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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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으라차차 내 100년, 둥근 지구는 거들 뿐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알란 할배만큼 이 동요의 가사를 충실히 지킨 삶을 산 사람이 있을까. 99세 때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를 잡아먹은 여우에게 복수한답시고 사제 폭탄을 설치했다가 집 전체를 날려 먹는 바람에 사회복지사의 권고로 지역 양로원행 신세가 된 알란 할아버지는 이제는 죽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100세 생일 날 창문 밖으로 떨어진다. 이젠 아무리 애써도 오줌이 슬리퍼 너머로 발사되지 않는 가련한 신세지만, 2층에서 떨어져도 잠시 충격이 있었을 뿐 아무렇지 않으니 늙은 육신을 이끌고 천천히 도망간다. 무작정 버스 터미널에 가 50크로나 어치 버스표를 산다(마음 같아선 수중의 전 재산 전부를 털어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으나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므로 600크로나는 다음에 쓰기로 한다). 버스 시간 다 되었는데 다짜고짜 큰 여행 가방을 맡기고 간 양아치 젊은이 때문에 잠시 도망 여정의 위기가 있었지만, 가방 주인이 어떻게 되든 나는 버스를 제때 타련다 정신으로 버스에 오르고, 얼떨결에 도둑이 된다.

 

 

50크로나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허허벌판의 한 폐역이었다. 그곳엔 60대 노인 율리우스가 역사를 개조해서 살고 있었고, 처음엔 경계했으나 적적한 일상에 말동무가 생긴 것 같아 반긴다. 그리고 큰 여행가방에 5000만 크로나가 있었고, 가방을 찾으러 온 양아치 젊은이가 무서워 일단 때려눕힌 후 냉동고에 잠시 둔다는 게 깜박하는 바람에 밤새 가둬놓아 얼어 죽게 만든다. 알란 할배는 졸지에 100세 기념 도망자 겸 도둑 겸 살인자가 되고, 일단 율리우스와 5000만 크로나를 반띵하기로 하면서 할배의 본격적인 좌충우돌 모험이 시작된다. 그의 생일과 실종에 온 지역이 주목할 만큼 ‘100세’ 존재감은 대단하다. 독자는 이 100세 할배의 모험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는 데서 놀라고, 이 모험은 그의 과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란 점에서 놀란다. 소설은 할배의 도망과 모험이 펼쳐지는 2005년과 할배의 유년 시절부터 양로원 가기 직전까지의 지난 삶을 교차하며 보여 준다.

   

 

<포레스트 검프>보다 더 판이 크고 <그리스인 조르바> 뺨 때리는 자유영혼을 가진 알란 할배이다. 초등학교 3학년 중퇴 학력의 인간이 스웨덴, 스페인, 미국, 중국, 히말라야, 이란, 소련, 북한, 발리, 프랑스 등을 종횡무진하며 세계사의 주요사건을 경험한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임에도 500쪽 넘는 분량을 손가락에 침도 안 바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써내려가는 작가의 글재주에 부지불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더러는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이 실제 역사 사건과 마구 섞여 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럴 수도 있겠다며 왠지 모르게 수긍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된다. 스웨덴 인구 9명 중 1명 이상 읽었다는 슈퍼베스트셀러, 무려 데뷔소설인데도 밑도 끝도 없는 현란한 스토리텔링을 보며 인기의 이유를 충분히 알 만 했고 앞으로의 작가 행보가 무척 궁금해진다. 책에서 한국전쟁도 언급되는데 이런 소설을 프랑스어 중역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스웨덴어 번역가가 있다고는 하는데 말이다). 중역이라 아쉬울 뿐, 임호경의 번역문체는 가독성도 좋고 위트 있다.

   

 

일찍 부모님을 여위었어도 가방끈이 짧아도 고자가 되었어도 알란은 아무렇지 않다. 그의 대책 없는 낙천성과 상당한 백치미, 유일하게 관심 있고 잘하는 폭약 제조 실력 덕분에 60년 이상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여러 나라의 보배로 활약하게 될지 알란은 예측했을까. 그런 것도 알란에게 의미 없다. 오늘 살아 있고, 밥과 술만 있다면 그만이고 자신이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한다. 머리 아파서 ‘정치’는 질색이라 어떤 이념에도 동조하진 않지만, 천성 때문에 앞뒤분간 안 하고 유쾌하게 살다보니 얼떨결에 파시스트의 편에 서기도 하고 냉전의 중심에서 이중첩자로 활약하기도 하며, 오만 나라의 우두머리들과 술잔 기울이는 막역지기가 된다. 믿을 수 없지만 정말이다. 이쯤 되면 그가 도덕이나 상식이라든가 등의 세속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초월적이고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성적인 독자에겐 이 황당무계하고 상당부분 비윤리적인 이 소설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만, 상상력 풍부한 마음은 피터팬 독자에겐 이보다 유쾌하고 흡족한 소설도 없다.

 

   

알란 할배와 5천만 크로나와 함께 하는 일당은 율리우스 외 남다른 핫도그 노점상 베니와 욕쟁이 예쁜 언니, 암코끼리 소냐, 갱단 두목 예르닌, 베니의 형 보세와 형사 아르손까지 점점 커져 간다. 그 사연이 얼마나 단기간에 일어나고 극적인지, 어떤 사고가 그들과 함께 하는지는 직접 책을 찾아보길 바란다. 할배의 과거든 현재든 무엇 하나 활자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책 속 가득 펼쳐져 있다. 서울의 모 자치구에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올해의 노인 추천 도서로 선정하였다. 현재 이 소설은 대부분 20대, 30대 독자층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소비되고 있는데 읽고 나니 노인 추천 도서로도 손색이 없겠구나 싶었다. 이제는 끝내고자 싶었던 알란 할배의 삶은 생일날 창문 넘는 도발부터 또 다른 세기를 연다. 이 할배? 딱 100세 나이에 걸맞은 체력과 건강 상태로 이 모든 모험을 해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 몇이나 알란 할배보다 나이가 많을까? 할배 기준에선 죄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기들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 절대 따라하면 안 되는 삶이지만, 알란 할배의 답 없는 저돌 정신은 꽤 배울만한 구석이 있다. 으라차차 내 100년, 둥근 지구는 거들 뿐이다. 뛰어보자 팔짝,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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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안에 떠오르는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 비밀 - 끊임없는 성장을 위한 전략적 브랜드 관리 와튼스쿨 비즈니스 시리즈
바바라 E. 칸 지음, 채수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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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브랜드의 성공비밀] 와튼스쿨 마케팅교수의 브랜딩 축지법 수업

 

 

 

 

“인간은 누구나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팔 수 있다. 그러나 강력한 글로벌 브랜드를 창조하는 것은 오직 천재만이 할 수 있다.”  - 데이비드 오길비(본문 中 인용)

“회사가 분리된다면 나는 당신에게 땅과 벽돌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브랜드를 가질 것입니다.” - 존 스튜어트(본문 中 인용)

 

 

 

이 여섯 번째 번역서가 나온 이제야 이런 천금 같은 경영서 시리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와튼스쿨 비즈니스 시리즈, MBA의 명문 와튼스쿨에서 직접 출간하고 있는 경영서 시리즈이다. 권당 140쪽에서 190쪽 내외로 최대한 얇고 압축적으로 만들고, 전 경영 영역을 망라한다. 빅데이터 시대, 얼마나 많은 정보와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처리하는 것이 관건인 현재에 가장 트렌디하고 적합한 형태의 책이다. 현재까지 일곱 권이 번역되었고, 한 책 빼고는 모두 현직 와튼스쿨 교수들이 썼다.

 

 

원제처럼, 바바라 E. 칸 교수가 생각하는 글로벌 브랜드 파워는 기업의 영원불멸(장기)의 명성을 확보하는 레버리징 브랜드이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소비자 트렌드와 마케팅 변곡점을 늘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변곡점은 1985년과 2008년이다. 1985년을 기점으로 소극적이었던 전통적인 소비자와 달리 적극적인 소비자가 등장하며. 기업 역시 제품이 곧 브랜드였던 태도를 버리고 본격적인 전략적 브랜드 관리를 시작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뉴블랙’ 현상이 대두된다. 기득권 세력을 상징하는 ‘블랙’에 'new'를 붙인 신조어로, 2008년 이전에 제품 구입 결정에 관여하는 48개 변수 중 하나였던 ‘고객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한 현상이다. 또한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이제 사회 전체를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간주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비밀>은 브랜딩에 있어 알아야 할 기본 개념들을 빠르게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책 초반 저자의 언급을 보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의 최신 브랜딩 이론이나 사례를 기대하였으나 소셜미디어와 관련된 사례 정도만 그에 해당한다. 그보다는 브랜딩에 주목하게 된 1985년 이후의 중요 사례들을 독자들이 빠르게 훑게 해주는 데 목적이 있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의 타깃 독자는 브랜딩의 기초 지식을 빠르게 숙지하려는 사무직 종사자이며, 효율적인 독서 전략은 목차를 중심으로 키워드를 빠르게 체킹해 A4용지 1페이지 내로 스스로 정리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읽는다면 그러면 당신이 앞으로 브랜딩에 있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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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물리학 - EBS 다큐프라임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 제작팀 지음, 홍성욱 감수, EBS MEDIA 기획 / 해나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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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물리학] 빛으로 엮은 물리학의 역사

 

 

 

상아탑에서의 인문학은 숨만 겨우 부지한 지 오래다. 그럴수록 아이러니하게 문화계와 비즈니스계에서는 인문학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하지만 기초과학·순수과학 분야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이해하기 어렵고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일까, ‘쉬운’을 강조하는 인문교양서의 홍수 속에서 과학교양서는 드문드문 등장한다. 게다가 대다수가 아동청소년 겨냥이다. <빛의 물리학>은 과학서 독서에 대한 오랜 자기반성과 갈증 상태에서 만난 책이었다. 내 안의 과학소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언젠가부터 비문학 독서 중 과학서의 비중이 손을 꼽을 정도가 되었다. 올해는 기초과학순수과학서를 한 권이라도 제발 읽자는 것이 목표였다. 한 달 평균 10권정도 읽고 있는 올해, 반년 동안 읽은 기초과학순수과학서는 <빛의 물리학>이 유일하였다.

 

수신료 납부를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계속 느끼면서 꼬박꼬박 냈던 것은 3%가 EBS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EBS 방송콘텐츠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두터웠다. EBS에서 내놓는 다큐 몇 개만으로도 1년 치 수신료가 아깝지 않았다. 그래서 동명의 6부작 EBS다큐프라임을 단행본화한 <빛의 물리학> 역시, EBS란 이름만 믿고 덮어놓고 읽기 시작하였다. 갈릴레이부터 다중우주론까지 ‘빛’이란 키워드로 엮은 물리학의 역사였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워낙 오랫동안 과학과 멀리 있던 만큼, EBS는 믿으나 나는 믿을 수 없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책을 읽었다. 굉장히 독특한 다큐멘터리였다. 각종 드라마가 삽입되고, 과학과 전혀 상관없는 무용가가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다큐멘터리의 진행과 내레이션 맡았다. 영상은 무척 감각적이었고, 구성은 매우 독특했으며, 그 속에 담은 내용들의 양이 여간 녹록치 않았다.

 

-6장------물리학의 역사는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합친, 만물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궁극의 이론을 찾으려는 여정

----- 1장,3장[17C][빛의 속도] 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 아무런 힘을 받지 않고 같은 속도로 움직일 때 나를 규정하는 건 상대의 움직임이다.  

- 3장[18C][빛의 색] 뉴턴의 광학: 빛 속에 모든 색깔들이 혼합되어 있으며 각 색깔들은 고유한 굴절률을 가진다.

1장,3장-----------------------------------------빛은 입자다, 빛은 직진한다.------------1장,3장----------------------------[19C] 빛은 파동이다. 빛과 전자기파의 속성은 같다.--1장[20C]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 km이며 일정하다. 상대적인 것은 시간이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간은 느려진다.

-2장[20C]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 중력은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어지기 때문에 생긴 것이며 모든 공간에 미친다.→시간은 다르고 공간은 휘어져 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주위의 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휘어진 공간 속을 나아가고 있는 직진하는 빛은 휘어져 보인다.

1장,2장------------------------------------------------빛은 입자다

-4장,5장[20C] 양자역학: 원자보다 작은 양자의 세계. 에너지는 불연속적이다. 전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한다.

4장,5장-----------------------------------빛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가진다.--------4장,5장-----------------세계의 미결정성(불확정성)과 확률성에 대한 상대성이론(N)과 양자역학(Y)의 전쟁/10의 마이너스 33승의 미시세계. 어떤 양자역학자도 아직 양자역학을 마스터하지 못한--------------------------------------------------------------------------------

-6장[20C]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이론: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일시키려는 노력(미완)

----------------------------블랙홀의 발견. 양자역학이 중력과 충돌한다는 깨달음/1970년대 양자색역학으로 전자기력·약력·강력까지는 통일이론을 만드나 끝내 중력에서 막힘/중력 개새끼---------------------------------------------------------------------------------------

-6장[20C] 끈이론: 10차원의 세계. 열려 있지도 닫혀 있지도 않고 분리되기도 합쳐지기도 하는 끈이 다양하게 진동해 우주를 만든다.

-6장[20C] 초끈이론: 다섯 개의 끈이론을 통일시키자. 11차원과 M-이론(우주의 모든 물질이 거대한 막Membrane으로 연결되어 있다. 차원과 차원 사이에, 끈이 막에 붙거나 막에서 끈이 생기거나, 막 자체가 차원이 되거나.)

-6장[20C] 다중우주론: 우주는 거대한 막들의 충돌로 탄생. 우주는 여러 개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못 다 이룬 꿈 통일장 이론을 계승 중인 현대물리학----------------

 

6부작 다큐멘터리와 320여쪽의 책으로 <빛의 물리학>이 논하는 물리학의 역사를 요약하면 위와 같다. 얼마나 소양이나 집중력이 부족한 걸까. <빛의 물리학>을 쉽고 잘 만들었다고 호평 일색인 대중들의 반응을 보며, 인지 갈등을 느꼈다. 비전공자에게 진행을 맡겨 그만큼 이 다큐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음을 어필하자, 몇 십 분당 상황극을 넣어 관심을 유도하자, 스토리텔링과 정보제시를 적절하게 혼합하자, 계산적으로는 제작진의 의도와 대중들의 반응을 알겠다. 그런데 누가 봐도 정석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 계산적인 요소들이 산만하게 느껴져서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올해 EBS다큐프라임 단행본화한 책 2권을 서평하며 공통적으로 얘기했던 것이, 소재와 내용은 좋으나 분량 강박 때문에 동어반복 등 늘어져 버리는 다큐멘터리를 책은 군더더기 없이 잘 요약해 만족스럽다, 책으로 읽으라는 것이었다. <빛의 물리학>도 그런 편이지만 좀 더 다큐멘터리와 책이 닮았다. 다큐멘터리의 산만함과 아쉬운 점이 책에서도 똑같다.

 

   

오히려 이 책의 장기인 현란한 편집과 테크닉을 젖히고, 책 내용을 요약해보며 정보 콘텐츠 위주로 책을 훑어 읽으니 본론이 한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다큐멘터리와 병행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일독 때와 달리 책이 마음에 들고 내 책이구나 싶어졌다. 참으로 기묘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다. 이렇게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느껴지는 책도 단숨에 매료되는 책 못지않게 좋은 책인지도 모르겠다. 빛이란 키워드로 빛의 속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결론을 나열하며 작게는 근현대 물리학으로 크게는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부터 빠르게 물리학의 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다. 사진과 예시그림도 많고 EBS다큐책 특유의 눈높이 문체 때문에 (나처럼) 너무 무지렁이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대중들이 그랬듯 열광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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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기 좋은 날 - 클라라의 달달한 바느질 소품 40
정진희 지음 / 시드페이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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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기 좋은 날] 한 땀 한 땀 포근한 보통날
 
 
 
 
저에게 힘이 되고 좋은 에너지가 되어 준 것은 바느질이었답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펑펑 오는 날도, 햇살이 쨍쨍한 날도…
클라라의 작업실은 늘 '바느질하기 좋은 날'입니다.
- 작가의 말 中
 

'클라라 정진희 저'. 책에서 그 이름을 발견한 순간 무척 반가웠다. 마치 오랜만에 친구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흥분해선 책장을 이리저리 넘겼고, 품에 책을 꼭 안아보았다. 한 2010년 이후로 국내에서 펠트공예나 퀼트 해본 사람 중에 클라라 정진희를 모르는 이가 과연 있을까? 그 이름은 몰라도 디웨이하면 아마 다 ‘아~~~’하며 아실 듯싶다. 대표적인 와이프로거·파워블로거이자 디웨이 대표 디자이너기도 한 클라라 정진희, 다채로운 그녀의 핸드메이드 작업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느질’이다. 어떤 원단으로든 바늘과 실이 있으면 뚝딱뚝딱, 웬만한 것은 다 만든다. 4년 전 손바느질에 잠깐 빠져 있을 때 그녀를 알았다. 직접적으로 그녀의 블로그를 들락날락하기보다, 이웃블로거의 이웃블로거여서 스크랩 포스트와 친목 포스트로 많이 접해서 친숙하였다. 디웨이 유저였기도 했고 말이다.

 

 

클라라 정진희의 바느질 소품 40개를 단돈 만 팔천 원으로 안다? 그녀의 도안 값을 생각하면, 올 6월 시드페이퍼에서 출간한 <바느질하기 좋은 날>은 거의 주워가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구매도 가능한데다 출간 초반 각종 이벤트까지 감안하면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이 책 덕분에 4년 만에 다시 바늘을 잡게 되었다. 펠트공예 전용 바늘도 잃어버리고, 한 번도 안 쓴 새 기화성펜과 수성펜이 완전히 못 쓰게 될 만큼의 시간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재료들을 찾아다가 책을 살펴보며 만들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새삼 바느질을 그만 뒀던 이유가 생각났다. 바느질 재미에 푹 빠지면 빠질수록 손바느질의 시간적 비효율성과 재봉틀 소유에 대한 갈망이 커졌고, 주로 날 위한 장난감 위주로 만들었는데 아기용품도 만들고 싶고 남에게도 선물하고 싶고 자꾸 만들고 싶은 것은 많아지는데 현실의 여건이 따라주지 않으니 절로 흥이 사라져서였다.

http://blog.naver.com/isa0814/220026348334

 

 

책을 읽고 나서 작가의 블로그를 찾았다가 책을 읽으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집필 뒷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이 책에 실린 바느질 도구들이 실제로 작가가 현재 쓰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담았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낡고 흠집투성이인 재단가위를 한참 쳐다보다가 본문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만들면서 무엇을 어떻게 사진에 담을지 이리저리 배열하고 순서나 물건을 바꿨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의외로 책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라니, 더 힘이 들어가고 고민도 많았을 듯싶다. 인심도 넉넉해서 책에는 40작품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2작품이 더 들어가 있다. 도안은 35개인데 도안이 없는 7작품의 본문을 확인하면 단순 사각형 등 굳이 도안이 없어도 본문 속 만드는 법만 보고도 재단할 수 있어 생략한 것으로 추측된다. 도안이 본문 순서와 좀 다른 것은 작품에 따라 도안이 한쪽짜리인 것도 있고 두쪽짜리인 것도 있어, 페이지 편집하면서 부득이하게 배열을 바꾼 것 같다.

 

 01 | 파격적인 책값(40작품-18,000원/할인 가능)

 02 | 다채로운 스펙트럼(천,펠트,가죽,헌옷 등/생활용품,가방,신발,장난감 등)

 03 | 친절하고 세심해(재료,도안,만드는 방법 등 All-in-One)

 04 | 소박한 보통날에 충실한(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쉽고 저렴한 소품들) 

 

01 | 손바느질법이 좀 더 추가되었으면(버튼홀스티치,아플리케 등)

02 | 엄밀히 말하면(42작품,35도안/도안 없는 7작품 도안 없어도 극복은 가능하지만)

03 | 사진이 조금 크거나 설명이 좀더 자세했으면(특히 도안 없거나 난이도 높은 단계 처리시) 

04 | 프롤로그에 재봉 관련 얘기도 있었으면(본문에서 손바느질과 비중이 같거나 이상인데!)

 

 

 

<바느질하기 좋은 날>에 담긴 소품들은 너무 고가의 재료가 필요하다거나, 지나치게 어렵지 않아 좋다. 아이를 위해, 친정엄마에게 선물하려고, 산뜻하게 집안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등 각 작품 설명에 앞서 그 작품과 관련한 작가의 짧은 메모들이 있는데 그 짤막한 글들이 모여 책 전체의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만든다. 책의 편집과 사진의 색감도 그런 정서를 돋우는 데 한몫 하는데, 심미성에 치중하다 사진 크기를 너무 줄인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설명처리를 한 것도 있고 바느질 공예의 특성상 글보다 사진에 의지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설명 사진들이 4.4cm*3.2cm다보니 과정이 잘 안 보이는 것들이 많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책이긴 하지만, 바느질 완전 생초짜면 막히고 헤맬 수 있다. 또 재봉 비중이 손바느질과 같거나 그 이상인데 바느질 도구에서 부자재까지 다루는 프롤로그에서 재봉 관련 얘기는 전혀 없는 것도 아쉬웠다. 기왕 입문자부터 고급자까지 두루두루 볼 수 있는 바느질 책을 기획했으면 손바느질, 재봉 얘기 모두 있고 바느질법도 버튼홀스티치와 아플리케 등도 추가해서 좀 더 완벽한 가이드가 될 수 있는 프롤로그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쓰고 보니 책의 단점만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싶은데 가격, 구성, 내용 등 워낙 훌륭한 책이라 욕심이 나서 해보는 군소리이다. 이런 작가라면 더욱 강력하고 섬세한 차기작을 낼 것 같다고 기대가 되어서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꼭꼭 봉인해두었던 공예상자를 다시 열면서 까맣게 있고 있던 바람이 다시 찾아와 괴로웠지만, 더없이 행복하였다. <바느질하기 좋은 날>은 클라라 정진희의 블로그 이름이기도 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날에 바느질이 하고 싶어지는지. 한편, 취미실용서로 집은 이 책에서 생각지 못한 소득은 ‘바느질하는 마음’을 인지한 것이었다. 바느질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운 적이 있었다면, 시간 죽이기 단순노동으로 느껴지지 않은 적이 있다면, 그 한 땀 한 땀에 사랑을 담아서가 아니었을까. 돌이켜 보면 그 보통날은 포근하고 따스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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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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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당신의 오라니를 잊지 말아요!

 

산 위에는 늘 산들바람이 불었습니다. 산들바람은 이끼 낀 바위도 어루만져 주고, 비 온 뒤 불쑥 자라난 야생화와 버섯도 흔들어 부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멀리서 보니 마을이 참 작고, 단정하고 조용해 보였습니다. 나는 이 마을이 품고 있는 온갖 삶의 소리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배우고 느끼고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 정말이지 나는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사랑했습니다! - p.51

 

우리나라에서 출신지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아버지의 고향을 기준으로 한다. 그 때문에 단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지역이 출신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문제는 이것이 지역차별과 지연의 근거가 되는 연좌제적 잣대로 사회에서 통용되어왔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뿌리를 찾고 인지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인데,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다면 너무 서글프다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3대 이상 토박이가 전체 인구 6%에 불과한 곳이다. 그만큼 출신이나 고향의식도 적고 특별한 지역색도 없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지방 출신인 부모님보다 뿌리에 대한 갈망과 애착이 더욱 강한 편이다. 본적, 출생지, 성장지 모두 서울이지만 정말 완전한 서울사람일까란 의문, 나름 유창하게 사투리를 쓴다 생각해도 영락없이 아버지의 고향에서 낯선 이방인인 것,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 같다는 생각이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 아이에게 오라니는 완전한 세상이었고, 삶의 한가운데 서 있게 하는 곳이었다.” 책 끝의 작가의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클레어 A. 니볼라는 자신이 그림 그리고 글을 쓴 동화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마치며 이 책을 사라져 가는 공동체 삶의 기록이라고 정의하였다. 이탈리아 이민 2세대인 클레어 A. 니볼라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뉴욕인이다. 뉴욕은 서울보다 더 크고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지중해의 작은 섬 산골 마을, 오라니엔 니볼라가 뉴욕에서 겪지 못했던 자연이 있었고, 공동체가 있었다. 모든 희로애락 마을 안에서 이루어졌고, 모든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먹을 수 있었다. 이따금 찾는 오라니에서 친척들과 보내다가 다시 뉴욕으로 오면, 더욱 많은 사람과 발전된 문명이 있지만 무언가가 결핍된 것 같았다. 작가는 궁금해졌다. “저 사람들에게도 자기만의 오라니가 있을까?”

 

동화책,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 한권 두권 독파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라가치상 수상작들을 많이 찾아 읽게 된다.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짚은 것도 수상 타이틀에 눈이 가서였다. 알고 보니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는 라가치상 수상작이 아니라 멘션작이었지만, 다른 여러 도서상들을 수상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나의 오라니는 무엇인지, 아버지 손잡고 아버지 고향에 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였다. 내가 사는 곳보다 더 큰 도시에서 나의 아버지의 고향보다 훨씬 외진 곳으로 가는 이야기다보니 작가의 경험이 더욱 극적이다. 6촌 이상 먼 친척이나 체험을 가면 모를까 시골과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는 것도 작가만큼 아버지 고향에 애틋함과 감명이 크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채우는 벅찬 무언가를 꼭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작가가 한편으론 부러웠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함께 읽는 나도 온 마음이 따스함으로 가득 차는 경험을 했지만 그것이 상상이 아닌 작가처럼 실체적 경험이 될 수는 없기에.

 

조선일보 계열 조선에듀케이션의 어린이문학 임프린트 이마주에서 이번에 철학하는 아이라는 그림동화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물음에 대한 답을 함께 찾는다는 것이 출판사에서 밝히는 시리즈 기획 의도이다.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는 이 철학하는 아이의 첫 번째 책으로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주제를 붙여 출간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오라니 같은 고향을 가질 수는 없지만, 어느 마을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지키는 도덕과 문화와 정서가 있다. 이웃사촌, 친척, 가족, 사랑, 협동 등을 아이들이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담뿍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의 작가처럼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떠올리면 행복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한다. 우리의 오라니를 지키면서 우리의 아이들도 오라니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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