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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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허무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각오로 살아야 허무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를 딛고서 끝까지 갈수 있을 것인가.


인간에게는 희망이 넘친다고, 자신의 선의는 확고하다고, 인생이 허무하지 않다고 해맑게 웃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10)

'허무를 직면하다'라는 제목으로 쓴 프롤로그 중 일부이다. 그가 제목에서 뜻한 바가 무엇인지 이 구절만 읽어봐도 파악이 될 것 같아 옮겨 보았다.

왜 인생은 허무할까. 없던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결국 이 세상에서 그 물성이 사라지는 것으로 마치니까. 시작과 끝을 보면 그렇다. 살면서 남긴 자취와 흔적 (업적까지는 아니더라도)을 생각하면 허무하지만은 않다고 보는 의견도 부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인생의 허무함을 인정하고 나니까 훨씬 생각이 가벼워짐을 느낀 후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매를 먼저 맞아놓은 기분이랄까,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어떤 것 먼저 들을래 할때 나쁜 소식 먼저 듣고 난 후의 후련함이랄까.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99)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삶을 소울 재즈에 비유하여, 이미 그려진 악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 하는 '연주'가 핵심이라고 했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라는 것. 목표를 이루었느냐 보다 더 핵심은 그 목표까지 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예측 못했던 그 무엇에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목표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목표가 있었으니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있는 것이니까.


정신승리란 무엇인가 (203)

현실을 포장하는 것이 정신승리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일 수 있다. 정신승리가 현실승리는 아니며, 정신승리는 정신의 공갈 젖꼭지라고까지 했다. 

같은 종류의 위로를 계속하는 것은 물론 한계가 있다. 낙방은 낙방. 실연은 실연. 패배는 패배.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인지와 납득은 다르다. 낙방, 실연, 패배를 인지했다고 해서 마음이 곧바로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선뜻 납득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마음이 그 불편한 현실마저 수용해냈을 때 그것이 바로 정신승리다.

승리는 승리고, 패배는 패배다. 하나의 패배를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패배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패배도 모든 면에서 패배인 것은 아니다. 모든 관점에서 다 패배인 경우는 없다. 어떤 패배를 해도 인생 전체가 패배로 변하는 경우는 없다. 현실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탄력을 갖는 것이 진정한 정신승리다. (211)


마지막으로 요즘 내가 덮어두고 있던 문제를 다시 일깨워주는 구절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가 생텍쥐페리의 <전시조종사>의 한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다.

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페리, <전시조종사> -


생텍쥐페리는 저 글에서 먼저 누가 패배자인지를 정의한다. 남들이 성당을 완성하기 기다린 뒤, 관리나 하려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의자를 들고 앉을 자리나 확보하려 드는 이야말로 패배자다. 인생에서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엇인가 걸었다가 실패한 사람은 패배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걸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무임승차자가 패배자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많은 이익을 계산해 얻었어도 무임승차자는 패배자다. (242)

대성당은 어디에 있는가? 대성당은 어떻게 지을 수 있는가? 나는 가슴 속에 대성당을 품고 있는가?


자기를 찾아온 죽음의 사신을 잠깐 기다리게 하고 마지막 할 일을 마친 뒤 이제 가자고 사신에게 얘기한 할머니 이야기,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에서는,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동안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인생은 허무하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직면하고 더불어 산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하며 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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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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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7 0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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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의 가르침 (화이트 에디션) -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
세이노(SayNo) 지음 / 데이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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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알라딘 서재 카테고리에 보면 내가 만든 생활백서라는 것이 있다. 살면서 몸으로 깨우친 나만의 팁이랄까, 그런 것을 짤막한 문장 몇개로 적어 모아둔 박스이다. 겨우 오십 개도 안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소중하게 얻어진 경험들에서 나온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경험하고 고생을 해봤다면 더 풍부한 내용일테지만 나는 그리 용기 있는 사람이 못되고, 적극적이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편이 아니다보니 이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앞으로 더 확장되려나? 

평소에 생각은 그랬다. 찐으로, 진정성있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생을 마감할 때 쯤이면 책 한권 쓸 만큼의 컨텐츠를 남길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읽고 듣고 보아서 채워진 컨텐츠가 아니라 몸으로 겪어서 얻은 인생팁 같은 것 말이다. 보통 사람인 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처럼 나보다 살아온 세월도 길고 닥치는 상황마다 몸사리지 않은 경험이 많은 분이라면 남기고 싶고 해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랴.


책장을 들춰 첫페이지에 "세이노는 누구인가?"를 읽어보면 700쪽 넘어 두툼하기까지 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겠다 싶었다. 

필명 '세이노'는 영어 'Say No'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며,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No 라고 말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이라면 편견과 선입견으로 내 머리 속에 자동적으로 들어와 있어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삶의 기준이 되고 목적이 되는 삶에 대한 경고라고 할까. 

1955년생인 저자는 45세되던 2000년 부터 본명을 밝히지 않는 대신 '세이노'라는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2003년에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카페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기고한 글을 기본으로 하고 그밖에 월간지, 주간지에 발표했던 글 일부를 첨가하여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문제는 그대로 남겨둔 채 그 문제로 인하여 생긴 스트레스만을 풀어 버리려고 한다면 원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 아닌가. 

친구들과 상의하는 짓도 그만두어라. 당신이나 친구들이나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이며 그저 당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답답함에 대한 약간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도토리 키 재기 아닌가. (40)


로버트 슐러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떨어지고 있으므로 하늘을 향해 날아 볼 수는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날갯짓을 할 줄 모른다. (56)


Integrity는, 머릿속에서 옳다고 믿는 생각들과 행동이 엇갈림 없이 하나 된 상태 (189)

이 단어는 평소에 나도 어떤 한 단어의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던 단어이다. 세이노는 위와 같이 설명해놓았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섣불리 하지 마라.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다음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첫째, 그 분야에서 정말 최고 일인자가 되는 길이다.

둘째, 최고가 되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오타쿠처럼 자기만족을 위하여 빠져 사는 길이다.

세째, 다른 길의 일을 통해 경제적 여유를 마련한 뒤 그 돈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204) 

첫째 길을 택할 수 있다면 문제될게 없겠지만 극소수의 사람에 해당할 것이고,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라면 세째 길을 택해야 하겠지만, 바로 세째 길을 선택하기보다 아마도 첫째, 둘째 길을 거쳐서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3세대 부유층에 속한 MZ세대 사람들은 이른바 고생없이 등 따듯하게 자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사고방식이 게임 플레이어에 가깝게 세팅되어 있으며 그런 그들이 부유층이 아닌 다른 MZ세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저자는 열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그중 몇개만 옮겨본다.)

-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자기 기준으로 수행한다. 이를 몇몇 기사에서 '3요 세대'라고도 하는데, "이걸요? 제가요? 왜요?" 한다는 거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이 옳다고 생각한다.

- 일은 일일 뿐이다. 잡코리아가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며 MZ세대 10명 중 3명은 입사 1년도 안 돼 퇴사하였는데 퇴사 사유1위는 연봉 만이 아니라 '워라밸'불만족이었다. 

-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이 재미있는 직장을 찾는다.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자기 역량에 달린 것인데 재미있게 이미 만들어 놓은 게임 같은 직장을 찾는다. 

- 게임에서 점수가 바로바로 올라가듯이 금전적 보상이 즉시즉시 나오기를 바란다.

- 공정을 외치면서도 불공정을 옹호한다. 

- 온라인에서 몇 분이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 한때는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삶을 즐기자더니 (YOLO) 이제는 빨리 돈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하겠단다 (FIRE족). 


MZ세대이지만 부유층 3세대가 아니고 딱히 물려받을 것도 없다면 저들을 절대 따라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살아라.  (316)


세이노도 강조했지만 대부분의 MZ세대들은 부유층도 아닐뿐더러 모두 저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다. 개성이 강한 듯 보이지만, 무리 속에 자신을 일체시키고 싶어함으로써 오히려 획일화된 방향으로 쏠려 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면서 얻는 것이 일체감이 아니라 소외감일까봐 걱정도 되고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위에 예시한 것들이 MZ세대에만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그 윗세대들에게도 이미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것들이 아닌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 이론가 혹은 본격 하이테크 사회 이론가라 불리는 장 보드리야르는 이미 30여년 전에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광고, 매스 미디어, 에로티시즘, 레저, 가제트 (아이디어 상품) 등이 약속하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행복한 삶은 거짓 신화에 지나지 않으나 현대인은 그 신화를 믿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물건의 사용 가치가 아니라 광고와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그 상품의 사회적 이미지이며 현대인은 그러한 이미지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때에도, 불행한 때에도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던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쇼윈도가 출현했다."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374)


고개 끄덕이며 읽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보다 내가 이책에서 더 의미를 찾은 것은, 세이노가 말하는 가르침대로 살자는 것보다는 정작 다른데 있다. 이렇게 자신있게 자신의 인생사용설명서를 묶을 수 있도록 진하게, 자신이 믿는 삶을 꽉 채워 살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고 누구의 삶도 같은 삶은 없으며 소중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하는 삶은 정말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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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1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완독하지 못한 책이에요. 경제와 부 관련의 책인데도 의외로 배울 점이 많아 완독할 계획입니다.
술술 읽히고 재밌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죠.
따라하는 삶을 살기엔 우리 인생이 아깝지요. 아마 점점 개성적으로 사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아요. 비혼들도 늘고 있고 말이죠.

hnine 2023-11-19 09:45   좋아요 1 | URL
읽어볼만해요. 글로 얻은 지혜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겪은 사람이 하는 말은 더 귀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이분 얼굴은 공개를 안해서 모르지만 이 책 읽고 검색해보다가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장면은 봤어요. 목소리도 듣고요.
 
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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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평화보다는 전쟁에 가깝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서운 전쟁.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고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마치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 아닌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 

모든 사랑이 죽음처럼 확실한 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스러진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끝만 끝이  아니라 기억속에서 점차 사라지는 끝도 있는 것이니까.

1940년 생인 아니 에르노가 1991년에 출간된 소설이니 그녀의 나이 51세였다. 데뷔 소설인 <빈 옷장>부터 자전적 소설로 시작해서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겠다는 노선을 분명히 한 작가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1)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그대로 느껴질 것이다. 세상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험. 

내가 놀란 것은 51세의 나이에도 사랑의 감정 노선은 여전히 이렇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2, 30대와 다를게 없다. 

파리에 살고 있는 중년의 여자 '나'는 러시아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나와 있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나의 일상보다 더 중요해지고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의 전화 기다리기, 그와 만나기, 다시 그의 전화 기다리기의 순환 고리 속에 사는 날들. 그 고리가 끝나는 날 자기의 삶도 끝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을 안고 사는 날들. 이미 부인이 있는 남자이지만 나 말고 또다른 연인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이 한명의 여자가 아니라 여러명의 여자였으면 하고 바라는 심리.

이런 열정은 단순히 감정의 일시적 폭발이 아니라 한권의 책을 써내는 열정과 같다고 했다.

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햐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19)


가끔씩 엄마를 방문하는 아들들에게도 그 사람에 대해 말해두고 아들은 집에 와도 되는지 오기 전에 알아서 미리 전화를 걸어주는 문화. 최소한의 것을 알려주지만 그렇다고 아들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아이들에게 판단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22)


그를 만나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번도 듣지 않고 대중가요가 더 마음에 들어오고, 여성잡지를 펼치면 제일 먼저 운세란을 읽고, 그의 전화가 오기를 빌면서 지하철 역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들에게 적선을 하고, 만약 몇월 몇일에 그에게 전화가 오면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보기도 하고, 일상의 짜증스럽고 귀찮은 일들에도 무덤덤해진다. 

한 사람에 대한 집중된 열정이 온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삶이지만 작가는 그 열정의 대상에 대해 쓰기보다는 그런 자기의 심경에 대해, 자기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더 쓰고 있다는 점에서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더 특별하게 여기게 했다. 

책 마지막에 이와 관련된 문장이 나온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66)


이 짧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 만큼 마음에 큰 도장을 찍는 말이 있을까 싶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이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67)

이 세상 사람들을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의 책을 한권 읽고 거기서 그치지 못하게 하는 것, 그의 다른 책을 꼭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면 적어도 내겐 성공적인 읽기라고 본다. 

알려져있는 대로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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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3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는 제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멀리했는데....
욘 포세를 읽고는 아니 에르노 작품이 양반이란 걸 알았습니다. ^^;;

hnine 2023-11-01 11:28   좋아요 0 | URL
그럴 것 같아서 저는 아직 욘 포세 책 읽을 생각을 안하고 있습니다 ^^
아니 에르노 책 여자들에게 더 와닿을 내용이지요.
 
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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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 어느 곳에도 모험이나 투쟁 같은 것은 없으며 예외적이거나 비극적인 면도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기계를 바라보는 것같이 흐뭇한 눈길로 되돌아볼 수 있다. 나의 삶은 소리도 내지 않고 멈출 것이다.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조용하고 묵묵히 움직임을 끝낼 것이다. 또한 그래야 한다." (19쪽)


나도 당신도 언젠가는 지나온 생을 되돌아 보고 정리하고 싶어질 때가 올것이다. 그때 나의 삶은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을까. 이 소설의 '나'는 말한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저 기계적인 세월의 흐름이었고, 평범한 삶이었다고.


며칠 전 '나'는 정원에서 잡초를 뽑는 일을 하던 중, 엄청나게 강하고 확실한 '죽음의 느낌'을 감지한다. 놀람과 두려움에 이어, 나의 주변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안의 모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젠 아무것도 정돈할 게 남아 있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그는 아직 정돈해야할 뭔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바로 나의 삶을 정리하는 일, 나의 삶을 짧고 간결하게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기는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기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자문해본다. 그가 읽어온 책들에서 보면 얼마나 신기한 모험과 별난 인물들이 나오던가. 그에 비해 자기가 살아온 삶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삶이란 특이하고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 아니던가,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리고 비통하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는게 부족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쓰여진, 한 노인의 마지막 정리의 결과물이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작은 목공소를 하며 돈을 모아가는 것을 인생 목표로 성실하게 일하는 가장이었고 엄마는 감성적이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소심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로 자란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하지만 중간에 그만두고 좋아하는 시를 쓰며 시인을 꿈꾼다. 하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자기의 시가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자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접고 대신 경제적으로 당당하게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철도역 공무원으로 취직을 한다. 아들에게 기대를 많이했던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가 따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편이었던 그는 도시에서 역무원으로 기계적인 생활을 하던 시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 인생의 이 기간은 일종이 끝없는 독백의 시기였다. 독백이란 지독한 것이며, 어느 정도는 자기 파멸이자 우리와 삶을 결속시키는 사슬을 부서뜨리는 일이다. 독백하는 사람은 고독할 뿐만 아니라 끝장난 사람이다. (75)

역을 드나드는 다양한 군상들을 보며 자기와는 동떨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별종의 군상들이 몰려드는 역은 모든 종류의 악이 번성하는 데 비옥한 토양 구실을 하는 것이며, 자신은 그 희미한 몰락의 냄새를 즐겨 맡는다고 해놓았다. 역에서의 하루를 두 페이지에 걸쳐 묘사해놓은 부분 (79, 80쪽)은 그의 문장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별을 쳐다보면서 나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했는지 아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실로 세상 끝에 있는 마지막 역이었다. 선로는 풀과 냉이 속으로 뻗어 있었고, 그 뒤에는, 바로 적치장 뒤에는 벌써 우주가 나타났다. 강과 숲이 소리를 냈고, 그 뒤에는 우주가 소리를 냈다. 별들은 오리나무 잎새처럼 깜박이며 소리를 냈고, 산바람이 세상 사이를 가르며 불었다. 아, 그곳은 폐를 채우기에 좋은 곳이었다! (80)


강의 물결처럼 늘 똑같고 늘 새로운 생활. 늘 똑같고 늘 새로운 반복.

가끔 나는 놀랐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하루에 기차 두 대가 오가고 끊긴 선로에는 풀이 덮이고, 그 바로 뒤에는 병풍 같은 우주가 나타나는 것이. (82)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우리도 가끔 이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적절한 어휘, 매력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결혼을 하고, 성실한 임무 수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 끝에 역장으로 승진도 한다. 자기의 직장인 기차역을 완벽하게 돌아가는 기계처럼 유지시키면서 이 역만은 정말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남자에게는 자신의 일을 몰두할 수 있는 곳이 가정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116)

그에게 정말 가정은 집보다 오히려 일터였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부에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그런 현실에 적응하며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살기로 하는 아내 덕에 표면적 평화와 안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집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간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시간이다. (117)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굴절율이 다른 여러개의 색으로 분산되어 나온다. 작품의 중반을 넘어서 '나'는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의 정체가 뭘까 생각하다가 '나'라는 한 사람 내면에 서로 다른 '나'가 존재함을 알게 되고, 그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것은 자아 비판일수도 있고 자기에 대한 철저한 이해의 과정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나는 것 같다. 여러 개의 다른 내가 삶의 각 순간에 밀고 당기고, 숨거나 드러나며 지금까지 이끌어 왔음을, 통합된 개체로서 '나'는 뒤늦게 발견하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 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는지, 들키면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장으로서 친구에게 비밀리에 정보를 넘겨준 것은 무엇때문이었는지,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기차역 사무원이 되기로 한 것은 어떤 '나'의 결정이었는지, 하나 하나 해부하는 과정이다. 프리즘에 빛을 통과시켜 서로 다른 여러 색의 존재를 비로소 발견하듯이. 면적을 미분하여 여러 개의 선이 모여 이루어졌음을 확인해가듯이. 


삶에서 규칙적인 생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너의 내면에는 뭔가 두려운 게 있었고, 너는 쉬지 않고 달아났어. 어디에서 멈춰 섰었나? 세상 끝에 있는 마지막 역이었던가? 아니야, 그곳엔 아직도 약간의 인광이 빛을 발하고 있었어. 네게 부여된 역에 가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고 넌 사물들이 안전하게 질서를 이루는 그곳에 자신을 숨겼지. 그곳에서는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었고 안정을 찾을 수있었어. 넌 죽도록 무서워했지. 이게 죽음일지 모른다. 조심해야 해. 이 길로 몇 걸음만 더 가면 미쳐 버리고, 자신이 파멸해 죽게 될 거라고 느꼈겠지. 

그러고는 너를 파멸시키지 않을 그 점잖고 견고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단단히 매달렸지. 삶에 필요한 것만을 골라잡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어.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너는 일들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 일을 네 직업이자 생활로 만들었다. 너는 성공했고, 너 자신에게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양심적이고 만족스럽게 평범한 인생을 살았어. 잘 살아온 삶인데 또 뭘 원하는 거지? 뭘 유감스러워하는 건가? (173, 174, 175)

이 부분을 이 작품의 핵심 구절로 꼽고 싶다. 

서로 완전히 다른, 극단적으로 다른 존재인 여럿의 '나'가 나의 내면에 서로 뒤섞이고, 삶의 각 순간마다 두각을 나타내어 하나의 인생을 이루어온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alter ego의 존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문학 작품 속에서 이렇게 피부에 와닿게 느껴보긴 처음이다.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국민 작가중 한 사람이라는 카렐 차페크.

책 표지 그림이 재미있다. 누구의 그림인가 봤더니 요세프 차페크. 카렐 차페크의 친형이다.





이건 갈등의 여지 없이 별 다섯개.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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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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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책들. 살아있는 동안 아무리 부지런히 읽어도 그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을테니, 책을 만난다는 말보다 '마주친다, 스친다' 라고 표현하는게 이해 되기도 한다. 그 많은 책들 중 몇권을 선별해서 그것들에 대해 책을 썼다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 반가고 어떤 책을 골랐을까 하는 것부터 어떻게 읽었을까 하는 것 까지,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그 중에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물론 반갑고, 내가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부분은 그런 책들대로 더 호기심과 궁금증을 준다.

읽은 책을 주제로 기존에 나와 있는 책들 역시 많지만 내가 읽은 것들을 기억나는대로 추려보니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번에 읽은 책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1>은 제목이 솔직하고 꾸밈없어 더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기회될때마다 세계문학전집을 조금씩 사서 모으기 시작한지 몇년 되다 보니 더 관심이 갔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다른 일 안하고 책만 읽고 살 수 있는 생활을 꿈꾸곤 한다.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면서. 위의 세 저자들은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한 저자는 직업이 번역가이고 틈틈히 읽은 책들 중 고전을 골라서 책을 엮었고 ('살면서 마주 한 고전'), 다른 저자는 중년에 이르러 꿈찾기의 돌파구로 독서를 한 경험을 책으로 썼으며 ('책만 읽어도 된다') 또 한 저자는 친 언니를 잃고서 정신적인 공허를 달래고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기로 하고 그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혼자 책 읽는 시간').

이 책의 저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생계 수단으로 해오던 일을 건강문제로 접어야했고 그렇게 주어진 시간의 공백을 책 읽기로 채우기로 한다. 예전 부터 하고 싶어 마음 속에 담고만 있던, 세계 문학 전집 쌓아놓고 한권씩 읽어나가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2020년에서 2021년에 걸쳐 아홉달 동안 읽은 백권의 책을 읽은 기록을 이 책에 모아놓았다.

책 제목과 출판사, 그리고 한 단락 정도의 대표 구절을 시작으로 하여, 그 책을 읽을 즈음의 본인 근황과 심경을 간단하게 밝히고, 책 줄거리는 비교적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그리고 책에 대한 소감으로 마무리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책 감상글이랄 수 있는데 저자만의 독특한 감상과 소감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폭풍의 언덕>의 남주인공 히스클리프의 미국 버전으로 비교한 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가면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다.

가면을 쓰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가면 뒤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외려 가면이야말로 가면 뒤에 숨어서 온갖 사회적 시선을 피하고 있는 바로 그 '참다운 나'를 대신해 그 모든 걸 다 받아내는 존재 아닐까? (65쪽)

가면이 일반화되어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가면이 필요한 이유, 가면의 의미를 나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새로왔다. 

줄거리를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해놓은 것은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것이 내가 읽은 책이라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주어 좋았지만 읽지 않은 책의 경우엔 책에 대한 소개 정도로 따라가며 읽기에 좀 긴 분량이 되더라는건 순전히 개인적 소감일 수 있겠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줄거리를 한번 읽는다고 내용이 파악되긴 어려울 것이고 그러다보니 자세한 줄거리를 따라 읽는 동안 자칫 지루해질 수 있고 글자만 읽어넘기게 되더라는 것이다. 저자의 친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작품이라며 조지 오웰의 다른 작품보다 먼저 읽히기를 바란다는 점에는 공감하며 흐뭇했다. 저자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고급스럽고 고상한 소설에 속한다는, 그래서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불편하기도 하다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나사의 회전>도 어서 읽어보고 싶다. 

같은 제목으로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2>도 나와있고 3권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막상 책만 읽어도 되는 여유가 생기고 나니, 책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아 투덜대곤 하는 나 자신에 대해 잠시 반성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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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인 님 리뷰 읽으려니 제가 이걸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하고 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사야지 싶어집니다.
저는 작가가 소개하는 책 줄거리를 읽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근황과 심경도 적어두었다 하셨는데, 아무래도 어느 상태에서 언제 읽느냐가 감상에 영향을 많이 미칠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읽어볼래요.

hnine 2023-10-25 00:47   좋아요 0 | URL
저자의 근황을 쓰려면 주위 다른 사람들을 언급할 수 밖에 없어서 근황은 아주 간단하게만 쓰셨어요.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겠지요.
같은 작품이라도 어느 상태에서 언제 읽느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다는데 동감입니다. 이 책 저자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데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나 하는 언급을 한 작품이 몇개 되더군요.
다락방님의 독후 소감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