에게 검사 받거나 제출해야하는 압박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쓰는 일상의 기록 쯤이야 뭐 어려울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꾸준하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좋은 날보다 불만스럽고 고단한 날이 많았음에도 이 어른은 그날 그날 있었던 일과 심정을 구체적으로 찬찬히 적어놓는 일을 해오셨다. 

일기 초반부엔 아픈 아내 얘기가 주 내용이었다가 1년 여 투병 끝에 아내가 세상을 뜬 후에는 혼자서 농사일과 자식들 돌보는 일을 해내느라 동분서주, 우왕좌왕 하는 얘기가 주 내용이 된다. 아들만 여섯을 두었는데 위의 넷은 장성했지만 늦둥이로 둔 아래 두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었으니, 혼자된 남자가 본인뿐 아니라 두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는 일들이 쉽지 않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요즘도 아니고 1960년대 이니.

아마도 돌아가신 아내 분께서 생전에 살림과 육아, 농사 일등 대부분의 일을 책임있게 잘 해오셨는듯, 혼자 되신 어르신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도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결국 주위의 권유도 있고 본인도 필요성을 느껴 재혼을 하지만 두번의 재혼 모두 좋은 결말은 아니었다.

55세의 나이에 일기를 쓰기 시작하신 계기도 아내분의 발병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후로는 일기를 안쓸 수 없도록 쉬운 날이 없는 날들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고민도 없고 중요한 일들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질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도 겪어보니 그렇지 않더라. 

아내분 투병하는 동안 남편으로서 옆에서 보살피며 느끼는 심정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자세한지, 읽으면서 그 애절함이 전해져 왔고, 여섯이나 되는 아들들에 대한 애석한 심정, 일일이 다 보살피고 잘 먹이고 공부시키고 도와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일기란 무엇일까. 개인의 기록으로 시작하지만 끝은 그냥 개인의 기록에서 끝나지 않는 예를 많이 본다. 나중일은 모른다 할지라도 매일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흐트러지지 않게 추스리고 나 자신을 지탱해주는 작은 노력. 최소한일지 모르지만 최대한의 노력이 일기 쓰기가 아닐까.

곁들여, 이 책을 읽으며 부부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내, 남편으로 사는 세월이 더해지다보면 점차 상대방을 남이 아니라 나와 동일시 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아내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아내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고 상대에게 결핍된 곳은 내가 채워줘야 할 것 같은 것. 아내나 남편의 모습에서 바로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났을때의 상실감은 아마 남은 일생동안 영영 메꿔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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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2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셨죠? 여전히 따뜻한 글 좋네요.

hnine 2020-06-21 09: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너무 너무 반갑습니다.
해아와 수아 (이름 맞나요?)는 어찌 지내는지요.
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저는 여기를 못떠나고 이렇게 끄적거리며 지내고 있답니다.
제가 나이 먹는 만큼 서재도 나이 들어가고 있어요 ^^

바람돌이 2020-06-2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아와 예린이요. 다 컸어요. 예린인 올해 대학교 1학년이 되었으나 코로나때문에 집콕으로 온라인강의와 리포터만 줄줄이 쓰고 있고요. 해아는 고2예요. 아이들 둘다 중고등학교 다닐때는 이 둘 따라 다닌다고 힘들더니 한명이라도 졸업하고 나니 훨씬 낫네요. ㅎㅎ hnine님같은 분이 계셔서 저같이 돌아와도 덜 수줍은듯... 감사한 마음이예요. ^^

hnine 2020-06-21 22:27   좋아요 0 | URL
아, 예린이였군요. 두 아이 얘기를 재미있게 읽곤 했었어요. 그러고보니 예린이가 제 아이와 같은 학년이네요.
바람돌이님 다시 뵐 수 있어서 정말 반가와요. 수줍으시다니요. 바람돌이님 서재도 거의 알라딘 서재와 역사를 같이 하시잖아요.

moonnight 2020-06-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프네요ㅜㅜ 아들만 여섯. 아직 어린 아들 둘 남겨두고 가실 때 아내분은 또 어떤 심정이셨을지ㅠㅠ;;; 30년 일기.. 어르신께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워나가시면서 먼저 가신 아내분을 참 많이 그리워하셨을 것 같아요.

hnine 2020-06-21 22:31   좋아요 0 | URL
짐작하신대로 아내분께서 안타까워하고 더 살고 싶어하는 절절한 마음이 책에 잘 나타나있어요. 어린 아들 둘에게 공부는 좀 못하더라도 마음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고.
끼니 걱정, 농사 걱정, 살림 걱정 끊일 날이 없고 그럴 때 마다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글자마다 새겨져 있는 것도 말씀하신대로고요. 제가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도 그래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