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 아이의 특성 중 하나인가.
호, 불호가 너무나 뚜렷하다.
좋아하는 것에는 빠져들고 싫어하는 것은 두번 다시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면 해야하는 거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제 말로 해서 듣는 때는 지났나보다.
아이가 빠져있는 것은 축구. 아침에 학교 갈때 가방은 놓고 가도 축구공은 가지고 간다. 비가 와도 들고 간다. 다른 옷은 입지 않는다. 매일 축구 유니폼을 입고 가기 때문에 다른 옷들은 옷서랍에서 바깥 구경도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 축구하고 오느라 이전에 신청해놓았던 독서클럽, 학교 신문만드는 클럽 등등, 축구 스케쥴과 조금이라도 맞물리면 지체 없이 중단.
그렇다고 얘가 축구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매주 토요일, 동네에서 하는 어린이 축구 클럽에 데리고 가는데 집에서 활개 치는 것에 비해 얼마나 소극적인지. 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을 기다리고 있는 것 처럼 보여 보는 나를 답답하게 한다.
어제는 아이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옆에서 듣자하니 처음엔 할머니께서 지난 번에 먹으라고 싸주신 간장게장 얘기로 재잘재잘 말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조용해져서 보니까 전화를 끊은 게 아니고 간간히 네...네...대답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은 족히 통화를 했을까? 나중에 아이에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냐고 그랬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매일 축구하느라 공부하는 것에는 신경 안쓰고, 그러면 엄마에게 말해서 축구 못하게 할 것이고, 할머니께서 가끔 주시는 상금 (아이가 뭘 잘했을 때마다 할머니께서 포상금을 주신다)도 안 줄거라고 할머니께서 그러셨다는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뭐라고 말은 못했지만 속이 상했는지 전화 끊고나서 본격적으로 꺽꺽거리며 운다. 괜찮다고 다독다독 해주고 났는데 문제는 어제 밤, 아침에 가져간 우산이 없길래 찾다가 아직도 아이 가방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김에 가방 속에 들어있는 것좀 다 꺼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세상에...지난 주에 나에게 보여줬어야 할 전달사항에, 어제 이미 학교에 냈어야 할 숙제에, 모두 그대로 가방에 들어있는 것이다. 한숨이 나왔다.
"다린아, 아까 할머니께서 걱정하신게 바로 이런거야."
담임선생님께 편지로 여쭈었다. 다린이가 요즘 축구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혹시 수업 시간에도 집중을 못한다거나 숙제를 잊거나 하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은지 염려가 되어 편지를 올린다고.
그리고 다린이에게 말했다.
"숙제, 전달 사항을 며칠 씩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느라 잊은 건 네 잘못이야. 내일은 학교 갈 때 축구공 가지고 가지마. 벌이야."
오늘 아침 일찍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숙제를 한번 안낸적이 있는데 그건 크게 문제될 것 없고, 학교 생활도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그러시면서 오히려 지난 주에 학교에서 잘 한 것 몇 가지를 알려주시고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하신다.
부모는 아이가 잘 한 일 아홉 가지보다 잘못한 한가지를 화제로 삼는다. 나도 어릴 때 그렇게 자랐으면서, 그래서 제발 엄마로부터 잘 했다는 칭찬 좀 들어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면서, 나도 여전히 그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것이 또 있다. 아이에게 어떤 벌칙을 줄 때에는 아이가 벌을 받게 된 행위와 관련된 벌칙을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숙제와 축구공이라는, 상관없는 벌칙을 내렸다.
그래도 오늘 아침 학교 가는데 가방은 메고 자기가 알아서 축구공은 집에 놓고 간다. 어제 밤에 얘기했으니 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몸이 약하거나 어디가 아프기라도 하면, 저렇게 축구를 하고 싶어도 못할텐데, 그것만이라도 감사할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웬만 한 것은 그냥 참고 보아주기로 한다. 원래 내 성격을 아는 내 여동생은 서로의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모이는 때면 내가 아이에게 하는 것을 보고 가끔 그런 말을 한다. 언니, 많이 변했다고. 언니 성격에 저걸 그냥 봐주고 넘어가냐고... 내 성질 그대로 가지고 아이 키우는 엄마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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