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시집 - SNS 스타 작가 최대호의 읽으면 기분 좋아지는 시, 스페셜 에디션 읽어보시집 1
최대호 지음, 최고은 그림 / 넥서스BOOKS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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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시집] 지금 우리가 부른 시인

 

 

대졸자 증가와 극심한 취업난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글쓰기와 책에 대한 대중들의 경외심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다. 글쓰기 책이나 강의가 인기 많고, 특히 SNS에 최적화인 짧은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 세대는 이제 4년제 대졸자치고 공모전 수상 경력 없는 사람 찾기 힘든 경지에 다다랐다. 여행을 가도 책으로 내는 것은 이제 세대 보편적 욕구가 아니라 필수적 사명이다. 파워블로거나 바이럴마케팅 업체가 아니어도 일 방문자수 수천대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SNS 팔로워 수천 명을 관리하는 영세 네티즌이 수두룩하다. 과거에는 자소서에 한줄 더 쓰러 기획 동아리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유령 회사쯤은 만들어야 너 좀 경험과 열정 있구나 하는 시대다. 블룩(blog+book)5년을 채 못 버티고 흔해 빠진혹은 퇴물아이템이란 소리를 듣기 시작하였다. 열정페이는 작가 지망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글을 기고하고 책을 낼 수 있는 채널과 방법은 늘었다. 대신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무료 원고나 푼돈에 저작권을 양도하기를 제안한다. 이토록 아름답고 스마트한 우리들의 시대의 문학 트렌드를 요약하면 콘텐츠적으로는 축소화고 시스템적으로는 ‘CPND’라 하겠다.

 

 

평소 시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요즘 너무 바빠서 철벽 수비로 신간을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엄청난 망설임 끝에 <읽어보시집>을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시에 대한 조예와 관심보다, 죽은 마케터의 살아 있는 본능 때문이었다. 지금 시대가 부르는 유행 타거나 트렌디한 제품, 영감과 공부거리를 주는 제품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 말이다. <읽어보시집>의 저자 최대호는 하상욱에 이어 두 번째로 정식 단행본을 낸 SNS 시인이 되었다. 그는 2의 하상욱보다는 한국 최초의 손글씨 SNS 시인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하였다. 혹자는 문인화가이자 시인으로 페이스북에 그림이 있는 붓시를 올리는 김주대까지 합쳐 우리나라 3SNS 시인으로 꼽지만, 그는 90년대 초반에 정식으로 등단한 정석 시인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SNS 시인으로 말하기 곤란하다. 똑같이 손글씨 시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고 등장 시기도 비슷해 최초를 겨뤄봐야 할지도 모르는 이환천 시인의 경우 아직 페이스북 펜 수가 4만명 대이고 책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장르 개척자이자 선점자로 성공은 하긴 했지만, 수많은 경쟁 상대들이 쫓아오고 있는 중이다. 


트위터 https://twitter.com/dhcusoon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osizip

블로그 http://blog.naver.com/dhcusoon

카카오스토리 최대호

 

 

최대호의 가장 큰 차별점은 거의 모든 PC 및 모바일 웹 채널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스토리를 비슷하면서 다르게 운영하고 있고, SNS만큼은 아니지만 블로그도 사용한다. 또 지금은 운영 중지되었지만 홈페이지에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었다. <읽어보시집>의 책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책 제목은 읽어보시집은 저자의 페이스북 이름이다. 그 제목으로 자신의 각종 SNS에 올렸던 주옥같은 시들을 모아, 친동생이 그림을 그리고, 가족들이 합심하여 가내수공업으로 종이책을 만들고 주문 판매하였고, 전자책 플랫폼 중 하나인 리디북스를 통해 무료 전자책으로 배포하였다. 그러다가 종합출판사인 넥서스의 눈에 띄어 러브콜을 받고 ISBN이 붙은 정식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다. 책 제목도 바꾸려다가 그대로 가기로 하였다. 언뜻 시집과 넥서스의 조합이 낯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보면 바로 의문이 풀린다. 넥서스에서 내는 책들은 대부분 실용, 청춘, 트렌디로 설명 가능하다. SNS 기반에 흑백 삽화를 곁들여진 읽어보는시집은 컬러링도 가능한 읽고 쓰는시집으로 발상을 심화시켰다.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했던 책은 한정판 부록의 형태로 본책에 딸려 스페셜 에디션이 되었다

 

 

또 취업준비생인 저자에게 이 책은 수많은 청춘 이력에 묶일 일종의 포트폴리오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하는 데 5시간, 쓰는 데 5, 읽는 데 5일지언정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거리가 많은 흥미로운 책이었다. 동종 업계 경쟁자 혹은 동료를 접한 자극과 설렘도 있었고. SNS에서 소비되는 시기에 무겁지 않고, 짧지만 반전을 강조하고, 내내 유쾌하다. 아무리 아껴 읽어보려 해도 순식간에 마지막 장을 덮고 마는 책이다. 그러나 <읽어보시집>엔 글로 놀리는 오빠와 그림으로 복수하는 애증의 남매애가, 오그라든 손발로 공감의 물개박수 치게 만드는 연애 좀 많이 해본 오빠의 애정시가, 힘들어도 씩씩하고 건강한 청춘이 담겨 있다. SNS에서는 볼 수 없는 시들이 적잖고, SNS의 속성상 뒤로 밀리거나 다른 글과 섞여버린 타임라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한 번에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한국 문학의 위기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책의 등장이 기성, 신인할 것 없이 가볍고 얇은 소모성 작품 집필에 몰두하는 요즘 세태를 확인 사살하는 또 한 컵의 기름이라고 곱게 보지 않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읽어보시집>은 최대호는 지금 우리가 부르고 만든 시인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가 찾고 열광하는 글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집>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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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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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Far From the Tree: A Dozen Kinds of Love(2012;미국)

           Far From the Tree: Parents, Children and the Search for Identity 

본문은 동일하나 재밌게도 하드커버에서 페이퍼백으로 오며 부제가 달라졌습니다.

* 2012 전미비평가협회상,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 '타임' 올해의 책, '이코노미스트' 올해의 책, '보스턴 글로브' 올해의 책, '클리브랜드 플레인 딜러' 올해의 책,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올해의 책, '애드버킷 올해의 책'

   2013 데이턴 평화 문학상, 제이 앤터니 루카스 도서상, 베터 라이프 도서상, 아니스필드-울프 도서상, 정신질환 진미연합 뉴욕지부 선정 희망의 씨앗 도서상

   2014 WELLCOME BOOK PRIZE Winner

[모와 다른 아이들 1] 부모와 아이, 그리고 수평적 정체성

 

 

누구나 살면서 잊히지 않고 늘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결정적 만남을 경험한다. 내게는 6년 전에 들었던 김진혁 전 EBS PD의 특강이 그랬다. 지금은 숱한 인터뷰 기사로 많이 알려진 얘기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육성과 표정으로 접해서인지 사라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는 EBS의 장수 효자 프로그램인 5분 다큐 <지식채널e>의 초대PD이다. 지금이 방계프로그램도 더 나오고, 책도 훨씬 많지만 개성이 가장 강하고 반응도 가장 뜨거웠던 때는 역시 그 초기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진혁 PD의 지식채널e 영감의 원천을 궁금해 하던 때 그는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것은 가난과 장애 등 소외의 목격이었노라고, 그것은 우리가 동정조차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누군가의 현실이자 삶 자체라고 하였다. 소외를 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지만, 스스로 소외자가 되지 않으면 영원히 완벽하게는 알 수 없는 것이 소외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는 내게도 일종의 해방이었다. 내가 가진 정체성들과 앞으로 겪게 될 상황을 견딜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고, 세상을 읽는 한 가지 프레임이 하나 더 늘었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두 종류의 정체성을 제안한다. 하나는 동일한 가계 안에서 대물림되는 수직적 정체성이다. 여기에는 민족성과 국적을 비롯해 일반적으로 언어와 종교도 포함된다. 또 다른 하나는 수평적 정체성이다. ‘수평적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해당 정체성이 가족이 아닌 동류 집단을 통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평적 정체성은 청각 장애나 왜소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중도 중복 장애 등 일반적으로 부모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자녀의 장애를 전제로 한다. 여기에 더해서 이 책은 신동이나 강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 범죄자, 트랜스젠더 등 보다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듯한 예외적인 특징들도 탐구한다. - p.14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내 안의 아픔을 고민했고 대부분 치료되었다.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수평성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관성을 찾는 것이고,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나는 내 이야기를 고쳐 쓰게 되었다. 내게는 게이로서의 수평적 경험과, 나를 낳아준 가족과 공유하는 수직적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험이 더 이상 완전하게 통합되지 않는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악화되는 것 같지 않다. 부모님에게 분노하고 싶은 욕구는 이제 그 흔적만을 남겨 둔 채 모두 증발했다. 낯선 사람들의 관용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부모님에게 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기만 했지, 당신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부모님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부모님과 어디에서나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 p.93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주류인 사람은 거의 없다. 정상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부자와 빈자, 기혼자와 미혼자 등 다양한 기준에서 주류도 비주류도 되면서 폭력을 교환한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의 표지는 저자와 수려한 외모와 남다른 학벌 및 이력, 책의 화려한 수상 타이틀로 가득하다. 그러나 표지를 벗기고 하드커버 본 책만으로 책을 대하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표지 없는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는 게이에 난독장애를 앓고 있는 저자가 무려 1600쪽이 넘도록 힘겹게 글을 써내려 간 일종의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의 기록이었다. 12장으로 이루어진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의 첫 장이 아들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와 삶을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책이었고, 그래서 자신이 궁금하고 고민하는 바에 대하여 쓰고 싶은 만큼써내려간 책이었다. 똑똑한 고학력자가 당연히 쓸 수 있는 해박하고 방대한 교양서로 보였는데, 알고 봤더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치열한 노력의 인간승리 결과물이었다.

 

 

부모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태는 일반적으로 무지와 관련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한다고 믿고 싶어 하는 간절한 믿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식의 책임 전가는 어떤 아이도 구원해 주지 않는다. - p53

 

육체적인 장애는 배타적인 담론으로 이루어진 법적, 의학적, 정치적, 문화적 화술에 의해 만들어진다. - 로즈마리 갈란드 톰슨(p.223)

 

부모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자녀가 부모보다 높은 수준의, 아니면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사회 문화적인 성취를 이루길 기대한다. - 앨런 로스(p.647)

 

 

부모와 아이, 번식으로 발생하는 특수한 인간관계. 두 사람이 서로의 DNA를 결합해 몸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 자신들과 조상들을 쏙 빼닮은 이 어리고 약한 인간은 한 동안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살 수 있고, 커서도 상당한 시간을 함께 살며 독립해서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끈끈히 묶여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자신들보다 모든 면에서 낫거나 최소한 비슷하길 바라고, 그래서 온갖 욕심을 품는다. 아이는 자라면서 그런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럽지만, 자신도 부모가 되면 같은 전철을 밟는다. 그러나 어떤 부모든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땐 그저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이기만 해도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른 아이들은 그들을 생산한 부모조차 거부감과 당혹감에 휩싸이게 하고, 남들이 겪지 않은 것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부모가 아이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긍정할 때 그들은 아이에게 불가능해서 포기할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다른 아이들 1,2>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와 그의 부모를 대변하고 대중들의 편견과 왜곡, 무지를 지우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평범하지 않은 특징들을 저자는 수평적 정체성이란 개념으로 통칭한다.

 

<부모가 다른 아이들 1>은 저자의 자기 반영적 접근이 많은 첫 장 아들(게이)을 제외하고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하는 다른 아이의 유형인 장애를 다루고 있다. 불행히도 이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예방할 수 없는 확률적인 문제이다. 발생의 변수가 너무나 많다. 양수 검사 등 현재의 태아 장애 진단법은 아이가 정상이라는 확답을 얻기 위해 아이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위험한 방법이다. 또 비용이 높아 저소득층일수록 장애아 가정 비율이 높고, 장애아라고 낙태하거나 일단 낳고 장애아면 버리는 등 다른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촉발한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잘못이 없어도 평생 스스로도 사회의 강요로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일반적인 부모-자녀 관계와 달리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려 하는 집착적이고 의무감에 불타는 양육태도를 보인다.

 

 

내가 부모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나를 시에서 유일한 특수반이 설치되어 있는 공립초등학교에 보낸 것이다. 유치원 다닐 때도 절친 중에 소아마비였던 아이가 있었고 헬렌 켈러 등의 장애를 가진 위인들의 전기들을 숱하게 읽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본 적 없었던 아이들을 보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특수반은 정상아와 장애아(문제아 포함)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라 장애아가 정규교육과정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반이었고, 일반 학급과 특수반을 오가며 학교생활을 하였다. 숱한 학부모들이 우리 학교를 장애인학교에 보내지 않고 일반학교 일반학급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 선택하였다. 내가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고, 정상인과 장애인은 분명히 다르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착하지도 약하지도 불쌍하지도 않다) 평생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어떤 면에서 나는 제이컵이 청각 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그에 따른 의미를 찾아내도록 선택받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이컵의 숙명이죠. 제이컵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제이컵이 청각 장애인이 아니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그랬다면 제이컵이 더 행복했을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행복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거나 제이컵은 그냥 내 아들일 뿐입니다. - p.150

 

오래 전 로즈(왜소증)의 치료를 위해 존스 홉킨스 병원에 간 적이 있었어요. 로즈를 데리고 승강기에 타고 있었죠. 그때 한 어머니가 그녀의 아이와 함께 승강기로 들어왔어요. 그 아이는 침을 흘리고 있었고 척 보기에도 중증 다운증후군이 분명했죠. 나는 마치 ", 우리 아이는 그럭저럭 감당이라도 되지만 당신의 아이는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겠군요"라고 말하듯이 무척 측은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녀가 정확히 똑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 p.230


자신이 준 사랑만큼 티가 나지 않는 자녀를 사랑하려면 다른 사랑보다 더 지독한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폐증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자폐 아동은 적어도 궁극적으로는 불완전하게나마 다른 사람에게 애착을 느낀다. - p.403

 

정신분열증 환자의 자기 권리 주장은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곤란한 문제를 제기한다. 환자 자신의 현재 경험보다 더 진정한 자아가, 정신분열증 증상을 보이는 자아를 제외하고 또 다른 참된 자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 p.597

 

 

살면서 장애인과 교제한 경험이 별로 없고, 그래서 막연히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일깨우는 책이 <부모와 다른 아이들 1>이다. 대표적인 부분이 정상인들이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받는 그들 특유의 배타성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는 그것을 문화라고 표현하는데 게이 문화처럼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등 장애의 유형에 따라 그들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고 유대를 형성한다. 그들은 장애는 불편하고 그래서 현대 의술로 그들을 정상인과 최대한 비슷하게 되면 좋겠다는 정상인들의 전형적인 착각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농문화를 예를 들면 같은 청각장애인이면서 부모님까지 청각장애인이 아니란 이유로 그와 그의 부모를 청각장애인의 커뮤니티에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거나, 선호하는 특정한 삶의 방식(학교나 직업)이 있다. 그리고 정상인들의 착각과 달리 그들이 고집하는 문화안에서 꽤 잘 산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 1>은 아들(게이), 청각 장애, 소인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장애(중도중복장애) 일곱 가지 주제를 다룬다. 엄청난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통해 방대한 서술을 해놓은 만큼 책이 주제들과 관련하여 미처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공와우수술은 잔존 청력을 완전히 제거한다거나 수화도 언어만큼이나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 다운증후군을 성형을 통해 외모적으로는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과 다운증후군은 남자만 생식능력이 없지 여자는 정상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다. 또 자폐증 환자의 3분의 1 이상이 1개 이상의 다른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은 정신분열증 부분이었는데, 우리가 현재 정신분열증의 범위를 너무 광범위하게 보고 있어 정의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정신분열증은 10대 후반에서 20대에 발현하여 몇 년에서 수십 년까지 잠복했다가 발병하면 치매처럼 뇌의 퇴행이 진행된다. , 완치가 불가능한 병, 따라서 정신분열증 선고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더 이상 못 하게 하는 무서운 낙인인데 약 먹고 치료하면 괜찮아지는 병으로 쉽게 생각한다.

 

 

원래 <부모와 다른 아이들 1,2>1000쪽이 조금 되지 않는 한 권짜리 책이다. 그게 자간 등 편집의 차이도 있고 원주를 옮기고 옮긴이의 추가적인 주석을 달다보니 우리말 번역본은 1600쪽이 넘어간다. 그래서 서평을 쓸 때 원서의 구성을 고려하여 서평을 하나로 쓸까 했지만 내용상 전반부와 후반부의 방향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각권 서평을 따로 쓰기로 하였다, 두 권으로 분권되었다는 점 외에 우리말 번역본만의 특징으로 한국어판 서문의 존재와 원문을 옮기는 데 있어 독특한 어휘의 사용을 들 수 있다. 건청인(비청각장애인), 이부(동복)형제, 퍼시(보지), 소인(난쟁이), 농인(귀머거리) 등 보통의 번역본에서 잘 안 쓰는 표현. 최대한 아이들의 이례적인 특징을 지칭하는 용어들에 가급적 선입견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이질적인 표현 때문에도 책이 다루는 주제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우리말 번역본상 2권인 원서의 후반부 주제는 신동, 강간, 범죄, 트랜스젠더, 아버지 다섯 가지. 그 부분에 대한 언급과 이 글에서 미처 못 한 이야기는 다음 서평에서 마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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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울 불금에 퇴근도 일찍!! 신난다!!

는 개뿔ㅠ 토요일, 일요일에 원고 마감 건 있고 일요일에 회사 시험도 봐야 하고 트랄랄라 즐겁네요♬

분신술을 쓰고 싶다 싶다 싶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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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중에 어제 드디어!! 알라딘 신간평가단 15기의 2014년 12월 신간 최종 선정이 끝났습니다. 짝짝

그!래!서!! 제가 소속된 "인문/사회/과학/예술"팀의 "잇북"을 여러분께 소개하러 나왔습니다. 와와


 

 

 

 

이번 달 저희 팀에선 총 20명 중 18명이 참여를 했습니다.(2명 어디로 갔나요?)

원래 팀원들은 그냥 개인 추천만 하면 되지만

제가 궁금해서!!! 저희 팀의 추천 결과를 모아 보았습니다(통계변태 이섬)


매달 지난 달 신간을 두권 최종 선정하지만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에서 매달 무수한 신간이 나오기도 하고

리스트 취합 결과 제가 추천 못해 속상했던 책, 저도 미처 몰랐던 괜찮은 책들이 있었기에 소개해 봅니다.




brown_and_conys_secret_date-1

 

이런 책들이 나왔습니다.

팀원들 서재 방문하고, 집계하면서 느낀 점은

1. 알라딘에서 얼마나 이섬이 우주먼지 북로거인지 깨달음

2. 이번 15기 우리 팀 대부분 문돌이일 것 같은 예감 95%

 

최종 선정 책은 표에도 표시한대로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 최종선정되었습니다.

우연히도 이번엔 둘다 사회학책이 뽑혔네요. 



brown_and_cony-16

 

며칠 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님께서

책을 안 읽고 추천할 것이면 차라리 사다리나 타라고 따끔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 기준에선 알라딘 신간평가단이 고르는 책도 추천도서로는 볼 수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알라딘 신간평가단은

인터넷 서평가의 입장에서 읽고 싶고 서평 쓰고 싶은 아직 읽지 않은 책을 고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맹점. 저희 평가단이 아무리 추천을 해도 출판사에서 서평단 거절 의사를 보이면 어쩔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신간 발매시 증정 이벤트나 서평단 운영을 하고 있지만,

출판사 여건이나 철학상 거부하는 곳도 많거든요. (최종 선정 도서 외 전체 추천 리스트를 올려드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도 이런 작업도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목차와 훑어보기로 책에 대해 내린 평가가 완독으로 뒤집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2.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독자들이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은 이유가 있다.



점점 '함께 읽기'나 '집단 지성'이 강조되는 요즘

추천의 권위성이 있는 리스트는 아니지만

책 꽤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달 그달

눈독들이며 고르고 골라 장바구니에 담은 1~5권의 리스트이니

재미 삼아 보시고 쇼핑에 참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그리고 그리고

이섬의 2014년 12월 비하인드!!! 추천 못해서 잠도 설치고 한이 맺힌 신간 1권 추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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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5-01-16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략의 역사는 저도 무척 많이 땡겼던 책입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어찌 전 5권 중에 하나도 겹치는 사람이 없을까요?

이섬 2015-01-18 14:10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막상 결과를 보니 제가 추천은 안했지만 남은 추천했을 것 같은 책도 의외로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 ^^

CREBBP 2015-01-17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섬님. 여기서도 저기서도 뵙네요 ^^. 제 경우는 아이디를 다르게 쓰는 관계로 모르실것임 ㅋㅋㅋ. 저는 소설 팀이라 소설을 가지고 비슷하게 해봤는데요. 이렇게까지 정선껏 하지는 못하고, 그냥 책 제목 적고 득표수만 세어본 후 매우 성의 없게 포스트를 했죠 네 표 이상 책이 대여섯권 되더라구요. 소설은 인문과학사회 등등에 비하면 그래도 하나로 많이 뭉쳐진다는 느낌입니다. 잘 읽었어요

이섬 2015-01-1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경영 뺀 비문학 전영역이니 혼돈의 카오스인 듯 그와중에 저희 그룹은 문학까지 고르시는 분도 계셔서 그거 다 빼니 그래도 50종 내에서 멈출 수 있었답니다. 소설팀 집계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CREBBP 2015-01-18 14:32   좋아요 0 | URL
그나마 겹쳐진 게 그래도 몇권 있는게 신기하네요.
 
성과를 지배하는 유통 마케팅의 힘 성과를 지배하는 힘 2
양승식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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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지배하는 유통 마케팅의 힘] 바로 쓰는 유통 마케팅 교과서

 

 

새해가 시작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어제의 숙취와 오락을 뒤로 하고 시무식과 새 시즌을 맞으며 각자 한해의 각오를 다진다. 연일 쏟아지는 기업과 기관들의 오너 신년사를 체크하고, 나름의 1년의 계획도 세우고, 작심삼일로 끝날지라도 공부나 금연 등의 개인미션을 행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늘 활기와 의욕이 넘치는 1, 며칠 전 위메프 인턴 사건이 제대로 얼음물을 끼얹었다. 연말부터 이어진 갑질과 미생의 이슈의 연장선이었고, 노예인턴·알바수습·열정페이 사례가 또 하나 늘은 것이었다. 그래서 새롭고 놀라울 것은 없었지만, 현직 유통맨과, 유통맨을 꿈꾸는 이들을 연초부터 크게 침울하게 만드는 뉴스였다. 그들은 유통업에서 갑의 직무를 수행했지만, 필드테스트에 떨어지자 하루아침에 곧 정규직인 인턴에서 일당 5만원 짜리 단기 알바로 전락하였다. , , 정들은 허망한 갑의 현실에 당황했고 갑은 보시다시피 우리 처지도 말이 아니라며 애써 담담하였다.

 

그러나 이런 비보가 얼마나 터지든, 유통업이 수많은 누군가의 꿈이고 직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거운 마음은 한 잔 술에 의지해서라도 얼른 털어버리고, 다시 현장을 뛰고 자격증이나 어학 공부를 틈틈이 하며 바쁜 일상과 자신의 역할을 지켜야 한다. 유통업은 산업 특성상 휴일과 밤낮이 별 의미 없기에 업무의 종류도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그래서 매력도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막막하고 막연하기도 하다. 몇몇 학과에서 관련 전공을 두고, 몇 가지 관련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직접 몸으로 구르며 일을 해봐야 익히는 게 태반이고, 유통업 내에서 어떤 일을 하냐에 따라 필요한 공부가 또 달라지는 것 같다. <성과를 지배하는 유통 마케팅의 힘>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유통 및 물류업에 발을 담그고 있고 MD가 최종 목표인 입장에서 이 책을 쓰며 유통업을 위한 마케팅서는 달라야 하며, 이 책은 유통 마케팅 교과서의 바이블을 목표로 썼다는 저자의 말이 무척 솔깃하였기 때문이다.

 

유통 시장과 유통 거래의 유형, 유통 용어, 제안서 작성법, 입찰 및 조달, 영업 마케팅 노하우와 예비 창업자를 위한 조언 등 주제에 맞게 교과서 형태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목차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책도 크라운판에 코팅지, 컬러 인쇄에 가격도 2만원 선이다. 그게 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교과서는 교과서되 읽고 바로 쓸 수 있는 실용성 강한 책으로 썼다. 업계 종사자에게 대환영인 책이다. 그러나 취업준비생이라면 책상에 놓고 공부하듯 읽을 수 있지만, 직장인 대부분은 책을 들고 다니며 출퇴근 시간 등 짬짜미 읽게 마련인데 그런 입장에선 국배판 이상의 책은 부담스럽다. 전자책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없어서 살짝 아쉬웠다. 저자는 책머리에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소개하며 유통 마케팅 전문가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요약한다. 하지만 여기서 마케팅은 마케팅과 영업관리 직무를 구분하는 현재 HR 기준에서의 마케팅이 아니라 포괄적인 의미의 마케팅 혹은 마케팅=영업이라는 과거 관점의 마케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가장 도움을 많이 얻을 독자는 벤더이다. 처음 책을 읽으면서 영업 교과서인지 알았을 정도이다. 그만큼 저자가 오랫동안 벤더로서 영업을 많이 한 사람인데, 이런 것을 알려줘도 되나 싶을 만큼 개인적인 영업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 물론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MD와 바이어, 매장 직원 등 각각의 이해당사자를 성별과 성격에 따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그들의 사생활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지 등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요컨대, 이 책은 유통업의 대략의 얼개와 기본 용어를 단 시간에 파악하고 영업을 중심으로 유통업을 파악하고 유통업계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유통 마케팅에 관심 있지만 벤더는 아니라면, 저자의 논의를 역으로 접근해 벤더의 전략적 접근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기 좋은 책이니 시간 낭비는 아닐 것이다. <성과를 지배하는 유통 마케팅의 힘>은 스타리치북스의 경영서 시리즈 성과를 지배하는 힘두 번째 책인데, 분량과 내용도 적당하고 참 책이 괜찮아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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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명세 지음 / 청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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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신부] 별 것 아닌데 별 것인 소설

 

 

훌륭하진 않지만 이명세를 이해하는 열쇠

이명세 감독의 유일한 소설, 영화와 함께 보길 권함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처음 그를 알았다. 어떤 영화감독과도 겹치지 않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이었다. 그 후 <형사>와 <M>이 나왔는데 단 한 번도 그가 각본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감독의 관심도 영상미학과 이미지텔링의 강화에 있지 스토리텔링이 결코 아닐 것 같았다. 그 정점이 <M>이었다. 그 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작품이 없고 최근에야 새 작품의 캐스팅이 진행 중이다. 그런 중에 그가 1990년에 만들었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1991년 소설화도 하였는데, 이명세의 유일한 소설이다. 파도에서 나온 이 책은 현재 공공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거나 구하더라도 책의 상태가 열악해 대출이나 열람이 힘들다. 알아서 헌책방에서 구해야 하는 책이었는데 리메이크 영화 개봉 덕에 작년 청조사에서 소설이 복간되었다.

 

소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이명세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데뷔작인 <개그맨>부터 <지독한 사랑>까지의 그의 초기 영화를 읽는 키워드를 꼽자면 배창호, 코미디,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처음 이명세는 각본에 대단히 노력과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감독이었다. 그 정점이 지금도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명세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고 영화제에서 각본상도 받은 <첫사랑>이다. 사실 우리 세대에게 그 시대의 이명세 영화는 평론으로만 접한 낯선 대상이었다. 우리 세대는 <쉬리>로 상징되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기에 한국영화에 본격 입문하였다. 그 때가 초등학생이거나 갓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명세의 모든 영화들이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편인데 유치원 다니고 초등학교 다니는 꼬물이들에게 그 이름을 알려주는 이가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오래된 의문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의문은 “사람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별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사랑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랑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사랑이란 단어의 홍수 속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은 내 어린 날의 소망의 씨앗이다. - 작가의 말 中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주인공으로 나와 그럭저럭 흥행한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작품이다. 너무 아무 것도 아니라 제작하려는 회사가 없었던 영화고, 실제로도 극찬할 만큼 빼어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명세 감독이 데뷔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얘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봐야하는 작품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개봉할 무렵 그는 30대 중반의 유부남이었다. 이 즈음에서 결혼의 실상과 사랑의 본질을 꼭 논해보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때도 충분히 젊은 나이여서 그런지, 소설도 영화도 보다가 ‘아! 오빠! 쫌!’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다 넘어지게 만드는(손발이 안 펴져!) 구석이 많다. 그게 매력인 작품이다. 그 나이 때 누구나 하는 귀여운 생각과 행동, 고민들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출판사 말단 직원으로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를 꿈꾸며 소설쓰기에 매달리는 영민과 결혼 때문에 회사를 그만 두고 전업주부로 살며 영민을 내조하는 미영, 스물일곱 동갑내기 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주요 설정과 사건, 큰 줄거리는 소설과 영화가 같으나 다른 구석도 있다. 소설의 경우 영민과 미영이 초등학교 때부터 안 사이로, 대학 시절 강의실에서 우연히 만나 영민의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는 얘기가 추가된다. 그래서 영민의 “사랑해, 미영”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내뱉은 끝에 입에 붙은 말과 감정인지 둘의 인연이 얼마나 각별한 지를 강조한 것이 소설 <나의 사랑과 나의 신부>다. 그런데 묘사에 있어서는 소설이 우월하다. 하지만 소설 속의 대사와 독백들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재밌게 표현되고 중간 중간 광고처럼 찍은 독특한 컷들이라든가 전체적으로 한편의 연극처럼 만들어 놓은 실험성은 소설에서 구현할 수 없는 영화만의 강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그곳에서 그렇게 만나도록 운명 지어진 사랑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잇닿을 듯 끊어질 듯하다 다시 만날 것을 예감하는 그대

철천지의 사랑, 나의 사랑 - p.13

 

(아, 저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쁘고, 깨물어주고 싶고, 얄밉소, 깜찍한 얼굴. 아……, 난 미영이를 사랑해.)

(틀림없어. 헤어지자는 얘기야.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졸라대도 지금껏 키스 한 번 못하게 했으니. 아까도 내가 너무 고집을 부렸어. 내가 시간을 잘못 들은 거 같은데……. 할 수 없지. 헤어지자면 헤어지는 거지 뭐. 그런데 어떡하지. 난 영민씰 좋아하는데…….) - p.29

 

“콘돔 하나 주세요.”

딴에는 제법 용기를 내어 한 말인데 약사는 마치 소화제나 감기약 내주듯 아무렇지 않게 콘돔을 건네주었다. 괜히 주눅이 들었나 싶어 영민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 p.39

 

연애할 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일들이 결혼한 지금에 와선 이렇게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걸 미영은 처음 알았다. 혹시라도 내가 작가의 아내가 되기엔 소양이 부족한 게 아닐까하는 자격지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이름으로 모든 게 극복되리라 믿었다. - p.78

 

문득 혼자 앉아 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그 앞에 도로 앉았다. 영민은 남자의 술잔에 맥주를 한잔 따라 주욱 들이켰다. "이봐요, 형씨. 둘이 사랑해서 결혼했으면 행복하게 잘살아야 하는데 왜 자꾸 싸우게 되는 겁니까, 응?" 영민은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듯 진지하게 물었다. 남자는 게슴츠레한 눈을 반쯤 내려뜨며 말했다. “나도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앉아 있소.” - p.130

 

 

또 23년의 세월을 거쳐 복간되면서 소설 자체의 설정이 달라진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미영이 집들이 준비를 하며 10만원 넘게 쓰는 게 지금 독자들에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질 것 같은지 20만원으로 고친다거나, 승희가 읊는 자작시를 2010년에 발표한 문정희 시인의 <비망록>으로 바꿔 놓았다. 2014년판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아쉬웠던 점이, 리메이크한 감독은 ‘조금’이라고 말하지만 원작을 아는 관객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설정을 많이 바꾼 것이었다. 원작을 접하기 전에는 그 감독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영민은 1990년의 이명세 분신이다.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감독의 젊은 시절 사랑 이야기니까 정서도 시대도 너무 다를 것이라는 편견. 그런데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명세 영상 아포리즘’이라는 콘셉트로 기획한 아주 얇은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 자체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금세 읽는다. 그러나 기왕이면 꼭 영화를 보고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과거엔 한국영상자료원이나 가야 볼 수 있었으나, 작년 새로 DVD가 제작되었고 전국 공공도서관에도 속속 배포되는 중이다. 영화도 소설도 단순하고 가벼운데 같이 볼 때 서로의 빈틈을 채우고 시너지 효과와 여운까지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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