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
수잔 콜린스 글, 마이크 레스터 그림, 노경실 옮김 / 두레아이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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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 게임보다 소중한 나와 내 어린 날

 

 

 

전자게임에 스스로는 별 취미가 없지만,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친동생이 게임광이자 온라인게임개발자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언어와 버그와 씨름해도, 그 때문에 또래 애들처럼 연애에도 관심 없고 별일 없으면 주말엔 시체처럼 자는데도 행복하다고 한다. 황금 같은 자유시간도 자기 회사 남의 회사 가릴 것 없이 게임 테스터 하거나 게임 관련 공부하느라 다 보낸다.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기까지도 하니 항상 응원하지만 게임광의 형제로 살면서, 때론 전자기기 혹은 전자게임에 동생을 뺏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의 주인공 찰리의 여동생의 기분이 이랬을까.

 

우리 남매는 각각 초등학교 고학년, 저학년 때야 펜티엄PC를 접했다. 혁명 같은 윈도우95가 출시되고 2년 정도 지나서야 가정 내 컴퓨터 보유가 보편화되고, 일단 서울만이라도 전체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되었던 것 같다. PC게임은 1992년에 처음 해보았다. 은행원이던 고모부께서 신혼집에 386을 들여놓았는데 도스 명령어를 몰라서 고모부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우리 세대는 사실 어린이 때는 PC게임보다는 팩게임과 게임보이 등의 전자게임기를 즐겼고 PC방보다는 오락실이 더 익숙하다. 전지와 OHP, 파워포인트 PT를 10대 시절 다 경험하였다. 심심할 때 그런 얘기 몇 개 조카에게 풀어놓으면 백악기 공룡 보듯 표정을 지으며 안 놀아 주려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조카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24시간 뽀로로를 볼 수 있고, 부모님의 휴대폰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 글씨를 쓰는 것보다 컴퓨터 타자나 폰 문자 쓰기가 더 빠른 걸 보고 기함을 했다. 쥬니버 등을 통해 5, 6세부터 본격 네티즌 활동을 하니 초등학생 방학이 무섭다는 소리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요즘 아이들의 시력 문제이다. 인간의 시력은 생후 4개월부터 발달하기 시작해 만 7, 8세에 완성한다. 만 7, 8세 정도에 1.2에서 1.5 정도로 시력의 정점을 찍은 후 노화와 환경 등의 영향으로 점점 퇴화하는데 IT강국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그 이전에 시력 발달이 멈추고 안경 신세를 지는 애들이 너무나 많다. 가장 큰 원인이 강한 빛과 색감의 모니터 화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도 이전 세대보다 눈 나쁜 이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지금 세대는 더 어릴 적부터 그걸 경험하니 훨씬 심하다. 

 

   

그래서 바글바글한 안경쟁이 어린이를 볼 때마다 부모 편하자고, 선생 편하자고, 기술의 이기를 마음껏 써보자고 아이들을 너무 전자기기로 몰아넣지 않았나 싶어져 어른으로서 많이 미안하다. 찰리도 그런 21세기의 전형적인 어린이다. 컴퓨터와 악당들을 물리치는 게임 같은 것들은 좋아하지만 책 읽기나 공놀이, 동생과 놀기 등은 아주 싫어한다. 곧 핏발이라도 설 기세로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컴퓨터 모니터에 빨려들어 갈듯 게임하고 또 게임한다. 찰리가 컴퓨터에서 스스로 내려온 건 심한 청둥 번개로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어서였다. 컴퓨터가 작동을 안 하자 TV를 찾고, TV도 마찬가지니까 건전지로 움직이는 전자 장난감을 찾는다. 죄다 소용이 없다. 그렇게 수많은 물건들의 비작동에 좌절하고 나서야 겨우 여동생 제인을 본다.

 

 

그래도 제인은 찰리보다 더 '신제품' 인간임에도 컴퓨터나 기계보다 고전적 장난감과 놀이에 흥미를 보인다. 인형놀이나 숨바꼭질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제인 역시 건전지가 들어가 저절로 움직이고 소리도 내는 장난감들을 꽤나 많이 갖고 있지만 말이다. 처음 찰리에게 제인은 구세주 같은 건전지 대여 창구로 보였지만, 제인이 호락호락하질 않자 금세 실망한다. 그래도 찰리가 천성이 못된 것은 아니다 보니 금방 제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간다. 동생과 함께 놀며 즐거웠던 기억들 말이다. 그래서 사과하는 의미로 제인에게 숨바꼭질을 제안하고, 숨바꼭질을 기점으로 제인과 별별 놀이를 다한다.

 

 

생각보다 장편소설 작가 중에 동화책 집필에 대한 욕망을 품는 이가 많다. 가장 큰 동기는 단연 자신의 아이 때문이다. 톨킨은 자식을 위해 <블리스 씨 이야기>를 쓰고 그렸고, 박완서는 손주를 위해 여러 편의 동화를 썼다.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을 쓴 수잔 콜린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헝거게임> 3부작과 <The Underland Chronics(2004-2009/미번역)> 5부작을 통해 대 장편 작가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뽐낸 작가다. 그런 그녀가 2005년에 그림책을 낸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 책이 이 책이다. 여러 컴퓨터 게임과 전기장난감에 풀 빠진 아들과 막 걸음마를 뗀 어린 딸을 보며 영감을 얻어 쓴 책이 첫 그림책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이다.

 

 

마이크 레스터의 익살스러운 삽화는 아동서에 최적화된 본새지만 수잔 콜린스의 글은 꽤나 투박한 편이다. 당장 원제도 ‘When Charlie McButton Lost Power’이다. 영어책에서 흔히 보는 직설적인 제목이긴 하지만, 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수많은 영어 동화들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그리 썩 좋은 제목 같지는 않아 보인다. 제목만 놓고 보면 두번째 그림책인 <Year of The Jungle(2013/미번역)>이 더 시선을 끈다. 그 때문인지 이번에 판권을 사 한국어판을 낸 두레아이들이 원제를 살릴지 다른 제목을 붙일지 무척 고민한 끝에 최종 제목이 <게임을 안 해도 심심하지 않아>로 결정되었다. 또 책의 두께를 감안할 때, 예상 외로 문장의 호흡도 길고 문장 수도 많은 편이다. 출판사가 권장 연령을 8세 이상으로 둔 것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책의 내용을 즐기지만,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고르고 읽히거나 읽어주는 어른의 입장에선 새 그림책을 발견할 때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책에는 따로 작가의 말이 없어 작품의 본의를 알 수는 없지만, 훈육 차원에서 아이와 토론 감으로 쓸 그림책으로 접근하면 제목도 내용도 적당하다. 중견 동화작가인 노경실은 한국어판 추천사에서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자 감독이 되어야 함을 깨우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수잔 콜린스는 찰리의 이야기를 통해 무조건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게임만큼 재밌고 즐거운 것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찰리는 전기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을 돌아본다. 툭하면 빽빽거리는 여동생이지만, 제인이 아기였을 때 얼마나 예뻐했고 제인과 노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기억한다. 컴퓨터 게임 말고도 온몸으로 움직이며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얼마나 많은지도 기억한다. 프로그램화된 컴퓨터 게임만 게임이 아니라 보드 게임 등 아날로그 게임도 수없이 많다는 것도 곧 깨달을 것이다. 시종 현란한 사운드와 그래픽으로 구현되는 전자 게임은 정말 재밌다. 이전 세대는 8비트 픽셀의 조악하고 단순한 게임에도 열광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어린 날이 더 소중하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고, 너무 일찍 침침하기엔 아깝고 예쁜 눈이다. 그래서 게임‘만’ 있는 일상이 아니라 게임‘도’ 있는 일상이면 좋겠다. 눈에 입에 코에 자연도 한껏 담으며 말이다. 그걸 찰리처럼 정전을 겪기 전에 알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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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와 훈이
김우열 글, 이정수 그림 / 윤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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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와 훈이] ‘함께’, 무적의 주문

“나랑 같이 갈래? 나랑 다니면...”

‘함께’라는 것이 얼마나 무적의 주문인지

<노마와 훈이>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고양이(훈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다른 고양이(노마)

노마와 함께 떠나는 세상 모험, 함께라서 행복한 두 고양이처럼

처음 출판 브랜드를 만들고 처음 동화책을 만들겠다는 목소리에

한 손 두 손 작은 힘을 모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노마와 훈이, 만든 이와 읽는 이 모두 함께 자라는 책

그 공존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련다 만나서 고맙습니다

<노마와 훈이>는 개인적으로 뜻 깊은 책이다. 책이 만들어져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첫 책이고,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첫 책이기 때문이다. 글 작가, 그림 작가 모두 처음 동화책을 만들어봐서 공부하면서 완성해간 책이었다. 일단 출판 브랜드를 만들긴 했지만, 정식으로 시장 판매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안되면 투자자들끼리 서로의 이름이 새겨진 더미북을 만들고 나눠 레어 아이템으로 갖고 있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저지르고 보았다. 7개월이 걸렸고 15cm*15cm에 최소한의 구색만 맞춘 동화책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ISBN도 받고 도서관과 서점에 정식으로 납품하게 되었다. 6500, 같은 크기의 영아용 보드북과 같거나 조금 싸니 나쁘지 않는 가격이다.

 

  

글을 쓴 김우열은 <힘 있는 글쓰기>, <콰이어트>, <시크릿>등을 번역한 영어 전문 번역가이다. 번역가 지망생과 초보 번역가들 사이에서 번역 교육자로도 유명하고 <채식의 유혹>이란 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가 쓴 첫 동화 <노마와 훈이>는 고양이 이야기다. 실제로 고양이 두 마리의 집사기도 한 그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작가의 말에서 원래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고백을 보고 조금 놀랐다. <노마와 훈이>는 그런 책이다. 책의 주인공인 노마와 훈이가 길을 헤매며 세상을 겪고 인간을 배우듯, 만든 이와 읽는 이도 고양이를 배우는 책. 그래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고 함께 성장하는 책, 그러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노란 줄무늬 고양이 노마는 길고양이다. 본인은 이 마을 골목대장이라고 생각한다. 그 날도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삶을 즐기고 있는데 집고양이로 살다 버림받은 짙은 회색 고양이 훈이를 만난다. 롱다리 훈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큰 눈을 꿈벅이며 떨고 있었다. 그런 훈이에게 노마는 손을 내민다. 이제부터 자기와 함께 하자고 자기가 친구가 되어 주겠노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집에서 살 땐 몰랐던 세상의 쓴맛(?)들을 노마에게 배운다. 길고양이가 꼴 보기 싫다고 문 앞에 쥐약 탄 음식을 놓는 집, 아무것도 몰라서 너무나 천진하게 고양이를 괴롭히는 무서운 아이들 등. 하지만 노마와 함께 있어 훈이는 힘이 나고 더 이상 무섭지 않다.

  

 

<노마와 훈이>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어 매력적인 동화이다, 특별하지는 않는 스토리텔링이지만 교훈적 기제가 강하다. 책 뒷면에 삽화를 절반으로 줄이고 영문으로 본문을 다시 실어 영어동화를 읽고 싶거나 영어공부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 반길만 하다.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김정수는 이 책을 시작으로 요즘 한창 어린이 책엔 어떤 그림이 좋을지 이런 그림 저런 그림을 그리며 고민하고 있다. 일단 다음 그림책도 정해진 상태, 그림 작가가 키웠던 햄스터 총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총이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노마와 훈이> 삽화 속에 숨어 있는 총이를 찾는 것도 이 책의 또 한 가지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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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과학도서 출판그룹 사이언스북스입니다. ^^


이번에 반비에서 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마크 뷰캐넌 신간, 내일의 경제』가 출간되었습니다.

『사회적 원자』로 국내에 복잡계 과학 붐을 일으킨 마크 뷰캐넌의 신간으로

물리학 및 복잡계 과학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








『내일의 경제』


복잡계 과학이 다시 만드는 경제학의 미래




복잡계 과학의 전도사 마크 뷰캐넌이 예측하는 내일의 경제 날씨

경제학이여, 평형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전작인 『사회적 원자』에서 복잡계 과학의 눈으로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파헤쳤던 마크 뷰캐넌은 이번 신작 『내일의 경제』에서 그 시야를 경제 현상으로 좁혀 시장과 다양한 인간의 경제 행위들을 조망한다. 사회 현상을 단순화시키고, 통계로 변환하여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통찰을 제시한 『사회적 원자』은 삼성 경제 연구소(SERI)의 CEO 추천 도서로 선정되며 복잡계 과학 입문서로서 국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그가 운영 중인 <금융 물리학(http://physicsoffinance.blogspot.kr)> 블로그와 개인 블로그에서도 기존 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중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복잡계 경제학의 구루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크 뷰캐넌의 최신 성과들이 바로 이 책 『내일의 경제』에 집약되어 있다.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다른 복잡계와 달리 경제와 시장이 홀로 본질적으로 안정되고 어떤 내부적인 변화무쌍함도 없다는 얼빠진 발상을 극복하기 전에는 결코 경제와 시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사회 경제적인 기상에 대해 배우고, 그 폭풍을 분류하며, 폭풍을 예방하는 방법 또는 폭풍이 오는 것에 맞서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다. 앞으로 탐구해 나가겠지만, 이것을 하는 데 또는 적어도 괜찮게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과 발상은 이미 다른 과학 분야에, 특히 물리학에 존재한다. “금융 물리학”에 대한 발상은 전혀 낯설지 않고 완벽하게 자연스러우며, 아마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본문에서



***



▶ 『내일의 경제』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내일의 경제』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 2014년 10월 16일(목)부터 10월 26일(일)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입니다.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10월31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댓글로 적어야합니다.

10월31일 이후까지 확인이 안되면 선정이 자동취소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11월 1일(토)부터 11월11일(화)까지 10일간입니다.


마지막, 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0일간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페이퍼 엘레지』 서평단 발표 포스팅에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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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 사회 - 소비자 3.0 시대의 행동 지침서
마크 엘우드 지음, 원종민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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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사회] 세일과 인간, 그 유착의 르포

 

 

 

 

“255,480...”, 신용카드 이용내역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빴던 한 달이었다. 집계 마감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결제금액을 확인하고 아쉬웠다. 휴대폰 바꾸면서 만든 신용카드, 30만원 이상 사용시 통신비 9천원 할인 말고는 별다른 혜택이 없어서 기술적으로 30여만원만 딱 쓰는 카드인데 이달엔 44,520원이 모자라 혜택이 날아갔다. 상식적이라면 지출을 줄였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쉽다. 쿠폰 때문에 안 먹어본 음식에 도전해보고, 할인 때문에 일부러 돈을 쓰는 비합리적인 소비를 아주 기꺼이 즐기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인 마크 엘우드는 작년 흥미로운 르포 책을 출간하였다. ‘Bargain Fever’, 할인에 열광하는 소비자들과 세일의 법칙을 분석한 책이다. 속고 속이는 온갖 술수와 비상식과 비합리가 난무하는 흥미진진한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할인사회>란 제목으로 번역한 것은 최근 우리 출판계의 ○○사회(사회를 말하는 사회)’ 제목 열풍 때문일 것으로 본다. 처음북스 외에 다른 출판사들도 여럿 이렇게 원제를 바꿔 ○○사회란 제목으로 출간하는 것을 보면 현재 이 제목이 셀링포인트가 있는 것이 사실인가 보다. 저자는 현대 소비행태가 3단계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본다, 소비 1.0은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커 생산자가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마라고 가격결정권을 쥐고 있던, 산업혁명 직후 10년 동안의 시기이다. 흔히 생각하는 대공황도 넘어 정작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소비2.0은 기본 마케팅의 황금시대로 40년 이상 계속되었다. 소비자를 자극하는 감각적인 광고문구와 보통의 홍보기법이 통하던, 교과서대로 소비자를 잡을 수 있는 시기였다. 미친 할인의 소비 3.0 시대는 새천년에 접어들어서이다. 소셜커머스, 쿠폰이 난무해도 소비자를 잡기 힘든 시대, 생산자에서 상점으로, 상점에서 소비자로 권력이 이양된 것이다.

 

 

20세기 이후부터 흥정은 상업에서 일어난 패러다임 변환의 가장 널리 알려진 증거라고 볼 수 있다. ‘50퍼센트 할인이라고 적혀 있는 문구는 지금이 구매자에게 최적의 시기라는 사실과 더 이상 제가격을 내고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왜 흥정이 빈곤이 아닌 지식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리고 할인을 찾는 것이 왜 수치스러운 주홍글씨가 아닌 자랑스러운 훈장인지 설명한다.

왜 할인은 매우 상식적인 구매자에게도 효과가 좋은가?

판매자들은 힘이 약해짐에 따라 조금의 지배권이라도 되찾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울 것인가?

-  pp.19~20

 

 

우리가 쇼핑을 사랑하고 할인이란 글자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전적으로 뇌 때문이다. 섹스와 식이, 마약복용처럼 쇼핑을 하면 우리 뇌에서 도파민이 마부 분비된다. 그리고 할인 사실을 인지했을 때 쇼핑에 있어 도파민 분비가 가장 절정에 달한다. 다만 같은 할인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다른 것은 가격에 대한 기대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가격은 생물학적으로 쇼핑의 흥분을 억제하는 거의 유일한 요인이다. 그래서 1980년대에 가격 컨설턴트란 직업이 생겼다. 학자들이 프라이싱 자체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이론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경경제학이란 영역도 태동하였다. 신경경제학적 관점에서 소비자는 본능적으로 손실회피 성향에 따른 금전 손실에 대한 괴로움이 있으며, 돈의 가치를 절대적인 액면가가 아닌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받아들이며, 거래효용을 따져 구매한다. 이에 기반을 둔, 99%에 먹히는 가격책정의 다섯 가지 요령이 있다.

 

 

1. 제조비가 아닌 소비자와 소비자가 제품에 매기는 가치를 파악해 가격을 책정하라

2. 골디락스 프라이싱: 공략제품을 비슷한 사양의 두 제품 사이에 끼워 넣어 두 제품보다 가격과 품질 면에서 더 좋은 상품인 것처럼 부각시켜라

3. 가격 옆에 할인! 세일! 대박세일!’이란 문구를 같이 붙여라

4. 세일 사인은 빨간색으로 해라

5. 숫자 이론: 9로 끝나는 가격은 저가제품, 0으로 끝나는 가격은 귀중품, 78로 끝나는 제품은 막바지 정리세일품을 의미

  

 

읽으면서 공감되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재밌는 것은 이 다섯 가지 요령은 프라이싱의 전형적인 고전기법인 동시에 아직까지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냥 수많은 통계가 입증했기에 쓰고 있다. 여기까지가 책의 첫 장의 내용이다. 그 후 펼쳐지는 본격적인 할인사회의 풍경들은 더욱 눈을 뗄 수 없이 흥미진진하다. 스탁파일링이나 그루포노믹스, 그루폰 불안증이 무엇인지 쿠폰 브로커 등의 할인열병(Bargain Fever;역자는 할인열풍으로 번역)이 낳은 창조경제 사례들, 그에 저항하는 도도한 VIP산업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글쎄, 출판사의 소개처럼 올바른 소비의 길로 소비자들을 인도하는 소비지침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 적을 알고 나를 알고 매대로 뛰어들 수 있으니 그렇게 볼 구석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보다 이 책의 강점은 통속대중소설보다 더 쭉쭉 읽히는 사회과학서란 점이고 가장 소득은 할인에 사로잡힌 소비가 꼭 이상한 것만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이라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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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한국 자본주의 1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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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바르게 알아야 해법을 찾는다

  

경제에서 사람은 노동이고 돈은 자본이다. 경제는 노동과 자본이 결합해서 생산을 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이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노동과 자본이 분배의 문제로 대립하고,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고 억압해 온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다.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무엇보다도 자본이 정의로워야 한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자본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칼이 사람을 베는 것이 아니라 칼을 쥔 사람이 베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정의롭게 작동하려면, 노동으로 삶을 꾸리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민주적인 정치 절차를 통해 자본가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그것부터 해봐야 한다. - 후기 中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전 세계적 고민이 계속 되어오고 있다. 기세등등해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보다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질기며, 자본주의는 종말의 대상이 아니라 고쳐서 다시 쓸 대상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이러한 세계 경제 상황 하에서 우리가 당면한 한국 경제의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다. 개혁을 외치고 정권을 교체하며 한국 경제를 망친 자와 살릴 자를 찾아왔다. 현재 핫한 이론과 처방들을 신속하게 가져와 적용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호들갑과 책임 미루기만 가득해 시끄러울 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거나 더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 경제는 모르면서 애먼 외국에만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 한국 경제, 한국 자본주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어떤 답도 얻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기획 및 구상에 1년, 집필에 3년 해서 꼬박 4년에 걸쳐 쓴 책이라 하였다. 전공서를 보는 듯한 두툼한 두께(700페이지 이상)에 주석도 700개가 넘어 간다. 가장 놀랐던 것은 장하준 교수의 ‘첫 책’이란 점이었다. 그만큼 단단히 작정하고 쓴 책이다. 때를 기다렸다고 하였다. 작가는 우리나라가 계획경제 기조를 완전히 버리고 완전 자본주의로 돌아선 것은 1994년에 와서라고 하였다. 20년 정도 되었으니 비로소 한국 자본주의의 면면들을 조목조목 따져볼 때가 되지 않을까 용단을 내린 듯싶다. 또한 안철수 캠프 참여 이후로 더욱 불거진 세간의 질문 공세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경제적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던 차였다. 그는 김대중, 손학규, 안철수의 싱크탱크를 자처했고, 많은 대중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표적인 이 시대의 ‘실천하는 지식인’인 동시에 기업저격수 혹은 신자유주의와 외국투기자본의 앞잡이로 불렸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자본주의>를 통해 독자는 저자에 대한 궁금증을 거의 풀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저자는 정치적으로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로 볼 수 있고 책 출간 이후 가진 인터뷰들에서 정치인을 할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케인지언이라기보다는 주류경제학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되 정의롭고 정상적인 시장의 회복을 고민하는 개혁적 경제학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요즘 국제사회에서 핫한 피케티의 자본세 도입이나 기타 정부 규제나 각종 사회주의적 기제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해법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초과 내부유보세를 통한 기업 자금 흐름의 정상화가 저자가 가장 꼽는 한국 자본주의의 난항 타개 해법이고, 사회민주주의의 경제정책모델들을 대안까진 아니더라도 참고 정도는 괜찮다고 말한다. 이 첫 책을 통해 저자가 쓰고 싶고 써야 했던 글은 모두 표현했다고 본다.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책은 아니지만, 저자의 주장에 갑론을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례없는 전 지구적인 정책 대응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 6년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세계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뚜렷한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경기 부양책이나 부분적인 금융 규제의 개혁으로 극복될 수 있는 일시적인 경기순환상의 침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이 금융 위기를 통해서 현실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대안 체제의 모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정도로 자본주의는 전례 없이 심각한 체제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 p.19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일부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견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금융 위기를 계기로 노출된 문제들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자본주의로 진화해 나갈 방향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p.265

선택은 ‘자본주의 대안 찾기’ 아니면 ‘자본주의 어떤 고쳐 쓰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p.405

 

최근 출판·언론계에 조용히 유행 타는 단어가 ‘톺다’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 장하성의 글쓰기는 이 단어가 몹시 어울린다. 저자는 이 책을 3부로 구성하여 한국 자본주의를 톺아보고, 따져 묻고, 고쳐 쓰고 있다. 두께 때문에 지레 겁먹기 쉬운 책이나 글씨 크기가 크고 특별한 경제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신문 기사 읽는 정도 수준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읽다가 앞 내용을 잊어버린 독자를 위한 배려인 건지 후반부로 가면서 동어반복이 나타나는데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글자 크기도 좀 더 줄이고 반양장으로 갔으면 100쪽 이상 적고 휴대하며 들고 다니기 편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읽어보았지만 역시 책상에 앉아 자분자분 읽거나 침대 맡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읽기 좋지,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읽기는 대단히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규제나 신자유주의가 넘쳐서가 아니라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공정한 경쟁조차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p.138

한국에 투자를 한 외국인을 투기꾼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돈을 벌고 떠나면 국부가 유출된다는 주장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애국적이 아니라 오히려 망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p.297

지금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고 회의론이 제기된 가장 큰 이유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해서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다. - p.418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에서의 정의란 첫째,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하는 분배의 정의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p.426

 

글쓰기에 욕심 있는 경제경영서 저자 중엔 우화와 비유로 푸는 것에 집착하는 이가 많다. 클리셰 작법이기도 하고, 그나마 일반 대중을 배려하는 저자들이 가장 만만하게 선택하는 방법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선 중후반부에 실려 있는 ‘한마을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가 우스갯소리로 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재밌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각자 판단해보길 바란다. 학부에서 경제학 공부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론과 테크닉 숙지에 정신없어 정작 한국경제사나 한국자본주의론은 배울 엄두를 못 내고 학과에서도 전공보다 교양 강의로 개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 듣는 기분으로 잠깐이나마 학생 기분 내며 즐겁고 심각하게 읽었다. 

이 책을 최장집 교수가 추천해서 관심을 갖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저자가 후반부에 경제학은 원래 정치경제학으로 출발한, 정치학과 한 몸인 학문이라는 환기하고 강조한다. 그래서 현상의 본질보다 이념적 기제로 접근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는 틀렸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몰이해했던 게 문제이고 위정자의 이율배반적인 정책기조가 문제이다. 박정희의 국가주도 계획경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신자유주의에 충실했던 김대중,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등 곰곰이 따져보면 한국 자본주의는 대통령들의 면면만 봐도 이상하다. 이번 출간이 우리 경제와 특수성을 바로 보고 정의경제를 고민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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