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속이 안좋아 마루에 누워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아이는 내가 또 배가 아파서 그런가보다 금방 알았을 것이다.
"엄마, 또 배 아파요?"
"응..." 
곧장 장난감 모아두는 방으로 간다. 그러더니 지금은 더이상 안가지고 노는, 먼지가 뽀얗게 묻은 병원 놀이 상자를 들고 나온다.
그러고는 의사 선생님 흉내를 내면서 진찰을 한다, 약을 준다, 주사를 놔준다 하면서 나를 결국 웃게 만든다.
이번에는 부엌으로 간다. 의자를 끌어다가 그릇장에서 컵을 꺼낸다.
물을 끓인다.
뭐하려고 그러냐고 했더니 코코아를 끓여주려고 그런단다.
내가 며칠 전에 코코아 끓이는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쳐준 적이 있다. 우유에 바로 가루를 풀지 말고 끓는 물을 조금 부어 가루가 풀어지게 한 후 우유를 넣고 렌지에 데워서 먹으라고.
그 방법 그대로 하고 있다. 사실 나는 그때 코코아 먹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아이가 한 컵 가득 끓여 가지고 온 코코아를 다 마셨다. 안 남기고 다 마셨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잣,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 아기때 이유식이라고 잣죽을 한번 끓여주었다가 병원 응급실까지 갔던 경험이 있어서 조심하고 있는데 가끔 이런 것들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먹었다가 아이가 팔짝팔짝 뛰면서 혀가 따갑다고 우는 일이 요즘도 가끔 있다. 삼키키도 전에 혀에서부터 반응이 나타나는가보다. 
어제 남편이 선물로 누가 주더라고 전병 선물 세트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 중 하나를 꺼내어 먹은 아이가 알레르기 증세를 보였다. 혀가 따갑다면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바로 욕실로 가더니 수돗물로 입가심을 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수돗물을 그냥 삼켰던 때문일까. 조금 있다가 진정된 듯하여 저녁을 먹었는데 먹기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더니 다 토하는 것이다. 밤새 토하고 이 더운 날 배가 더 아프면 안 된다고 이불을 배에 둘둘 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 잠든 모습을 보니 참...
매일 나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수학 공부를 요즘 따라 부쩍 하기 싫어해서 거의 매일 야단 치고 언성 높이고, 그러려면 하지 말아라 소리 나오고, 예전 같지 않아 아이도 맞서서 대들고, 이러기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막상 아이가 아파하며 잠든 모습을 보니, 그 수학 문제가 뭐 대수랴 싶은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 시간 쯤, 집 안에서도 축구공을 이리 차고 저리 차고 다니는 아이 야단 치는 내 목소리와 그래도 계속 공 차는 소리로 집 안이 시끌시끌 했을텐데 집안이 쥐죽은듯 조용하다. 엄마에게 대들고 집안에서 공차고, 그런 것도 다 아이가 건강하니까 그런 것이었구나, 그제서 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늘 아이를 학교에 안보내고 집에서 쉬게 했다. 나 역시 어제 잠을 설쳤기도 하고 몸 상태도 별로라서 낮에 잠깐 누웠다 잠이 들었다가 깜짝 놀라 깨었더니 아이는 엄마가 자길래 자기가 어제 남긴 죽을 데워서 먹고 냉동칸에 있는 떡도 데워서 먹었다고 한다.
오후엔 저녁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죽을 또 먹어야하면 주려고 쌀을 씻어 놓고, 그리고 냉장고에 남아 있는 묵은지를 꺼내어 삶고 있는데 아이가 묵은지 냄새를 맡더니 먹고 싶다고 한다. 이제 좀 나았나보다 했다.
저녁엔 죽 대신 새로 지은 밥이랑 묵은지, 굴비 굽고 마른 김 살짝 구워 그렇게 세 식구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한 그릇 다 비우고 아이는 아빠와 함께 동네 마트로 피서 보냈다. 하루 종일 집안에 있었으니 갑갑할 것 같아서. 

아프지 말아야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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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8-1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는 참 따스한 아이에요. 볼수록 정감있고 흐뭇해요. 아, 그런데 묵은지를 삶아 먹는 건 어떤 거죠? 상상이 안 가요.

hnine 2010-08-20 06:13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마 제가 그런 이야기들만 올려서 그럴거예요 ^^
묵은지를 삶는다는 것은 묵은지에 멸치 몇개 넣고 무를때까지 푹푹 끓이는걸 말해요. 흐물흐물해져서 먹기에 좋지요. 새로 담근 김치로 하면 아깝기도 하고 쉽게 무르지도 않고하니 주로 묵은 김치를 가지고 이렇게 해서 먹지요.

무스탕 2010-08-1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린이랑 정성이는 비슷한 또래인데 이 두 아이들의 차이는 참 대단하지요.
뭐 누가 좋고 나쁘고를 말하는게 아니고 단순히 다름을 말하는 거에요 ^^
조금 더 많이 어린 아가들에게 주로 쓰는 말입니다만, 애들은 뛰는게 당연한거다. 안아프니까 뛴다. 그렇게 말해요, 전 :)

hnine 2010-08-19 17:37   좋아요 0 | URL
애들은 뛰는게 당연한 것 맞아요. 그런데 아파트라서 우리 집에서 공차는 소리가 다른 집까지 울려서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맘 놓고 뛰고 공차고 놀수 있는 공간이 많으면 참 좋을텐데요.

꿈꾸는섬 2010-08-1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프지 마세요. 늘 건강이 우선이에요.
다린이랑 나인님이랑 모두 쾌차하시길......

hnine 2010-08-19 17:25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다린이도, 오늘은 아주 거뜬합니다 ^^

울보 2010-08-1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류랑 수학공부하면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이제 류는 제가 무섭답니다,,
제가 "류야,,~"라고 부르면
으윽 정말 싫습니다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아드님이 참 속깊고 정깊은 아이 같아요,
우리딸은 ,,그런 살가움은 없는듯한데 ,,,,

hnine 2010-08-19 17:26   좋아요 0 | URL
울보님, 전 울보님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어요 ㅠㅠ
정답이 없지요.

상미 2010-08-1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많이 아팠나보다.
다린이가 걱정이 되고 안쓰러워서 자기 딴엔 뭐든 해주고 싶었을테고.
정말 아프지 말고~~~~


hnine 2010-08-19 17:28   좋아요 0 | URL
고마와.
여름이라 음식 조심 많이 해야하는데, 난 좀 맛있는게 있으면 많이 먹고 바로 탈 나버리지 ^^

비로그인 2010-08-19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직 여름이 다 지나가지 않아서 몸이 좋지 않으신 걸까요?
밤에도 꽤나 덥고 하니,, 얼른 가을이 와서 몸이 나아지셔야 할텐데요.

오늘도 꽤나 더울텐데요. 좀 쉬시면서 여유를 갖고 하루를 보내셨음 합니다.

hnine 2010-08-19 17:30   좋아요 0 | URL
제 경우에는 단순 배탈이었어요. 저는 아직도 맛있는 것 있으면 많이 먹고 배탈나기도 하고 그렇답니다 ㅋㅋ 순 애들같지요.
오늘은 서울다녀왔는데 지하철과 버스 안은 에어콘 덕분에 시원하더군요.
제일 더운 것은 저희 집인 것 같아요. 아니, 더 더운데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네요 ^^

lazydevil 2010-08-1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마무리가 참 훈훈하네요. 특히나 굴비와 묵은지, 김의 노력으로 세 식구가 흐뭇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란...^^;

hnine 2010-08-19 17:31   좋아요 0 | URL
식구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모습은 언제나 마음을 훈훈하게 해요. 특히 아무리 보잘것 없어도 집에서 직접 차린 밥상인 경우엔 더욱 더 그렇지요.

2010-08-19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9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8-19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이 최고! 라는건 아는데 항상 그렇듯 실천은 참 어렵습니다.^^;

자녀분들과 hnine님께서도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서재 타다 얼마전 들어와서 즐찾서재 추가해놓고 눈팅만 하다 인사드립니다.ㅎㅎ

hnine 2010-08-19 21:00   좋아요 0 | URL
저와 함께 같은하늘님 이벤트에 뽑히셨잖아요, 그쵸?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우겨보면서...^^
루체오페르님도 건강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루체오페르 2010-08-19 22:21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축하 드린다는게ㅋ
축하드려요~^^
안 우기셔도 됩니다. 큰 인연 맞으니까요.ㅎㅎ
감사합니다.(__)

순오기 2010-08-2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간사한 마음이지만, 제겐 전혀 간사하지 않고 당연하다 읽혀요.^^
아픈 엄마를 위해 마음 써주는 건,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품성이겠죠.
훈훈한 모자의 아름다운 풍경화가 보기 좋아요.
수학, 그게 대수랍니까~ 이하 동감!^^

hnine 2010-08-20 18:51   좋아요 0 | URL
저는 마음이 물러터져서, 금방 화냈다가 금방 푸르르 풀어졌다가, 이렇거든요. 그러니 간사한 마음이지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남편이 늘 저에게 잔소리를 하는데 '살아있는 것 중 일관성 있는 것이란 없다!' 이렇게 맞주장한답니다.
말씀대로 공부는 정말 다음 문제이지요. 건강이 최고예요,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