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손에 들어온 책을 다루는 방법은 사람마다 참 다른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구김 하나 없이, 연필로 밑줄 같은 것은 물론 안되고, 되도록이면 손때나 흔적 안 남게 깨끗하게 읽고 보관하는 타입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일부러 랄 것은 없지만 나와 그 책과의 '교류'의 흔적을 남기는데 망설임이 없다. 밑줄은 물론, 접어 놓기, 큰 것, 작은 것 포스트 잇 붙여 놓기 등등. 심지어 들고 다니기 무거운 전공 책 같은 경우는 가차 없이 챕터 별로 부욱~ 찢어서는 스테이플러로 세번 박아서 필요한 부분만 들고 다닌다. 전공 책이니 대부분 수입원서이고 값도 만만치 않은데 이렇게 가지고 다니는 사람 사실 나도 별로 보질 못했다. 이런 나를 보고 놀라는 사람은 봤어도. 이렇게 해서 내가 더 들고 다니기 쉽고, 들고 다니기 쉬우니 어디서든지 시간날 때마다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 완전 내 소유의 책들에 한해서이다.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린 책, 또 누구하고든지 공유하는 책들에는 절대 이런 짓 (?) 안하고 읽는다. 다른 사람에게 빌린 책은 겉표지까지 따로 싸서 읽거나, 띠지는 따로 꺼내 다른 곳에 잘 두었다가 돌려줄때 다시 둘러서 준다.
내가 대학 다닐 때 나와 같은 학교에, 전공도 비슷했던 내 동생, 내가 1년 전에 들은 유기 화학 수업을 같은 교수님으로부터 듣게 되어 내가 쓰던 책을 주었다. 그 책도 책값이 꽤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그 책에서 잠깐 찾아 볼것이 있어서 동생 책꽂이에서 그 책을 꺼내보았더니, 세상에, 내 이름이 써있는 부분, 내가 줄 친 부분, 모조리 화이트를 가지고 박박 다 지워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내 동생은 누가 쓰던 책을 쓴다는 것이 그게 언니였던 누구였던간에 너무나 싫었던 것이다. 책값 아껴보겠다고 어쩔 수 없이 물려 쓰고는 있지만 말이다. 나는 어떤가. 누군가의 연필 자국이 있는 책, 좋아한다. 그것이 보는 사람의 불쾌함을 유발할 정도로 지저분하거나 낙서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면, 한동안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책이라는 느낌, 이 사람은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짐작하며 읽어가는 기분이 그리 싫지 않던데 말이다.
가끔 본인이 읽었는데 아주 내용이 좋으니 가져가서 한번 보라고 꺼내주는 책이 빳빳한 종이 그대로, 방금 산 것 처럼 파닥파닥한 느낌이 드는 책일때엔 나도 모르게 '이 책을 과연 저 사람이 읽기는 한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좋아하는 책일수록 더 깨끗하게 간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말이다.
어제 심심한지 책꽂이에서 책을 이것 저것 꺼내보던 아이가 예전에 사두었던 '내셔날 지오그라픽' 과월호를 꺼내서 몇 장 들춰보더니 그 중 한 페이지에 역시 내가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보았더니 'DS에게 scan 부탁' 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페이지의 그림을 어디에 쓸 일이 있어 남편 사무실의 스캐너로 스캔 해달라고 부탁하자고 메모해놓은 것이었다. 그러고는 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이 그림을 왜, 어디에 쓰려던 것일까? 로 시작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