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이 학교에 다녀왔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 있는 학부모 모임이니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고서이다.

매년 있는 일이지만 그런 연락이 와도 한동안 잘 가지 않았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자꾸 피하고 싶어하는 나의 사회성 부족 탓도 있고,

지금보다 더 어릴때 얘기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있었던 일을 가지고

엄마들이 나서서 해결해줘야 한다면서 아이들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엄마들과 의견을 같이 하기가 어려웠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그분들은 그것이 아이들의 원만한 학교 생활을 위해 더 낫다는 생각이고, 그것을 내가 옳다 그르다 말할 일은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직접 부대끼며 해결해나가도록 두고 옆에서 지켜만 보자는 쪽이었는데 아마 다른 엄마들 보기엔 그것이 너무 방관하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다른 엄마들과 의견이 차이나다보니 엄마들 모이는 자리에 더더욱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어제는 모처럼 나가보게 되었는데, 갈때마다 느끼는건 아이가 참 멀리도 학교를 다니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학교 버스가 다니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거의 한시간 거리. 어제 나는 버스를 두번을 갈아타고 가야했다.

몇년 전 이사를 결정할때 학교에서 가까운 곳으로 갈까 생각 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큰 평수의 아파트에, 공장지대가 가까워 공기가 안 좋다고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그때만해도 아이의 아토피를 걱정하던 때라서 오히려 학교에서 더 멀어진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 오고 나니 아직 학교버스 노선이 이곳까지 개설되기 전이라 아이는 혼자서 버스를 갈아타면서 다녀야했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엄마가 차로 좀 데려다주지 그러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차도 없을뿐 더러 그럴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몇번 아이 데리고 연습을 했더니 잘 하기에 그냥 아이 혼자 버스 타고 다니게 했다.

가끔 아이에게 묻는다. 집에서 걸어갈 거리에 있는 학교로 옮기는 건 어떠냐고.

단박에 싫단다. 다니던 곳에 정이 들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1학년때부터 그렇게 다녀서 이미 적응이 되었기도 하고.

 

어제는 학교에서 입은 체육복을 저녁 9시가 다 되어 내놓으면서 오늘 가져가야 한단다. 물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시작은 해주되 세탁이 끝나면 네가 꺼내서 널어놓아야겠다고 했더니 알았단다. 그러고 들어가서 나는 내 할일을 했다.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신호음이 들리는데 아이는 나와서 널어놓는 기색이 없다. 엄마가 말은 그렇게 해도 널어주겠지 했나보다.

오늘 아침, 아이가 체육복을 찾는다.

"네가 안널었으면 아마 세탁기 속에 아직도 있겠지."

했더니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툴툴거린다. 세탁기에서 체육복을 꺼내더니 급한대로 헤어드라이기로 말리는 것을 보고 그 조차도 나는 도와주지 않았다. 아마 학교갈 시간에 쫒겨 여전히 축축한 채로 가져갔을 것이다.

 

공부하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다가도 아이가 딴청을 피거나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가차없이 가르쳐주는 것을 중단한다.

"공부는 네가 하는거야. 엄마는 도와주는 것 뿐이지. 네가 하기 싫어하면 도움 받을 자격도 없어."

그리고서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아빠는 나와 다르다. 그렇게 부모가 먼저 손을 놔버리면서 아이가 알아서 잘 하기를 기대하면, 알아서 하는 아이가 몇이나 되겠냐고. 아이는 그렇더라도 부모가 계속 끌어줘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게 무슨 공부야. 그렇게 하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어."

라는 내 말에 남편은 대답한다.

"이 세상 아이들이 다 당신 같은 줄 알아? 하게 내버려 둬서 제대로 되는 아이가 얼마나 된다고 그래?"

그럴까?

제대로 된다는 것이 뭘까.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는 것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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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9-1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잘 키우는 정답은 없겠죠?
그저 부모가 소신있게 키우는 수 밖에는.....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정이 필요하기도 하겠지요?
저두....체육복은 제가 널어주었을꺼 같아요......

hnine 2014-09-17 11:00   좋아요 0 | URL
체육복, 제가 좀 심했지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서 이번엔 제가 좀 세게 나갔지요 ^^

nama 2014-09-1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또 변하기가 쉬워요.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실내화 세탁을 아이에게 일임하고, 중학교 때는 스타킹세탁을 시켰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그 모든 것이 소용이 없는 게, 아이 방에 있는 잡다한 쓰레기까지 제가 치우게되더라구요.
소신이...정말 어려워요.

hnine 2014-09-17 12:1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소신'과 '고집'이 참 아슬아슬하게 맞닿아 있잖아요.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제 아이 방도 아주 볼만 합니다 ^^ 그런데 저는 안치워줘요. 어지럽게 정리안되어 겪는 불편을 본인이 느껴봐야 하고, 그래서 조금씩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매번 엄마가 치워주면 그 버릇이 어른되어서까지 가더라고요. 그럼 또 어떤 한 사람이 대신 치워줘야할 것이고요.
제가 너무 엄격한거 맞지요? ㅠㅠ

nama 2014-09-17 20:20   좋아요 0 | URL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대학 졸업할 때까지 제 속옷 한번 빨아입은 적이 없어요. 물론 학교가 워낙 멀어서 통학하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요. 어차피 살다보면 내 스스로 해야할 때가 끝내 오고야말지요.
그러니 어렸을 때 습관이 잘못 들었다고 해서 그 습관이 영원한 것도 아니에요. 사람은 늘 변하기 마련이에요.
너그러움도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요.

hnine 2014-09-17 21:58   좋아요 0 | URL
제가 너그러움이 모자란가봐요.
같은 방법도 아이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고, 시기에 따라서도 달라지니 정답과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도움 말씀 감사해요. 오늘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마립간 2014-09-1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제가 훈수둘 처지는 아니고 저의 가치관을 말씀드리면 '몰입'이나 '공부하는 힘'에서 언급된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 deliberate practice'을 기준을 삼습니다. 아이가 감당할 수만 있다면 아이에게 좋은 것이고, 감당할 수 없다면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 글로 봐서는 아이가 감당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hnine 2014-09-17 12:41   좋아요 0 | URL
필요하지만 잘 안되기때문에 하는 것이 practice이겠지요. 그래서 거의 모든 practice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 같고요. 저도 그렇게 아이를 통제하에 키우는 편은 아닌데 몇가지에 한해서는 좀 강제성을 두고 있어요. 엄마가 해주어야 할 일과 아이가 스스로 해야할 일을 저 나름대로 구분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거기에 아이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았네요. 아이가 지금 열네살이거든요. 이제 어떤 건 엄마가 도와주려고 해도 거부하는 것들이 있답니다. 반면 어떤 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엄마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있고요. 대개 귀찮은 일들이 여기에 속하지요.
마립간님, 의견 주셔서 감사드려요. 부모 입장에 있는 어떤 분의 의견도 귀기울이고 싶어요. 내 의견대로 하라고 강요하지만 않는다면요 ^^

blanca 2014-09-1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하는 고민과 맞닿은 점이 있는 글이에요. 엄마들 모임도 그렇고요. 저는 아이가 아직 초1이라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지만
몇 주 전에 티비에서 부모교육 강연하시는 분이 hnine님과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부모가 많은 것을 해주어 시련을 견디는 힘이 부족하다고. 비가 오면 비도 좀 맞게 하고 학교도 혼자 오가게 하고 그러라고요. 며칠 전 비가 왔는데 가까운 거리임에도 엄마에게 차로 데려다 달라 하는 아이에게 좀 매정할 지도 모르지만 일부러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했어요. 자녀에 관련된 문제는 평생 고민하고 배워가야 할 일인 것 같아요.

hnine 2014-09-17 14:54   좋아요 0 | URL
blanca님, '후천성실패결핍증'이라고 저도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너무 나서서 다 해주다 보니 실패해보고 그걸 딛고 다시 일어나는 체험을 해볼 기회도 박탈당한다고요.
엄마가 일방적으로 명령조로 얘기하지 않고 blanca님이 그러셨듯이 엄마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너 혼자 한번 해보라고 하면 아이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았을까요?
제가 마지막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것일까 라고 썼지만 쓰면서도 또 아차 했어요. 열네살 짜리를 이제 '아이'로만 봐도 안되겠다 생각이 들어서요.
엄마들 모임은 저처럼 너무 안나가도 안좋은 것 같아요 ^^

파란놀 2014-09-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면 아이는 끝끝내 스스로 할 줄 모르고 끝끝내 기대기만 하겠지요.
부모는 아이를 길들이는 사람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서도록 돕는 사람이니,
아이가 오늘 깨닫건 다음에 깨닫건
머잖아 언젠가 슬기롭게 깨달으리라 생각해요.

어버이는 이러한 나날을 먼저 겪었으니
즐겁게 지켜보면서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다 잘 되리라 생각해요.
아이로서는 버스 갈아타고 다니는 길이 무척 재미날 수 있어요.
게다가 그 길을 혼자 다니면 더더욱.

hnine 2014-09-17 17:32   좋아요 0 | URL
너무 제 생각 위주로 하지 않나, 이번 기회에 여러분들 댓글 읽으며 되돌아봅니다.
자식 키우는 사람은 절대 자만하면 안된다는 말도 되새기고요.
조금 있으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텐데 아마 제가 먼저 아이 표정을 살피겠지요.
자식이 없다면 살아가면서 이렇게 이리 돌아보고 저리 돌아보고 그럴까 생각하니 아이가 곧 스승이네요.

하늘바람 2014-09-17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로는 님이 하신 방법이 옳고 그렇게 하리라 맘 멈고 저도 그런 엄마가 되려 하지만 막상 닥치면 해주게 되더라고요.
엄마라는 직업, 참 어려어요 님
안 해주시는 맘이 오죽 하시겠어요. 아이는 그걸 모르죠.

hnine 2014-09-17 17:34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은 아이 둘을 키우고 계시니 저보다 더 많이 경험이 축적이 되겠지요.
그나저나 지금 막 하늘바람님 서재 다녀오는 길인데, 여러모로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하늘바람님이 옆에 계셔서 부모님께서 얼마나 든든하시겠어요.
전 이 나이에도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받기만 하고 있는데, 참 대단하세요.

2014-09-18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18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09-2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세대는 자랄 때 엄마들이 무얼 해 줄 수가 없었지요.
어려서부터 내 손으로 밥도 하고 차려먹었고, 교복이나 운동화도 당연히 빨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언니는 자기는 그런거 하기 싫었다고, 엄마가 돼선 조카들한테 무조건 해줬어요.
나는 즐겨하지 않은 일이라 우리애들에겐 직접 하게 했지만, 안하고 밀쳐두면 모른 척 해주기도 했어요.
그러면 미안해하면서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가끔은 엄마 좋다는 게 이런 거겠다...나는 그런 거 받지 못했지만,
우리 애들에게 해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는 애들 교육보다는 내가 귀찮아서
정말정말 싫어서 안해주고 스스로 하라고 했던 적이 더 많아요.ㅠ ㅋ

hnine 2014-09-23 17:33   좋아요 0 | URL
저도 고백해요. 저도 정말정말 하기 싫어하는게 정리정돈, 빤짝빤짝하게 청소하는 것, 이런 것들이어요.
그래도 꼭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면 마지못해 해줄텐데, 이건 그런게 아니라서 몇번까진 해주면서 이게 마지막이다, 선포한 후 다음 부턴 진짜 안해줘요. `무슨 엄마가 그래요!`라는 소리 들으면서도 못들은척 했답니다.
대신 밥은 열심히 해줘요. 이건 엄마가 해줄 일이라고 생각하는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